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이제 깨달았느냐?”
“예! 사부님!”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자야.”
“예.”
“본좌는 네 녀석이 인간으로 남길 원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야….”
내가 대답했다.
“신의 반열에 오르면, 인과율의 법칙에 의해 더는 이 세상에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네 녀석이 다른 세계에서 당한 굴욕도 결국은 인간으로 남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니라.”
“……!”
“네 녀석은 지난 3년 동안 뒷방 늙은이처럼 조용히 살았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은퇴 생활을 하려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본래 강자는 외로운 법. 이 세계에 더는 네 녀석의 적수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저 하루하루 소일거리나 하는 것 말고 달리 할 게 뭐가 있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네 녀석이 그곳을 잘린 세계는 다를 테지. 그곳에서 네 녀석은 그저 약해빠진 고자 놈에 불과하다.”
“…예.”
“그래서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니라.”
역시 사부다.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괜히 아버지 같은 존재겠어?
“네 녀석은 완성된 존재이니라. 다시 강해지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느냐?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엔 시간문제일 뿐.”
“사부님….”
“본좌는 네 녀석을 믿는다. 네 녀석이 이 세계에서만큼 다른 세계에서도 강해져서, 본좌가 만들어 낸 기술 체계의 우월함을 증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울컥!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런데 말이다.”
사부가 소매를 슥 걷어 올리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이건 좀 불길한 시그널인데…?
“아무리 우주의 법칙에 의해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된다고 한들. 본좌의 제자라는 녀석이 그런 굴욕을 겪어?”
“히, 히익?!”
주춤주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오래간만에 정신교육을 좀 해야겠구나.”
“그, 그건.”
“검에 녹이 슬었으면, 녹을 벗겨 내거나 녹여야 하는 법.”
“사부님?”
“감히 본좌 얼굴에 똥칠을 해?”
“으아아아아아악!”
사부의 주먹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퍽! 퍼억!
“꾸웨에엑!”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다.
반항?
그런 게 가능했으면 진작 했겠지!
AI가 도와주는 <무적류 기본 공격>의 레벨이 만렙.
하지만 AI조차 사부의 공격은 막아주지 못했다.
전력을 다해도 사부의 옷깃 하나 스치는 게 한계다.
판타지 서버의 최종보스였던 세계의 창조주조차 해치운 나.
하지만 사부 앞에서는 살아 숨 쉬는 샌드백에 불과하다.
“꾸웨에에에에에에에엑!!!”
결국, 나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얻어터져야만 했다.
늘 그랬듯이 <정신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그래.
난 맞아도 싸다.
사부님 얼굴에 제대로 똥칠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근데… 좀 서럽네?
고자 된 것도 모자라서 쳐 맞기까지 해야겠냐고!
2배로 서럽잖아!
* * *
태성이 판타지 서버에서 사부에게 가르침―이라지만 사실은 혼쭐이 나는 중―을 구하고 있을 때.
눈치 없는 새끼… 가 아니고.
금의위 위사 곽말풍은 문득 든 생각에 발걸음을 멈춰 섰다.
‘연오랑이라고 했던가?’
그 환관후보생 녀석이 자꾸만 생각난다.
정확히는 녀석의 움직임이 뇌리에 선명히 남아서, 도무지 잊히질 않았다.
‘개방의 정식 제자 출신도 아니고. 그저 앵벌이나 하던 녀석이라 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절묘하고 기가 막힌 움직임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허어! 정말이지 대단한 재능이로다!’
얼마나 인상 깊었냐 하면, 녀석이 움켜잡았던 소맷자락과 옷깃 언저리가 아직도 서늘하다.
녀석의 주먹질과 발길질 또한 느려 터지고 약해서 망정이었지, 그 움직임만큼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오죽했으면 그때 녀석이 보여 준 움직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떠오를까.
만약 녀석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금의위 위사로서 크게 망신을 당할 뻔했다.
물론 패배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녀석이 정식으로 무공을 배웠다면 지금쯤 촉망받는 유망주가 되었을 터. 환관이 되기엔 아까운 녀석이다. 환관이 되면 그 재능을 썩히게 될 터. 그렇다면….’
뒤늦게 녀석의 재능을 알아챈 곽말풍은, 즉시 의원으로 향했다.
“곽 위사께서 어찌 다시 발걸음을 하시었소? 추가로 조사할 것이라도 있는 게요?”
환관은 곽말풍의 방문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으로 환관들과 금의위 위사들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왕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니오. 그 녀석을 데려가려고 온 것이오.”
“연오랑 녀석 말이오?”
“그렇소.”
“이유가 무엇이오? 금의위 위사께서 관심을 다 드러내시고? 설마 소란을 피운 죄로 그 녀석을 심문이라도 하려는 게요?”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소. 거세가 무서워서 도망친 녀석이 무슨 음모 같은 걸 꾸몄겠소?”
“그럼 왜?”
“생각해 보니 녀석의 재능이 아까워서 그러오. 금의위로 데려가서 한번 가르쳐볼 생각이오.”
“아?”
“아직 환관이 되지는 않았으니, 본 위사에게 그 녀석을 넘겨준다 한들 별문제는 없을 것 같소만.”
“호호호.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음?”
“아쉽지만 이미 녀석의 양물을 제거했소. 안 그래도 지금 막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오.”
“이런.”
곽말풍이 낭패라는 듯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좀 늦었나 보구려.”
“조금만 더 빨리 발걸음 하셨으면 녀석을 내어드렸을 터인데, 아쉽게 되었소이다.”
