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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28화 (28/115)

제28화.

‘이런.’

녀석의 빠른 태세전환을 본 제갈참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풀린 게 아니었다.

왜?

녀석은 삐치거나 상처받은 적 없었으니까.

그냥 제갈참을 곤란하게 하려고 연기를 한 것뿐이었다.

‘이 영악한 녀석 같으니.’

하여간 기묘한 놈.

살짝만 방심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늘 녀석에게 말려든 뒤였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녀석은.

“그래서 선물이 뭡니까?”

연오랑이 제갈참에게 물었다.

“이것이다.”

제갈참이 손에 들고 있던 천 덮인 새장을 녀석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요?”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해라.”

“네!”

선물을 받아서 신난 연오랑이 새장에 덮인 천을 열어젖혔다.

“에게?”

연오랑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이게 선물이라고요? 꼴랑 비둘기가?”

“그렇다.”

“…실망인데요?”

순간 제갈참은 녀석의 말에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그냥 비둘기가 아니라… 전서구다.”

“전서구?”

“소식을 전할 때 쓰는 비둘기 말이다.”

“아! 그 전서구우? 맞다! 전서구가 필수품이지!”

연오랑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둘기야.”

“자, 잠깐!”

제갈참은 표국에서 들었던 당부를 떠올리며 연오랑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연오랑이 이미 새장 문을 열고, 안에 있던 비둘기를 꺼내 팔에 올려놓은 뒤였다.

“비둘기 주제에 나름 멋있게 생겼네요, 얘.”

“꾸륵?”

전서구가 연오랑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조류 특유의 목 움직임으로―거렸다.

“그 녀석을 조심….”

제갈참은 표국에서 들었던 말을, 그러니까 저 비둘기에 대한 흉악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연오랑에게 경고해 주려고 했다.

“네? 뭘요?”

“조심해야 한다. 그 녀석은 아주 성질머리가 더러운….”

“귀엽기만 한데요? 그치?”

연오랑이 보란 듯 비둘기를 쓰다듬었다.

“비둘기야! 구! 구구구구!”

“꾸르륵?”

“구! 구구구구!”

“꾸르륵!”

비둘기가 연오랑의 손에 머리를 비벼 대며 애교를 피웠다.

초절정고수인 북풍표국의 국주 백철군의 손길마저 거부한다던 놈이, 연오랑에게는 애교를 피우고 있었다.

‘표국의 말이 좀 과장됐던 것인가? 아무리 오랑이 녀석이라지만 저건 너무 순하지 않은가?’

제갈참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오? 딱 봐도 혈통 좋은 전서구구나!”

마빈이 호기심에 연오랑의 팔에 앉은 비둘기에게 손을 뻗던 순간.

푹!

비둘기가 부리로 마빈의 손등을 냅다 찍어 버렸다.

“악!”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는 마빈.

그런 마빈의 손등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푸드덕!

번개처럼 솟구친 비둘기가 마빈의 머리통과 얼굴을 마구 쪼아대기 시작했다.

“으악! 뭐, 뭐야! 이 미친 전서구! 으악! 사, 살려 줘! 그만해! 그만하라고! 으아아아악!”

마빈은 비둘기의 공격에 이렇다 할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저 멀리 골목길로 달아나 버렸다.

그만큼 비둘기의 공격이 매섭고, 또 무시무시하게 빨랐던 것이다.

“구구구구!!!”

마빈을 쫓아낸 비둘기가 화가 난다는 듯 씩씩거렸다.

“어허.”

연오랑이 비둘기에게 눈을 부라렸다.

“얌전히 굴어야지.”

“꾸륵?”

“잘했어.”

연오랑이 비둘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절을 지켜야지. 암, 그렇고말고. 막 헤프게 아무나 쓰다듬게 허락하지 말란 말야.”

“구구구!”

“근데.”

연오랑이 덧붙였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래도 되는데, 나한테까지 그러면 뒈진다. 알겠지.”

뭘 그래도 돼!

“꾸, 꾸륵?!”

“반항하면 튀겨먹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참고로, 나 치킨 좋아한다. 참고하라고.”

“구구구구!”

비둘기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맙소사.’

제갈참은 연오랑이 저 사나운 비둘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길들여버린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영물[靈物]은 주인을 알아본다더니.

흉악하기로 소문난 이 전서구가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난 모양이었다.

“허허.”

제갈참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으며, 연오랑에게 권했다.

“그놈이 네 녀석을 주인으로 인정한 것 같으니 이름이나 지어주려무나.”

“그거 아니죠.”

“음?”

“제깟 놈이 뭐라고 저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말고 합니까? 제가 거두면 거두는 거지. 헤헤헤.”

“…….”

