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햄찌가 콧노래를 불러 가며 열심히 비비고 있는 짜장면 그릇 안에…….
‘손가락?!’
춘장 잔뜩 묻은 사람 손가락이 보였다.
‘에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짜장면 안에서 왜 사람 손가락이 나와?
몸이 안 좋아서 헛것을 본 거겠지.
갈근탕 효과가 떨어져서 그런지 아까부터 어질어질한 게 눈앞이 흐릿하기도 하고.
일단 객실로 올라가서 찬물로 샤워부터…… 가 아니라.
‘누, 눈알까지 있어?!’
짜장면 안에 사람 손가락 말고도 눈알까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끔뻑끔뻑!
눈을 떴다 감았다 끔뻑이며 짜장면 속을 다시 살펴봤다.
‘진짜 손가락에 눈알이잖아?!’
너무 놀라서 식겁하는데.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인육 짜장면]
인육으로 만든 짜장면.
뭔가 시큼 짭짤 달달한 맛이 난다.
그 묘한 맛에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 섭취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자.
“……!”
이, 이게 뭐야?
인육 짜장면???
[인육 탕수육]
인육으로 만든 탕수육.
뭔가 시큼 짭짤 달달한 맛이 난다.
부먹 찍먹 논란을 피하기 위해 소스로 볶아낸 게 특징이다.
그 묘한 맛에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 섭취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자.
히익?!
[인육 고기만두]
인육으로 만든 고기만두.
뭔가 시큼 짭짤 달달한 맛이 난다.
그 묘한 맛에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 섭취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자.
다 인육으로 만든 거였어???
[비둘기 직화구이]
비둘기로 만든 직화구이 통닭.
원가절감을 위해 비싼 닭 대신 비둘기로 만들었다.
모르고 먹으면 맛있을지도?
그 와중에 통닭은 인육이 아니라 비둘기라서 다행…… 은 개뿔.
뭐가 다행인데???
비둘기를 닭으로 속인 것도 x나 괘씸해!
‘이 미친! 뭐야! 왜 다 인육이야?’
헛것을 본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심안이 제 할 일을 똑바로 해준 모양이다.
햄찌는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짜장면을 비비고 있는 걸 보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설마?’
생각해 보니 짚이는 게 있다.
오래돼서 기억이 살짝 흐릿흐릿하긴 한데…….
그 왜 있잖아.
옛날에.
좀 오래된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 같은 거 보면.
인적 드문 외딴 지역에 웬 객잔 하나가 덩그러니 있고.
거기 주인은 인육을 먹는 살인마들이고.
손님들한테 인육을 대접하고.
그걸 먹은 손님들을 죽여서 다시 인육으로 만드는…….
띠링!
또 뭔데?
[알고 계셨나요?]
인육을 파는 객잔은 무협 관련 컨텐츠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자 아주 오래된 클리셰랍니다!
※ 게임 BNW의 무림 서버는 오래된 무협 관련 컨텐츠들도 구현해낸 근본 있는 정통 무협 게임이랍니다!
그딴 거 추구하지 마!!!
이 미친놈들아!!!
인육 파는 객잔이 뭐가 근본이고 정통이냐고!!!
객잔에서 짜장면 파는 주제에!!!
심지어 세트메뉴까지 팔고!!!
아니, 그보다.
‘이 미친 살인마 새끼들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홱!
고개를 돌려 여주인을 노려보았다.
감히 이딴 짓을 저질러?
당장 죽여 버ㄹ…….
[식인마녀]
타입 : NPC
종족 : 인간
성별 : 여성
나이 : 78
레벨 : 180
등급 : 일류
신분 : 흉악범
소속 : 없음
직업 : 연쇄살인범
특징 : 아주 오래전부터 식인으로 유명했던 살인마.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외딴곳에 객잔을 차린 뒤 범행을 이어왔다.
획득 가능 아이템 : 천잠사 뭉치 × 5 / 식인마녀의 손톱 × 10
180레벨???
“소협? 무슨 일이신가요? 어디 불편하시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신가요?”
“어. 음.”
x발 x됐다.
“소협?”
“어. 그게 그러니까.”
레벨을 보고 나니 분노가 너무 잘 조절돼서 탈이다.
내가 55레벨인데 180짜리를 어떻게 당장 죽여 버리겠냐고…….
* * *
상대 레벨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
“소협, 말씀하세요.”