“어쩌겠소. 이미 자른 것을. 쩝.”
곽말풍은 정말로 아쉬워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아깝게 되었구먼. 그런 재능이라면… 금의위에 들어와 황궁무공을 익히면 엄청난 고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거세를 한 이상 황궁무공―황궁에 소속된 무사들이 사용하는 무술―을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
땅콩이 없으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큰 폭으로 줄어들어, 근력과 골밀도가 약해지는 등 전반적인 신체기능의 저하가 일어난다.
그러한 이유로, 환관이 정석적인 무공을 익히는 건 매우 어렵다.
특히 강력한 힘과 파괴력을 중요시하는 황궁무공이라면 더더욱.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러면 본 위사가 제안 하나만 하겠소.”
“말씀하시오.”
“녀석을….”
곽말풍은 녀석의 재능이 못내 아까워서, 환관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나 했다.
‘녀석.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네 재능이 아까웠을 뿐이다. 하하하.’
곽말풍은 자신이 한 제안이 녀석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어떻게 됐어?”
사부에게 실컷 두들겨 맞다가 로그아웃한 내게 아내가 물었다.
전날 종일 광고 촬영 하고 와서 날 도와준답시고 같이 밤을 꼴딱 새워서 피곤할 텐데.
내가 사부를 만나고 올 때까지도 안 자고 기다리다니.
이 여자가 이렇다.
나에게만큼은 한없이 헌신적이고, 상냥하단 말이지.
“찾았어.”
“정말? 역시 사부님은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방법이 뭔데?”
“렙업.”
“설마… 아!”
아내 역시 판타지 서버에서 500레벨을 넘기고 <환골탈태>를 두 번이나 경험한 고인물.
최상위 랭커답게 아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맞아, 그렇겠네. 환골탈태하면 다시 생기겠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너무 당황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거지, 뭐. 하하하….”
“그래도 참 다행이야. 방법을 찾아서.”
“다 자기가 도와준 덕분이지.”
“뭘.”
아내가 웃었다.
“오빠는 늘 방법을 찾잖아.”
“하하하….”
“오빠, 난 오빠를 믿어. 이번 일로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해. 오빤 전설이잖아. 내가 아는 역사상 최고의 프로게이머고, 앞으로도 오빠 같은 사람은 나오지 않을 거야.”
“에이, 무슨.”
멋쩍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차근차근해 봐. 옛날처럼. 커뮤니티에서 정보 찾아가면서 공부하고, 하나씩 템도 맞추고, 레벨도 올리는 거야. 옛날처럼. 그게 오빠가 원하던 거였잖아.”
“그렇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랭커가 되어 있을 거야. 난 믿어. 오빠는 이미 완성된 프로게이머니까.”
울컥.
사부에 이어 아내까지 감동 2연타.
“여보.”
“오빠.”
우리 시선이 마주치고.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우리 부부는 피곤함도 잊은 채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로 몸을 날렸다.
후후.
내가 이러려고 운동한다.
괜히 헬스에 목숨을 걸고, 3대 600을 달성한 게 아니지.
자서전 하나 써야겠다.
게임에선 고자인 내가 현실에선 정력가?
…라는 제목으로.
* * *
그날 오후.
일찍 잠에서 깬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 슬그머니 침대를 나섰다.
그리고는 태블릿PC를 켜서 게임 BNW의 무림 서버에 대해 공부했다.
판타지 서버와 무림 서버는 같은 게임이라 그런지 공통점도 많았지만, 월드가 다른 만큼 차이점도 상당했다.
‘여기선 마스터의 경지를 화경이라고 하는구나.’
예컨대 299레벨에 <어떠한 벽>을 만나서 성장이 멈추고, 한계를 돌파하면 <환골탈태>와 더불어 캐릭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강해진다는 건 똑같았다.
그러나 경지―등급―에 따른 명칭이 달랐다.
판타지 서버에서는 300레벨 이상 500레벨 이하 캐릭터를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무림 서버에서는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한단다.
무림 서버 자체가 현실 동북아시아의 역사, 신화, 전설, 문화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생기는 차이점이다.
‘용어가 확실히 어렵네. 요즘 한자도 잘 안 배우는 세상인데.’
어째서 중간중간 <알고 계셨나요?>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는지 알 것 같았다.
‘공부는 이쯤하고.’
2시간 정도 기본적인 정보를 검색해서 공부한 뒤 캡슐에 몸을 뉘었다.
뭐든 실전이 중요한 법.
이론은 핵심 정보만을 짧고, 간단하게.
나머지는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다.
…라는 게 평소 내 지론이다.
어차피 BNW라는 게임에 대한 정보는 커뮤니티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BNW는 하나의 세계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게임이니만큼, 무한한 자유도와 컨텐츠를 자랑하는 게임.
검색 좀 한다고 핵심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알짜배기 정보는 현금으로 거래되기도 하니까.
아무튼!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하는 거다.
[알림: 접속 중….]
[알림: 로딩 완료!]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그인하자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명 제국 황궁 동부.
동안문 주변.
동창[東廠] 본부 내 훈련소.
응?
여기 어디야?
[알고 계셨나요?]
<동창>이란 명 제국의 첩보기관으로서, 금의위와 함께 황제의 직속 친위대 중 하나입니다.
금의위가 황제의 오른팔이라면, 동창은 왼팔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실로 따지면 국가정보원 같은 단체입니다.
특이하게도, 동창에 속한 조직원들은 모두 환관이라는 특징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고자들로 이뤄진 첩보기관이라 이거지?
근데 나 왜 여기 있어?
“왔느냐.”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