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43화 (43/115)

제43화.

햄찌가 축지법을 써서 뭐 빠지게 달려 주는 동안 잠을 좀 더 자 두기로 했다.

[알림: 경고, 경고!]

[알림: 신형관상병독에 걸린 채로 이동하면 캐릭터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집니다!]

[알림: 휴식을 취하십시오!]

독감이 워낙 독하다 보니 햄찌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몸에 무리가 가는 모양이었다.

들썩들썩!

햄찌가 승차감이 썩 좋은 것도 아니라서 확실히 피곤하긴 하다.

우욱!

독감 때문에 어지러워서 그런지 토할 것 같아…….

“햄찌야. 나 좀 잘게.”

“헥헥! 알겠다! 주인놈 눈 좀 붙여라! 헥헥헥!”

“그래, 좀 부탁할게.”

잠들기 전에 몸 상태가 걱정돼서 갈근탕 한 병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알림: 체온이 조금 내렸습니다!]

[알림: 진통 효과가 적용됩니다!]

[알림: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약효가 지속될 동안 휴식을 취하세요!]

확실히 효과가 좀 있는 것 같다.

‘눈 좀 붙이자.’

자려고 노력했더니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

게임 BNW는 게이머가 캡슐 안에서 잠들어도 캐릭터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캐릭터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할 뿐이다.

로그아웃하면 캐릭터가 게임 속 세상에서 잠시 사라지고 가까운 부활 지점으로 이동돼서, 먼 거리를 이동할 때면 이런 방법을 쓰곤 한다.

하여간 쓸데없이 번거로운 게임이라니까.

* * *

햄찌가 밤이고 낮이고 내달려 준 덕분에 금방 은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뀨우우… 햄찌 도저히 더는 못 움직인다… 주인놈 먼저 가서 천기자 찾아라… 뀨우….”

“그래, 수고했어. 쉬고 있어.”

완전히 탈진해 버린 햄찌를 객잔에서 쉬게 하고, 꼬꼬와 함께 은서를 이 잡듯 뒤지며 천기자를 찾았다.

“천기자? 그런 이름은 못 들어봤소.”

“미안하지만 그런 사람은 모르오.”

아예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오가는 NPC들과 게이머들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누구도 천기자를 알거나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뀨우? 주인놈아! 또 공쳤냐! 뀨우!”

결국 천기자 찾기에 실패하고 객잔으로 돌아와 보니 햄찌가 만두, 오리탕, 통닭, 채소볶음, 마라탕, 전병 등등등 온갖 음식들을 상다리 부러지도록 시켜 놓고 한바탕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얼씨구?

죽엽청까지?

근데 왜 하필 죽엽청이야?

메뉴판 보니까 다른 술도 많던데.

그래도 죽엽청은 인정.

대한민국에 소주가 있다면 무협소설에는 죽엽청이지.

‘그게 다 들어가긴 하냐???’

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니냐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햄찌의 노고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많은 음식들이…… 들어가긴 하지.

먹성이 좀 좋아야지.

“쩝쩝! 주인놈아! 단서가 될 만한 거 없냐! 쩝쩝쩝!”

“없어.”

“쩝쩝! 그럼 어떡하냐! 쩝쩝!”

“되는 데까지 수소문해 봐야지. 별수 있냐.”

“쩝쩝! 알겠다! 쩝쩝쩝! 다 먹고 햄찌도 도와준다! 쩝쩝! 푹 자고 밥 많이 먹으면 기력도 돌아올 거다! 쩝쩝.”

“그래. 고생했으니까 많이 먹어.”

“쩝쩝. 주인놈은 왜 안 먹냐. 쩝쩝쩝.”

“입맛 없어. 너나 많이 먹어.”

먹으려면 먹을 수야 있겠지만 독감에 걸려서 그런지 영 입맛이 없다.

왠지 먹으면 토할 것 같기도 하고.

“구! 구구구!”

꼬꼬도 배가 고팠는지 은근슬쩍 탁자 위로 올라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통닭을 부리로 쪼아 먹기 시작했다.

어?

잠깐.

너… 그거… 먹어도 돼?

* * *

계속해서 찾았지만 도시에서는 천기자의 ㅊ자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예 인적이 드문 곳까지 나가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걸어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는데, 햄찌가 태워 준 덕분에 인적이 드문 곳까지도 둘러보며 천기자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노력한 결과는…….

띠링!

[알림: 제한시간이 앞으로 12시간 11분 22초 남았습니다!]

“찾으란 거야 말란 거야. 하.”

알림창이 떠오른 걸 보니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무작정 특정 지역을 뒤지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를 몸소 실천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남은 시간도 얼마 없고.

