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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13화 (13/115)

제13화.

선배님들을 도와드렸더니, 좋은 일이 생겼다.

[알림: 6레벨 달성!]

[알림: 7레벨 달성!]

[알림: 8레벨 달성!]

(중략)

[알림: 10레벨 달성!]

어라?

벌써 10레벨이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위험에 빠진 선배님들을 구해드리니까 복이 오잖아.

근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

‘에라이. 스킬 해금이 50레벨에 되는 게 말이 돼?’

솔직히 좀 짜증 난다.

이 게임이 레벨 올리기 쉬운 게임도 아니고.

남들은 15레벨이면 전직한다는데!

‘하긴. 난 전직 퀘스트가 없으니까.’

무림 서버의 게이머들은 15레벨을 찍으면 가까운 <무관>이나 <도관> 곳을 찾아간다.

<무관>과 <도관>이 뭐냐고?

뭐긴.

학원이지.

<무관>은 무술학원.

<도관>은 마법학원.

물공캐―물리 공격형 캐릭터―를 하고 싶으면 <무관>으로.

마공캐―마법 공격형 캐릭터―를 하고 싶으면 <도관>으로 가면 된단다.

만약 판타지 서버의 마검사처럼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캐릭터를 하고 싶다면?

‘그러고 보니 마검사 클래스는 어디로 가서 전직을 하는 거지?’

솔직히 그건 모르겠다.

딱히 정보도 없고.

원래 마검사라는 클래스가 판타지 서버에서도 그리 흔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500레벨 넘어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무술과 마법의 경계가 희미해지긴 하던데….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해당 사항이 없다.

이미 스킬이 계승되어 있으니 누군가에게 뭔 배울 필요가 없었으므로, 전직 퀘스트도 없는 게 당연하다.

어쨌거나 빨리 50레벨 찍는 게 급선무.

그러려면 경험치를 먹어야겠지?

어?

“…없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주변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끄응!”

“피, 피가 안 멈춰.”

“으어어어어.”

다행히 우리 선배님들께서 아직 살아 움직이고 계셨다.

땅바닥에 딱 들러붙어 고통스러워하시는 게 문제지.

“어서 들것을 가지고 오라! 지혈대와 지혈제도 빨리!”

“신속히 부상자들을 수습하라!”

훈련이 끝나자 교관들과 지원 담당 환관들이 나서서 부상당한 선배님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도 다쳤는데요?

나도 가슴팍에 가시 하나 박혔다고!

“에라이.”

아무도 날 치료해주러 오지 않아서, 스스로 치료하기로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잖아.

내가 곧 하늘이지 뭐….

“윽!”

가슴팍에 박힌 가시를 빼냈다.

부욱!

소매를 찢어서 천을 대충 둘둘 만 다음 그걸로 피가 철철 흐르는 가슴팍을 압박해 지혈을 시도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중략)

[알림: 생명력이 1 하락했습니다!]

어어?

피가 왜 안 멈춰?

“혈호저의 가시에 찔리면 어지간해선 피가 멈추지 않는다.”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제갈참 아저씨가 납작한 원형 곽 하나를 내게 슥 내밀었다.

“금창약이다. 상처 부위에 듬뿍 뿌려라.”

“감사합니다!”

곽을 열어 안에 든 하얀 가루를 혈호저의 가시에 찔렸던 가슴팍에 뿌렸다.

[알림: <상태이상 : 출혈>이 해제되었습니다!]

성능 좋네.

“그 외에 다친 곳은 없느냐.”

“딱히 없어요.”

“그럼 되었다.”

“이제 뭐 하죠? 또 요괴 사냥하나요?”

“오늘은 되었다.”

시무룩.

렙업 더하고 싶은데….

“네놈의 수준을 파악했으니, 무리해서 요괴 사냥 훈련을 시킬 필요는 없겠지. 요괴 사냥 훈련은 나중에 실시하기로 하고, 기초교육부터 실시하겠다.”

“기초교육이요?”

“아무리 동창 요원이라 한들, 결국 근본은 황궁에서 근무하는 환관이다. 황궁 예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줄 터이니, 네놈은 열과 성을 다해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

“눼에….”

에라이.

거 좋다 말았네.

쩝.

* * *

그날 이후.

제갈참은 연오랑에게 일대일 과외를 해 주었다.

