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제갈참 교관님이 호주머니를 털어서 용돈을 좀 주시긴 했지만, 금액이 영 시원찮은 게 사실이었다.
금액이 적다고 실망한 건 절, 대, 로 아니다.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없는 월급에 내 용돈까지 챙겨주신 제갈참 교관님의 그 따뜻한 마음은 결코 잊지 않을 거다.
절대로.
‘이 새끼 봐라.’
잘생긴 가면 뒤에 숨겨진 그 추악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저 자식을 잡아다가 관아에 넘기면 무려 은자가 1,000냥이나…….
“뀨! 주인놈아! 뭐 맛있는 거 먹을 생각이라도 하는 거냐! 뀨우!”
“으응?”
“왜 혀를 날름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냐! 뀨우!”
“아.”
저 색귀 놈을 잡아다가 관아에 넘길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모양이다.
하긴.
은자 1,000냥이면 입맛 다실 만하지.
하악!
맛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잖아?
“맛있는 거 먹을 생각? 하지, 하고 있지.”
“뀨?”
“잠깐 이리 와 봐.”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색귀 놈을 지켜보면서, 은근슬쩍 햄찌를 끌어당겼다.
“그게 그러니까….”
“뀨우? 그게 진짜냐? 정말 ㅅ….”
“야 이.”
황급히 햄찌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안 해? 남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뀨우. 알겠다.”
“조용히 따라와. 알겠지.”
“뀨. 알겠다.”
햄찌 놈을 데리고 근처 으슥한 골목길에 숨어 색귀 놈을 지켜보았다.
‘쟤 잡아서 현상금 타고, 그 돈으로 호북성까지 가야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도약문 탈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정말 잘 됐다.
‘아직 좀 여유 있으니까.’
<카렐을 찾아서 퀘스트>의 남은 시간이 15일.
저 색귀 놈을 잡는 데 하루 이틀이면 될 테니까 시간도 넉넉하다.
도약문을 타면 호북성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잖아?
놈을 지켜보면서, 심안으로 놈에 대해 알아보았다.
[색귀]
타입 : NPC
종족 : 인간
성별 : 남성
나이 : 56
레벨 : 110
등급 : 이류
신분 : 흉악범
소속 : 없음
직업 : 성범죄자 / 연쇄살인범
특징 : 안휘성을 주무대로 20년이 넘게 활동해온 성범죄자이자 연쇄살인범.
뭇 여성들을 습격해 성폭행과 살인을 일삼아온 흉악범이다.
살인을 저지를 때 가위를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끔은 일부러 피해자들을 살려 두는 악취미를 지니고 있는 천하의 개쌍놈이다.
획득 가능 아이템 : 방천가위 / 상급 인피면구 (男)
‘이 쓰레기 새끼.’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저런 흉악범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부들부들…!!!
너무 화가 나서 손발이 벌벌 떨린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획득 가능 아이템이 뭔지 알아볼 생각조차 안 난다.
“뀨. 주인놈아. 왜 그러냐.”
“저 새끼가 어떤 새끼냐면.”
흐뭇한 표정으로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놈을 노려보면서, 햄찌에게 색귀 놈에 대해 말해 줬다.
“캬아아악! 저 새끼가 사람이냐! 캬아아악!”
“조용히 해! 너까지 화내면 어떡해!”
“캬아아아악!”
괜히 말해줬나?
길길이 날뛰는 햄찌 놈을 간신히 뜯어말렸다.
“캬아악! 주인놈아! 뭐 하냐! 당장 저 새끼 패 죽여야 하는 거 아니냐! 캬아아악!”
“나도 그러고 싶은데.”
누군 안 그러고 싶겠냐?
이주 굴뚝같지.
“경쟁자들이 많잖아.”
게시판 주변에 퀘스트를 받으려는 게이머들이 득실거렸다.
“여기서 저 새끼를 덮쳤다가 우리가 못 잡으면 어떡해?”
“뀨우?”
“우리 아직 약하거든?”
냉정히 말해서 저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색귀 놈을 검거할 자신이 없… 긴 왜 없어!!!
있지!!!
그래도 굳이 긁어 부스럼 말들 필요는 없잖아?
“우리끼리 조용히 처리해야 덜 피곤해지지. 안 그러냐? 괜히 저놈 가지고 쟁탈전이라도 벌어지면 이래저래 곤란해지잖아.”
“뀨. 그건 그렇다.”
햄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 패 주는 것도 좋지만 현상금은 우리 거다. 뀨.”
“바로 그거지.”
그때.
“움직인다.”
색귀가 게시판을 뒤로하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자기 현상금이 올라간 걸 보고 흐뭇해하는 거겠지. 이 새끼. 즐기고 있네.’
매번 수배 명단에 올라가면서도 20년 넘게 안 잡혔으니, 그럴 만도 하시겠지.
관군들을 비웃으면서?
그래, 마음껏 즐겨라.
