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21화 (21/115)

제21화.

“비무?”

“네.”

“갑자기 비무는 왜?”

“잡을 요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비무를 통해서 경험을 쌓겠다는 것이냐?”

“역시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네요. 헤헤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요괴가 없으면 NPC나 게이머들로 경험치를 획득하면 된다.

무림 서버는 사냥보다 일대일 결투에 더 중점을 둔 서버이니만큼, 비무를 통해서 획득하는 경험치도 요괴 사냥에 못지않았다.

물론 같은 상대를 계속해서 이겨봤자 획득 가능한 경험치가 줄어드니까, 여러 상대와 두루두루 겨루어보는 게 중요하다.

뭔가 바람둥이 같은 시스템이네, 이거.

한 명으로는 만족을 못한다라….

“비무라.”

제갈참 아저씨가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다. 교육생들끼리의 대련은 동창 내에서도 장려하는 바. 그리하도록 하자.”

“감사합니다.”

꾸벅 배꼽 인사로 제갈참 아저씨에게 고맙단 마음을 전했다.

“그리 좋으냐?”

“그럼요. 좋고말고요.”

“네 녀석과 같은 천인들은 늘 강함을 추구하더구나. 왜 그리 강함에 집착하는 것이냐.”

“강해서 나쁠 게 없잖아요?”

“그거야….”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할 수 있는 게 많아지잖아요. 계속해서 강해지다 보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론 단점도 있죠.”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외로워지거든요.”

“뭣이?”

“너무 강하면 할 게 없어서 외로워집니다. 어쩌면 적당히 강한 게 더 행복할지도?”

이건 내 경험담.

순도 100퍼센트짜리 진심이다.

굳이 부캐를 파 복귀한 이유도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카렐의 영혼을 찾아서 판타지 서버로 데려가는 게 최우선적인 목표이자 과제였지만.

근데 그것도 50레벨을 찍어서 메인 퀘스트를 받아야 시작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러니까 렙업이 우선이라고!

“네 말대로 강해질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제갈참 아저씨가 덧붙였다.

“그 힘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독이요?”

“조금 강해졌다고 자만하다 보면 자칫 힘을 잘못 휘두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더 큰 힘에 의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저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다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

“그러니 강함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일수록 그 힘을 신중하게….”

차마 제갈참 아저씨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해서 해 주시는 말씀이니까. 새겨듣는 척이라도 하자.’

제갈참 아저씨 입장에선 내가 천방지축 철부지로만 보이겠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훈계를 늘어놓으시는 것일 테고.

저번 징계 사건 때 날 위해 무릎을 꿇기도 하셨으니까.

“오랑아.”

예?

갑자기 왜 그렇게 부르세요?

어감이 좀 이상한데.

오랑우탄 부르는 거 같잖아….

“나는 네 녀석이 협객이 되길 바란다.”

“협객… 이요?”

“무릇 무공을 익힌 자라면 마땅히 가슴 속에 의협심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가진바 무공을 옳은 일에…….”

아저씨는 그 후로도 거의 30분 동안이나 의협심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괴로웠지만, 아저씨가 날 위해 신경 써 준 게 떠올라 뺀질대지도 못하겠다.

그, 그만!

그만해요!

“뀨. 주인놈아.”

햄찌가 속삭였다.

“으응?”

“근데 주인놈은 협객이라기보단 사악한 마두가 어울리지 않냐? 뀨우?”

마두(魔頭)란 사악한 놈들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대충 x나 센 악당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뭐 인마?”

“주인놈이 어딜 봐서 협객이냐? 뀨우? 주인놈은 마두가 어울린다! 뀨!”

“이 자식이 날 뭐로 보고! 나도 협객 할 수 있거든?”

“뀨우우우우! 개소리다! 개소리! 주인놈은 사악한 대마두가 될 거다! 뀨우우! 주인놈은 협객 되는 것보다 마교 교주가 되는 게 훨씬 더 가능성 있다! 뀨우우!”