‘어떻게 하지?’

천기자를 찾겠답시고 아예 도시 밖으로 나와 산이고 들이고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더니 남은 시간이 고작 12시간이라니.

‘설마 실패하는 건가? 내가?’

벌써부터 자존심이 상하려고 한다.

천하의 한태성이 제한시간이 걸린 서사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한다?

‘…나도 퇴물 다 된 건가.’

억울하다.

‘무슨 단서가 주어져야 노력이라도 해 볼 거 아냐. 맨땅에 헤딩도 유분수지. 사람 이름이랑 지역만 덩그러니 던져 주고 구하라니. 이게 말이 되냐고. 심지어 제한시간까지 걸어 놓고.’

이런 조건이라면 깨는 게 말이 안 되긴 한다.

백번 양보해서 자존심 좀 상하더라도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한다고 치자.

제한시간이 다 돼서 천기자가 죽어 버리면 서사 퀘스트가 사라질 테고, 그럼 카렐을 찾을 단서도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었다.

‘아버님과 약속했는데. 꼭 찾아서 데려오기로.’

카렐의 아버지 베그만 백작님은 그날 이후 늘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신다.

아무리 NPC라 할지라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카렐은 스스로를 희생해 판타지 서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고결한 영웅.

그런 녀석을 찾는 걸 어떻게 포기해?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보자.”

“뀨! 알겠다!”

“구! 구구구!”

비록 클리어에 실패할 게 뻔하다 한들 최후의 1초까지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 볼 생각이다.

일단 시내로 돌아가서 마저 찾아볼 생각으로 다시 내달리는데.

“헥헥… 주인놈아… 햄찌 더 못 간다… 헥헥헥….”

햄찌가 달리다 말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괜찮냐?”

“헥헥… 햄찌 힘 없다… 햄찌 밥 먹어야 된다… 뀨우….”

“조금만 참아. 가진 음식도 다 떨어져서 도시까지 가야 돼.”

“헥헥… 햄찌 배고파서 더는 못 가겠다… 헥헥헥….”

육포라도 넉넉히 챙겨서 가지고 다닐걸.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대자로 뻗어 버렸을까.

‘그냥 포기해야 하나. 더 가긴 무리 같은데. 내 몸 상태도 안 좋고.’

햄찌라도 달려 준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볼 텐데, 배고파서 뻗어 버린 녀석을 억지로 일으켜 세울 순 없다.

내가 무슨 동물학대범도 아니고.

“뀨. 주인놈아. 저기 가서 소면이라도 한 그릇 때리고 가자. 뀨우. 그럼 햄찌 힘 나서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뀨우.”

“야, 여기 소면 파는 데가 어딨…….”

있네.

햄찌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저 멀리 오솔길 옆으로 웬 객잔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방객잔?

객잔 이름이 뭐 그래?

얼마나 오래됐는지 다 쓰러져 가긴 하는데,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영업은 하는 모양.

“그럼 가서 소면 한 그릇에 만두 한 접시만 빨리 때리고 마저 찾는 거다?”

“뀨우. 알겠다.”

그래.

노력하는 건 노력하는 거고.

아무리 급해도 애 밥은 먹여야지.

* * *

“어머~! 어서 오세요~~ 호호호호호~~~~”

객잔 안으로 들어가니 누가 봐도 예쁜 여주인이 우릴 반겨 줬다.

예쁘긴 한데 어딘가 좀 무섭게 생겼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빛은 왠지 모르게 살벌하단 말씀이야.

“소협, 여기 앉으세요.”

“아, 예.”

여주인이 기름때가 잔뜩 낀 탁자로 안내해 줬다.

윙~ 위잉~~

파리 떼가 들끓는 걸 보니 위생이 어떨지는 안 봐도 훤하다.

그래도 이런 외딴곳에 객잔이 있는 게 어디야.

햄찌 밥 먹이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귀여운 서생원도 여기 앉으셔요. 호호호.”

“뀨우!”

“어머! 예쁜 전서구 친구도 함께 있군요! 호호호!”

여주인이 이렇게나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한동안 손님이 없었던 모양.

“뀨! 주인놈아! 햄찌 짜장면 먹고 싶다! 뀨!”

“야 이.”

또, 또 개소리 한다.

어휴.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여기 짜장면이…….”

있네.

벽에 붙은 메뉴판에 짜장면이 있어.

‘이게 말이 돼?’

이 미친놈들아 작작 해!!!

뭔 중국 객잔에서 짜장면을 팔아!!!

[알고 계셨나요?]

