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푸슉!
황급히 죽은 혈호저의 머리에서 창을 빼내고, 자세를 다잡았다.
온다.
경험치들이.
‘집중.’
창 자루를 꽉 움켜쥐고, 익숙한 움직임에 따라 혈호저들의 공격에 맞섰다.
내 평타.
그러니까 기본 공격은 본캐에서 계승된 패시브 스킬인 <무적류 기본 공격>으로 나간다.
지금은 창을 들었으니까, 내 기본 공격은 <무적창법>이라고 부른다.
다른 무기를 들어도 마찬가지.
내 본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무기에 통달한 캐릭터.
그 스킬을 계승한 이상 부캐도 모든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최고치에 도달해 있는 상태.
검을 들면 <무검검법>.
도를 들면 <무적도법>인 거다.
쏴아아아!
푹! 푸욱! 푹! 푹! 푸욱!
<무적창법>에 따라 움직이는 내 창이 마치 속사포처럼 쏘아지며, 덤벼드는 혈호저들의 눈과 목구멍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어?’
생각보다 혈호저들이 잘 안 죽었다.
정확하게 약점만을 노렸는데도 혈호저들의 피가 깎이는 것 같지 않다.
‘딜 부족이네.’
그래, 아직 전직도 못 한 2레벨짜리가 8등급 몬스터를 원 샷 원 킬 내는 것도 이상하다.
내 공격력보다 쟤들 방어력이 더 높을 테니까.
아까는 크리티컬, 그러니까 치명타가 터져 줘서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던 모양.
그럼 어쩔 수 없지.
장기전으로 간다.
쒜에에에엑!
날아드는 가시들을 피하면서 계속 <무적창법>으로 약점을 노렸다.
하지만 딜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틱! 티익!
어?
빗나가?
판정 뭔데!
안 맞은 건 아니다.
분 명 히 맞췄다.
그런데도 데미지가 안 들어간다고?
‘적중률이 문제네.’
흔히 RPG 게임에서 공격이 빗나가는 거랑 같은 원리.
내 낮은 적중률이 혈호저들이 가진 회피율을 못 뚫는 거다.
이거 총체적 난국인데?
일단 조금만 더 해보자.
푹! 푸욱!
공격은 성공.
‘크리티컬이 안 터지면 피가 10퍼센트도 안 깎이네.’
데미지가 쥐꼬리만큼 들어갔다.
팅! 티잉!
중간중간 공격이 빗나가면서 데미지가 아예 안 들어가기도 했다.
한 10분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X꼬쇼를 했다.
“헉,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죽을 것 같다.
레벨이 낮은 만큼 스태미나, 그러니까 체력도 낮아서 오래 움직이기가 힘들다.
[연오랑]
생명력 : ■■■■■■■■■■
지구력 : ■□□□□□□□□□
기: ■□□□□□□□□□
한 대도 안 맞았는데 이러다 죽게 생겼다.
‘물약도 없는데.’
전투 중이라 운기조식을 사용해 기를 보충할 수도 없다.
여기서 운기조식을 위해 가부좌를 틀었다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더 문제는 우리 선배님들께서 날 도와줄 수도 없다는 것.
“으아아악!”
“피, 피가 안 멈춰!”
“크윽!”
선배님들 상태가 더 심각하다.
‘이러면 전멸인데.’
선배들이 다 쓰러지고 나면 나도 끝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선배들을 손봐주던 혈호저들까지 나한테 덤벼들겠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팅!
공교롭게도 때마침 공격이 빗나갔다.
어?
‘위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 * *
쏴아아아아아!
몸을 날리자마자 귀신같이 혈호저의 가시 세례가 쏟아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날린 덕분에 고슴도치 신세를 피했다.
휴. 살았다.
그래, 명중률이 낮으면 이래서 위험하다.
공격이란 빗나갔다고 다가 아니니까.
공격이 빗나가면, 살짝 삐끗하거나 자세가 흐트러지기 마련.
반대로, 적은 공격에 당하지 않았으니 전혀 경직되지 않는다.
그 말은, 적에게 내 빈틈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거다.
그럼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적의 카운터를 맞게 되는 거지.
“윽.”
오른쪽 윗가슴이 욱신욱신해서 보니까, 혈호저의 가시 하나가 박혀 있다.
피한다고 피했는데, 딱 하나를 못 피했네.
까비.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출혈>에 걸렸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중략)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가시가 박힌 윗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혈호저가 괜히 혈호저가 아닌 모양.
가시에 찔리면 피가 철철 흘러내리면서 안 멈춘다고 해서 혈호저라고 불리는 거겠지?
피 혈[血] 자를 써서?
‘말라 죽겠는데.’
숨이 가쁘고,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캬악!”
혈호저 한 마리가 내 창대를 콱! 물더니 성난 사냥개처럼 좌우로 흔들어댔다.
“크윽!”
혈호저의 힘이 워낙 좋아 버티기가 힘들다.
“쉬이익!”
“쉭! 쉭! 쉬익!”
다른 혈호저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게 덤벼들었다.
‘못 버텨.’
창을 손에서 놓고 덤벼드는 혈호저 한 마리를 선풍각으로 뻥! 차버렸다.
‘방법이 없나?’
혈호저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랜 경험상 이럴 땐 주변을 돌아보고, 상황을 반전시킬 실마리를 찾는 게 중요했다.
