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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10화 (10/115)

제10화.

통찰의 인장을 통해 <소녀공 비급>에 대해 알아보았다.

[소녀공]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심법.

오직 여성만이 익힐 수 있으며, 다른 심법에 비해 기를 쌓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사랑을 나누면, 그간 쌓아 온 모든 기가 사라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수련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주로 비구니와 같이 이성을 접할 일이 없는 이들이 익히곤 한다.

자매품으로 남성들이 익히는 <동자공>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마나운용법, 아니 심법을 이런 식으로 만들기도 하는구나.

이건 확실히 판타지 서버와는 다른 점이다.

‘이거 완전 환관들한테 특화된 심법이네.’

제갈참이 왜 <소녀공> 비급을 던져줬는지 알겠다.

어차피 환관은 이성과 사랑을 나눌 일이 없잖아.

땅콩도 없는 주제에 뭔 놈의 이성이야!

그러니 환관은 <소녀공>의 장점만 쏙 빼먹고 단점은 무시한다는 것.

하긴.

땅콩이 없으면 이런 장점이라도 있어야지.

어?

근데 왜 동자공이 아니고 소녀공이야?

“소녀공은 여자들이 익히는 거 아닙니까?”

“우리 환관들은 거세를 받았기에 동자공을 익힐 수 없다. 하지만 거세를 받았기에 여인들만이 익히는 소녀공은 익힐 수 있다.”

“에에?”

“그 소녀공은 우리 동창에서 오랜 세월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녀공과는 격이 다른 심법이다.”

“그, 그렇군요.”

“지금부터 그 책을 보고 소녀공을 읽혀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기를 다룰 줄 모른다면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칠 수가 없을 터. 동창의 요원이 되는 첫 발걸음이다.”

“네.”

심법 익히는 거야 쉽지.

[알림: <소녀공>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내 스킬> 항목을 확인해 보았다.

[심법]

- 소녀공 (1성)

- 천마신공 (잠김)

- 우주근원진기 (잠김)

<우주근원진기>는 내 본캐의 마나운용법이 계승된 것 같다.

근데 <천마신공>은 뭐지?

딱 봐도 뭔가 사악하고 어마어마하게 강할 것 같은데?

이게 왜 있는 거야?

곰곰이 생각을 해 봤더니, 답이 나왔다.

‘맞다. 나 대마왕이었지.’

내 본캐는 중간계뿐 아니라 마계까지 정복한 대마왕.

저 <천마신공>이란 건 마족 고유의 마나운용법인 거겠지?

아니면 말고.

“너는 천인이니 심법도 단숨에 익힐 터.”

게이머―천인―와 NPC를 구분하는 방법은 쉽다.

손등에 새겨진 <통찰의 인장>과 <초월의 인장>을 보면 단숨에 알아볼 수 있다.

NPC들의 입장에서 우리 천인들은 매우 신비하고 특이한 존재다.

NPC들은 적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수련해야 하는 심법을 우리 천인들은 단숨에 익히곤 하니까.

“소녀공을 익혔느냐?”

“네.”

“그럼 기를 한번 운용해 보아라.”

“네.”

BNW는 에너지의 흐름마저 구현해 낸 게임.

기를 소녀공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심법을 습득하는 건 쉽다.

하지만 능숙하게 운용해 내는 건 어디까지나 게이머의 실력과 숙련도에 달린 것.

‘식은 죽 먹기지.’

스으으!

내 주먹에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어디 보자.

뭐 부술 만한 거 없나?

때마침 <목인장>이라 부르는 나무로 된 샌드백이 눈에 딱 들어왔다.

나, 저거 알아.

중국 영화 같은 데 보면 무공 고수들이 수련할 때 치곤 하는 물건이잖아?

“하압!”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목인장이 폭발하면서, 산산 조각난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했어요.”

제갈참을 돌아보며 말했다.

“…….”

제갈참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

“저기요?”

뭐야?

왜 말이 없어?

* * *

‘이, 이 무슨…!’

제갈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천인들은 뭐든 빨리 배운다.