“이게 진짜!”

“뀨우?”

“이 쥐새끼!”

“캬아악!”

어쭈?

또 할퀴었어?

그래!

오늘이 니 제삿날이다!

물 끓여!

이 쥐새끼 백숙으로 만들어 버릴라니까!

* * *

“그러니 강한 힘을 얻게 되거든 반드시….”

잠시 연설(?)에 집중하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제갈참은, 녀석과 서생원이 뒤엉켜 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죽어! 죽어어어어엇!”

“캬아아아아악!”

녀석과 서생원이 서로 물고, 뜯고, 할퀴고, 조르며 한바탕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끈지끈!

또 머리가 아팠다.

녀석과 함께 있노라면 늘 이렇게 두통이 도지곤 했다.

부디 협객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해 주고 있었건만….

“그래! 내가 마교 교주다! 이 쥐새끼야!”

“캬아아악! 햄찌 맞고만 있을 거 같냐! 캬아아악!”

녀석들은 제갈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치고받고 싸우는 데만 열중했다.

“협객은 무슨. 허허.”

제갈참은 기대를 접었다.

“부디 강호를 피로 물들이는 마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수밖에.”

저런 재능을 가지고 마두가 된다면….

오싹!

제갈참은 마두가 된 녀석을 떠올리며 흠칫 몸서리쳤다.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피처럼 붉은 노을이 진 전장[戰場].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들이 울어대고.

산더미처럼 쌓인 협객들의 시신.

그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루어진 강.

그 시산혈해[屍山血海]의 끔찍한 아수라장에서 녀석이 웃고 있었다.

온통 피칠갑을 한 녀석의 손에는 무림맹주의 수급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으헤헤헤헤! 다 꿇어! 이 새끼들아! 으헤헤헤헤헤! 내가 최고존엄이시다! 이제 무림은 내가 접수했다! 으헤헤헤헤헤헤!’

“…….”

제갈참은 상상의 나래를 접었다.

어째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하지만 녀석이 정말로 마두가 된다면….

‘역사상 가장 제정신이 아닌 마두가 되겠군.’

제갈참은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 * *

그날 이후.

“끄악!”

“꾸웨에에에에에에에엑!”

“으아아아악!”

동창 교육생들의 연무장―훈련장―에서는 연일 돼지 멱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선배들을 다 죽일 작정인가.”

제갈참은 녀석이 선배 교육생들을 때려눕히는 걸 지켜보며 얼굴을 감쌌다.

“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

“수, 숨을 못 쉬겠… 끄윽!”

녀석의 상대가 되었던 교육생들은, 다들 어딘가 한 군데는 꼭 부러져서 연무장을 떠났다.

덕분에 제갈참은 동료 교관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녀석이 처음 비무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좋아했다.

“마, 맙소사!”

“아니! 이제 입교한 지 고작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녀석이! 어찌 저런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닌가!”

아무리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치른 비무라고 한들, 교관들이 녀석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녀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동창의 최고 유망주이자 기대주가 되어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었다.

“이보시오! 제갈 선배! 교육생들을 다 저렇게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으면 어쩌자는 것이오!”

“적당히 좀 하시오! 교육생들이 드러누워서 교육 일정이 다 꼬여 버렸소!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요!”

“다른 교육생들 다 죽일 작정이오? 내 교육생들이 무슨 목인장도 아니고! 이렇게 두들겨 패는 게 맞소?”

제갈참은 동료 교관들이 몰려와 따지는 바람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교육생들이 다들 몸져눕는 바람에 교육 훈련의 일정이 꼬여 버려서, 본의 아니게 동창의 업무에 큰 폐를 끼치고 말았던 것이다.

“미, 미안하게 됐소. 녀석이 손이 매워 그리된 것일 뿐 결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올시다. 게다가 동창제독 각하의 명이 있어서…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오. 내 술 한 잔씩 사겠소.”

