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이 새뀌!
너 잘 걸렸다!
햄찌 놈이 튀기 전에 재빨리 덮치고, 귀때기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햄찌가 비명을 질렀다.
“넌 진짜 뒤졌어!”
“뀨, 뀨우! 주인놈아! 놔라! 햄찌 아프다! 뀨우우우!”
“뭐? 주제 파악을 하라고?”
“뀨우우우우!”
“아~? 잘나신 생원 나으리가 되셨지~?”
“뀨우! 놔라! 뀨우우! 햄찌 아프다! 뀨!”
“또 뭐라고 했더라? 말단 교육생에 불과하다고? 주제에 맞게 밑바닥에서 X뺑이를 치라고?”
“뀨우우우우우우우우우!”
“너 내가 오늘 백숙 만들어 준다. 털을 다 뜯어… 악!”
어쭈?
물어?
견과류나 갉아먹던 그 앞니로?
“어어? 너 나 물었어어?”
욱신욱신!
팔뚝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피이이? 피까지?”
“캬아아아악! 주인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캬아악! 햄찌 귀때기 뜯어질 뻔했다! 캬아아악!”
“해 보자는 거지?”
“캬아악! 주인놈 이거 동물학대… 아니 정령학대인 거 모르냐! 캬아아아악!”
“너한테는 해당 안 돼! 이 쥐새끼야!”
다시 햄찌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맞고만 있을 거 같냐! 캬아아악!”
우당탕탕!
햄찌 녀석과 뒤엉켜 서로 깨물고, 뜯고, 할퀴고, 꼬집고, 암바 같은 관절기까지 걸어가면서 혈투를 벌였다.
“어어? 놔라. 좋게 말할 때 놔라.”
햄찌 놈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한 말이다.
이게 진짜 선 넘네.
이러다 나 탈모까지 생기면 책임질 거야?
땅콩도 없어서 서러워 죽겠는데?
“캬아아악! 주인놈부터 놔라! 캬아아악!”
햄찌 놈도 나에게 귀때기 한쪽을 붙잡힌 상태.
“두 분,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놓는 거예요. 아시겠죠?”
보다 못한 두목님이 나섰다.
“저 동창제독 각하 말씀 들었지? 셋에 놓는 거다?”
“알겠다. 뀨.”
일단 합의를 봤다.
“하나, 둘, 셋.”
두목님이 셋을 셌다.
“으아아아악!”
“뀨우우우우!”
그와 동시에 햄찌와 내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왜냐고?
셋이 놓기는커녕, 오히려 더 세게 잡아당겼거든.
우리 둘 다.
나도 나지만, 하여튼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니까?
“야 이 쥐새끼야! 셋에 놓기로 했잖아!”
“그러는 주인놈은 왜 안 놨냐! 캬아아악!”
“놓으려고 했는데 니가 안 놓고 잡아당긴 거 아냐!”
“캬아아악! 구라 치지 마라! 주인놈아! 주인놈이 뒤통수 때리는 거 하루 이틀이냐? 그거 주인놈 전문 아니냐! 캬아아악!”
통수가 내 주특기이긴 하지.
내가 누군가를 뒤통수친 역사를 나열해 놓으면 역사서 한 권이 나올걸?
“정말 못 말리겠군요.”
두목님은 우리 둘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더니, 손을 한 번 휙! 하고 휘저었다.
휘이이이!
그러자 우리 둘을 강제로 떼어놓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기류가 휘몰아쳤다.
“으악!”
“뀨우!”
덕분에 우리 둘 다 서로 떨어지는 걸로도 모자라서,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으. 내 꼬리뼈. 으으.”
엉덩방아를 찧은 덕분에 꼬리뼈가 아팠다.
“햄찌 배때기 터질 뻔했다. 뀨우.”
햄찌 놈은 배부터 철푸덕! 떨어진 모양이다.
그 남산만 한 배로 떨어졌는데 아픈 게 말이 돼?
쿠션 역할은 충분히 해 줄 거 같은데?
“으. 머리야.”
햄찌 놈에게 붙잡혔던 곳이 욱신욱신 아프다.
이 자식 얼마나 세게 잡아당기고 있었던 거야?
근데 뭔가 이상하다.
“으응?”
왜 맨들맨들한 두피가 느껴지지?
설마.
“때, 땜빠아아아아앙?!”
위쪽 옆통수 쪽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땜빵이 생겨나 있었다.
“뀨우? 햄찌 귀때기 어디 갔냐? 뀨우우?”
