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36화 (36/115)

제36화.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제갈참 교관님이 호주머니를 털어서 용돈을 좀 주시긴 했지만, 금액이 영 시원찮은 게 사실이었다.

금액이 적다고 실망한 건 절, 대, 로 아니다.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없는 월급에 내 용돈까지 챙겨주신 제갈참 교관님의 그 따뜻한 마음은 결코 잊지 않을 거다.

절대로.

‘이 새끼 봐라.’

잘생긴 가면 뒤에 숨겨진 그 추악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저 자식을 잡아다가 관아에 넘기면 무려 은자가 1,000냥이나…….

“뀨! 주인놈아! 뭐 맛있는 거 먹을 생각이라도 하는 거냐! 뀨우!”

“으응?”

“왜 혀를 날름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냐! 뀨우!”

“아.”

저 색귀 놈을 잡아다가 관아에 넘길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모양이다.

하긴.

은자 1,000냥이면 입맛 다실 만하지.

하악!

맛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잖아?

“맛있는 거 먹을 생각? 하지, 하고 있지.”

“뀨?”

“잠깐 이리 와 봐.”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색귀 놈을 지켜보면서, 은근슬쩍 햄찌를 끌어당겼다.

“그게 그러니까….”

“뀨우? 그게 진짜냐? 정말 ㅅ….”

“야 이.”

황급히 햄찌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안 해? 남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뀨우. 알겠다.”

“조용히 따라와. 알겠지.”

“뀨. 알겠다.”

햄찌 놈을 데리고 근처 으슥한 골목길에 숨어 색귀 놈을 지켜보았다.

‘쟤 잡아서 현상금 타고, 그 돈으로 호북성까지 가야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도약문 탈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정말 잘 됐다.

‘아직 좀 여유 있으니까.’

<카렐을 찾아서 퀘스트>의 남은 시간이 15일.

저 색귀 놈을 잡는 데 하루 이틀이면 될 테니까 시간도 넉넉하다.

도약문을 타면 호북성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잖아?

놈을 지켜보면서, 심안으로 놈에 대해 알아보았다.

[색귀]

타입 : NPC

종족 : 인간

성별 : 남성

나이 : 56

레벨 : 110

등급 : 이류

신분 : 흉악범

소속 : 없음

직업 : 성범죄자 / 연쇄살인범

특징 : 안휘성을 주무대로 20년이 넘게 활동해온 성범죄자이자 연쇄살인범.

뭇 여성들을 습격해 성폭행과 살인을 일삼아온 흉악범이다.

살인을 저지를 때 가위를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끔은 일부러 피해자들을 살려 두는 악취미를 지니고 있는 천하의 개쌍놈이다.

획득 가능 아이템 : 방천가위 / 상급 인피면구 (男)

‘이 쓰레기 새끼.’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저런 흉악범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부들부들…!!!

너무 화가 나서 손발이 벌벌 떨린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획득 가능 아이템이 뭔지 알아볼 생각조차 안 난다.

“뀨. 주인놈아. 왜 그러냐.”

“저 새끼가 어떤 새끼냐면.”

흐뭇한 표정으로 게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놈을 노려보면서, 햄찌에게 색귀 놈에 대해 말해 줬다.

“캬아아악! 저 새끼가 사람이냐! 캬아아악!”

“조용히 해! 너까지 화내면 어떡해!”

“캬아아아악!”

괜히 말해줬나?

길길이 날뛰는 햄찌 놈을 간신히 뜯어말렸다.

“캬아악! 주인놈아! 뭐 하냐! 당장 저 새끼 패 죽여야 하는 거 아니냐! 캬아아악!”

“나도 그러고 싶은데.”

누군 안 그러고 싶겠냐?

이주 굴뚝같지.

“경쟁자들이 많잖아.”

게시판 주변에 퀘스트를 받으려는 게이머들이 득실거렸다.

“여기서 저 새끼를 덮쳤다가 우리가 못 잡으면 어떡해?”

“뀨우?”

“우리 아직 약하거든?”

냉정히 말해서 저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색귀 놈을 검거할 자신이 없… 긴 왜 없어!!!

있지!!!

그래도 굳이 긁어 부스럼 말들 필요는 없잖아?

“우리끼리 조용히 처리해야 덜 피곤해지지. 안 그러냐? 괜히 저놈 가지고 쟁탈전이라도 벌어지면 이래저래 곤란해지잖아.”

“뀨. 그건 그렇다.”

햄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 패 주는 것도 좋지만 현상금은 우리 거다. 뀨.”

“바로 그거지.”

그때.

“움직인다.”

색귀가 게시판을 뒤로하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자기 현상금이 올라간 걸 보고 흐뭇해하는 거겠지. 이 새끼. 즐기고 있네.’

매번 수배 명단에 올라가면서도 20년 넘게 안 잡혔으니, 그럴 만도 하시겠지.

관군들을 비웃으면서?

