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적당히 해 미친놈들아!!!
이게 말이 돼?
어?
말이 되냐고!
뭔 게임 속에서 중국산 저질 싸구려 마스크를 사서 썼다가 캐릭터가 독감에 걸리냐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하여간 이놈의 게임.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쓸데없이 악랄해. AI 알고리즘 분석을 해서 갈아엎든지 해야 된다니까.’
게임 상태가 안 좋은 건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벌집 책임이 아니다.
게임 BNW는 AI 알고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고, 시스템이 이 모양인 건 모두 인공지능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임 속 세상에서 뭔 독감이 유행을 하고!
게임 캐릭터가 그 독감에 왜 걸려!
그리고 중국산 공산품들이 가짜가 판치고 대부분 저질이라는 고증은 왜 살리는 건데?
다른 고증은 깔끔하게 씹어 버리는 주제에!
하.
X발 진짜.
게임 캐릭터가 중국산 저질 짝퉁 저질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다가 독감에 걸렸단 하소연을 어딜 가서 하겠냐고.
“으. 으으으.”
확 치밀어 오른 짜증 때문에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뀨! 주인놈아! 왜 그러냐!”
“나….”
“뀨?”
“감기 걸린 거 같아.”
“뀨우우우우~?!”
햄찌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듯 화들짝 놀랐다.
“구, 구륵?!”
넌 뭔데 놀라는데!
네가 뭘 알아!
비둘기 주제에!
“주, 주인놈 진짜 독감 걸린 거냐! 뀨우!”
“어.”
“뀨우우! 말도 안 된다! 뀨!”
“말이 왜 안 돼!!!”
“뀨! 주인놈 바보다! 뀨우! 바보가 감기 걸리는 거 봤냐! 뀨! 바보는 감기 같은 거 안 걸린다! 뀨우!”
“이게 진ㅉ… 으윽!”
“뀨우?”
“화낼 힘도 없으니까 시비 걸지 마라. 으으으.”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힘이 없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몸은 무겁고.
으슬으슬 춥고.
슬슬 근육통까지 오는 것 같고.
목도 서서히 부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끄응.”
“뀨우? 주인놈아 진짜 아픈 거냐?”
“…걸렸다니까.”
“뀨우우우우우우우!”
햄찌가 저 멀리 호다닥 도망쳤다.
푸드덕!
머리 위에 앉아 있던 꼬꼬 놈도 화들짝 놀라서 햄찌를 향해 날아갔다.
“니들 뭐냐?”
“뀨! 주인놈 독감 걸렸다! 햄찌 아프기 싫다! 주인놈한테 독감 안 옮을 거다! 뀨우!”
“구! 구구구!”
X팔 진짜.
쥐새끼 한 마리만 해도 버거운데 비둘기 새끼까지 이러네.
아이고, 내 팔자야.
“뀨! 주인놈 바보 아니었냐! 뀨우!”
“구! 구구구!”
닥쳐, 이것들아.
대답할 힘도 없어.
으으.
뭐 이렇게 아파.
‘어떡하지?’
제한 시간은 단 3일.
그 안에 천기자를 찾아서 구해 줘야 하는데, 독감에 걸려 버렸으니 이거 진짜 큰일이다.
어어?
슬슬 눈앞이 빙빙 도는 게 어지럽기까지 하다.
[알림: 경고, 경고!]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발열이 심합니다!]
[알림: 현재 당신의 캐릭터 체온은 39.5도입니다!]
[알림: 서두르십시오!]
[알림: 체온을 내려야 합니다!]
[알림: 어서 빨리 의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탕약을 마셔야 합니다!]
나 지금 어지러워서 걷기도 힘들 것 같은데…?
[알림: 경고, 경고!]
[알림: 발열이 심해집니다!]
[알림: 당신의 체온이 올라갑니다!]
[알림: 40도!]
[알림: 40.1도!]
[알림: 40.2도!]
(중략)
[알림: 41.7도!]
야 이!!!
멋대로 폭주하지 마!!!
무슨 열이 초당 0.1도씩 오르는 게 말이 되냐고!!!
현실성 없어!!!
“해, 햄찌야. 나, 나 좀. 으윽.”
“뀨우?”
