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왜 좋아하는 것이냐?”
제갈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녀석에게 물었다.
“요괴가 뭔지 모르느냐?”
“알죠, 아주 잘 알죠.”
“요괴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강한 요괴들은 곰과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알죠.”
“그런데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
“요괴가 왜 두렵습니까? 요괴들이 저를 두려워해야지.”
“허어.”
제갈참은 녀석의 대답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아직 천둥벌거숭이라는 건가. 요괴를 저리 가볍게 말하다니. 천재의 오만함인가? 아니, 아니다. 이제 갓 심법을 익힌 녀석이 요괴들을 사냥해 봤을 리 없다. 그저 어리석은 철부지가 까부는 것일 뿐.’
오만함의 대가는 크다.
어리석음의 대가는 더더욱 크고.
‘그래, 세상이 무섭다는 걸 가르쳐 주마. 그래야 경각심을 갖게 될 테지.’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무모함으로 인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한다면, 교관으로서도 마음이 아플 터.
제갈참은 이번 기회에 요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녀석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다.
녀석을 위해서….
* * *
‘안 그래도 경험치를 어디서 먹어야 할지 막막했는데 잘됐네.’
요괴 사냥 훈련이라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날 따라오도록.”
“네.”
“근데 저 혹시….”
제갈참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햄찌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랑 같이 있던 햄스터….”
“함수토? 그게 무슨 말이냐?”
“아, 쥐새끼요.”
아, 실수.
무림 서버의 NPC가 햄스터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저랑 같이 있던 커다란 쥐새끼 못 보셨어요?”
“아.”
제갈참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그 서생원 말인가?”
[알고 계셨나요?]
<서생원>이란 쥐를 의인화하여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시스템 고맙고!
“네, 그 서생원이요. 걔가 그래 보여도 요괴는 아니거든요. 사악하지는 않….”
잠깐.
얘 좀 악질인데?
“요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 그래요?”
“녀석은 영물이 아니던가.”
[알고 계셨나요?]
무림 서버에서는 신비한 동·식물을 가리켜 <영물>이라고 부른답니다!
예, 시스템님.
제가 번번이 신세를 집니다.
“맞죠! 영물이죠!”
“그 서생원이라면 잘 지내고 있다.”
“정말요?”
“그렇다.”
“어떻게 됐는데요?”
“그건 보안사항이라 알려 줄 수가 없다.”
“왜죠? 제 제일 친한 친구인데?”
“차차 알게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서생원이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더 이상의 질문은 허락하지 않겠다.”
제갈참이 매우 단호하고 싸늘한 말투로 내 말을 끊었다.
‘보안은 개뿔. 좀 알려 주면 어디가 덧나? 어? 덧나냐고!’
더러워서 진짜!
“멀리 가는 겁니까?”
“왜 멀리 간다고 생각하나?”
“그야… 아무리 훈련이라고 해도 황궁 안에 요괴를 풀어둘 것 같진 않은데요?”
“그래서?”
“당연히 궁 밖으로 나가겠죠? 근데 황궁이 있는 지역이면 당연히 제국의 수도라는 건데… 수도 근처에 요괴들이 어슬렁거리는 것도 이상하죠. 수도에 요괴들이 출몰하는데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정신 나간 황제가 어딨… 흡!”
아차차.
나는 제갈참의 표정이 싹 굳어지는 걸 보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입, 조심하라.”
제갈참이 으름장을 놓았다.
“한 번만 더 황제 폐하를 그런 식으로 말했다간, 네놈 목이 100개라도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눼….”
나도 황제인데….
“네놈 말대로 황궁에는 요괴가 없다. 수도 북경도 마찬가지다. 황제 폐하의 군대는 감히 요괴들이 북경에서 날뛰는 걸 허락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요괴들을 풀어놓은 훈련장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오?
키워서 잡아먹는다, 뭐 그런 개념인 건가?
아무렴 어때.
나야 경험치만 먹으면 그만이지.
‘좋은데?’
이 얼마나 편한가?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 없이, 훈련장으로 몬스터를 가져다준다는데?