그런데 햄찌 놈도 귀때기 하나가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다.
아?
내 왼손 안에 있네.
“캬아아악! 주인놈 햄찌 귀때기 진짜로 뜯었냐! 캬아아악!”
“넌 내 머리카락 뽑았잖아! 땜빵 생긴 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 미친놈아! 나 대머리 되면 니 털도 다 밀어버릴 줄 알아! 이 쥐새끼야!”
우린 한동안 서로 으르렁거리며 계속해서 투닥거렸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옛날부터 한번 싸우면 둘 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싸웠거든.
* * *
결국, 나와 햄찌는 서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치고받고 나서야 싸움을 멈췄다.
“아아! 아파요! 앗! 따거어어어!”
“우우우! 햄찌 아프다! 뀨우우!”
두목님은 우리 둘에게 손수 소독을 해 주고, 연고를 발라주고, 반창고까지 붙여 주었다.
은근히 자상하시고 상냥하신 두목님이다.
“가, 감사합니다. 으윽.”
땜빵 난 머리도 머리인데, 손톱자국 가득한 얼굴이 더 아프다.
햄찌 이 비겁한 새끼.
싸나이가 돼 가지고 손톱으로 할퀴기나 하고.
“어쨌든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로 한 거겠죠?”
“물론이죠. 으윽.”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우선 비급을 먼저 봐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급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말았네요. 미안해요, 연오랑 교육생.”
“그러실 수 있죠.”
“원본을 드릴 수는 없으니 복사본을 만들어서 최대한 빨리 보내드릴게요.”
“네, 편하신 대로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 된다.
‘나야 부탁을 들어주면 그만이긴 한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해? 나중에 내 멱살 잡고 남자로 돌려내라고 떼쓰는 거 아냐?’
아무리 게임 속 세상이라지만 성별이 무슨 엿장수 엿 바꿔 먹듯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겠지?’
이걸 물어봐야 돼?
아님 말아야 돼?
성소수자(?)랑 대화해 본 게 처음이라 갈피를 못 잡겠다.
실례가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아니지.
현실에서도 성전환을 하려면 심리상담 같은 걸 먼저 받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본 것 같긴 한데, 워낙 오래전에 채널을 돌리다 본 내용이라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조심히 물어보자.’
결정을 내렸다.
“저어. 혹시.”
“말씀하세요.”
“동창제독 각하께서 원하시는 거니까 제가 왈가왈부할 권리나 자격은 없지만….”
“본 태감이 왜 여자가 되려고 하는지가 궁금한가요?”
“아뇨.”
“그럼 뭔가요?”
“충분히 심사숙고해 보시고 내린 결정이시겠죠? 혹시 모르니까 여쭤보는 겁니다. 아무래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제니까요.”
“아.”
두목님이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듯 약간의 탄성을 내질렀다.
띠링!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당신에 대한 견쌍섭의 호감도가 1,000 올랐습니다!]
[알림: 당신에 대한 견쌍섭의 호감도 상태가 <호기심과 기대>에서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상향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 물론 누구에게도 이 결정을 말한 적은 없지만. 백이면 백. 왜 여자가 되려고 하는지를 묻겠죠.”
“자연스러운 반응이긴 하죠.”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본 태감의 결정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답니다. 수년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린 결정이에요.”
“알겠습니다.”
이만하면 나중에 딴소리는 안 하겠지?
환불은 불가능하다구?
“그럼, 잘 부탁해요. 연오랑 교육생.”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암.
최선을 다해서 모셔야지.
큰손이신데.
* * *
훈련소로 돌아가기 전.
“혹시 쟤 데리고 가도 되나요? 미우나 고우나 저랑 단짝이라서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햄찌 놈을 가리키며 두목님께 물었다.
“뀨우? 햄찌 왜 데려가려고 그러냐?”
“뭐야? 너 나랑 같이 안 가?”
“뀨! 주인놈이랑 다니면 X빠지게 고생만 할 텐데 왜 가냐! 뀨우!”
“뭐 인마?”
“뀨우! 햄찌 안 간다! 누님이 잘해 주는데 왜 가냐! 뀨! 햄찌도 이제 아재다! 뀨우! 다 늙어서 주인놈 졸졸 쫓아다니면서 고생하기 싫다! 뀨우!”
“이게 진짜!”
열불이 터진다!
열불이 터져!
이런 놈을 영혼의 짝꿍이라고 데리고 다닌 내가 한심한 놈이지.
