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이 미친 새끼가!”
“감히 하늘 같은 선배 얼굴을 뭉개?”
“네놈이 정녕 뒈지고 싶어 환장했구나!”
아.
이제 기억났다.
알고 보니 선배님들이셨네?
교육생 훈련복이 아니라서 헷갈렸다.
“그저 혼쭐을 내주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기억난다.
오동용이라고 했던가?
“오늘이 네놈 제삿날일 줄 알아라! 뭣들 해! 저 새끼 버릇을 고쳐 주자고!”
스으으!
오동용의 주먹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어쭈.
내공을 써.
다른 선배들 역시 내공을 끌어올리며 다가왔다.
그럼 나도….
“멈춰!”
모용 선배를 선두로.
“뭣들 하는 짓이야!”
“니들 미쳤냐?”
“다 퇴교당하고 싶어서 작정했어?”
마 선배.
윤 선배.
그리고 왕 선배.
무공을 가르쳐준 선배님들이 동용이네 패거리를 가로막았다.
“좋게 말할 때 물러나라. 니들을 위해서라도.”
모용 선배가 오동용에게 경고했다.
“여기서 사고 쳤다가 단체로 퇴교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일개 환관으로 강등당하고 싶어? 동창 요원이 아니라?”
“너나 꺼져.”
오동용이 으르렁거렸다.
“우린 저 새끼 손봐주기 전까진 절대 못 물러나니까.”
“다 같이 징계라도 받자는 건가?”
“징계가 무서웠으면… 나서지도 않았겠지!”
“헛!”
“너부터 묵사발을 내주마!”
오동용이 모용 선배를 기습했다.
“꺼져! 이 새끼들아!”
“니들은 동기도 아니야!”
동용이네 패거리들도 일제히 선배님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어어?
이러면 패싸움인데?
“하아.”
한숨이 푹푹 나온다.
조용히 50레벨만 찍고 탈출하려고 했는데, 도와주지를 않네.
도와주지를 않아.
그렇다면…….
“니들 오늘 다 뒈질 줄 알아.”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패싸움에 합류했다.
“뀨우! 주인놈아! 햄찌도 도와준다! 뀨!”
햄찌 녀석도 이때다 싶었는지 패싸움에 합류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나이답게 사이좋게 주먹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지기로 했다.
아.
사나이답진 않구나.
우리 다 고자들이잖아.
흑흑흑.
* * *
“이 편지를 호북성(湖北省) 융중(隆中)의 있는 제갈세가의 안주인께 보내주시오.”
“편지를 말씀이십니까? 왜 전서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전서구[傳書鳩]란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전달할 수 있게끔 훈련시킨 비둘기로, 이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통신수단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개인용 전서구 한 마리쯤은 키우기 마련이었다.
“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 더는 묻지 마시오.”
“예, 공공((公公). 그리하겠습니다. 하면, 편지를 누가 보냈다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비밀이오. 누가 보냈는지도 알리지 마시오. 그저 안주인께 전하기만 하면 되오.”
“예, 공공. 그럼 본 표국의 특급 전서구를 이용해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제갈참은 요금을 내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머님. 용서하십시오. 이 못난 불효자는 차마 어머님께 떳떳하게 편지 한 통 붙이는 것도 이리 힘이 듭니다.’
제갈참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슬쩍 눈물을 훔쳤다.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라 평가받는 제갈참이었건만….
‘이젠 부모님도 많이 늙으셨을 터인데.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찾아뵙고 싶건만. 하아. 내 처지가 이리 처량하니 감히 가문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가 나질 않는구나.’
그렇게 발걸음을 돌린 제갈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지금 괜찮은 전서구 한 마리 있겠소?”
대륙의 물류를 책임지는 업체이니만큼, 표국들은 전서구들을 교배시켜서 자신들만의 품종을 만들어내고 훈련시킨 뒤 판매하곤 했다.
즉, 전서구들을 특산품처럼 개량해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각 표국의 전서구마다 특징과 능력치가 다 달랐는데, 이곳 북풍표국의 전서구는 대체로 모든 능력치가 골고루 뛰어난 품종이 대부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 마리 살까 해서 그러오.”
“죄송한 말씀이지만 중양절을 맞아 전서구가 많이 팔리는 바람에, 썩 마음에 드실 만한 놈은 없습니다요.”
“아쉽게 됐구려. 쩝.”
녀석에게 중양절 선물로 전서구한 마리 선물해 줄까 했던 제갈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딱 한 마리가 있기는 한데….”
