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30화 (30/115)

제30화.

“못 본 사이 아주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곽말풍이 오래간만에 만난 연오랑을 보고 뿌듯하단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널 동창에 추천하길 잘했다! 안타깝구나! 거세를 받지만 않았어도 내 너를 우리 금의위로 데려갔을 것을!”

“…….”

“그래도 고작 3개월 사이에 이리 훌륭하게 성장했으니 대만족이다! 내 안 그래도 네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부들부들…!!!

연오랑은 곽말풍의 말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개구멍으로 도망치던 연오랑을 붙잡은 사람도 곽말풍.

내상을 입혀 죽게 만든 사람도 곽말풍.

그냥 죽고 다른 부활 지점에서 부활해서 도망치려던 걸 꾸역꾸역 살려낸 사람도 곽말풍.

동창에 추천한 사람도 곽말풍.

심지어 왜구는 무슨 맛(?)인가 맛 좀 보려고 했더니, 그걸 또 방해한 사람도 곽말풍.

“야 이….”

연오랑의 입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치 없는 새끼야! 너만 아니었어도 고자 안 됐어! 네가 살리는 바람에 잘린 거잖아!!!”

곽말풍은 연오랑이 퍼부어 댄 욕설을 듣지 못했다.

우르릉!

쾅!

하필 천둥이 치는 바람에, 연오랑의 목소리가 묻혀 버린 탓이었다.

“연오랑이라고 했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곧 황제 폐하의 군대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

“내 너를 지켜주마!”

하지만 곽말풍에게는 연오랑을 지켜줄 여유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퓩! 퓩! 퓩! 퓩!

어디선가 수리검들이 날아와 곽말풍을 덮쳤다.

‘닌자는 또 뭔데!!!’

연오랑은 어느새 갑판 위로 기어 올라온 닌자들이 곽말풍을 향해 수리검을 날리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검은 전투복에 복면.

그리고 등 뒤에 찬 닌자도(忍者刀)까지.

‘야마토의 습격인 건가? 이번 공격은?’

무림 서버에서는 일본을 모티브로 한 섬나라를 <야마토>라 불렀다.

“어딜 왜놈들이! 황제 폐하를 대신해 네놈들을 모조리 부숴 주마!”

곽말풍이 덤벼드는 닌자들을 향해 버럭 소리치며 무공을 전개했다.

뒤이어 금의위 위사와 닌자가 싸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래, 넌 닌자들이랑 놀아라. 눈치 없는 자식아.’

연오랑은 곽말풍에게 닌자들을 맡겨두고, 계속해서 선배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몸으로라도 막아내라!”

저 멀리 함교―배의 관제탑 같은 시설물―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야! 햄찌야! 그만하고 가자!”

연오랑이 햄찌를 향해 소리쳤다.

퍽!

퍼억!

몸을 곰처럼 거대화시킨 햄찌는, 그 큼지막한 앞발로 달려드는 왜구들을 마구잡이로 후려치고 있었다.

“뀨! 알겠다!”

거대해진 덩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햄찌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갑판이 쿵쿵! 울렸다.

“저기다! 빨리 가자!”

“뀨!”

연오랑은 함교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 선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발견하고, 즉시 그곳을 향해 내달렸다.

* * *

함교로 향하는 길목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야말로 치열했다.

“미친왕 전하를 보호하라!”

“절대 뚫려선 안 된다!”

“어떻게든 막아내라!”

함교로 대피한 미친왕은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요원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적들은 방어선을 뚫어내기 위해 함교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 병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였다.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요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면서, 방어선이 뚫리고 말았던 것이다.

“꺼져라, 황제의 개들아.”

흑룡채주 윤중악이 금의위 위사들을 베어 넘기며 버럭 소리쳤다.

[윤중악]

타입 : NPC

종족 : 인간

성별 : 남

나이 : 53

레벨 : 211

등급 : 절정고수

소속 : 흑룡채

직위 : 흑룡채주

직업 : 도적 (해적)

신분 : 범죄자

특징 : 과거 장강을 주름잡던 열여덟 개 수적 집단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 중 하나인 흑룡채의 우두머리.

지금은 장강에서 쫓겨나 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흑룡채주 윤중악.

그리고 그를 따르는 흑룡채의 일류고수들은, 기어코 방어선을 뚫고 미친왕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미친왕의 남은 호위 병력은 고작 네 명.

그것도 금의위 위사나 동창 요원이 아닌, 고작 동창에서 수련 중인 3년 차 교육생들이었다.

“잔챙이들은 꺼져라.”

윤중악이 동창 교육생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크악!”

“윽!”

“으아악!”

“악!”

모용건, 마빈, 윤석, 왕근은 윤중악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속절없이 튕겨져 나갔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절정고수인 윤중악을 감당해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흑룡채의 복수를 가로막는 놈들에게 자비 따윈 없을 것이다.”

윤중악이 쓰러진 모용건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그때.

채앵!

연오랑이 윤중악의 검을 쳐냈다.

‘어느 틈에?’

놀란 윤중악.

“오, 오랑아!”

모용건이 연오랑의 등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는 것이냐! 너는 분명….”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연오랑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배님들은 미친왕 전하 잘 보필하십쇼. 으으으.”

연오랑이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주르륵.

도를 움켜쥔 손아귀 틈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윤중악의 검을 쳐내면서 전해진 충격으로 인해 손아귀가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거 하나 막았다고 손아귀가 찢어진다고? 에라이.’

