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31화 (31/115)

제31화.

졸지에 벼락을 맞아 버린 윤중악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서도 안 됐다.

새카맣게 탄 숯덩이가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일어나.

무슨 좀비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윤중악의 시체를 보고 있노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우주의 법칙이 날 노리고 떨군 벼락을 지가 왜 대신 맞고 뒈져?

아, 맞다.

내가 몸을 날렸지.

하필 윤중악이 타이밍 좋게 나한테 덤벼들었다가 대신 벼락을 맞은 거고.

쯧쯧.

운도 지지리 없는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대신 맞냐?

[알림: 주의하십시오!]

[알림: 우주의 법칙이 1주일에 1번씩 당신에게 <천벌>을 내릴 예정입니다!]

[알림: 다음 <천벌>까지 앞으로 168시간 59분 55초!]

야 이!

1주일에 1번씩 벼락을 내리치겠다고?

“미친 우주의 법칙 개새끼야! 이게 말이 되냐! 1주일에 1번씩 벼락을 떨구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럴 거면 차라리 죽여라! 그냥 죽이지 왜에에에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악다구니를 내지르는데.

번쩍번쩍!

시커먼 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뜩였다.

…설마 날 노린 건 아니겠지?

괜히 지랄했다가 벼락이 더 떨어질 거 같아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젠 하다 하다 우주의 법칙한테 정기적으로 벼락까지 맞는구나.

[알림: 우주의 법칙이 당신에게 <제약>을 가합니다!]

이건 또 뭔데.

[알림: 디버프 계열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알림: 디버프 계열 스킬들의 내용 소모가 증가했습니다!]

얼씨구.

[알림: 디버프 계열 스킬들의 사용 횟수가 제한되었습니다!]

[알림: 이제부터 디버프 계열 스킬들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알림: 앞으로 디버프 계열 스킬을 한 번에 하나씩 신중하게 사용하십시오!]

[알림: 억울하면 강해지십시오!]

[알림: 레벨이 오를수록 우주의 법칙이 가하는 제약이 약해집니다!]

이쯤 되면 겜 접으라는 거지?

다른 게임 같았으면 운영자들이 의도적으로 괴롭힌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BNW는 운영자가 개입할 수 없는 게임.

이건 시스템이, 이 거대한 가상현실세계를 구축한 인공지능이 날 견제한단 뜻이었다.

‘이 우주의 법칙이 네 녀석에게 온갖 페널티를 가할 테니, 숱한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될 게다. 운도 더럽게 안 따라줄 테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게 될 게다.’

사부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니까.

좀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레벨이 오르면 제약이 약해진다니까.’

그건 불행 중 다행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강해지고 만다, 내가.

시스템 말마따나 억울하면 강해져야지, 뭐.

별수 있나.

“…으응?”

고개를 돌려보니 햄찌 녀석도 상서로운 빛에 휘감겨 있었다.

“…너도 각성이냐.”

내가 각성했으니, 내 반려 쥐새끼인 햄찌 놈이 각성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스으으으!

마침내 각성을 끝낸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근데 너 복장이 그게 뭐냐?

“뀨! 주인놈아! 햄찌도 힘 개방됐다! 뀨우!”

“그 옷 뭐냐?”

“뀨우?”

“왜 도사들이나 입는 옷을 입고 있어?”

“뀨! 햄찌 이제 술법가 됐다! 뀨우!”

“뭐?”

“햄찌 대정령이다! 뀨! 햄찌도 이 세계에서 힘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 뀨우!”

“그, 그래서?”

“뀨! 그래서 앞으로는 부적에 햄찌 힘 담아서 쓴다! 뀨우! 햄찌 부적 쓰는 술법가다! 뀨우!”

녀석이 품속에서 누런 괴황지들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어?

그동안 부적 만든답시고 낙서나 하던 게 이거였어?

“진짜 부적이었다고? 낙서 아니라?”

“캬아아악! 주인놈 햄찌 뭐로 보냐! 캬아악! 햄찌 진짜 부적 만든 거다! 캬아아악!”

“미, 미안.”

그럼 이제 술법쥐새끼인 건가?

하하하….

그때.

“이런 개새끼가!”

“채주님을 죽이다니!”

