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이게… 무슨….”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도 않다.
내가.
나 한태성이.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당신의 성별이 <남성>에서 <무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알림: 모든 종류의 매혹 계열 스킬에 대한 저항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알림: 약점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급소를 맞아도 아프지 않습니다!]
당연히 안 아프겠지.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땅콩을 잃은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약점이 없는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씨 없는 수박>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내가 고자라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사마천의 후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땅콩은 없어도 모발은 있다!>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면도를 할 필요가 없는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딴 칭호들 주지 마.
[알림: 시스템 알림!]
[알림: 성인 콘텐츠 해금이 불가능해집니다!]
[알림: 성불구자는 성인 콘텐츠를 즐길 수 없습니다!]
아.
[알림: 결혼 컨텐츠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참고: 성기능 장애는 부부 간 이혼사유로도 인정되는 부분이며, 이는 동성 간 결혼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쓸 데 없이 현실적인 건데?
도대체 왜?
[알림: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알림: 중성화 수술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알림: 중성화 수술을 하면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적어져 탈모·전립선비대증 등의 질환에 면역이 되며, 수염이 나지 않아 면도를 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알림: 마지막으로, 중성화 수술을 하면 높은 연봉과 다양하고 질 좋은 복리후생을 누릴 수 있는 황궁에서 환관으로 근무할 수 있….]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아아아아아아!”
절규가 터져 나왔다.
“어허!”
수술용 칼을 든 환관이 나를 뜯어말렸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다시 출혈을 할 수가 있느니라. 그럼 출혈을 잡기가 힘들다. 알겠느냐?”
“아니. 아니이.”
게임 인생 10년 차.
일생일대의 굴욕이다.
“내가, 내가. 중성화수술을 당했다고? 내가, 고자라고?”
“어허!”
환관이 다그쳤다.
“안정을 취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환관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뭔 일이야… 으으…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 내가… 어흑… 흑… 으어… 아, 안 돼… 내가 고자라니… 말도 안 돼… 으헉헉헉헉!”
오열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부캐라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커리어를 이룩한 내 캐릭터 중 하나가… 고자가 되다니.
뉴비 시절 채형석―지금은 내 친구다―과 그 패거리들에게 허구한 날 두들겨 맞을 때도 이런 굴욕까진 당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거 맞아?
맞냐고.
복귀 첫날에 일생일대의 흑역사를 만드는 게?
“어허!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푸화아아아악!
피가 터졌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출혈>에 걸렸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중략)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또다시 눈앞이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런 어리석은 놈!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도 모자랄 판이거늘!”
환관이 버럭 소리치며 다급히 하얀 무명천―출혈을 잡기 위해 거즈 대용으로 사용하는 듯하다―으로 내 아랫도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혼수상태>에 걸렸습니다!]
[알림: 10초 뒤 정신을 잃습니다!]
[알림: 정신을 잃은 후에는 캐릭터의 사망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몇 시간 후에 다시 로그인을 시도해 주세요!]
[알림: 혼수상태까지 앞으로 10초!]
[알림: 9, 8, 7, 6, 5, 4, 3, 2, 1….]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림: 캐릭터가 혼수상태에 빠져 강제 로그아웃되었습니다!]
복귀 1일 차.
내 부캐가… 고자가 됐다.
* * *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벌집>의 본사가 자리한 미합중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현지 시각 07시 44분.
한국 시간으로는 21시 44분.
야간 당직근무를 서던 상황실 직원들 중 일부가 환호를 내질렀다.
“Oh, my GOD….”
“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여, 역배다! 역배에에에에에에!”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언빌리버블!”
그들은 모두 태성이 고자가 된다는 것에 베팅했던 이들이었고, 이번 내기에서 승리해 꽤나 큰 용돈벌이를 하게 되었다.
왜?
태성이 고자가 된다는 쪽의 배당이 더 높았으니까.
사실 1레벨 쪼렙 캐릭터가 황궁에서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궁은 150레벨 이상의 강한 NPC들이 수천 명은 득실거리는 곳.
299레벨의 무지막지한 괴물 NPC들도 200여 명이 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개중에는 300레벨이 넘는 초강자인 NPC도 몇 있었다.
그런 극한의 환경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현재 무림 서버의 랭커들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성이 무사히 황궁을 빠져나간다는 쪽의 배당이 더 낮았던 이유는, 태성이기 때문이었다.
BNW의 전설 중의 전설인 태성이기에, 다들 뭔가 뾰족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게 비정상적인 배당의 이유였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한태성이 고자가 되다니.”
많은 직원들이 실의에 빠졌다.
믿었던 태성이 진짜로 고자가 되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태성의 열성팬들도 다수 있었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건 당연한 일.