‘뭔가 방법이 있을 만도 한데….’
그때.
“쉬이이이이익!”
“이얍!”
선배 하나와 혈호저 한 마리가 서로의 목숨을 걸고 영혼의 맞다이를 뜨고 있었다.
어어?
[혈호저]
생명력 : ■□□□□□□□□□
저거… 딸피네?
거의 다 잡은 거잖아?
꿀꺽!
군침이 돈다.
세상에서 딸피만큼 매력적인 게 어딨어?
본능적으로.
마치 홀린 사람처럼 생명력이 얼마 안 남은 혈호저를 향해 뛰었다.
“죽어어어어어어엇!”
“쉬이이이이이이익!”
마침 그 선배와 딸피인 혈호저가 서로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주고받는 중.
이때다.
퍼억!
짱돌 하나를 집어 들고 딸피인 혈호저의 머리통을 냅다 찍어 버렸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3레벨 달성!]
꺼억!
잘 먹었습니다!
스으으!
손등에 새겨진 <초월의 인장>이 은은하게 빛나며 생명력과 기와 지구력이 풀[Full]로 차올랐다.
이거지!
레벨업 신공!
위기의 순간 레벨업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건 국룰이지.
“이 무슨….”
막타를 뺏긴 선배가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 음. 그러니까.”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아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근데 어떡해?
이 방법밖에 없는데.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전멸한다는데 내 x랄을….
아.
나 없지.
그랬지.
주륵.
눈가에 습기가 고인다.
“뭐 하는 것이냐.”
선배가 물었다.
“방금 무슨 짓을….”
큰일 났다.
어떡하지?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하하.
…라고 웃어넘길 수도 없잖아?
“대답해라! 방금 뭘 한 것이냐고 물었다!”
“어… 그게….”
에라, 모르겠다아!
선배의 손을 덥석 잡고 소리쳤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어, 엄청난 재능…!!!’
제갈참은 녀석이 혈호저들을 상대하는 걸 지켜보며 경악했다.
‘이제 갓 심법을 배운 놈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제갈참은 살면서 저런 천재를 본 적이 없었다.
듣지도 못했다.
제갈참은 현재 천재 중의 천재라 평가받는 유망주들조차 저 정도 재능을 타고나지는 못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 갓 무공에 입문한 초보가 8등급 요괴인 혈호저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이 중원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움직임 자체가 빈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순간순간 보여 주는 임기응변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했다.
‘더 지켜볼 것도 없다. 녀석은 천재다.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천재.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녀석은 대륙 최고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때.
“윽.”
녀석이 위기에 몰렸다.
‘슬슬 나설 때인가?’
제갈참은 다른 교관들과 함께 훈련장으로 난입하려 했다.
이번 훈련에 참가했던 교육생 대부분이 위험했다.
또한, 녀석도 더는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녀석이 더 이상 뭔가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녀석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훈련을 중지시키면 될 터.’
그때였다.
‘음?’
녀석이 다른 훈련생이 다 잡아놓은 혈호저를 짱돌로 냅다 찍어 죽여 버렸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
녀석이 소리쳤다.
‘도대체 저게 뭐 하는… 저, 저런!!!’
제갈참은 뒤이어 벌어진 상황에 경악했다.
녀석에게는 보여 줄 것이 아직 한참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한계는 이게 다가 아니다, 나를 저평가하지 마라.
…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 * *
“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
선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렴요!”
“하지만 방금은….”
“혹시나 선배님의 옥체가 상하실까 봐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습니다!”
“으음.”
“물론 제 도움이 없었어도 혈호저를 처치하셨을 거라는 거,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왜…?”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 그건 그렇다만.”
좋아.
슬슬 넘어왔어.
“어쨌든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근데… 너는 누구지?”
“앗!”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빨리.’
황급히 몸을 날렸다.
‘우리 선배님들 내가 있는 힘껏 도와드려야지.’
아무렴!
그까짓 막타 뺏어먹고 싶어서 이러겠어?
물론 막타 뺏어먹는 게 맛있긴 하지만, 절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내 눈은 정확하다.
내버려 두면 전멸이다.
교관들이 여차하면 끼어들 기세라 누군가 죽진 않겠지만, 어쨌거나 전멸은 피할 수 없다.
파티사냥으로 따지면 공대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
그러니까 나라도 어떻게 해봐야지.
‘어디 보자. 어디 쓸 만한 무기가….’
요기잉네?
주변을 돌아보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주워 들었다.
분명 중상을 입고 실려나간 선배 중 하나가 떨어뜨린 거겠지?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저기다.’
가장 생명력이 낮은 혈호저를 찾아 몸을 날렸다.
그 혈호저는 어김없이 선배 중 하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푸욱!
<무적검법>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던 혈호저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4레벨 달성!]
아.
달다, 달아.
이러다 당뇨 오는 거 아냐?
“넌 누구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선배님! 앗! 저기 저 선배님도 위험하시네요! 전 바빠서 이만!”
곧바로 다음 표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선배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선배가 잡던 혈호저도 처치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5레벨 달성!]
레벨이 쭉쭉 오른다.
혈호저 한 마리가 주는 경험치가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보다 더 많다.
내 레벨은 낮고, 혈호저의 레벨은 높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
“으악!”
“이런 개 같은!”
아직 구해 줄 선배님들이 몇 명 더 남았다.
선배님들이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후배로서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