다른 게이머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고?
‘한동안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것도 괜찮겠는데?’
역시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이렇게 NPC가 경험치를 먹여주는 걸 보면.
하긴.
첫날부터 그 험한 꼴을 당했으니, 좀 편할 때도 됐지.
나도 꿀 좀 빨자!
꿀 좀!
* * *
무림 서버의 주 무대가 되는 <중원> 대륙.
현재 중원 대륙에는 온갖 요괴들이 나타나 큰 혼란이 찾아온 상태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들은 중원 대륙을 모험하며, 요괴들과 맞서 싸워 세상에 불어 닥친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
…라는 게 무림 서버의 기본 컨셉이자 메인 스토리.
즉, 현재 중원 대륙의 상황은 그야말로 개판.
곳곳에서 요괴들이 날뛰는 바람에, 세상이 피로 물드는 중이란다.
때문에, 무공을 익힌 NPC들은 요괴를 사냥하는 방법을 필수적으로 훈련한다고 했다.
“동창의 주요 임무는 첩보, 감시, 수색, 정보수집, 수사, 암살 등 다양하다. 요괴를 사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괴를 사냥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건 아니다.”
제갈참이 설명했다.
“외부에서 임무 수행 도중 요괴를 만났을 때, 요괴를 상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당연히 죽겠죠.”
“그래서 우리 동창 요원들도 요괴를 상대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눼에.”
황궁 밖 30분 거리에 자리한 훈련장.
방어막과 결계가 겹겹이 처져 있는 걸 보면, 딱 봐도 몬스터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거겠지.
참고로 무림 서버에서는 마법사를 <술법가>라고 부른단다.
‘꽤 넓네. 술법가들도 마법사들처럼 공간 왜곡 계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보군.’
공간 왜곡 마법만큼 편한 게 없다.
부동산계의 혁신, 아니 대격변이라고나 할까?
10평짜리 땅에 공간 왜곡 마법을 사용하면 100평짜리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아주 강력한 마법사는 10평짜리 땅에 1,000평이 넘는 아공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아아, 현실에도 저런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강남 한복판에 10평짜리 땅 몇 개 사서 그 안에 1,000평이 넘는 복합쇼핑몰을 지으면….
‘이래서 한국인은 안 된다니까.’
부동산으로 돈을 벌 궁리만 하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한국인이 맞다.
실제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이루기도 했고.
여러분!
대한민국에선 부동산이 최고입니다!
“여기다.”
제갈참은 날 3층으로 데려갔다.
“이 훈련장은 황군에 소속된 군인들과 우리 동창의 요원들, 그리고 금의위 위사들을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10급 요괴부터 최대 1급 요괴까지 가져다 놓았다.”
요괴 등급 정도는 미리 공부해서 알지!
[요괴등급표]
10등급 (1~10레벨)
9등급 (11~20레벨)
(중략)
1등급 (91~100레벨)
100레벨이 넘어가면 숫자가 아닌 별을 붙인다.
[요괴등급표]
★ (101~150레벨)
★★ (151~200레벨)
★★★ (201~250레벨)
강력한 요괴일수록 별이 더 많이 붙는단다.
뭐, 아무튼.
[8급 훈련장]
훈련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냥터.
8등급 요괴 혈호저를 풀어놓았다.
타입 : 훈련장
적정 레벨 : 21~30
8급 훈련장에는 선배 훈련생들이 고슴도치를 닮은 요괴들을 열심히 사냥하고 있었다.
“하압!”
“으아아아악!”
“제, 젠장!”
아,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털리고 있는 거네.
우선 <통찰의 인장>으로 고슴도치를 닮은 요괴에 대해 알아보자.
[혈호저]
고슴도치의 일종인 <호저>라는 동물이 사악한 기운에 노출되어 요괴화한 요괴.
덩치가 매우 커져서, 거의 대형견만 한 크기가 되었다.
8등급 요괴들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편이 속한다.
분류 : 요괴
등급 : 8등급
레벨 : 21~30
주의사항 : 혈호저의 가시는 매우 위험하니, 각별히 주의하세요!