그것도 하루 이틀밖에 안 남았을 테니까.
* * *
색귀는 안휘성의 성도(省都)인 합비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저러니까 안 잡혔지.’
조용히 색귀의 뒤를 밟다 보니 놈이 왜 안 잡혔는지 알게 됐다.
‘얼굴을 두 번이나 바꾸네. 몇 번이나 바꿀 수 있는 거야?’
색귀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얼굴을 바꾸고, 옷도 갈아입고 나왔다.
아주 그냥 카멜레온이야???
[상급 인피면구 (男)]
설명 : 인간 남성의 얼굴 가죽을 재료로, 술법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가면.
매우 정교할뿐더러, 술법이 가미되어 있어 진짜 얼굴과 구별이 불가능하다.
분류 : 가면 (인피면구)
등급 :
내구도 : 66 / 100
사용제한 : 남성 전용
레벨제한 : 50레벨 이상
특징 : 총 5가지 얼굴을 구현할 수 있다.
- 귀공자
- 농민
- 상인
- 거지
- 동네 바보
심안을 통해 알아보니 색귀가 쓰고 다니는 <상급 인피면구 (男)>가 총 5가지 얼굴을 구현할 수 있어서, 그간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범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모양.
‘저러고 돌아다니면서 표적을 찾아다니다가 습격할 때만 되면 본래 얼굴을 드러내나 보네.’
그렇단 말은 일상생활마저 가짜 얼굴로 하고 있단 뜻이겠지. 진짜 얼굴이 수배됐으니까.
생각보다 더 교활한 놈이다.
진짜 얼굴을 범행에 쓸 생각을 다 하고.
그럼 평소 주변 사람들도 가짜 얼굴로 대한다는 건가?
에이, 설마.
가족도 있는 건 아니겠….
“헉!”
재빨리 햄찌의 뒷덜미를 끌어당기며 골목길로 숨었다.
“뀨우? 주인놈아 갑자기 왜 그러냐?”
“쟤가 뒤돌아봐서.”
“뀨?”
“휴. 들킬 뻔했네.”
반응속도가 빨라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들킬 뻔했다.
어쩌면 이미 들켰을지도?
‘근데 왜 뒤돌아본 거야?’
갑자기 홱! 하고 뒤돌아볼 이유가 없을 텐데.
‘범죄자의 동물적 본능이라는 건가?’
‘평소에 하도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니까 제 발 저려서 그런 걸지도.’
어쩌면 습관일 수도 있고.
‘조심, 또 조심.’
아까운 1,000냥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
하여간 눈치 빠른 놈들은 딱 질색이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한 2시간쯤?
계속 놈을 뒤쫓는 데 문제가 생겼다.
“뀨! 주인놈아! 왜 안 쫓아가냐! 뀨우! 이러다 놓치겠다! 뀨!”
색귀와의 거리가 멀어지자 햄찌가 재촉했다.
“저놈 놓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뀨우!”
“더 못 쫓아가.”
“뀨?”
“생각 좀 해라, 생각 좀.”
“캬아악! 지금 햄찌 무시하냐! 캬아아악!”
“너 지금 우리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아냐?”
“뀨우?”
“웬 잘생긴 청년 하나가 커다란 쥐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데 안 이상해? 심지어 머리 위에는 비둘기가 올라타 있는데?”
“뀨우우?”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적잖아.”
성도인 합비를 벗어나니까 유동인구와 건물 개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인파에 섞여 은근슬쩍 놈의 뒤를 밟는 게 불가능하단 얘기다.
게다가 저 멀리 오솔길이 보이는 걸 보니, 이대로 놈을 뒤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대놓고 쫓아가면 몰라도.
‘그냥 냅다 쫓아가서 확 덮칠까?’
시간도 아낄 겸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곧 마음을 접었다.
‘아니지. 렙 차가 얼만데. 방심하고 있을 때 덮쳐서 조져야 돼.’
지금 내 레벨이 53.
색귀의 레벨은 110.
렙 차가 무려 57이다.
아무리 디버프로 색귀를 약하게 만든다 해도 기본 스펙 차이가 심해서 쉽게 제압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이긴다 해도 고전하겠지?
색귀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일이 더 피곤해질 테고?
‘어떻게 몰래 뒤쫓을 방법 없나… 개 한 마리 있으면 딱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뀨! 주인놈아! 햄찌한테 좋은 방법 있다! 뀨우!”
햄찌 놈이 나섰다.
* * *
“응? 너 냄새도 맡을 줄 알았냐?”
“캬아아악! 햄찌가 무슨 멍멍이냐! 캬아악! 햄찌가 냄새를 왜 맡냐! 캬아아아악!”
아, 미안.
개 생각하고 있어 가지고.
“꼬꼬 시켜서 색귀 놈 뒤쫓게 해라! 뀨우!”
“으응? 꼬꼬?”