덕분에 제갈참은 쥐꼬리만 한 녹봉을 털어 동료 교관들에게 기름칠까지 해야만 했다.

‘연오랑 이놈! 선배들을 그리 두들겨 패면 뒷감당을 어찌하라는 말이냐!’

하지만 제갈참은 녀석을 탓하거나 나무랄 수가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커헉!”

“잘 배웠습니다.”

“끄어어억.”

“다음.”

녀석은 비무를 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장난기?

평소의 그 뺀질뺀질하기만 하던 태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심지어 농담 한마디 던지는 법이 없었다.

녀석이 상대 교육생들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전부였다.

그러니 제갈참으로서도 녀석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대로 선배들을 반병신으로 만드는 꼴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으므로, 제갈참은 녀석을 따로 불러서 타일러 보기로 했다.

“오랑이 이 녀석아.”

“예?”

“제발 적당히 좀 해라.”

“뭘요?”

“네 녀석이 선배들을 두들겨 패는 바람에 내 입장이 크게 곤란해졌다. 다른 교관들이 몰려와서 내게 따지는 바람에 진땀을 빼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 제발 손속에 사정을 두어라. 선배들을 그렇게 두들겨 패서야 되겠느냐? 그래도 선배들인데?”

“봐주면서 하란 말씀이십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싫습니다.”

녀석이 단호히 말했다.

“시, 싫다?”

“비무란 가진 바 무를 겨루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

“거기에는 봐주고 말고가 없습니다. 무의 겨룸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그건!”

“비무는 실전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선배들은 다 죽었습니다.”

제갈참은 녀석의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과 빈틈없는 논리에 그만 말문이 막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무에 임하는 녀석의 진지한 태도였다.

‘이 녀석이 이렇게나 진지할 때가 있었던가?’

놀라웠다.

녀석에게 이런 진중하고 진지한 면이 있다는 게.

확실히 알았다.

적어도 녀석은, 무[武]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이었다.

‘허허.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구나. 도대체 어떤 기인이기에 녀석을 키워냈단 말인가.’

문득 녀석의 사부인 은거기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녀석을 오래 가르친 건 아니다. 만약 오래 붙잡고 제대로 가르쳤다면 녀석이 이리 약할 리 없을 테니. 하지만 형편없는 근골을 가진 녀석의 기초를 이 정도로 완벽하게 닦아 주었다면… 녀석의 사부는… 어쩌면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고수일지도.’

그렇게밖에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참은 몰랐다.

자신이 녀석의 사부를 한참이나, 정말 심하게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 * *

며칠 후.

연무장으로 가는 길.

“에라이.”

레벨을 확인해 보니 겨우 31이었다.

한 며칠 선배님들을 때려잡으며… 가 아니라!

선배님들과의 비무로 열심히 경험치를 먹어서 레벨을 올리긴 했는데, 50레벨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슬슬 선배님들 단물도 다 빠져서 뽑아먹을 경험치도 없는데. 요괴들은 대체 언제 재입고 되는 거야?”

“뀨! 주인놈아! 며칠만 더 기다려라! 요즘 요괴 토벌 시즌이라 황도 근처에 요괴들이 씨가 말라서 그렇다! 뀨우!”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럼 한 며칠 더 선배님들 등골 뽑아야겠네. 마른오징어에서도 액기스가 나오긴 하니까. 최대한 쥐어짜 봐야지.”

그렇게 말하고 연무장을 향해 계속 가는데.

두근!

“어?”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오싹!

“뭐야?”

소매를 걷어 보니 팔에 닭살이 쫙 돋아 있었다.

나 왜 갑자기 백숙 됐어?

쿵! 쿠웅!

주변을 돌아보니 저 멀리서 웬 거대한 덩치를 지닌 떡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설마 저 떡대 때문에 몸이 반응하는 건가…?

호기심에 <통찰의 인장>으로 떡대를 비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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