그래, 마음껏 즐겨라.

그것도 하루 이틀밖에 안 남았을 테니까.

* * *

색귀는 안휘성의 성도(省都)인 합비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저러니까 안 잡혔지.’

조용히 색귀의 뒤를 밟다 보니 놈이 왜 안 잡혔는지 알게 됐다.

‘얼굴을 두 번이나 바꾸네. 몇 번이나 바꿀 수 있는 거야?’

색귀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얼굴을 바꾸고, 옷도 갈아입고 나왔다.

아주 그냥 카멜레온이야???

[상급 인피면구 (男)]

설명 : 인간 남성의 얼굴 가죽을 재료로, 술법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가면.

매우 정교할뿐더러, 술법이 가미되어 있어 진짜 얼굴과 구별이 불가능하다.

분류 : 가면 (인피면구)

등급 :

내구도 : 66 / 100

사용제한 : 남성 전용

레벨제한 : 50레벨 이상

특징 : 총 5가지 얼굴을 구현할 수 있다.

- 귀공자

- 농민

- 상인

- 거지

- 동네 바보

심안을 통해 알아보니 색귀가 쓰고 다니는 <상급 인피면구 (男)>가 총 5가지 얼굴을 구현할 수 있어서, 그간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범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모양.

‘저러고 돌아다니면서 표적을 찾아다니다가 습격할 때만 되면 본래 얼굴을 드러내나 보네.’

그렇단 말은 일상생활마저 가짜 얼굴로 하고 있단 뜻이겠지. 진짜 얼굴이 수배됐으니까.

생각보다 더 교활한 놈이다.

진짜 얼굴을 범행에 쓸 생각을 다 하고.

그럼 평소 주변 사람들도 가짜 얼굴로 대한다는 건가?

에이, 설마.

가족도 있는 건 아니겠….

“헉!”

재빨리 햄찌의 뒷덜미를 끌어당기며 골목길로 숨었다.

“뀨우? 주인놈아 갑자기 왜 그러냐?”

“쟤가 뒤돌아봐서.”

“뀨?”

“휴. 들킬 뻔했네.”

반응속도가 빨라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들킬 뻔했다.

어쩌면 이미 들켰을지도?

‘근데 왜 뒤돌아본 거야?’

갑자기 홱! 하고 뒤돌아볼 이유가 없을 텐데.

‘범죄자의 동물적 본능이라는 건가?’

‘평소에 하도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니까 제 발 저려서 그런 걸지도.’

어쩌면 습관일 수도 있고.

‘조심, 또 조심.’

아까운 1,000냥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

하여간 눈치 빠른 놈들은 딱 질색이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한 2시간쯤?

계속 놈을 뒤쫓는 데 문제가 생겼다.

“뀨! 주인놈아! 왜 안 쫓아가냐! 뀨우! 이러다 놓치겠다! 뀨!”

색귀와의 거리가 멀어지자 햄찌가 재촉했다.

“저놈 놓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뀨우!”

“더 못 쫓아가.”

“뀨?”

“생각 좀 해라, 생각 좀.”

“캬아악! 지금 햄찌 무시하냐! 캬아아악!”

“너 지금 우리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아냐?”

“뀨우?”

“웬 잘생긴 청년 하나가 커다란 쥐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데 안 이상해? 심지어 머리 위에는 비둘기가 올라타 있는데?”

“뀨우우?”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적잖아.”

성도인 합비를 벗어나니까 유동인구와 건물 개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인파에 섞여 은근슬쩍 놈의 뒤를 밟는 게 불가능하단 얘기다.

게다가 저 멀리 오솔길이 보이는 걸 보니, 이대로 놈을 뒤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대놓고 쫓아가면 몰라도.

‘그냥 냅다 쫓아가서 확 덮칠까?’

시간도 아낄 겸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곧 마음을 접었다.

‘아니지. 렙 차가 얼만데. 방심하고 있을 때 덮쳐서 조져야 돼.’

지금 내 레벨이 53.

색귀의 레벨은 110.

렙 차가 무려 57이다.

아무리 디버프로 색귀를 약하게 만든다 해도 기본 스펙 차이가 심해서 쉽게 제압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이긴다 해도 고전하겠지?

색귀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일이 더 피곤해질 테고?

‘어떻게 몰래 뒤쫓을 방법 없나… 개 한 마리 있으면 딱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뀨! 주인놈아! 햄찌한테 좋은 방법 있다! 뀨우!”

햄찌 놈이 나섰다.

* * *

“응? 너 냄새도 맡을 줄 알았냐?”

“캬아아악! 햄찌가 무슨 멍멍이냐! 캬아악! 햄찌가 냄새를 왜 맡냐! 캬아아아악!”

아, 미안.

개 생각하고 있어 가지고.

“꼬꼬 시켜서 색귀 놈 뒤쫓게 해라! 뀨우!”

“으응? 꼬꼬?”