짜장면은 한국식 중화요리로서 중국의 작장면(炸醬麵)이 원형이지만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랍니다!

알려 줘서 고맙긴 한데… 중국엔 없는 음식이라며…….

‘이젠 하다 하다 객잔에서 짜장면을 다 파네. 왜? 아예 짬뽕이랑 탕수육도 팔…….’

[메뉴판]

- 짜장면 (강추!!!)

- 짬뽕

- 탕수육

- 볶음밥

- 깐풍기

- 양장피

- 팔보채

- 고기만두 (강추!!!)

- 직화구이 통닭 (강추!!!)

(중략)

- 죽엽청 (강추!!!)

또 있네.

선택 1 : 짜장면 2 + 탕수육 小

선택 2 : 짜장 1 + 짬뽕 1 + 탕수육 小

선택 3 : 식사 2 + 탕수육 小 + 요리 1 + 고기만두 1 + 직화구이 통닭 1 + 죽엽청 1 (강추!!!)

아예 세트 메뉴까지 있어?!

“…그래.”

나도 모르게 입에서 자조 섞인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멋대로 해라, 멋대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가상현실게임에서 고증을 바라는 내가 미친놈이지.

“저기 3번 모둠 메뉴로 주세요.”

“호호호! 소협! 탁월하신 선택이에요! 호호호!”

가장 비싼 세트 메뉴를 골랐더니 여주인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주방 입구로 향했다.

“여보~~~ 3번 아방궁 모둠 주문이에요~~~~”

선택 3번 세트 메뉴 이름이 아방궁 모둠이었어?!

“뀨! 주인놈아! 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니냐!”

“네가 퍽이나 짜장면 한 그릇에 만족하겠다. 한 그릇 먹고 한 10분 뛰다 배고프다고 할걸?”

“뀨! 그건 그렇다!”

“대신 빨리 먹어. 너무 많이 먹으면 배불러서 못 뛰니까 적당히 먹고.”

“뀨! 걱정 마라!”

그렇게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띠링!

어?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천기자를 구출하라!> 퀘스트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뭐, 뭐야!

너무나도 놀라 숨이 멎을 것 같다.

설마…….

다급한 마음에 퀘스트창을 열어 변경된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알림: 남은 시간 167시간 59분 59초!]

오히려 제한시간이 늘어나 있었다.

휴!

다행이다!

제한시간이 줄어든 건 줄 알고 십년감수했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왜 제한시간이 갑자기 늘어났지?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게임 BNW의 퀘스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유동적이라는 건 단점이었지만, 때론 이렇듯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퀘스트가 달라졌다는 건 뭔가 상황이 변화하거나 특이사항이 생겼다는 뜻.

‘그래도 당분간은 안전하다는 건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천기자라는 양반은?’

안 그래도 독감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딴에 제한시간이 늘어난 이유를 짐작하느라 골머리를 앓다 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뀨! 주인놈아! 먹자!”

“너나 많이 먹어. 난 됐어.”

약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또다시 으슬으슬 오한이 들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윽.

목이 아프다.

차나 한잔 마셔야겠다.

호로록.

여주인이 내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이놈의 독감.

도대체 언제 낫는 거냐고.

“뀨! 주인놈아! 아무리 아파도 밥은 먹어야 한다! 그래야 기운을 차리는 거다!”

“속이 안 좋아서 그래. 너도 걸려 봐. 얼마나 아픈데.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온몸이 쑤셔. 너 많이 먹어. 느긋하게 먹어도 될 것 같아.”

“뀨우. 알겠다. 주인놈 배고프면 조금이라도 먹어라.”

“그래.”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지금도 어질어질한 게 자칫 잘못했다간 또 기절할 것 같다.

갈근탕도 떨어졌는데.

밥 먹고 바로 의원부터 찾아가서 갈근탕 좀 사야겠다.

“짜장면을 먹자~♪ 짜장면을 먹자~♬”

어휴.

그렇게 좋냐?

햄찌가 콧노래를 부르며 짜장면을 비비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긴.

배가 많이 고팠겠지.

그래, 많이 먹어라.

입맛은 없어도 너 먹는 거 보니까 나도 배부른 것 같다, 인마.

‘입맛도 없는데 위층 객실 가서 찬물로 샤워라도 할까? 열도 좀 내릴 겸?’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저, 저거 뭐야?

“……?!”

순간 뭔가를 잘못 본 거 같아서 눈에 힘을 주고 햄찌의 짜장면 그릇을 노려봤다.

방금 분명 이상한 걸 본 것 같은…….

‘저, 저게 왜 저기 들어 있어?!’

햄찌가 열심히 비비고 있는 짜장면 그릇 안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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