“어지러워서… 눈앞이….”
털썩.
어지러워서 몇 걸음 못 걷고 쓰러졌다.
“뀨! 주인놈아! 괜찮냐! 뀨우!”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소리쳤다.
“안 괜찮으니까 쓰러졌지… 괜찮으면 쓰러졌겠냐… 으윽.”
이 의리 없는 새끼들!
옮을까 봐 멀찍이 떨어져서 걱정해 주는 척하는 주제에 누가 모를 줄 알고!
“니들… 딱 두고 봐… 주인이 쓰러졌는ㄷ….”
눈앞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어?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림: 접속이 종료됩니다!]
[알림: 나중에 로그인해 주십시오!]
[알림: 다음 로그인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강제 로그아웃이 진행되어 접속이 끊어졌고,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 *
현실로 돌아온 직후.
“퀘를 깨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오.”
치밀어 오른 짜증에 거칠게 캡슐 뚜껑을 열어젖혔다.
“72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서 기절하면 어떡하라고.”
쒸익쒸익!
5일을 X뺑이 치고 3일의 제한시간을 건 걸로도 모자라서 캐릭터가 독감에 걸려 접속이 종료되다니.
이쯤 되면 온 우주가 나를 억까하는 거 아닌가…?
물론 무림 서버의 캐릭터 연오랑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견제를 받고 있는 중이고, 운이 없는 게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독감에 걸린 건 운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 딱히 억까 당했다고 생각하긴 좀 비약인 거 같다.
저잣거리 가판에서 가짜 저질 마스크를 사서 쓴 게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나.
“하여간 중국산이 문제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치밀어 올랐던 짜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죽지만 마라.’
게임 BNW는 사망 시 페널티가 큰 게임.
한 번 죽을 때마다 49시간 동안 접속이 불가능할뿐더러, 레벨이 하락하고 가진 아이템 중 랜덤한 아이템 1개를 떨구게 된다.
이렇게 보면 별로 큰 페널티 같지 않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쪼렙 때 이야기.
BNW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다음 레벨업까지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 200레벨쯤 넘어가면 레벨업이 거의 불가능해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고레벨 게이머들의 경우 한 번 죽을 때마다 최소 몇 개월에서 년 단위 이상의 경험치를 손해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레벨이 높으면 억 소리 나는 비싼 아이템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죽어서 그런 아이템이라도 떨구면…….
오싹!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즉, BNW의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체감되는 페널티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는 소리.
물론 연오랑 캐릭터는 아직 쪼렙이고, 가진 아이템도 얼마 없어서 크게 걱정은 안 된다.
문제는 시간.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72시간.
만약 캐릭터가 죽었다면 49시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으니, 최악의 경우 퀘스트 클리어에 주어진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는단 소리다.
그럼 본의 아니게 타임어택을 해야 할 텐데.
죽기야 하겠어?
설마.
‘애들이 그래도 구해 주겠지.’
일단은 햄찌와 꼬꼬를 믿기로 했다.
녀석들이 제때 의원에만 데려가 준다면 캐릭터의 사망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걔들이 그래도 의리는 있… 기는 개뿔. 어휴. 바랄 걸 바라야지. 앓느니 죽는다, 죽어.’
독감 걸린 주인놈이 쓰러졌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놈들한테 뭘 바래?
‘한숨 자고 일어나야겠다. 이따 로그인해서 밤샐 수도 있으니까.’
생각을 비우고 좀 쉬기로 했다.
“후, 후우. 후우.”
짧은 심호흡에 치밀어 올랐던 짜증과 퀘스트에 대한 걱정이 싹 날아갔다.
이건 내 장점인데, 나는 게임에서 얻은 스트레스나 분노를 아주 잘 다스릴 줄 안다.
바야흐로 가상현실게임이 보편화된 시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에 과몰입한 대가로 크고 작은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너무 잘 알았으면 알았지.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게임과 현실을 철저히 분리시켰다.
때로는 스포츠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정신적 스트레스와 게임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다스리곤 했고, 이제는 그쪽 방면에선 도가 텄다고 자부했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 몇 번 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에서 얻은 스트레스·분노·조급함 등 부정적인 감정들과 생각들을 훌훌 털어내는 게 가능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육체적 단련뿐 아니라 멘탈 트레이닝도…… 아 졸려.
