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현질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목표는 무자본부터 시작해 랭킹 1위를 달성하는 것.
단언컨대, 그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예외다.
‘그런 템이 있으면 수백억이라도 지른다.’
이건 돈보다 귀한 명예의 문제다.
지금껏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다가 고자라고 놀림당할 걸 생각하면….
오싹!
지난 10년 동안 쌓아 올린 명예가 와르르 무너질 걸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동이 틀 때까지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하지만.
“없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니야. 더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거야.”
아내가 애써 날 위로했지만, 난감하단 기색이 역력했다.
“질문 글이라도 올려보면 어때? 누군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가?”
“꿀팁이긴 해도 딱히 쓸모가 없어서 알고만 있었을 수도 있잖아.”
“알겠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새 계정들을 만들고, 각 커뮤니티에 질문 글을 복사해 올렸다.
[질문] 중성화 당했는데 이거 복구하려면 어케함??? (사례함)
뉴빈데 NPC들한테 잡혀서 중성화수술 당했음 ㅡㅡ;;;
이거 복구 어떻게 하냐?
방법 아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주라. 부탁이다. 알려주면 섭섭하지 않게 사례할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계속 새로고침해서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88371kej] 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q2w3e4r!] 뭔 개솔???
[부산힙합no.1]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종나웃기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염전주인] 니가 댕댕이냐? 중성화를 당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黃龍] ?
[땅콩버터조아] 님아...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
드립 같은 걸로 오해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올렸다.
[질문] (재업) 진짜 중성화 당했다니까??? 복구 어케하냐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례함)
뉴빈데 이상한데 떨어져서 거기 있는 NPC들한테 잡혀서 중성화수술 당했다고 ㅡㅡ 드립같은 거 절대 아님..... 진짜임.... ㅠㅠㅠㅠ
혹시 땅콩 다시 나는 템이나 영약 같은 거 있음??? 아는 사람 있으면 쪽지로 좀 알려주라.... 진짜 부탁한다....... 알려주는 사람 있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크게 사례할게.....
다들 안 믿는 거 같아서 스샷 첨부한다.... (캐릭명은 가림)
글에 진정성이 묻어나고, 스샷이 첨부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ENJJPT] 이게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변왕추]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oi el] ?
[야율채플린] 진짜로 중성화를 당해버렸내;;;;;;
[3:-1] ???
[오도기합짜세직할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
[keumhee Kim]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땅콩버터조아] 님아......
믿긴 믿는데 어째 반응들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비웃고 조롱하는 분위기다.
광대가 된 기분이다.
“이 새끼들이.”
부들부들!
그때였다.
띠링!
쪽지가 도착했다.
‘설마!’
쪽지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요,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한 줄기 빛과도 같이 느껴졌다.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우편함을 열었다.
[낙성대왕팔성님]
그거 상처부위에 볶은땅콩 1개씩 심은 담에 하루에 한번씩 물주면 다시 남ㅋㅋㅋㅋ 내가 해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렇구나~
툭.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오빠! 갑자기 어디 가!”
아내가 벌떡 일어난 내게 물었다.
“현피 뜨러.”
“으응?”
“쪽지 보낸 놈 찾아내서 죽이게. 낙성대? 가깝네. 흥신소에 싹 의뢰해서 어떻게든 이 자식 잡아낸 다음에….”
“참아!”
“죽일 거야. 진짜로. 죽일 거라고.”
“오빠아!”
아내의 만류로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지만, 그 닉네임은 잊지 않기로 했다.
‘두고 보자. 반드시 복수한다, 내가.’
낙성대왕팔성님?
너.
딱 두고 봐.
내가 꼭 너 X되게 만들어 줄 테니까!
* * *
이후 수없이 많은 댓글과 쪽지를 받았지만, 원하던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놀라움.
혹은 황당하다는 반응이 조금.
ㅋㅋㅋ를 연발하며 조롱하거나 비웃는 반응이 절대다수였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인기글] BNW 무림서버 하다가 중성화수술 당한 게이머 등판 ㅋㅋㅋㅋ (52,213)
[핫이슈] 중성화당한 뉴비 근황 ㅎㄷㄷ
[실시간베스트] 무림서버 고자 등판!!! ㅋㅋㅋ
내 글은 박제되어 각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에 업로드되었고,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댓글이 5만 개나 달리는 건 물론.
게임 영상 전문 플랫폼인 <지튜브>에서도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오빠, 글 올린 게 실수 같은데?”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아내 역시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
“괜찮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전 세계적인 고자 되면 되지.”
“…….”
“이제 한태성 거품설 퇴물설도 슬슬 나오고. 늙고 병든 프로게이머라는 프레임도 씌워지고.”
그때.
“아!”
아내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응.”
“사부님한테 여쭤봐!”
“사부님?”
“사부님이라면 방법을 아실지도 모르잖아!”
“아!”
생각해 보니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있었다.
사부.
999레벨의 히든 NPC.
게임 BNW의 3개 서버 전부를 아우르는 있는 신적인 존재.
비록 게임 속 NPC지만 아버지 없이 자란 내게 아버지 같은 분.
아내 말대로, 그런 사부님이라면 분명 방법을 알고 계실 법했다.
“물어보고 올게!”
“응!”
곧장 캡슐에 몸을 뉘이고 판타지 서버로 로그인했다.
[알림: 로딩 중….]
