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5화 (5/115)

제5화.

난 내상을 입고 천천히 죽어갔다.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곧 죽을 예정입니다!]

[알림: 사망하기까지 앞으로 1분!]

[알림: 59, 58, 57….]

‘이렇게 죽는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필 전직 거지에다 환관지망생에 빙의하질 않나.

시작 지점도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황궁이질 않나.

내 땅콩을 수확하려는 놈들에게 쫓기질 않나.

‘이런 의미였구나.’

사부님이 해 주신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우주의 법칙이 네 녀석에게 온갖 페널티를 가할 테니, 온갖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될 게다. 운도 더럽게 안 따라줄 테고.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게 될 게다. 그래도 가겠느냐?’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다.

그래,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지.

남들은 1개의 서버밖에 플레이하지 못하는데.

부캐를 팠는데 이 정도 고난과 역경쯤이야.

삶에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 말라 죽어가던 나다.

그런데 고작 10분 정도 플레이한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

‘그냥 한번 죽지 뭐. 죽는 게 나아, 지금은.’

죽으면 캐릭터가 사라지면서 가까운 부활 지점에서 부활하겠지?

어차피 1레벨이라 사망 페널티 따위 하나도 안 무섭다.

죽으면 레벨이 하락하고, 지니고 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랜덤하게 떨어진다.

근데 난 1레벨이라 떨어질 레벨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템을 떨굴 걱정도 안 해도 된다.

그 말은 뭐다?

응~ 49시간 있다가 부활하면 그만이야~

햄찌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어차피 녀석은 대정령.

만약 죽어도 정령계에서 부활했다가 다시 날 찾아올 테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복귀하자마자 죽어서 좀 아쉽긴 한데, 별수 없잖아?

지난 3년도 잘 참았는데 까짓것 49시간쯤 못 참을 것도 없겠지.

기다리는 동안 뭐하고 시간 때울지나 생각해 봐야겠다.

‘와이프랑 같이 강원도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한 2박 3일 바닷바람 좀 쐬고, 맛있는 회도 먹고.’

한참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데.

“이런!”

금의위 위사가 다가와서 내 손목에 제 손가락을 포갰다.

한의사 선생님이세요?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 잠시 분노를 참지 못했구나. 조금만 참아라.”

예?

“조금 아플 것이다.”

금의위 위사가 나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어어?

“자, 잠깐. 지금 이게 뭐 하는.”

“입을 열지 마라. 불어넣은 기가 흩어지면 치료가 어려워진다.”

“치료? 아니! 치료를 왜 해! 치료하지 마! 이 미친놈아! 누구 멋대로 살려! 그냥 죽게 내버려두….”

금의위 위사가 내 몸 이곳저곳을 푹푹! 찔렀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아혈>을 짚여 <상태이상 : 침묵>에 걸렸습니다!]

[알림: 지금부터 30분 동안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점혈이 뭐였더라?

무협소설 본 지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알고 계셨나요?]

<점혈법>이란 무협 세계관에 자주 등장하는 수법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혈자리―에 기를 주입해 상태이상 효과를 일으키는 공통 스킬입니다.

주로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때 많이 쓰입니다.

시전자의 레벨이 높을수록 유지시간이 길어집니다. (기본 5분)

예시)

마혈 : 마비

수혈 : 수면

아혈 : 침묵

훈혈 : 기절

사혈 : 사망

“읍! 읍읍!”

<아혈>을 짚여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읍! 읍읍! 으으으으읍! 읍!”

(야 이! 그냥 뒈지게 두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라.”

“으으으으읍!”

(살리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

“그래,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가 널 살릴 것이다.”

(내가 언제 걱정을 했어어어! 이 미친놈아아아아아!)

금의위 위사는 기어코 나를 살려냈다.

[알림: 내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기가 보충되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무섭게 폭락하던 생명력이 하락을 멈췄다.

그런 건 주식 할 때나 반가운 거지 지금은 아니야!

“이제 되었다. 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면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금의위 위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 눈치 없는 새끼.

존나 눈치 없어.

* * *

나는 즉시 의원으로 옮겨졌다.

“어디 보자.”

의사처럼 하얀 옷을 입은 환관이 들것에 실려 온 나를 내려다보더니, 맥을 짚었다.

동양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세계답게 의료행위도 한의사 스타일이었다.

“위험할 뻔했는데 다행히 응급조치가 빨랐구려.”

“다행이구려.”

뭐가 다행인데!

뭐가!

