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41화 (41/115)

제41화.

동창제독 견쌍섭은 대명제국 첩보기관의 수장.

그런 만큼 드넓은 중원 대륙에 그녀의 눈과 귀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갈참 딴에는 혼란을 틈타 연오랑을 몰래 놓아준다고 놓아준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간파당했던 모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동창제독의 그림자들이 은밀하게 연오랑의 뒤를 쫓고 있을 확률이 컸다.

‘동창제독 각하의 아량은 참으로 넓구나.’

제갈참은 견쌍섭이 서찰을 보낸 것에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 제갈참이 연오랑을 놓아준 걸 알고 있고.

둘째, 그럼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거였다.

게다가 견쌍섭은 연오랑에게 규화보전의 비급을 수정해 달라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부여한 상태.

그런데도 제갈참에게 징계를 가하거나 따로 불러들이지 않고 연오랑의 소식만을 전했다는 것은, 그 아량을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창제독 각하께서는 오랑이 녀석을 믿고 계시는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당장 연오랑을 잡아들이지 않을 리 없을 터.

‘그래도 역대 동창제독 중에서는 가장 온화하신 분이시다.’

제갈참은 새삼스레 견쌍섭의 아량에 감탄했다.

역대 동창제독들은 정보기관의 수장답게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이 대부분이었고, 평소 성격 또한 매우 잔혹하고 표독스러웠다고 알려져 있었다.

환관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첩보·암살·미행 등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다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역대 동창제독들은 유능함과는 별개로 성격에 문제가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견쌍섭은 그런 동창제독의 고정관념을 깨기라도 하듯 매사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으며, 때론 냉혹한 정보기관의 수정답지 않게 온화한 일처리를 보여 주곤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호구란 뜻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내가 동창제독 각하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물론 제갈참은 연오랑을 놓아준 걸 후회하지 않았다.

제갈참이 생각하기에, 연오랑은 대명제국의 황실조차 담아낼 수 있는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라서, 억지로 잡아 두어 봤자 역효과만 나타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기에, 차라리 황궁에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녀석이 제대로 사고를 친다면 무슨 사고를 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으니까.

“오랑이 녀석.”

제갈참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내가 잘못 가르치진 않았구나. 강호로 나가자마자 색마를 잡아 협의를 바로 세우다니. 기특한 녀석.”

제갈참의 바람은 연오랑이 마두가 아닌 협객이 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연오랑이 제갈참의 바람대로 협객으로서 협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제갈참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 * *

관아에서 현상금을 탄 다음 색귀 놈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사실을 말해 줬다.

아내는 오히려 화를 냈지만, 색귀가 쓰던 인피면구를 보여 주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털썩! 주저앉더니 흐느껴 울었다.

불쌍해서 은자 100냥을 아내에게 건네주고, 곧 관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지금 당장 야반도주하라고 일러준 뒤 색귀의 집을 뒤로했다.

어휴.

처자식은 무슨 죄야.

어쨌거나 도리를 다한 셈이니까,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 이상 뭘 어떻게 해 줘?

합비로 가서 도약문에 올라탔다.

쨍그랑!

마법진… 이 아니라!

술법진 위에 은자를 떨구니 우웅! 하고 도약문이 발동하며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캬.

역시 돈이 좋긴 좋아.

이렇게 편리한 이동수단도 돈 걱정 없이 탈 수 있고.

대명제국 호북성.

무한(武汉).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려 주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알림: 주의하십시오!]

응?

[알림: 현재 무한에 심한 고뿔인 <신형관상병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알림: 역병 방어용 복면을 써서 신형관상병독으로부터 나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십시오!]

[알림: 신형관상병독에 걸리면 캐릭터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심한 고뿔?

고뿔이면 감기란 뜻 아닌가?

신형관상병독은 또 뭐고.

한자는 너무 어려워.

[알고 계셨나요?]

신형관상병독(新型冠状病毒)이란 현재 호북성 무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독감의 정식 명칭입니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니 NPC건 게이머건 할 것 없이 다들 복면 같은 걸로 코와 입을 가리고 다닌다.

마스크 대용으로 쓰는 건가?