식인마녀가 날 추궁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이, 있죠.
아주 많이 있죠.
말을 못 하겠어서 그렇지…….
“그… 혹시.”
“……?”
“화장실이 어디죠? 하하. 하하하.”
일단 아무 말이나 하자.
“아. 화장실은 저기 있어요.”
여주인이 뒷문을 가리키던 그때.
“여기! 술 있으면 아무거나 빨리 내오지! 가장 싼 걸로!”
“안녕하시오!”
“점소이 어디 있는가? 어이! 점소이!”
때마침 껄렁껄렁해 보이는 건달 세 명이 객잔으로 들어섰다.
“어머~ 호걸들께서 이런 외딴 객잔엔 어인 일이셔요~? 호호호!”
식인마녀가 새로 온 손님들에게 한눈이 팔린 그때.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갑자기 <천기자 구출 작전>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확 늘어났다.
‘뭐야? 왜 또 늘어나는 건데?’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천기자가 문제야?
내가 짜장면이 되게 생겼는데?
“뀨우우! 다 비볐다! 이제 햄찌 짜장면 먹….”
“먹지 마!!!”
젓가락으로 면발을 한 입 하려던 손을 탁! 쳐내서 대참사부터 막았다.
“캬아악! 주인놈 이게 무슨 짓이냐!”
“쉿!!!”
“읍! 읍읍!”
“잘 들어.”
햄찌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거 인육이야.”
“읍! 읍읍!”
“인육으로 만든 거라고.”
“읍! 읍읍!”
“여주인이 식인마녀라는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니까. 조용히 해. 알겠지. 들키면 우리 다 죽어.”
여주인이 새로 온 손님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햄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주, 주인놈아. 그게 정말이냐. 뀨.”
“진짜라니까.”
“그, 그럼 어떡하냐?”
“일단…….”
그때.
“구! 구구구!”
그 와중에 꼬꼬 놈이 비둘기 직화구이를 쪼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미친놈아 그거 비둘기야!!!
닭 아니라고!!!
“야 이!”
황급히 꼬꼬의 목을 졸라 비둘기 고기를 못 넘기고 뱉어내게 했다.
“캑! 캑캑!”
꼬꼬가 캑캑대며 비둘기 고기를 토해냈다.
휴.
다행이다.
너 인마.
방금 동족 포식 할 뻔했어! 알아?!
“이리 와 보거라!”
새로 온 손님들 중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식인마녀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더니 강제로 제 무릎에 앉히며 성희롱을 시전했다.
다행이다.
덕분에 우리 탁자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이 가볍게 묻혔으니까.
하여간.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니까.
관상은 과학이야, 과학.
“흐흐! 어찌 그런 반반한 얼굴을 가지고 이런 외딴곳에서 점소이 노릇을 하고 있느냐?”
“아이, 차암. 호걸님도. 어찌 이러실까아~? 소녀 부끄러워요~~~”
“흐흐흐! 아주 귀엽구나!”
“이따가요~ 이따가~ 주문부터 하셔요~”
식인마녀는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하다는 듯 애교와 앙탈을 부렸다.
그 모습이 꼭 짝짓기를 앞둔 암사마귀 같아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전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암사마귀는 짝짓기가 끝나고 나면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어 버리더라고.
머리부터 잘근잘근.
“호호호! 호걸님들!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문을 받은 여주인이 주방 안쪽으로 사라진 사이.
지금이다!
“일단 튀자. 여주인이 식인마녀인데 주방장이라고 정상이겠어?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든데 둘이면 승산 없어. 지금 우리 힘으론 못 당해. 나중에 혼내주더라도 일단 도망치고 보자.”
“뀨. 주인놈아. 그럼 저놈들은 어떡하냐.”
“알 바야?”
상대가 식인마녀라 그렇지, 평소에도 엄한 여자들한테 성희롱 및 성추행을 일삼았을 놈이다.
그런 놈들 뒈지든 말든 알 게 뭐람.
“신경 끄고 가자.”
“뀨. 알겠다.”
“구. 구구구.”
슬그머니 객잔을 빠져나가는데.
툭.
으응?
철푸덕!
식인마녀가 튀어나올까 주방 쪽을 곁눈질하며 걷던 중 뭔가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으.
내 꼬리뼈…….
“이런 씨.”
어떤 새끼야.?
“똑바로 보고 다녀! 눈을 어디다 달고….”