“어찌 된 일이오?”

“내서당에서 도망친 환관예비후보생 같은데, 녀석이 본 위사를 공격하기에 나도 모르게 손이 세게 나갔던 것 같소.”

“하늘이 도왔소. 즉사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동의하오.”

“아무튼 알겠소. 이 녀석은 내가 치료할 터이니, 위사께서는 일 보시오.”

“그럼, 부탁하오. 아, 그리고. 녀석 손이 매서우니 조심하시오.”

“알겠소.”

금의위 위사가 떠난 후.

“내상 때문에 기가 많이 허해졌구나. 우선 기를 되찾는 게 급하니, 침술과 탕약으로 널 치료할 것이다.”

환관은 내 몸 곳곳에 수십 개나 되는 침을 꽂더니, 쓰디쓴 탕약까지 먹여가며 치료해주었다.

[알림: 내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기가 보충되었습니다!]

[알림: 체력이 보충되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덕분에 살게 생겼다.

안 되는데.

[알림: 상태이상!]

[알림: 약 기운으로 인해 <상태이상 : 수면>에 걸렸습니다!]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한숨 푹 자고 일어날 예정입니다!]

[알림: 한숨 푹 자는 동안에는 캐릭터 조작이 불가능해집니다!]

[알림: 준비하세요!]

[알림: 잠들기까지 앞으로 10초!]

[알림: 9, 8, 7….]

나른한 브금이 들려왔다.

아기들이 졸 때나 깔리곤 하는 그 느릿느릿한 멜로디다.

[알림: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눈앞이 캄캄해졌다.

[알림: <상태이상 : 수면> 해제까지 앞으로 360분!]

[알림: 359분 59초!]

[알림: 359분 58초!]

진짜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으. 내가 다 졸리네.”

이대로 있다간 캡슐 안에서 잠들 것 같아 뚜껑을 열어젖혔다.

6시간 동안 게임도 못 하는 거, 굳이 캡슐 안에 있을 필요도 없겠지.

‘운동이나 다녀오자.’

게임은 이따 하고.

* * *

그날 저녁.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내와 TV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캐릭터가 깨어나기까지 5분이 남았단 알람이었다.

“헉!”

“응? 갑자기 왜 그래? 알람은 또 뭐고?”

“게임해야 돼! 게임!”

“게임? 켜놨어?”

“그게 아니라….”

“얼른 가봐.”

아내가 등을 떠밀었다.

아내는 내가 게임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하긴.

프로게이머 출신 겜돌이·겜순이 부부가 게임하는 걸 싫어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유부남 여러분!

부러우면 여성 프로게이머나 게임 좋아하는 겜순이랑 결혼하셨어야죠!

호다닥!

캡슐방―요즘엔 가상현실게임 시대에 발맞춰 고급 주거지에는 캡슐을 보관해두는 방이 따로 있다―으로 달려가 캡슐 뚜껑을 열고 몸을 뉘었다.

[알림: BNW 클라이언트 실행!]

[알림: 로그인 성공!]

[알림: 서버를 선택해주세요!]

판타지·무림·어반 3개의 서버 중 무림 서버를 클릭했다.

[알림: 서버에 접속합니다!]

[알림: 로딩 중….]

[알림: 로딩 완료!]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접속했지만 아직 눈앞은 캄캄했다.

[알림: <상태이상 : 수면> 해제까지 앞으로 4분 21초!]

[알림: 4분 20초… 4분 19초….]

캐릭터가 깨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그럴싸한 계획을 세웠다.

‘깨어나면 바로 적들을 쓰러뜨린다. 그다음 옷을 뺏어 입고 환관으로 위장하는 거야. 그리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거지. 그다음에는 햄찌 이 자식 찾아서 합류하고. 그런 다음에 황궁을 빠져나가서 멀리멀리 도망치는 거다.’

…라는 것이 내 계획이다.

[알림: <상태이상 : 수면> 해제까지 앞으로 10초!]

‘집중.’

[알림: 9, 8, 7, 6, 5, 4….]

[알림: 3, 2, 1!]

[알림: <상태이상 : 수면>이 해제되었습니다!]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때려눕힌다.’

일단 주먹부터 움켜쥐고.

서걱!

어?

뭔 소리야?

왠지 섬뜩한 소리가 들렸는데?

욱신!

뭐야?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이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통증은…?

서, 설마?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뭘 축하하는데…?

[알림: 중성화수술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땅콩을 수확하셨습니다!]

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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