심지어 역배당에 베팅했던 직원들조차 큰 충격을 받고 멍하니 전광판을 응시하고 있기도 했다.
“와우! 한태성이 고자가 되다니!”
“이거 전 세계 대서특필 감인걸!”
“이건 진짜 빅뉴스야! 이걸 언론사에 팔면 도대체 얼마야?”
한편, 열광하는 직원들도 없잖아 있었다.
천하의 한태성의 부캐가 이런 대굴욕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들 조용!”
그때, 상황실의 총책임자인 한국인 임원 차혜미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부터 다들 조용히 하세요! 내기를 하는 것까지는 사내 문화로 인정해 주겠습니다! 하! 지! 만!”
차혜미가 거듭 강조했다.
“한태성 선수의 복귀와 방금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언론에 제보해 돈을 챙기거나, 혹은 커뮤니티나 영상 플랫폼에 이를 알리는 건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죠. 상황실에서 보고 들은 모든 정보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내 보안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을요. 천문학적인 소송비용과 배상금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싶지 않다면, 다들 입단속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명심하세요. 본사의 소송에는 자비가 없다는 걸.”
차혜미는 그렇게 엄포를 놓고는, 서둘러 상황실을 나섰다.
지금쯤 태성의 복귀에 대한 보도 자료를 작성하고 있을 부회장 오펜하이머를 만나기 위해서….
* * *
캡슐을 빠져나온 뒤.
“꿈인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거 혹시… 몰카 같은 건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살아 있는 레전드인 나를 골려주려고 기획한?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오빠? 게임 한다며?”
아내가 좀비처럼 서성이던 내게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 고자 됐어.”
“으응?”
“고자 됐다고. 나 이제 고자야.”
“그게 무슨 소리야?”
“고자라니. 내 부캐가. 고자라니.”
“오빠?”
“아아.”
“오빠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리 와.”
아내가 넋이 나간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안 돼. 복귀 첫날에 이게 무슨. 아아.”
아내의 품에 안긴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전부.
이제 이 소식이 알려지면 나는….
‘잠깐. 벌집에서 내가 복귀한 걸 알잖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쯤 오펜하이머 그 양반이 내 복귀에 대해서 보도 자료를 작성하고 있을 텐데?’
내 복귀는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될 테고, 그럼 게임에 관심이 쏠리면서 회사 주가가 폭등하겠지.
오펜하이머가 그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입막음부터 해야 한다.
“절대 안 돼!”
서둘러 핸드폰을 찾아 오펜하이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의 대주주.
부회장 오펜하이머와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 오, 태성 선수. 안 그래도 지금 태성 선수의 복귀에 대한 보도 자료를….
“하지 마아아아아아아아!!!”
- ……!
“절대, 절대 비밀로 하세요. 예? 아시겠어요?”
- 갑자기 그게 무슨… 음? 차혜미 씨? 아. 태성 선수.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1분 뒤.
- 보도 자료…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상황실 총책임자인 차혜미로부터 사정 설명을 들은 게 분명했다.
- 일단은. 어. 그러니까. 음. 충격이 크셨을 텐데. 예, 뭐. 제가 어떻게 드릴 말씀이.
“입단속만 잘 해 주세요.”
- …….
“이거 새나가면 저 죽어요? 꽥 하고 죽어 버릴 겁니다. 한강에 제 시체 떠오릅니다. 아시겠어요?”
- 잘 알겠습니다.
“하아.”
전화가 끊긴 후.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아내에게 조금 전 벌어졌던 끔찍한 비극에 대해 말해 주었다.
“풉.”
아내가 웃었다.
“잘됐네.”
“뭐?”
“앞으로 여자 NPC랑 놀아날 일은 없을 거 아냐.”
“…….”
“NPC한테 질투 안 해도 되잖아. 난 좋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럽다.
전혀 근거 없는 반응은 아니다.
게임 속 NPC랑 사랑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많은 시대다.
사람이 NPC를 질투하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란 거다.
“뭘 그렇게 상심해. 진짜 고자가 된 것도 아닌데. 일단 진정해.”
“으음.”
“그리고 너무 의기소침해할 것도 없어. 아무리 오빠라도 1레벨에 그런 곳에서 살아남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본캐도 아니고. 1레벨짜리가 어떻게 200레벨이 넘는 NPC들을 이기겠어.”
“그건 그런데.”
“오빤 방법을 찾을 거잖아.”
“방법?”
“항상 방법을 찾아냈잖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래, 그랬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방법을 찾아내곤 했었지.
“복구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이템이나 영약 같은?”
“아이템이나 영약이라.”
그래!
찾아보자!
태블릿PC를 켜고 가장 규모가 큰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땅콩을 새로 돋아나게 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 있어야 돼.
아무리 게임 캐릭터라지만 고자로 살아갈 순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