그거 KF-94 맞아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잠깐.

이거 이상한데.

왠지 익숙해.

어디서 본 풍경 같아.

어디서 봤더라….

어?

호북성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후베이 성 아니었나?

무한은… 우한이고?

후베이 성 우한에서 유행하는 심한 독감이라면…….

“…….”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그래, 그랬지.

이 게임… 어딘가 나사 빠진 게임이었지.

“뀨! 주인놈아! 독감 유행하나 보다! 뀨우!”

어느새 냉큼 마스크를 쓴 햄찌가 내게 물었다.

미친놈아! 너 대정령이잖아!

니가 독감에 왜 걸려!

“구! 구구구!”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꼬꼬 놈도 부리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얘는 전서구 주제에 마스크를 어디서 구한 거야?

“마스크? 써야지.”

남들 다 쓰고 다니는데 나만 안 쓸 수도 없고.

어디 마스크 파는 데 없나…….

“쌉니다! 싸요! 역병 방어용 복면이 쌉니다!”

저기 있네.

때마침 도약문 근처 가판에서 장사꾼이 마스크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마스크… 아니. 복면 좀 볼게요.”

“예! 소협!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 골라 보시지요! 저희 복면은 촘촘한 원단에 각종 약재를 발라놔서 역병 방어에 아주 탁월합니다요!”

“이걸로 주세요.”

“예, 소협.”

대충 동전 몇 닢을 내고 검은색 복면 하나를 샀다.

[알림: <역병 방어용 복면>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킁킁.

원단에 각종 약재를 발라 놨다더니, 한약 냄새가 진동한다.

으.

한약 싫은데.

내가 이렇게 된 게 어렸을 때 한약 잘못 먹고… 아닌가?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그랬었나?

아무튼.

“뀨! 주인놈아! 천기자는 어디 가서 찾냐! 뀨우!”

“나라고 그걸 알겠냐.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야지.”

무슨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힌트라도 좀 주던가.

“뀨! 주인놈아!”

“응?”

“근데 마스크 왜 썼냐! 뀨우!”

“역병 안 걸리려면 써야지.”

“뀨! 주인놈은 안 써도 되지 않냐! 뀨우!”

“그, 그런가?”

생각해 보니 괜히 사서 썼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공.

즉, 마나나 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면 역병 같은 거에 면역이었던 거 아니었어?

“뀨! 주인놈아! 주인놈은 독감 같은 거 안 걸린다! 뀨우!”

“맞아. 그런 거 같기도 해. 굳이 쓸 필요 없….”

“원래 바보는 독감 같은 거 안 걸린다! 뀨우! 주인놈 바보니까 독감 안 걸린다! 뀨! 그래서 마스크 필요 없다! 뀨우우!”

“뭐 인마?”

어쩐지 오랜만에 그럴싸한 말을 하나 했다.

“뒤질래?”

“뀨우우우우우우우!”

“웃어?”

“주인놈은 바보다! 뀨! 주인놈 독감 안 걸린다! 뀨우!”

“이게 진짜!”

“뀨우우! 주인놈은 바보다! 뀨우! 마스크 필요 없다! 뀨!”

“너 뒤졌어!”

그래.

오늘이 날이다.

이 쥐새끼!

털 몽땅 뽑아 버릴 줄 알아!

* * *

햄찌와 한바탕하고 난 뒤에 무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천기자를 찾았다.

이 넓은 무한에서 천기자를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거다.

온종일 싸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들쑤셨는데, 천기자는커녕 비슷한 사람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첫날이니까.”

하루가 지나고.

“벌써 찾으면 재미없지.”

이틀이 지나고.

“오늘도 공쳤네.”

사흘이 지나고.

“내일은 찾겠지, 뭐.”

나흘이 지났다.

“슬슬 찾을 때 됐으니까.”

옛날부터 근성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나다.

중요한 NPC를 찾는데 며칠쯤 공치는 게 뭐가 대수라고.

닷새째 되던 날.

“이 미친 퀘스트!!! 찾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으아아아아악!!!”

등 따시고 배불러서 그런지 인내심의 한계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쩝.