“음?”
“워낙에 성질이 더러워 아직까지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녀석이 있습니다요.”
“성질이 더럽다?”
“부화한 지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무도 데려가질 못했습니다요. 심지어 국주님의 손길조차 거부할 정도입니다요.”
“허어! 백 국주님의 손길조차 거부한단 말이오?”
북풍표국의 국주 백철군은 무공 수위가 거의 화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알려진 초절정고수.
그런 백철군의 손길조차 거부할 정도라면, 해당 전서구의 성질머리가 얼마나 더러운지 능히 짐작이 가는 수준이었다.
“예, 공공. 혈통만큼은 확실한 녀석인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데리고 있습니다요.”
“혹시 내가 데려갈 수 있겠소?”
“공공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키울 게 아니니.”
“정 그러시다면 우선 데려가시지요.”
“얼마면 되겠소?”
“값은 지금 치르실 필요가 없습니다요. 국주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 연이 닿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데려가도 상관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냥 데려가시지요. 어차피 자신이 마음에 드는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표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요.”
“허허. 그 정도라니.”
제갈참은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전서구이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지.
‘어쩌면 녀석과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제갈참은 연오랑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쒸익쒸익!
‘예? 왜요? 왜에? 왜에에에! 왜 할 수가 없어요! 왜에에에!’
더는 요괴 사냥 훈련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성난 원숭이처럼 길길이 날뛰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갈참이 생각하기에, 녀석은 옥황상제가 와도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마치 제천대성처럼.
“여기 있습니다.”
“왜 새장에 천을 덮어 놓았소?”
“녀석이 새장 안에서도 미친 듯 날뛰는 바람에 덮어 놓았습니다. 주인 될 사람 앞이 아니면 절대로 천을 걷으시면 안 됩니다. 새장을 함부로 열어서도 안 됩니다.”
“내 명심하리다.”
제갈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장을 들고 북풍표국을 나섰다.
‘녀석이 좋아할지 모르겠군. 나름 선물인데. 그나저나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치진 않았겠지? 아니다. 녀석도 사람인데 이 짧은 시간에 사고를 칠 리가….’
그때.
“…있군.”
북풍표국을 나선 제갈참의 입에서 당혹감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지금부터 제대로 딱 대라. 3대씩 5번 때릴 건데, 중간에 한 놈이라도 엉덩이 빼거나 엄살 피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앞에 놈들 죽이고 싶으면 요령 피워 봐.”
퍽! 퍽! 퍽!
“으악!”
퍽! 퍽! 퍽!
“악!”
퍽! 퍽! 퍽!
“으으으윽!”
일렬로 줄지어 엎드려 뻗친 3년 차 교육생들이 녀석에게 줄빠따를 얻어맞고 있었다.
“어쭈? 너 피해? 좋아. 피했으니까 앞에 놈들부터 다시 시작이다.”
녀석이 다시 맨 앞줄로 돌아갔다.
“야 이 개새끼야! 그냥 처맞아!”
“너 때문에 또 맞잖아!”
“너만 안 맞으면 되냐? 어? 이 이기적인 새끼!”
앞서 맞았던 세 명이 엉덩이를 뒤로 뺐던 교육생을 향해 쌍욕을 퍼부어대었다.
빠따가 무서워서 엉덩이를 뒤로 뺀 교육생 때문에 다시 3대를 더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그 와중에 표국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이 미치고 팔짝 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랑이 이 ㄴ….”
제갈참은 순간 버럭! 소리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불끈불끈!
치솟은 혈압 때문에 뒷목이 뻐근해져서, 도저히 호통을 칠 수가 없었다.
“으으. 으으으으.”
뒷목을 잡고 쓰러진 제갈참.
“교, 교관님!”
놀란 모용건이 황급히 제갈참을 부축했다.
“헉!”
연오랑도 제갈참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교, 교관님? 하하. 하하하. 볼일을 다 보고 오셨습니까. 하하하하.”
“뀨우?”
녀석이 은근슬쩍 몽둥이를 등 뒤로 숨기며 멋쩍게 웃었다.
그 와중에 서생원 놈은 녀석의 등 뒤에 숨어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들 밉상인지.
“오랑이… 네 이노옴…!”
쓰러진 제갈참은, 녀석을 노려보며 분노에 차 으르렁거렸다.
“선배님들께서 몸이 뻐근하다고 하셔서 안마를….”
그때.
“교관님~!”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교관니이이임!”