심법은 물론 각종 무공과 술법도 단숨에 습득한다.

하지만 아무리 천인이라 한들, 심법을 갓 배우자마자 기를 저렇듯 능숙하게 응용해 내지는 못한다.

심지어, 부순 것도 아니고 펑! 하고 폭발시켜 버릴 줄이야.

‘이게 말이 되나?’

녀석은 따로 심법을 익힌 적이 없었다.

녀석이 기절해 있을 때 몸속으로 기를 흘려보내 단전―마나홀―을 확인해 보았기에,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뼈가 튼튼한 것도 아니다. 육체적 조건만을 놓고 보면, 무공을 익히기엔 썩 좋은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기를 다루는 능력 하나만큼은 단연코 발군.

그뿐인가?

‘아까 내 공격을 피할 때의 움직임… 엄청난 반응속도였다. 허약하게 타고나긴 했어도 운동신경만큼은 뛰어나다는 건가?’

금의위 위사 곽말풍이 어째서 저 녀석을 추천했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물론 곽말풍도 녀석의 진면모를 다 알아보고 추천한 건 아닐 테지만.

만약 알아봤다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금의위로 데려가려고 했을 게 분명했다.

녀석이 이미 환관이 되는 수술을 받았다는 걸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지도.

“방금… 어떻게 한 것이냐.”

제갈참이 녀석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해요?”

“목인장을 어떻게 폭발시킨 것이냐 물었다.”

“아, 그거요.”

녀석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먼저 기를 끌어모아서 압축시키고.”

“압축…?”

“예, 압축해야죠. 기라는 게 생각보다 내뿜었을 때 손실이 크거든요. 그러니 압축해야죠. 기라는 게 압축하면 폭발하려는 성질도 있고요.”

“그, 그다음에는?”

“주먹질이야 늘 이렇게. 짧게 끊어 친다는 느낌으로.”

녀석이 주먹을 끊어 치듯 휙! 하고 뻗었다가 회수하며 대답했다.

“주먹이 딱 틀어박히는 순간에 압축한 기를 흘려보내면, 압축됐던 기가 자연스럽게 폭발하면서 펑! 그럼 이렇게 안에서부터 산산조각 나는 거죠.”

녀석이 박살 난 목인장의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렵….”

제갈참은 녀석이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오싹!

한 줄기 소름이 제갈참의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이건….’

제갈참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 잠시 운기조식으로 소모한 기를 보충하고 있도록.”

제갈참은 그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훈련장을 벗어난 제갈참은,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 말도 안 돼! 이제 갓 심법을 익힌 놈이 어찌 그런!’

녀석이 했던 말.

- 기라는 게 생각보다 내뿜었을 때 손실이….

너무나도 고차원적인, 제갈참으로서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경지에 올라서야 가능한 이야기다.

심지어 이 이론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극히 드물다.

오래전.

제갈참은 우연한 기회로 과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초절정고수인 <천풍무제>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기장에 적혀 있던 내용과 녀석의 말이 완전히 똑같았다.

‘어, 어쩌면…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일지도.’

제갈참은 교관으로서 정신 바짝 차려고 녀석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고로 천재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들.

자칫 빈틈을 보였다간, 교관인 제갈참이 훈련생에게 질질 끌려다닐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 * *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뭐, 내 알 바 아니지.

‘소녀공이라. 오히려 좋아.’

소녀공을 가르쳐 준 건 내게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기를 쌓는 속도가 다른 심법들에 비해 빠르다면, 내가 강해지는 시기도 더 빨리 온다는 것.

그럼 여길 탈출하는 것도 더 빨라지겠지.

‘기만 빨리 쌓으면 장땡이지.’

어차피 <우주근원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소녀공 따위 쳐다보지도 않을 거고.

자, 그럼 이제 뭐 하나….

아 참.

숙제 있었지?

[알고 계셨나요?]

<운기조식>은 기를 단전에 쌓거나, 혹은 소모한 기를 보충할 때 사용하는 공통 스킬이랍니다!

‘스탯을 찍는 거 말고도 이런 식으로도 기를 늘릴 수가 있구나.’