연오랑 같은 꼴통을 다른 교육생들과 어울리게 만들었다간 크게 사달이 날 것이기에, 아예 격리해버리기로 한 것이다.

제갈참은 걸음걸이부터 인사하는 법, 밥 먹는 법부터 시작해 황궁의 구조와 조직도 등등 환관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가르쳤다.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

“이놈!”

“악! 왜 때려요!”

“환관의 걸음걸이는 조신해야 한다고 그리 일렀거늘! 어찌 그리 사내답고 당당하게 걷는단 말이냐!”

“사내가 사내답고 당당하게 걸어야지! 왜 소인배마냥 주춤주춤… 으악!”

“네놈이 기어코 경을 치는구나!”

연오랑은 걸음걸이부터가 환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그럼 그러시죠. 여기 있습니다.”

“…….”

“기왕이면 한 번에 뎅겅!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제갈참은 죽인다는 협박에 목을 앞으로 쭉 내미는 연오랑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녀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자존심과 자존감이 엄청나 그 어떤 협박과 매질에도 굽히는 법이 없었다.

‘걸음걸이 같은 사소한 것 하나를 가르치는 것조차 이리 힘들어서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이놈! 황제 폐하 앞에서 고개를 그렇게 빳빳이 들었다간 네놈 목이 1,000개라도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으악!”

“고개 숙이지 못할까! 허리도 굽히고! 어깨는 왜 그리 펴고 다니는 것이야!”

“사람이 어깨 펴고 당당하게 다녀야지 환자도 아닌데 구부정한 게 정상입… 으아아악!”

연오랑은 야생마 같았다.

기본예절을 가르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 네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볼 것이다.’

제갈참은 동창 교관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이를 악물고 연오랑을 훈육했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는 건 제갈참일 뿐이었다.

제갈참은 연오랑을 가르치면서, 하루하루 속이 썩어 들어갔다.

연오랑은 말을 지지리도 안 들을뿐더러, 고집도 쇠심줄보다 질긴 놈이라서 도무지 훈육이란 게 불가능했다.

“제갈 교관.”

“예?”

“요새 부쩍 흰머리가 늘었구려.”

“예…?”

“요 며칠 사이에 머리가 반 이상 새어 버린 거 아시오?”

“……!”

“쯧쯧. 이제 갓 불혹을 넘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리 흰머리가 많아서야.”

거울을 확인해 보니 선배 환관의 말대로 흰머리가 부쩍 늘어나 있는 게 눈에 보일 지경.

심지어, 팔자주름 역시 더 깊어져서 아예 골이 파였을 정도였다.

연오랑을 가르치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급격한 노화가 온 게 분명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놈 하나 때문에 이리 정신적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히죽 웃는 녀석의 얼굴만 떠올리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지 않고서는 진정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참이 인내심을 발휘해 녀석을 가르치는 이유는 그 재능이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가진 재능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잘 가르쳐놓기만 한다면, 녀석은 황제 폐하의 검으로서 제국을 지키는 위대한 별이 되어 이 나라에 이바지할 것이다.’

제갈참은 직업적 사명 때문이라도 연오랑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 * *

행동교정이 도저히 안 되는 연오랑에게도 장점은 있었다.

연오랑은 황궁 예법이나 환관으로서의 몸가짐 등에 대해서는 전혀 훈육이 안 되는 구제불능이었다.

그러나 암살·첩보·미행·은신 등등 첩보원인 동창 요원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들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보였다.

아니, 그건 재능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마치 저잣거리처럼 꾸며 놓은 황궁 내 훈련장.

“싸요! 싸요! 비단 한 필에 은자 다섯 냥!”

“오호호호! 거기 잘생긴 영웅님! 기루에 와서 쉬다 가시지 않을래요?”

훈련장은 정말 진짜처럼 꾸며 놓아서, 여기가 황궁인지 진짜 저잣거리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저잣거리 상인들과 백성들로 위장한 도우미들까지 대거 투입되어 있기도 했고.

“지금부터 내가 널 미행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날 따돌려 보아라.”

“눼에.”

연오랑은 늘 그렇듯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숨는다 해도 내 눈은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미행은 제갈참은 전문 분야.