“엉엉! 저희 맞아 죽게 생겼습니다!”
줄빠따를 맞던 3년 차 교육생들이 엉엉 울면서 일제히 제갈참의 등 뒤로 숨었다.
멀쩡한 놈은 없었다.
다들 어딘가 깨지고, 부러져 있었다.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한 움큼 빠져서, 주먹만 한 땜빵이 난 놈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제갈참이 녀석을 향해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얌전히 탕후루나 사 먹고 있으라고 있거늘! 그새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친단 말이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배들을 이렇게 두들겨 패?”
“그게 아니라….”
“시끄럽다! 이놈!”
“…….”
“저잣거리에서 선배들을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패 놓고도….”
그때.
“거 왜 저 총각한테만 뭐라고 그러시오?”
“내 처음부터 봤는데! 시비는 저놈들이 먼저 걸었지 저 청년이 다짜고짜 때린 게 아니오!”
몇몇 구경꾼들이 연오랑을 변호해주었다.
“으음?”
제갈참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비를 이 녀석들이 걸었다는 것이 무슨 말이오?”
제갈참이 북풍표국 앞을 지키던 호위무사에게 물었다.
북풍표국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자이니만큼, 사건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이 맞습니다.”
호위무사가 증언했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이들이지, 저 청년이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오?”
“예, 공공. 이들은 먼저 시비를 건 것으로도 모자라 뒤에서 몽둥이로 저 청년의 뒤통수를 후려치려고도 했습니다. 저 청년이 싸운 건 정당방위였습니다. 물론.”
호위무사가 덧붙였다.
“줄지어 엎드려뻗쳐 놓고 몽둥이로 팬 건 조금 애매합니다만.”
“증언, 고맙소이다.”
제갈참은 호위무사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오동용을 포함한 3년 차 교육생들을 돌아보았다.
“후배에게 먼저 시비를 건 것으로도 모자라 비열하게 암습까지 가하려고 해? 그것도 모자라서 선배가 되어 가지고 두들겨 맞았다는 말이냐?”
“교, 교관님! 그것이!”
“닥쳐라, 이놈!”
움찔!
무어라 변명을 해 보려던 오동용은, 제갈참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짓눌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내 이번 일은 철저하게 조사해서 상부에 보고할 것이니, 네놈들은 동창 교육생으로서의 규정을 어긴 죄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교관님.”
3년 차 교육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오랑이 네 녀석은….”
제갈참이 연오랑에게 다가갔다.
“웨요. 웨.”
입이 삐죽 튀어나온 녀석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오해해서 미안하구나.”
제갈참이 녀석에게 사과했다.
“나는 네 녀석이 사고를 친 줄로만….”
“뉘예, 뉘예.”
“…….”
“그러시겠죠. 맨날 저만 문제겠지.”
“삐, 삐쳤느냐?”
“아뇨~~~”
“내가 오해한 것이니 부디 기분 풀었으면 좋겠구나.”
“눼에.”
“그러지 말고. 사내대장부가 그리 쉽게 삐쳐서야 되겠느냐.”
“우리가 왜 사내대장부입니까? 죄다 고자들인데.”
“그, 그건.”
“됐습니다.”
녀석이 홱! 하고 돌아섰다.
“뭔 일만 터졌다 하면 제 탓인데 사과는 왜 하세요. 저 원래 그런 놈인데. 에휴. 내가 죽어야지. 나 같은 놈이 살아서 뭐 해. 죽는 게 낫지.”
“크, 크윽.”
난감해진 제갈참이 어쩔 줄 몰라 땀을 삐질 흘렸다.
“햄찌야. 나 그냥 장강에 콱 빠져 죽을란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
쪼그려 앉아 연오랑이 땅바닥에 낙서를 하며 우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뀨우. 주인놈아. 이제 가을이라 장강물 차갑다. 빠져 죽을 거면 기다렸다가 내년 여름에 풍덩 해라. 뀨.”
그 와중에 서생원 놈은 위로랍시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지껄여대고 있기까지.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오랑아. 내가 미안하구나.”
“신경 쓰지 마십쇼.”
“그만 삐치고 풀어주면 안 되겠느냐. 내 정말로 미안하구나.”
“뉘예, 뉘예.”
“대신 선물을 주마. 이걸로 네 녀석 마음이 풀릴지는 모르겠….”
녀석이 언제 삐쳐 있었다는 듯 몸을 번개처럼 홱! 하고 돌렸다.
“뭔데요?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