레벨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단 한 번의 충돌에 이 정도 충격이 전해져 오다니.

지금 연오랑의 레벨이 49.

반면에 윤중악의 레벨은 211.

레벨 차이가 무려 162다.

싸움이 성립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격차였다.

‘그래도 햄찌 녀석이랑 같이 싸우면 몇 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연오랑은 그런 생각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감히.”

윤중악이 으르렁거렸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 윤중악의 앞을 가로막는가!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윤중악이 연오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온다!”

“뀨!”

연오랑은 햄찌와 함께 윤중악에 맞섰다.

챙! 채앵!

콰앙!

싸움은 성립하지 않았다.

“크, 크윽!”

겨우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해.’

만약 햄찌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1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허어! 이젠 서생원까지! 네놈들 따위가 나 윤중악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윤중악은 연오랑과 햄찌가 생각보다 잘 버텨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황제의 둘째 아들인 미친왕을 잡을 수 있는데, 웬 새파랗게 어린놈과 서생원에게 발목을 잡히다니.

“사지를 토막 내 주마!”

내공을 더 끌어올린 윤중악이 연오랑과 햄찌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이를 악물고 윤중악을 막아내던 중.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전투 중에도 경험치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윤중악은 레벨이 무려 162나 높은 상대.

그런 강자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경험치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대로라면 곧 각성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 레벨만 오르면 좀 더 버틸 수 있다.’

50레벨을 찍는다 한들 161레벨이라는 격차가 좁혀질 리 없었다.

그러나 49레벨의 연오랑과 50레벨의 연오랑은 달랐다.

스킬 체계가 해금되기만 하면.

디버프 마스터의 스킬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지원군이 올 때까지는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버틸 수 있다. 레벨업만 하면 된다.’

연오랑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그리고 판타지 서버에서부터 계승된 스킬 체계의 위력을.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던 도중.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50레벨 달성!]

[알림: 전직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디버프 마스터>로 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알림: 스킬 체계가 해금되었습니다!]

비로소 되찾았다.

판타지 서버의 창조주를 무찔렀던 그 힘을.

* * *

어느새 도착한 황군(皇軍)들이 갑판 위로 올라오며 적들을 전투에 합류했다.

“적들을 모조리 섬멸하라!”

“대명제국의 황군이여!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역적의 무리들을 처단하라!”

제아무리 기습적으로 벌어진 공격이라지만, 대명제국의 황군이 그저 손 놓고 바라볼 리 없었다.

덕분에 갑판 위에서 벌어진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오랑아!”

한편, 몰려드는 적들을 처치하던 제갈참은 연오랑이 윤중악과 맞서 싸우고 있는 걸 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그 뒤에는 3년 차 교육생들인 모용건, 마빈, 윤석, 그리고 왕근이 미친왕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제갈참은 몰려드는 적들을 쳐내며, 함교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제갈 교관!”

곽말풍이 그런 제갈참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싸움이 급하오! 함께 가십시다! 미친왕 전하께서 위험하시오!”

“알고 있소! 그러니 빨리 가십시오!”

제갈참과 곽말풍이 나란히 갑판 위를 내달렸다.

“함교! 함교다! 미친왕 전하께서 함교에 계신다!”

“모두 이쪽으로! 함교부터 방어하라!”

대명제국의 병력이 미친왕이 있는 함교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50레벨을 찍자 모든 게 달라졌다.

[알림: <소녀공> 심법이 삭제되었습니다!]

[알림: <우주근원진기> 심법을 습득했습니다!]

[알림: <소녀공> 심법을 통해 쌓은 내공이 <우주근원진기>로 바뀌었습니다!]

우우우웅!!!

하단전―마나홀―에서부터 뻗어 나온 우주근원진기가 혈도를 타고 내달려 온몸에 웅혼한 기운을 꽉꽉 채워 주었다.

차원이 달랐다.

소녀공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라면 우주근원진기는 전 우주를 가득 채우는 의지의 힘!

달라진 건 내공뿐만이 아니었다.

[알림: <강타>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알림: <저주지체>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알림: <허공섭물>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포식대법>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스킬들이 아니다.

[알림: <필멸무참진>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알림: <쇠약자멸진>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알림: <속력금쇄진>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디버프 마스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스킬.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스킬 세 가지가 동시에 해금되었다.

적의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을 깎는 필멸무참진.

생명력을 서서히 깎아 먹는 쇠약자멸진.

그리고 공격속도, 이동속도, 캐스팅속도를 느려지게 만드는 속력금쇄진까지.

‘됐어.’

자신감이 차올랐….

[알림: 우주의 법칙이 당신을 싫어합니다!]

으응?

갑자기?

[알림: 우주의 법칙은 당신이 가진 힘이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알림: 당신은 우주의 법칙으로부터 미움받는 존재입니다!]

[알림: 우주의 법칙이 당신을 견제하기로 했습니다!]

[알림: 우주의 법칙이 각성 기념으로 당신에게 <천벌>을 내립니다!]

뭐?

각성 기념으로 천벌을 내려?

[알림: 3초 후 벼락이 떨어집니다!]

어어?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알림: 3!]

[알림: 2!]

[알림: 1!]

번쩍!

하늘 저 높은 곳에서 하얀 섬광이 빗발쳤다.

…이런 씨발!

“으아악!”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이 빌어먹을 쥐새ㄲ….”

콰앙!

벼락이 덤벼들던 흑룡채주 윤중악의 정수리에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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