<내 스킬> 항목에서 <운기조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운기조식 : 흡기]

대자연의 기를 단전에 쌓습니다.

1일 1회 5분씩 진행할 수 있으며, 운기조식을 마치면 기를 영구적으로 10 획득합니다.

경험치도 소량 획득합니다.

판타지 서버에서는 마나를 쌓는다는 개념이 따로 없다.

레벨이 오르면 자동으로 마나가 늘어나기도 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모아둔 스탯 포인트를 투자해 늘리니까.

[알림: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웬 퀘스트?

[힘세고 강한 아침!]

내용 : 중성화수술을 받아 더 이상 힘세고 강한 아침을 맞이할 순 없지만 <운기조식 : 흡기>를 사용해 기를 단전에 쌓을 순 있습니다!

분류 : 일일 업적 퀘스트

보상 : 기 +10 / 경험치 5

뭔데?

더 이상 힘세고 강한 아침을 맞이할 순 없다고?

이것들이 지금 누굴 놀리나!

‘일일 업적 퀘라면 숙제는 숙제네.’

하긴, RPG 게임에는 숙제가 있어야지.

마침 퀘스트도 떴겠다, 5분을 투자해 <운기조식 : 흡기>를 해보았다.

[알림: <힘세고 강한 아침!>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기가 영구적으로 10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50 올랐습니다!]

조금 강해졌다.

경험치도 꽤 많이 오른 덕분에, 다음 레벨까지 50의 경험치만 더 획득하면 되었다.

다음엔 <운기조식 : 회복>을 사용해봐야지.

[알림: 기가 1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기가 1 회복되었습니다!]

(중략)

[알림: 기가 1 회복되었습니다!]

‘좀 느리긴 해도 이만하면 괜찮지. 이건 판타지 서버보다 낫네.’

<심법>이 판타지 서버의 마나운용법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느낌이긴 하다.

마나운용법은 마나를 쌓거나 보충하는 방법이 따로 없으니까.

그래서 전투 중 마나가 떨어지면 재빨리 포션을 빨곤 하지 않던가?

그건 그렇고.

‘이 자식은 어디로 끌려간 거야? 이따가 교관 아저씨 오면 물어봐야겠다.’

슬슬 햄찌가 걱정된다.

이 자식 설마 박제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하필 사냥터도 없는데 떨어졌네. 아오.’

제갈참을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간단히 몸이라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몬스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하긴, 황궁에 몬스터가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평범하게 시작했다면 지금쯤 초보자존에서 토끼나 다람쥐 같은 거나 잡고 있을 텐데.

‘이 아저씨는 언제 와?’

제갈참이 자리를 떠난 지 5분.

으으!

슬슬 좀이 쑤신다.

제발 사냥이라도 하게 해 줘!

레벨이라도 올리게 해 줘야 할 거 아냐!

* * *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했다. 녀석이 정녕 천재라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줄 테지. 때마침 훈련생들도 요괴 사냥 훈련에 나가 있고….’

지나치게 빠르긴 했지만, 제갈참은 녀석을 요괴들이 득실거리는 훈련장에 데려가기로 했다.

‘기선제압 차원에서 겁을 주는 효과도 있을 거다. 겁을 먹으면 기가 죽어 경거망동하지도 않을 테고, 뺀질거리지도 않을 테니.’

제갈참은 다시 녀석을 찾았다.

“운기조식은 다 마쳤느냐?”

“네.”

“좋다. 그럼 날 따라오도록.”

“어디 가는 겁니까?”

“마침 네 선배들이 요괴 사냥 훈련 중이다. 이참에 너도 선배들의 훈련을 견학한다는 의미로 요괴 사냥 훈련에….”

“야호!”

녀석이 환호했다.

‘뭐지?’

제갈참은 녀석이 왜 환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좋아하는 건가? 보통은 겁을 집어먹고 오금을 지려야 정상이거늘?’

그러거나 말거나.

“요괴를 잡자~♪ 요괴를 잡자~♬”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신이 나 보였다.

마치 요괴 사냥을 못 해서 안달이라도 나 있던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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