“너 계속 그딴 식으로 하면 진짜 버릴 줄 알아. 확 그냥.”
햄찌 놈에게 으르렁거린 후 두목님을 돌아보았다.
“데려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처음부터 만남을 막은 적이 없는걸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귀엽다고 포획해서 가둬 둔 거 아니었습니까? 강제로?”
“설마요.”
“……?”
“원하면 언제든 연오랑 교육생 곁으로 보내준다고 한걸요?”
그러니까… 강제로 여기 있던 게 아니말 말씀이시죠?
“너… 뭐냐?”
햄찌 놈에게 물었다.
“뀨우?”
“뭐냐고. 붙잡아두신 적 없다잖아.”
“뀨! 그렇다! 누님 햄찌 붙잡아둔 적 없다! 뀨우!”
“근데 너 왜 여기 자빠져서 꿀 빨고 있었냐?”
“주인놈 바보냐? 뀨?”
“……?”
“말하지 않았냐! 주인놈이랑 같이 있으면 둘 다 고생하지 않냐! 뀨!”
“그래서?”
“둘이 같이 고생할 이유가 뭐가 있냐! 뀨! 주인놈 혼자만 고생하면 되지 왜 햄찌까지 X빠지게 뺑이쳐야 하냐! 뀨우!”
“그건 맞는 말… 이 아니고!”
아차!
긍정할 뻔했다.
그래, 뭐.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근데 X나 괘씸하네?
“너 이리 와.”
햄찌 놈의 남은 귀 한쪽을 잡아당기고 질질 끌고 갔다.
“캬아아악! 놔라! 주인놈아! 햄찌 안 간다! 캬아아악!”
“빨리 와라. 어어. 너 그렇게 발버둥 치면 남은 귀때기도 떨어져 나간다?”
맘 같아선 배신감에 확 유기해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누구 좋으라고?
이 자식 혼자 꿀 빠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아니라!
흙이 들어가도 안 돼!
같이 죽었으면 죽었지!
* * *
본부 전각을 나서자마자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지금부터 각종 특혜가 적용됩니다!]
[알림: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오오.
전에도 말했지만 나, 특혜 좋아한다.
물론 특혜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표현이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특혜도 특혜 나름!
본인은 쥐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혈연·지연·학연 같은 걸 근거로 특혜를 받는 사람이랑 내가 어떻게 같겠어?
이건 오롯이 내 능력으로 얻어낸 특혜니까, 난 마음껏 누릴 자격이 있다고.
“왔느냐.”
기다리고 있던 제갈참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얘기는 들었다.”
“네?”
“동창제독 각하께서 네 편의를 최대한 봐주라고 명령하셨다.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 하셨지.”
“벌써요?”
뭐 이렇게 빨라?
전각에서 내려오는 데 얼마나 걸렸다고?
“이제부터 뭐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동창제독 각하께서 맡기신 임무를 할 때를 빼면 말이다.”
“좋죠. 그럼 요괴 사냥 훈련이나 할까요?”
내 목표는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는 것과 이 세계에서 환생한 카렐 녀석을 찾는 것.
그러기 위해서 성장은 필수.
지금은 뭣보다 경험치를 먹는 게 우선이다.
50레벨부터 찍고 계승된 스킬 체계부터 활성화시켜야 하지 않겠어?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여긴 천국일지도 몰랐다.
적당히 일 좀 해 주고 몬스터를 무한으로 공급받을 수 있잖아?
당분간 여기서 눌러앉아서 렙업에 집중해야겠다.
“미안하지만 요괴 사냥 훈련은 불가능하다.”
“왜요. 왜. 또 왜.”
“말하지 않았더냐. 요괴의 재고가 떨어졌다고. 재입고 되려면 1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뭔 요괴 주제에 품절이 되는 겁니까? 에라이!”
“요괴가 뚝딱하면 생기겠느냐? 다 야생에 서식하는 걸 힘들여 잡아 오는 것이다. 요괴들을 포획해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걸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
틀린 말은 아닌데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어떻게 하지. 몬스터를 못 잡으면 경험치를 못 먹잖아. 1주일 동안 뭐 하라고? 책상머리 앞에 앉아서 비급이나 들여다보긴 싫은데.’
그러던 중 좋은 생각이 났다.
‘아! 그 방법이 있었지!’
생각해 보니 경험치를 꼭 몬스터를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교관님?”
“말해라.”
“저 비무 좀 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