일단 자자.
* * *
한숨 자고 일어나서 게임에 접속해 봤다.
[알림: 로딩 중….]
[알림: <무림> 서버에 접속하셨습니다!]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
다행스럽게도 접속이 되는 걸 보면 캐릭터가 죽은 건 아닌 모양.
“…여긴.”
접속하자마자 주변을 돌아보았다.
“일어났나?”
마스크… 가 아니라.
의료용 복면을 쓴 늙은 의원이 반겼다.
“다행이군. 금방 정신이 들어서.”
“의원입니까?”
“그렇다네.”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밤중에 웬 커다란 서생원이 전서구 한 마리와 함께 자네를 들쳐 업고 왔다네.”
이 자식들!
그래도 의리는 지켰구나!
돌아보니 햄찌와 꼬꼬가 내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으이구!
이 귀여운 놈들!
뺀질뺀질하긴 해도 할 땐 해 준다니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열이 그리 심한데 왜 빨리 의원을 찾아오지 않은 겐가.”
“하하….”
찾아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온 겁니다.
걸리자마자 열이 41.7도까지 치솟아서 기절했는데 의원에 어떻게 와요.
“자네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열이 너무 심하게 오르면 바보가 되거나 죽기도 하거든. 물론 자넨 천인이니 죽진 않을 테지만 말일세.”
“아, 예.”
“다행히 얼음물로 적신 수건으로 자네 몸을 닦아서 열을 내리고, 침술로 원기를 좀 북돋아 주었더니 급한 불은 껐네.”
“감사합니다.”
“다 나은 것이 아니니 한동안 푹 쉬면서 휴식을 취해야 할 걸세. 신형관상병독은 아주 독한 고뿔이라는 걸 잊지 말게.”
의원이 말이 맞다.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여전히 어지럽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으슬으슬 춥기도 하고.
상태창을 열어 보니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정도 일시적으로 하락해 있었다.
[알림: 주의하세요!]
[알림: 현재 신형관상병독에 걸려 <상태이상 : 탈진> 상태입니다!]
[알림: 무리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세요!]
“일단 들게.”
“뭡니까? 이건?”
“갈근탕(葛根湯)일세. 해열진통제 역할을 하는 탕약이니 쭉 들이켜게.”
“크으으으.”
어우.
쓰다, 써.
“한동안 푹 쉬어야 하네. 신형관상병독은 치료제가 없는 고뿔일세. 그저 증세를 완화해 주는 대증요법을 통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해 주는 방법밖에 없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게. 알겠는가.”
“그건 좀 곤란합니다.”
“음?”
“급히 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몸으로 누굴 구하겠다는 겐가?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천인 같은데, 아무리 천인이라도 신형관상병독에 걸린 채로 움직였다간 큰일을 치를 걸세.”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움직일 테니 방금 먹은 갈근탕인가 하는 탕약 좀 챙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값은 얼마든지 치르겠습니다.”
“허허. 거 고집하고는.”
의원이 혀를 내두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잠시 기다리게. 달여 놓은 갈근탕을 내올 터이니.”
“감사합니다.”
“하여간 자네 같은 천인들은 도통 말은 듣질 않는단 말이야. 제 몸 돌볼 줄도 모르고. 쯧쯧.”
몇 분 후.
[알림: <갈근탕>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갈근탕>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갈근탕>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의원이 준 갈근탕을 챙겨 길을 나섰다.
“뀨! 주인놈아! 괜찮겠냐!”
“시간 없으니까 힘들어도 일단 가야지. 부탁 좀 하자.”
“뀨! 알겠다!”
햄찌를 타고 황급히 은시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서두르는 이유는 하나.
‘제한시간이 언제 줄어들지 몰라. 최대한 빨리 가야 돼.’
경험상 게임 BNW의 퀘스트는 마치 살아 있는 듯 유동적이라서,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
주어진 제한시간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서, 퀘스트창만 믿고 여유를 부렸다간 큰코다치기 십상.
최악의 경우 갑자기 제한시간이 0이 되면서 영영 천기자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이 악물고 은시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살아 있어 주십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