“복수하겠다!”

정신을 차린 윤중악의 부하들이 피 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내가 죽이긴 뭘 죽여! 내가 안 죽였어! 지가 덤비다가 벼락 처맞은 거 가지고 왜 나한테 지랄들이야!”

이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가지고 대가리 깨져 죽은 거랑 뭐가 달라?

“뀨! 가라 주인 놈아!”

햄찌가 소리쳤다.

“주인 놈아! 너로 정했다! 뀨우!”

“뭐 인마?”

참자, 참아.

지금은 전투 중이니까.

* * *

운 좋게 윤중악을 처리하긴 했지만,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게 운이 좋았던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직 적들은 많았다.

윤중악의 부하들은 대부분 이류고수 이상으로, 100레벨은 가뿐히 넘었다.

이제 갓 50레벨을 찍은 우리보다 더 강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안 불리한 싸움을 해 본 기억이 몇 없었다.

항상 더 강한 적들과 싸워 왔고, 결국 다 이겼다.

그게 나와 햄찌가 걸어온 길이다.

“뀨! 주인놈아! 햄찌가 힘준다! 뀨우!”

햄찌가 쳇바퀴가 그려진 부적을 손가락에 끼우고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뀨!”

공간이 일그러지며 커다란 쳇바퀴가 나타났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저거.

[응원의 쳇바퀴]

설명 : 햄찌가 소환해낸 마법의 쳇바퀴.

정령계의 마법과 기술력을 이용해 만들어진 쳇바퀴이다.

효과 : 모든 능력치 +10%

참고 1 : 햄찌가 쳇바퀴를 빠르게 굴릴수록 버프가 강화됩니다.

참고 2 : 햄찌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버프의 기본 효과가 강화됩니다.

“뀨! 주인 놈아! 햄찌 쳇바퀴 굴린다! 뀨우!”

“그래!”

녀석이 열심히 쳇바퀴를 굴렸다.

드르르르르르르르!

파직! 파지직!

바퀴가 맹렬히 회전하면서, 쳇바퀴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우웅!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알림: 햄찌가 <힘내라 힘! 힘내라 힘!> 기술을 사용해 당신을 응원합니다!]

[알림: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했습니다!]

버프 좋고.

“채주님의 복수다!”

때마침 윤중악의 부하 하나가 검을 휘둘러왔다.

우우웅!

손에 쥔 도가 은은하게 진동하며 맑은 울림을 토해냈다.

촤락!

도를 힘껏 휘둘렀다.

콰앙!

내 도와 윤중악 부하의 검이 맞부딪히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쨍그랑!

윤중악 부하의 검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갔다.

그래!

이게 강타지!

스킬 위력을 눈으로 확인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광대가 하늘로 승천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강타]

설명 : 무기나 손·발에 기를 압축시켜 적을 타격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재사용 대기시간이 감소하고, 데미지는 상승합니다.

피해량 : 공격력의 350%

레벨 : 1

재사용 대기시간 : 90초

무려 공격력의 350%.

윤중악의 부하가 가진 평범한 검 따위,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이, 이 무슨!”

무기를 잃은 윤중악의 부하가 당황하는 사이.

빡!

선풍각으로 놈의 옆통수를 걷어찼다.

목이 꺾인 놈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쯧쯧.

그러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거봐.

목 부러져서 즉사하잖아.

“다, 당황하지 마라! 놈은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하다!”

“미친왕을 납치할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

“쳐라!”

윤중악의 부하들이 재차 덤벼들었다.

이제 강타는 재사용 대기시간 동안 봉인이다.

그렇다면…….

우웅!

속력금쇄진을 펼쳤다.

스으으!

날 중심으로 바닥에 푸른 진(陣)이 형성됐다.

“이, 이게 무슨!”

“왜 갑자기 느려… 지는… 크윽!”

윤중악의 부하들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속력금쇄진]

설명 : 적들의 이동속도, 공격속도, 캐스팅속도를 느리게 만듭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재사용 대기시간이 감소하고, 지속시간이 늘어나며, 범위가 넓어집니다.