“이름이라. 뭐로 하지.”

연오랑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꼬꼬라고 부르죠, 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거 비둘기라고! 비둘기!

닭 아니고!

* * *

동용이네 패거리는 다른 교관들에 의해 황궁으로 끌려 들어갔다.

먼저 시비를 걸고, 비겁하게 암습을 가한 걸 목격한 증인들이 있어 빼도 박도 못 하고 중징계를 받을 예정이란다.

어쩌면 동창 교육생 신분을 박탈당하고 일반 환관으로 강등당할 수도 있다나?

그 전에 치료부터 받아야겠지만.

“나름 괜찮은데?”

객잔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오늘을 하루를 정산(?)해 보았다.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하여간 선배들은 맛집이라니까. 경험치를 막 퍼주네.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동용이네 패거리들이 내공까지 써가면서 덤벼준 바람에 경험치를 꽤 많이 먹었고, 덕분에 1레벨이 추가로 올랐다.

내공을 안 쓰고 비무했을 때는 어느 순간부터 경험치가 안 올랐다.

근데, 내공까지 써가면서 패싸움을 벌이니까 경험치가 쭉쭉 올랐다.

아마 비무와 실전의 차이겠지?

“역시 무림 서버는 결투 위주라는 건가.”

확실히, 판타지 서버와 무림 서버는 결이 달랐다.

무림 서버는 극한의 결투를 강조하다 보니, 시스템적으로 결투를 통해서 얻는 경험치가 몹을 때려잡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고레벨 몹들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선배들이 시비를 걸어준 덕분에 49레벨을 찍었다.

이제 1레벨만 찍으면 스킬 체계가 해금되고, 메인 퀘스트가 생성되겠지.

이거 예상한 것보다 1주일은 더 빨리 황궁을 떠나겠는데?

그건 그렇고.

‘비둘기가 통신 수단이라니.’

꼬꼬 녀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녀석은 새장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비둘기인데, 나름 영물이라는 게 신기하다.

[꼬꼬]

타입 : NPC

종족 : 비둘기

성별 : 수컷

직업 : 전서구

나이 : 3

레벨 : 49

등급 : 중수

특징 : 매우 사나운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내 주인에게는 따뜻할지도?

엄청나게 영리한 녀석이며,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 세계의 전서구들은 일반 비둘기와는 격이 달랐다.

[알고 계셨나요?]

이 세계의 전서구들은 봉황의 혈통을 이어받은 영물로서, 한 번 주인을 각인하면 불사(不死)의 존재가 되어 끊임없이 부활합니다.

전서구들은 주인이 사망―NPC의 경우―하거나 천인이 이 세계를 떠나면 부활 능력을 잃고 생을 마감하는 진정한 반려동물입니다!

옛 문헌에 의하면, 아주 소수의 전서구들이 봉황의 피를 각성해 진정한 영물로 거듭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참고 : 전서구들은 순간이동이 가능하며,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잠깐.

‘어떤 미친 봉황이 비둘기랑 응응을 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봉황이라면 영물 중에서도 최상급 영물이라, 사실상 판타지 서버의 드래곤이랑 비슷한 급 아닌가?

절레절레.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래 봤자 나만 피곤해지지.

‘확실히 두 세계가 차이점이 크네.’

판타지 서버는 통신 마법, 텔레포트, 워프 등이 있어 이동이 자유롭고 통신도 매우 빨랐다.

하지만 무림 서버는 통신도 전서구 위주고, 워프 게이트 같은 것도 거의 없단다.

대신에 개개인의 전투력만큼은 같은 레벨의 판타지 서버 캐릭터보다 최소 20퍼센트 이상 뛰어나다.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야, 햄찌야.”

“뀨?”

“카렐은 지금 어디 있을까?”

문득 녀석이 생각나 물었다.

녀석은 알까.

내가 자길 데려가기 위해 부캐까지 파 가면서 다른 서버로 왔다는 걸.

“뀨우? 아무래도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서 호강하고 잘 살고 있지 않겠냐? 뀨?”

“그런가?”

“뀨! 그렇다! 카렐 전생에 좋은 일 엄청 많이 했다! 뀨우! 최후도 숭고한 희생 아니었냐! 뀨! 이번 생엔 복 받았을 거다! 뀨우우!”

“하긴.”

햄찌 녀석의 말에 십분 동의할 수 있었다.

암, 그래야지.

잘 살고 있어야지.

“아무튼, 오늘은 이만 자자.”

“뀨! 주인놈 자라! 햄찌도 잔다!”

“그래, 내일 보자.”

햄찌에게 인사를 해주고, 로그아웃했다.

* * *

다음 날 오후.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온 것이냐?”