주의사항을 알려 줘서 고맙긴 한데, 지금은 딱히 필요 없을 것 같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주… 크으아악!”
“지, 지혈대 좀 던져 줘! 지혈대!”
아이고오, 우리 선배님들.
혈호저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 가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몸소 보여 주고 계시는군요.
이쯤 되면 고슴도치는 혈호저가 아니라 선배들인 것 같은데…?
“너는 내게 요괴가 두렵지 않다 말했다.”
제갈참이 말했다.
“그랬죠?”
“그럼 저 혈호저들도 두렵지 않겠구나?”
잠깐.
이거 어째 느낌이 좀 쎄한데?
덥석.
제갈참이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럼 한번 보자꾸나.”
“뭐, 뭘요?”
“네놈이 요괴를 두려워하는지, 아닌지. 요괴가 네놈을 두려워할지, 아니면 네놈이 요괴를 두려워할지.”
“으응?”
“증명해라.”
“으아아아악!”
제갈참이 날 훈련장 안으로 집어 던졌다.
* * *
제갈참에 의해 훈련장으로 던져진 나.
철푸덕!
…할 줄 알았냐!
타핫!
공중제비를 돌아 가볍게 착지했다.
더 멀리, 더 높게 던져 봐라.
내가 엎어지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야 이!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여!”
저 멀리 제갈참을 향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1렙따리를 8등급 사냥터에 던져놓는 게 말이 되냐! 말이!
하지만 제갈참과 드잡이질을 할 시간이 없다.
“네놈은 뭐냐!”
“비켜!”
“위험하니 빨리 도망쳐라!”
선배들이 날 반겨주었다.
예, 예!
저도 반갑습니다! 선배님들!
“쉬익! 쉭쉭!”
“쉬이이익!”
혈호저들도 우르르! 하고 몰려와 날 반겨 주었다.
너희도 반가워!
‘환영 행사 한번 거창하네.’
꾸벅 배꼽 인사라도 하고 싶네.
‘뭔가 쓸 만한 게….’
어이쿠.
마침 여기 창이 한 자루 떨어져 있잖아?
뭐야?
나 쓰라고 가져다 놓은 거야?
…는 개뿔!
“뭐, 뭐 하는 것이냐! 그건 내 창이다!”
혈호저에게 당해 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선배가 버럭 소리쳤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고맙단 말은 해야지.
“쉬익!”
때마침 혈호저 한 마리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몸을 왼쪽으로 휙! 회전했다.
‘그럼 난 오른쪽.’
쒜에에엑!
수십 발의 가시가 허공을 갈랐다.
‘쉽네.’
딱 봤을 때부터 감이 왔다.
혈호저란 녀석은 근본이 고슴도치라서, 생물학적 특성상 가시를 정면으로 쏘지 못한다.
아래서 위로.
혹은 뒤로.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몸을 회전시켜서 뿌리듯 쏴야겠지.
가시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 뒤쪽으로 뻗어져 있으니까.
패턴을 알았으니 그다음은 더 쉽다.
쒜에엑!
창을 앞으로 쭉 내질렀다.
지금 스펙으로 8등급 요괴의 머리통을 꿰뚫을 자신까지는 없다.
왜?
두개골은 단단하니까.
그래서 눈을 노렸다.
푸욱!
창끝이 혈호저의 눈을 꿰뚫었다.
‘더!’
창을 15도 각도로 비틀면서 더 깊게 찔러 넣었다.
눈을 통해 파고든 창끝이 두개골 안에 든 뇌를 파괴하도록.
“쉬이이익…?!”
충격이라도 받은 듯 부르르 떠는 혈호저.
“…쉬익.”
녀석이 축 늘어졌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2레벨 달성!]
옳지!
1레벨에 8등급 요괴를 잡았으면 당연히 레벨업은 해야지!
하지만 좋아하긴 이르다.
“쉬이이이익!”
“쉭! 쉬이이이이익!”
동료의 죽음을 본 경험치들… 이 아니라.
혈호저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