꼬꼬 놈은 감히 주인인 내 머리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비둘기 주제에 침 흘리지 마!
“꼬꼬 시켜서 뒤쫓으면! 뀨우! 햄찌가 술법 써서 꼬꼬랑 시야 공유하면 된다! 뀨우! 그럼 저 새끼 절대 도망 못 간다! 뀨우!”
“그런 방법이 있었어?”
오호라?
이제 좀 쓸 만한 쥐새끼인걸?
“뀨! 햄찌한테 맡겨라! 뀨우!”
“그래. 해 봐.”
속는 셈 치고 햄찌 놈에게 색귀의 추적을 맡겨 보기로 했다.
“뀨우! 꼬꼬 일어나라! 뀨! 햄찌가 부탁할 거 있다! 뀨우!”
“꾸륵?”
“햄찌랑 교감하자! 뀨우!”
“구! 구구구!”
“급급여율령! 뀨!”
햄찌 놈이 부적 두 장을 꺼내 수인을 맺었다.
화르륵!
부적이 불타 사라지고.
스으으!
햄찌와 꼬꼬의 두 눈이 같은 파란색으로 빛났다.
오?
뭔가 되는 거 같은데?
“뀨! 꼬꼬! 놈을 뒤쫓아라! 뀨우!”
“구! 구구구!”
꼬꼬가 푸드덕! 하고 날아오르더니 하늘 높은 곳에서 색귀를 감시하고 뒤쫓았다.
“뭐 좀 보이냐?”
“뀨우! 꼬꼬가 보는 거 햄찌한테도 보인다! 뀨우!”
“그으래?”
“뀨! 그렇다! 햄찌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뀨우!”
봤지.
많이 봤지.
아주 입만 열면 구라가 자동으로 나ㅇ….
“그러엄! 우리 햄찌 거짓말 안 하지! 암! 그렇고말고!”
“주인놈….”
“으응?”
“지금 햄찌 구라쟁이라고 비꼬는 거냐? 캬아악?”
헉?
“아, 아니? 내가 언제!”
오리발부터 내밀고 보자.
“캬아악! 가식 떨지 마라! 캬아아악! 얼굴에 다 써 있다! 캬아아아아악!”
“아니라니까?”
“캬아아악! 구라 치지 마라! 캬아아악! 햄찌 다 안다! 캬아아악! 햄찌 바보 아니다! 캬아악!”
에라이.
안 속네.
“주인놈 자꾸 햄찌 무시하면 가만 안 둔다! 캬아아아악!”
“미, 미안.”
더 잡아뗐다간 녀석이 미쳐 날뛸 것 같아서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하여간.
난 눈치 빠른 녀석들이 싫다니까?
* * *
꼬꼬에게 색귀를 뒤쫓게 하고 햄찌와 느긋하게 움직였다.
“너 근데 뭐 하냐?”
“뀨우?”
“뭐 하냐고.”
“보면 모르냐! 뀨! 햄찌 책 읽는다! 뀨우!”
“웬일이냐? 니가 책도 다 읽고.”
안 어울리게 안경까지 쓰고?
“뀨! 그 요망한 늙은이가 가지고 있던 책이다! 뀨우!”
“태평요술서?”
“그렇다! 뀨우!”
잠깐.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니 남화요선한테서 뺏은 술법책이 안 보였다.
이 도둑놈 쥐새끼!
언제 훔쳐 간 거야!
“그거 니가 읽을 수나 있는 거냐?”
“캬아악! 지금 햄찌 무시하냐? 캬아아악?”
“그게 아니라.”
“뀨?”
“너 아직 그 책 못 다룰 텐데?”
태평요술서는 250레벨 이상 술법가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햄찌 놈이 못 다룬다는 내 말이 맞다.
이번엔 무시한 거 아니라고!
“뀨! 그런 의미였냐! 뀨우! 햄찌는 주인놈이 또 햄찌 무시하는 줄 알았다! 뀨우!”
“아니라니까.”
“알겠다! 뀨우! 햄찌 아직 이 술법 못 쓴다! 근데 읽을 수는 있다! 뀨우!”
아?
술법쥐새끼라서 읽을 수 있는 건가?
나한테는 동파육 레시피로 보이던데.
“햄찌 이 술법책 공부한다! 뀨우! 미리 예습해서 강해지면 써먹을 거다! 뀨우!”
“그래, 그래.”
어차피 무인인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햄찌 놈이 가지고 놀든 말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 3시간 정도 더 걸었을 무렵이었다.
“뀨! 주인놈아!”
“으응?”
“색귀 놈이 집에 들어갔다! 뀨우!”
“그래?”
“주인놈한테 보여 준다! 뀨우! 급급여율령! 뀨우!”
햄찌가 술법을 부려서 꼬꼬로부터 공유받던 시야를 내게 공유해주었다.
어디 보자.
색귀 놈이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어라?
“이 X새끼 뭐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왜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