로그인하자마자 제갈참 아저씨가 날 갈궜다.

“일이 좀 있었습니다. 헤헤헤.”

“일찍 일찍 다니도록 해라. 선배들이 네 녀석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냐.”

저도 일상이란 게 있거든요?

누굴 사이버 망령으로 알아!

“오늘 뭐 있나요? 그냥 황도 구경하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미친왕 전하의 배가 장강을 통해 황도로 들어올 예정이다. 동창제독 각하께서 특별히 3년 차 교육생들도 그 배에 탈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아?”

“건이, 빈이, 석이, 근이는 네 녀석을 기다리다가 먼저 갔다. 네 녀석은 늦어서 그 배에 탈 수가 없게 되었다.”

“야호!”

오히려 좋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오히려 잘됐단 표정이로구나?”

“에이~ 설마요~ 아쉬워서 그렇죠~ 아쉬워서~”

“그럼 지금이라도 보내주랴?”

“아. 가, 갑자기 배가. 윽. 아픕니다. 으윽.”

“속 보이는 소리 말고, 따라오너라.”

“정말 늦게라도 가는 겁니까?”

“아니다.”

“그럼 어디 갑니까?”

“명색이 중양절인데 우리도 뱃놀이라도 해야지 않겠느냐?”

“정말요?”

“자그마한 나룻배를 하나 섭외해놓았으니, 따라오너라.”

“예-이이이~!”

저잣거리에서 국화주 한 병과 이런저런 안줏거리들을 사서 장강에 배를 띄웠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장관이 펼쳐졌다.

맑은 밤하늘.

불야성을 이룬 남경의 불빛이 장강 물결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

펑펑! 펑펑펑! 펑!

펑펑펑! 펑! 펑펑!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피융!

펑!

반짝반짝!

황궁에서 쏘아 올린 불꽃놀이가 푸른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 와중에 별들을 마치 쏟아질 듯 빼곡하다.

도시 곳곳을 화려하게 장식한 노란 국화가 불빛을 받아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냄새도 좋다.

뿌연 화약연과 향긋한 국화꽃 내음.

그리고 장강물의 물 내음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한 층 더 끌어올렸다.

“한잔 받아라.”

“예, 교관님.”

졸졸졸.

제갈참 아저씨가 국화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교관님도 한잔 받으시죠.”

“그러려무나.”

가볍게 건배하고, 고개를 슬쩍 돌려 국화주를 목구멍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 조오타아!”

알싸한 알코올 향과 향긋한 국화꽃 향이 후각을 어지럽혔다.

“뀨! 햄찌도 한잔 줘라! 뀨우!”

“그래, 너도 한잔하자.”

햄찌 녀석.

그리고 제갈참 아저씨와 장강에 나룻배를 띄워놓고 즐기는 뱃놀이란 정말이지 즐거웠다.

그래, 이게 게임이지.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워야 게임인가?

이런 낭만도 있어야지.

“저기 미친왕 전하께서 오시는구나.”

제갈참 아저씨가 저 멀리 거대한 한 척의 배를 가리켰다.

국화로 배 전체를 장식해 놓은 그 배는, 마치 용처럼 꾸며져 있었다.

피융!

펑펑펑!

게다가 배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려서 그런지, 진짜 용이라도 한 마리 나타난 것 같다.

어둠이 아스라이 내려앉은 장강에 환한 붉을 밝히며 나타난 거대한 용이라니.

“이야. 진짜 멋있네요.”

“미친왕 전하께서 황제 폐하께 보여드리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행사라고 하더구나.”

“황제 폐하께서 엄청 좋아하시겠….”

스으으으!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취!”

흩날린 머리칼이 코끝을 간지럽혔는지, 재채기가 나왔다.

“뀨우? 킁킁! 킁킁킁!”

갑자기 햄찌 녀석이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며 코를 킁킁거렸다.

“뀨우? 주인놈아?”

“왜?”

“뭔가 이상하지 않냐? 뀨?”

“뭐가.”

“대자연의 기운이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뀨우!”

“대자연의 기운?”

“뀨! 그렇다! 뭔가 인위적인 힘이 대자연의 기운을 간섭하는 느낌이다! 뀨우!”

“잠깐만.”

정신을 집중해 주변의 기 흐름을 느껴보았다.

찌릿찌릿!

뭔가 느껴졌다.

“어?”

이거, 심상치 않다.

대자인의 기운이 미친왕이 타고 있는 배 주변으로 마치 소용돌이치듯이 몰려드는 중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눈으로도 어렴풋이나마 기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휘이이이이이!

고오오오오오!

대자연의 기가 마치 태풍의 핵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설마.

“이거 수상한데.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질 것….”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미친왕이 탄 배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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