제갈참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표적을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을 정도로, 미행에 대해서는 도가 튼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제갈참의 자신감은,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

제갈참은 순간 녀석의 종적을 놓치고 당황했다.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뒤에 바짝 따라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 어느 틈에?’

바로 그때.

“저 찾으세요?”

“……!”

“훈련 끝났으면 저 갑니다?”

녀석은 히죽 웃으며 제갈참의 어깨를 툭! 치고는, 훈련생들의 훈련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자, 잠깐!”

“눼에?”

“여기 이 사람들 중에서 비단을 팔던 상인의 얼굴을 기억하겠느냐?”

“저 사람이요.”

녀석은 기억력도 비상해서, 의상을 바꿔 입은 도우미도 정확히 짚어내기까지 했다.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비상한 기억력까지 갖추었을 줄이야….

제갈참은 녀석의 기억력을 더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금부터 패를 까서 딱 한 번만 보여 줄 것이다. 그다음 순서를 맞춰 보도록 해라. 만약 맞춘다면 오늘 훈련은 끝내주마.”

“눼에.”

“그럼, 시작하겠다.”

제갈참이 12장의 패를 하나씩 뒤집었다가 다시 덮었다.

“자, 이제 패를 뒤집기 전에 그 패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맞춰 봐라.”

“용.”

녀석이 제일 첫 번째 패를 뒤집기 전에 말했다.

“다음은 원숭이, 그다음은 닭, 그다음은 토끼, 말, 개, 쥐, 돼지, 호랑이, 뱀, 소, 양이요.”

모두 정답이었다.

패를 한 번씩만 보여 주었는데, 12장의 순서를 모두 맞춘 것이다.

“됐죠? 수고하세요. 혹시나 뭐 또 시키실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라?”

“그땐 황제 폐하 책상 위에서 똥 쌀 생각이거든요. 그럼, 저 갑니다?”

녀석이 그렇게 으름장을 놓은 뒤 훈련장을 빠져나가 사라지고.

“이 무슨….”

제갈참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어찌나 놀랐느냐 하면, 황제 폐하의 책상 위에 똥을 싸겠단 협박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이 세상에 녀석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제갈참은 문득 든 회의감에 몸서리쳤다.

* * *

“으. 냄새.”

한 달 동안 세탁을 한 번도 안 했더니 옷에서 아주 쉰내가 난다.

“빨래 좀 해야겠다.”

게임 BNW는 쓸데없이 고퀄리티의 표적 격인 게임.

입은 옷도 주기적으로 세탁을 해 주지 않으면 더러워질뿐더러, 이나 집먼지진드기 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

그럼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부터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되겠지?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물에 풀어 쓰면 비누 효과를 내는 잿가루와 빨랫방망이를 챙겨 빨래장으로 향했다.

‘으. 쉽지 않네.’

가는 길에 탈출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나, 지난 한 달 동안 놀고 있던 거 아니다.

나는 막무가내식으로 황궁을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기회를 틈타 도망칠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내가 겉으로는 제갈참 아저씨에게 고분고분 따라주는 척한 건 탈출을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말씀!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황궁의 구조에 대해서 공부했다.

경비병들의 근무시간이 몇 시간인지, 언제 교대하는지,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도 파악했고.

또,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미행하는 놈들이 셋이나 있단 것도 눈치채기도 했다.

근데 왜 아직 탈출을 못 했냐고?

‘진짜 보안 하나는 끝내주네.’

보안 수준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도무지 빈틈이란 게 보이지 않는다.

‘이 자식은 도대체 어디 짱박혀 있는 거야?’

기회가 왔다 한들 햄찌 이 자식이 한 달째 감감무소식이라, 혼자 탈출하기도 좀 그렇다.

황궁 안에 있기는 한 건가?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니까, 도움이.’

그때 웬 가마 하나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황궁에 가마가 돌아다니는 건 흔한 일이다.

좀 넓어야지?

황궁은 건축물이 8백 개쯤 되고, 방이 9천 개가 넘는다.

그래서 높으신 나으리들께서는 저렇게 가마를 타고 이동하고는 했… 으응?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뀨!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리냐! 빨리빨리 가자!”

“예! 생원 나으리!”

가마꾼 역할을 하는 환관들을 독촉하는 높으신 나으리가 햄찌 놈이었다.

근데 너 왜 가마 타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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