[알림: 판타지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판타지 서버의 최강대국이자 대륙을 통일한 국가 프로아 제국의 황궁이 펼쳐졌다.
느껴진다.
이 묵직함.
이 힘.
세상을 반으로 쪼개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부캐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강함.
“이게 힘이지.”
스스로의 강함을 주체 못 하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억!
하늘이 정말로 두 동강이 났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비틀린 게 눈에 보인다.
“아차차!”
헉!
홧김에 수도 초토화시킬 뻔했다.
황급히 에너지를 끌어올려 조각 난 공간을 정상화시켰다.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다.
내가 이 정도야!
여기선 신이라고!
…무림 서버에선 고자지만.
‘어서 가서 여쭤보자.’
사부는 늘 그렇듯 황궁 안에 마련된 커다란 호숫가에서 낚시를 즐기고 계셨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오냐.”
사부가 힐끔 나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웬일이냐? 카렐 녀석을 찾으라고 다른 세계로 보내놓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저어, 그게.”
“어디 누구한테 잡혀서 중성화 수술이라도 당한 표정이로구나? 아랫도리가 허전한 게냐? 저절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테고?”
“헉!”
여, 역시 알고 계셨어.
하긴.
사부는 이 호숫가에 앉아 게임 BNW 유니버스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지켜보고 계실 테지.
내가 무림 서버에서 뭘 하는지도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계실 테고.
“끌끌끌.”
사부가 웃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지. 어떠냐? 떨어진 기분이?”
“좀 많이 아픕니다. 많이요.”
“그래도 나무에 거의 다 오른 다음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이제 막 올라가려다 떨어지는 것이 덜 아프지 않겠느냐?”
“백번 옳은 말씀이십니다.”
사부의 말씀을 듣고 나니 뭔가 깨달음이 오는 듯했다.
사부는 늘 이렇듯 나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신다.
이 세계에서 궁극의 성장을 이룩한 나조차도 사부의 말 한마디에 새로운 깨우침을 얻을 정도다.
사부의 말씀에는 실생활에 응용해도 좋을 만큼의 지혜가 담겨 있기도 했고.
“네 녀석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법칙에 의해 제재를 받는 몸. 그런 고난과 역경쯤은 당연한 것이다.”
“역시 그런 겁니까?”
“물론 본좌의 생각으로는 중성화 수술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고난과 역경이 있을까 싶긴 하다만.”
그 가장 큰 고난과 역경, 제자가 겪었습니다.
흑흑흑.
“본좌 같았으면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했을 터인데. 네 녀석이야 워낙 뻔뻔한 놈이니 아직 살아있는 것일 테지만.”
그냥 콱 죽어 버릴까?
“아무튼, 네 녀석이 본좌에게 얻을 조언 같은 건 없다.”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기분이다.
“설마 사부님께서도 땅콩을 돋아나게 할 방법을 모르십니까?”
“본좌가 모르는 게 있더냐?”
“죄송합니다.”
“본좌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본좌가 얻을 게 없다고 말한 이유는, 네 녀석이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답을… 압니까? 제가?”
“이런 멍청한 녀석!”
사부가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커헉!”
피를 토하며 쓰러진 나.
“성장해서 환골탈태를 하면 될 것이 아니냐! 환골탈태!”
그 순간.
“어?”
망치로 머리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사부님께 머리통을 쥐어박히기도 했고.
환골탈태!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더니.
그게 딱 내 이야기였네.
BNW의 성장 시스템은 독특하다.
모든 캐릭터들은 299레벨까지 막힘없는 성장이 가능하다.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필요 경험치가 더 많아져서 성장 속도가 더뎌지겠지만.
어쨌거나 꾸준히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299레벨을 찍는 날이 반드시 온다.
아무리 느려도 2년 안에는.
하지만 300레벨부터는 다르다.
300레벨을 찍기 위해서는 <어떠한 벽>을 깨야 한다.
그게 특별한 퀘스트든, 아이템이든, 혹은 운이든.
정해진 틀 없이 캐릭터마다 불특정한 방법을 통해 <어떠한 벽>을 깨야만 300레벨에 올라설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가 진정한 고레벨의 게이머의 영역이다.
300레벨을 찍으면 <환골탈태>를 경험한다.
<환골탈태>는 캐릭터의 육체가 더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되는 과정.
본캐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는 무려 3번의 <환골탈태>를 거쳤다.
<환골탈태>를 하면 모든 기본 스탯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마나를 담는 마나홀의 크기도 3배로 커지며, 스킬 데미지도 1.5배 이상 증가한다.
캐릭터의 성능 자체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평범한 세단이 슈퍼카가 된 정도라고 해야 할까?
300레벨을 캐릭터 하나를 상대하려면 299레벨의 캐릭터가 200명은 필요할 정도니까 말 다 했지.
그뿐만이 아니다.
캐릭터가 강해진 만큼 외모가 비약적으로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신체적 단점이 사라진다.
예컨대, 외팔이였던 NPC가 깨달음을 얻고 <환골탈태>를 이루면 없던 팔이 새롭게 돋아날 정도다.
까먹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는 말은….
‘그래! 300레벨을 찍어서 환골탈태하면 하면 되는 거잖아!’
답을 찾았다.
잃어버린 땅콩을 찾을 유일한 방법을.
답은 성장에 있었다.
300레벨.
무림 서버에서 <화경>이라 불리는 경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화경을 찍는다.’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