옛날에는 한 달쯤은 허탕 쳐도 끄떡도 없었는데.

나도 늙었다는 건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고 인내심이 깊어진다더니, 다 뻥인 게 분명하다.

쒸익쒸익!

처음 무한에 도착한 날부터 내리 5일 동안 천기자를 찾아다녔는데!

그 시간에 렙업을 했으면 못해도 5레벨은 올렸겠다!

‘혹시 퀘스트 내용이 변했나?’

퀘스트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보니 딱히 달라진 건 없다.

‘흠. 계속 돌아다녀서 못 마주치는 건가.’

퀘스트에 따르면, 천기자는 사주팔자에 역마살이라도 끼어 있는 건지 정처 없이 강호를 떠도는 인물.

그래서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할지 모른단다.

‘설마 무한에 없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퀘스트에는 분명 무한 어딘가에 있다고 되어 있었으니까, 아직은 여기 있을 게 분명한데.

적어도 퀘스트는 거짓말을 안… 하기는 개뿔!

경험상 이 나사 빠진 게임은 퀘스트조차 이용자들 뒤통수치는 게 일상이다.

이따금 퀘스트가 변경되거나, 숨겨진 무언가가 드러나거나, 혹은 아예 사라지는 등 여러 변수가 발생하곤 한다.

물론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무니까,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은 계속 무한을 돌아다니면서 천기자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적어도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노력해 보고, 어떻게 할지는 그 뒤에 결정해도 될 거다.

모르긴 몰라도 제한시간이 끝나면 퀘스트 내용이 변경될 테니까, 그때 가서…….

띠링!

어?

[알림: <카렐을 찾아서>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뭔 생각을 못 하겠네.

알고리즘 같은 걸로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일단 퀘스트 내용부터 확인해보자.

[천기자를 구출하라!]

내용 : 천기자가 호북성 은시(恩施) 지역 어딘가에 붙잡혀 있는 천기자를 구출하라.

분류 : 서사 퀘스트

진행률 : 0% (0/1)

보상 : 없음

제한시간 : 3일

주의사항 : 서두르십시오! 3일 안에 천기자를 구출하지 못하면 영영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누굴 놀리나.”

어쩐지 닷새 동안 천기자를 찾아다녔는데 그림자도 구경 못 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

더욱 열이 받는 건 3일 안에 천기자를 찾지 못하면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거였다.

뭐 죽기라도 한다는 건가?

[알림: <천기자를 구출하라>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71시간 59분 52초 남았습니다!]

[알림: 71시간 59분 51초 남았습니다!]

[알림: 71시간 59분 50초 남았….]

“독촉하지 마!!!”

하도 어이가 없어 소리를 빽! 지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X뺑이 쳤더니!

갑자기 퀘스트 내용이 바뀌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지금 누구 놀려? 어?

이 빌어먹을 시스템!

부들부들…!!!

화가 나서 손발이 덜덜 떨렸다.

퀘스트에 뒤통수 처맞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뀨! 주인놈아! 무슨 일이냐!”

“천기자가 무한에 없다는데? 은시? 거기 있데. 지도를 보니까 호북성 서쪽 끄트머리 쪽이야.”

“뀨! 그럼 거기로 가는 거냐! 규우!”

“그래야지.”

“뀨! 알겠다! 그럼 햄찌가 태워 준다! 뀨우!”

“그래 고마ㅇ….”

으응?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추운 게 감기라도 걸린 것 같…….

[알림: 신형관상병독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오한>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 발열>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 근육통>에 걸렸습니다!]

[알림: 캐릭터의 몸 상태가 나빠집니다!]

[알림: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알림: 가까운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뒤 객잔으로 가 휴식을 취하십시오!]

왜???

[알림: <역병 방어용 복면> 아이템의 성능이 형편없어 신형관상병독 바이러스가 체내에 쉽게 침투했습니다!]

[알림: 다음부터는 저질 싸구려 복면 대신 의술협회에서 인증하고 정식으로 출시한 복면을 이용해 주십시오!]

[알림: 중원 대륙의 공산품 품질은 기대 이하의 저질인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X발 중국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