한번 펼친 속력금쇄진은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형태 : 설치형

범위 : 반경 5미터

효과 : 이동속도·공격속도·캐스팅속도 -10%

레벨 : 1

지속시간 : 60초

재사용 대기시간 : 120초

느려진 적들은 그야말로 허점투성이였다.

촤락! 촤라라락!

적들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도를 휘둘렀다.

“……!”

“……!”

“……!”

내게 일격을 허용한 윤중악의 부하들이 불현듯 우뚝 멈춰 섰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쭈.

버틴다 이거지.

쿵!

발로 갑판을 한번 세게 내리찍었다.

털썩! 털썩! 털썩!

버티고 서 있던 윤중악의 부하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사술이냐!”

놀란 윤중악의 부하가 버럭 소리쳤다.

어?

저 대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 주제에!”

“얄팍한 재주로 어딜!”

윤중악의 부하들은 으르렁거리면서도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푸른 장판.

명백히 속력금쇄진을 의식하는 움직임이다.

“들어와.”

윤중악의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명백히, 저들은 나보다 강하다.

하지만 속력금쇄진 위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여기는 함교로 향하는 좁은 길목.

지형적으로도 내가 유리하다.

왜?

속력금쇄진이 이 좁은 길목을 다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한계는 있다.

[알림: <속력금쇄진>의 지속시간이 28초 남았습니다!]

[알림: <힘내라 힘! 힘내라 힘!>의 지속시간이 15초 남았습니다!]

속력금쇄진과 햄찌의 버프가 곧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나와 햄찌 녀석의 역할은 여기까지.

“오랑아!”

“괜찮으냐!”

제갈참 교관님과 눈치 없는 자식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수십여 명의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요원들이 뒤따랐다.

‘끝났다.’

이로써 상황은 종료다.

…어쩌면?

* * *

“크악!”

“으아아악!”

윤중악의 부하들은,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요원들의 손에 금방 정리되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옵니까!”

“전하를 모셔라! 어서!”

우르르 몰려온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요원들은 당연히 미친왕부터 챙겼다.

미친왕은 함교 구석에서 눈과 귀를 막은 채 웅크리고 있다가, 상황이 정리되자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어휴.

저 겁쟁이 같으니.

황제 둘째 아들 맞아?

“오랑이 이 녀석! 괜찮은 것이냐!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제갈참 교관님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당연히 멀쩡하죠. 다치긴 어딜 다칩니까. 귀하신 몸인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내가 무사하단 걸 확인한 교관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건아! 빈아! 석아! 근아! 너희들은 괜찮은 것이냐!”

교관님은 내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선배님들을 향해 달려갔다.

“야 햄찌야.”

“뀨?”

“주변 좀 살펴봐.”

“뀨우?”

“아직 안 끝났잖아.”

쏴아아아아!

폭우는 여전했고.

촤아아아아!

거센 파도도 여전히 사나웠다.

“조작된 날씨가 여전하잖아.”

“뀨! 무슨 말인지 알겠다! 기다려라! 뀨우!”

햄찌 녀석이 내 말뜻을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급급여율령! 뀨우!”

미어캣처럼 몸을 세운 녀석이 코를 벌름벌름 귀는 쫑긋쫑긋 주변을 탐지했다.

[알림: 햄찌가 <미어~ 캣!> 기술을 사용해 주변을 탐지합니다!]

햄찌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정보들이 내게 공유되었다.

“뀨! 저기다!”

햄찌가 하늘 위를 가리켰다.

“저기 커다란 새 있다! 뀨우!”

“나도 보여.”

햄찌를 통해 전해진 정보들 덕분에, 나 역시 구름 뒤에 숨은 커다란 새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웬 새?

날씨를 조작하는 능력을 지닌 영물인 건가?

“어?”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다.

‘엄청나게 많다.’

거의 수십여 척에 달하는 쾌속선들이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군이 아니었다는 것.

‘적!’

느껴진다.

명백한 적의와 살기가.

“아직 안 끝ㄴ….”

소리치려던 찰나.

“깔깔깔깔깔!”

날카롭고 요사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멍청한 황제의 개들아! 깔깔깔깔! 이대로 끝날 줄 알았느냐! 연회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니라! 깔깔깔깔깔!”

누렇고 커다란 학을 탄 늙은 도사가 구름을 뚫고 나타나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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