꼬꼬 놈은 감히 주인인 내 머리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비둘기 주제에 침 흘리지 마!

“꼬꼬 시켜서 뒤쫓으면! 뀨우! 햄찌가 술법 써서 꼬꼬랑 시야 공유하면 된다! 뀨우! 그럼 저 새끼 절대 도망 못 간다! 뀨우!”

“그런 방법이 있었어?”

오호라?

이제 좀 쓸 만한 쥐새끼인걸?

“뀨! 햄찌한테 맡겨라! 뀨우!”

“그래. 해 봐.”

속는 셈 치고 햄찌 놈에게 색귀의 추적을 맡겨 보기로 했다.

“뀨우! 꼬꼬 일어나라! 뀨! 햄찌가 부탁할 거 있다! 뀨우!”

“꾸륵?”

“햄찌랑 교감하자! 뀨우!”

“구! 구구구!”

“급급여율령! 뀨!”

햄찌 놈이 부적 두 장을 꺼내 수인을 맺었다.

화르륵!

부적이 불타 사라지고.

스으으!

햄찌와 꼬꼬의 두 눈이 같은 파란색으로 빛났다.

오?

뭔가 되는 거 같은데?

“뀨! 꼬꼬! 놈을 뒤쫓아라! 뀨우!”

“구! 구구구!”

꼬꼬가 푸드덕! 하고 날아오르더니 하늘 높은 곳에서 색귀를 감시하고 뒤쫓았다.

“뭐 좀 보이냐?”

“뀨우! 꼬꼬가 보는 거 햄찌한테도 보인다! 뀨우!”

“그으래?”

“뀨! 그렇다! 햄찌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뀨우!”

봤지.

많이 봤지.

아주 입만 열면 구라가 자동으로 나ㅇ….

“그러엄! 우리 햄찌 거짓말 안 하지! 암! 그렇고말고!”

“주인놈….”

“으응?”

“지금 햄찌 구라쟁이라고 비꼬는 거냐? 캬아악?”

헉?

“아, 아니? 내가 언제!”

오리발부터 내밀고 보자.

“캬아악! 가식 떨지 마라! 캬아아악! 얼굴에 다 써 있다! 캬아아아아악!”

“아니라니까?”

“캬아아악! 구라 치지 마라! 캬아아악! 햄찌 다 안다! 캬아아악! 햄찌 바보 아니다! 캬아악!”

에라이.

안 속네.

“주인놈 자꾸 햄찌 무시하면 가만 안 둔다! 캬아아아악!”

“미, 미안.”

더 잡아뗐다간 녀석이 미쳐 날뛸 것 같아서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하여간.

난 눈치 빠른 녀석들이 싫다니까?

* * *

꼬꼬에게 색귀를 뒤쫓게 하고 햄찌와 느긋하게 움직였다.

“너 근데 뭐 하냐?”

“뀨우?”

“뭐 하냐고.”

“보면 모르냐! 뀨! 햄찌 책 읽는다! 뀨우!”

“웬일이냐? 니가 책도 다 읽고.”

안 어울리게 안경까지 쓰고?

“뀨! 그 요망한 늙은이가 가지고 있던 책이다! 뀨우!”

“태평요술서?”

“그렇다! 뀨우!”

잠깐.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니 남화요선한테서 뺏은 술법책이 안 보였다.

이 도둑놈 쥐새끼!

언제 훔쳐 간 거야!

“그거 니가 읽을 수나 있는 거냐?”

“캬아악! 지금 햄찌 무시하냐? 캬아아악?”

“그게 아니라.”

“뀨?”

“너 아직 그 책 못 다룰 텐데?”

태평요술서는 250레벨 이상 술법가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햄찌 놈이 못 다룬다는 내 말이 맞다.

이번엔 무시한 거 아니라고!

“뀨! 그런 의미였냐! 뀨우! 햄찌는 주인놈이 또 햄찌 무시하는 줄 알았다! 뀨우!”

“아니라니까.”

“알겠다! 뀨우! 햄찌 아직 이 술법 못 쓴다! 근데 읽을 수는 있다! 뀨우!”

아?

술법쥐새끼라서 읽을 수 있는 건가?

나한테는 동파육 레시피로 보이던데.

“햄찌 이 술법책 공부한다! 뀨우! 미리 예습해서 강해지면 써먹을 거다! 뀨우!”

“그래, 그래.”

어차피 무인인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햄찌 놈이 가지고 놀든 말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 3시간 정도 더 걸었을 무렵이었다.

“뀨! 주인놈아!”

“으응?”

“색귀 놈이 집에 들어갔다! 뀨우!”

“그래?”

“주인놈한테 보여 준다! 뀨우! 급급여율령! 뀨우!”

햄찌가 술법을 부려서 꼬꼬로부터 공유받던 시야를 내게 공유해주었다.

어디 보자.

색귀 놈이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어라?

“이 X새끼 뭐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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