응?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앗! 네 녀석은!”
어?
“오랑아!!!”
금의위 위사 곽말풍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하필???
* * *
황궁에서 도망치는 날 잡은 새끼.
날 죽일 뻔한 새끼.
차라리 죽였으면 고마웠을 텐데, 억지로 꾸역꾸역 살린 새끼.
그거로도 모자라서 날 동창에 넘긴 새끼.
눈치 하나는 끝내주게 없는 새끼.
“와하하하하! 오랑이 이 녀석! 여기 있었구나!”
딴에는 반가워서 그러는지, 곽말풍이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놔!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아파!
“연오랑 이 녀석! 죽은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하하하하하!”
“…놔요.”
“하하하하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살아 있다니! 너무너무 반갑구나! 하하하하!”
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어?
으으.
귀가 다 멍멍하다.
“어떻게 된 것이냐! 오랑아! 네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것이야! 살아 있었으면 동창에 복귀…….”
헉?
“음. 그렇군.”
뭐가?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인 모양이로구나.”
갑자기?
“하긴. 죽음을 위장하고 비밀 임무를 맡을 수도 있겠지.”
뭐래.
“얼마나 막중한 임무를 맡았으면 죽음을 위장까지 해야 했단 말이냐.”
병신.
“내 모른 척해 줄 테니 걱정 말아라. 금의위 위사로서 동창의 일에 간섭할 순 없지.”
뉘예, 뉘예.
그러세요.
‘이런 눈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금의위에 들어갔지? 하긴. 쳐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나오는 놈들이라 그랬으니까.’
금의위 임무 특성상 곽말풍의 이런 눈치 없는 성격이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다.
동창이라면 몰라도.
띠링!
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알림: 제한시간이 168시간 늘어났습니다!]
뭔데?
왜 또 1주일씩 늘어난 건데?
“너희들도 여기서 오랑이를 본 것을 어디 가서 이야기해선 안 될 것이다. 오랑이는 지금 대명제국의 국익을 위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니.”
“예.”
곽말풍이 자신을 뒤따르던 금의위 위사 둘에게 당부했다.
아이고오.
두 사람 표정을 보니 알 만하다.
니들도 아는구나.
니들 대장이 x나 눈치 없는 새끼란 거.
그나저나 왜 제한시간이 1주일씩 3주나 늘어난 거야?
잠깐!
‘내가 객잔에 들어왔을 때 1주일이 늘어났지. 건달 셋이 들어왔을 때 3주가 늘어났고. 방금도 이 눈치 없는 놈이랑 똘마니 셋이 들어왔는데 3주가 늘어났어.’
감이 온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객잔에 사람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제한시간도 1주일씩 늘어나는 게?
설마 천기자가 여기 붙잡혀 있는 건가?
“그런데 음식을 잔뜩 시켜 놓고 어딜 가려는 것이냐?”
“아, 그게…….”
그래도 잘됐다.
꼴에 금의위 위사랍시고 눈치 없는 놈은 꽤 강하다.
뒤에 똘마니들도 강해 보이고.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식인마녀 정도는 간단하게 잡을 것 같다.
주방장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겠지.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음?”
“이 객잔은 사실 인ㅇ…….”
어어?
갑자기 눈앞이 어지럽다.
[알림: 상태이상!]
뭔데?
[알림: <상태이상 : 중독>에 걸렸습니다!]
중독이라고???
[알림: 미혼약(迷魂藥)에 중독되었습니다!]
미혼약?
[알고 계셨나요?]
미혼약이란 대상을 기절시키거나 잠들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 약물로, 무협 관련 컨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랍니다!
혹시 미혼약을 마셨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혼약에 중독되었다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아까 음식이 나오기 전에 생각 없이 마셨던 차에 미혼약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알림: 5초 후 기절합니다!]
[알람: 5, 4, 3….]
아, 안 돼!!!
기절할 땐 하더라도 곽말풍한테 이 객잔의 비밀에 대해서는 말해줘야 된다고!!!
“사실… 이 객잔은…….”
약 기운이 센지 말이 잘 안 나왔다.
“이뉵ㄱ….”
“오랑아! 괜찮은 것이냐!”
“시긴ㅁㅏㄴ….”
털썩, 털썩.
으응?
기절 직전 옆을 돌아보니 햄찌와 꼬꼬가 엎어져 있는 게 보였…….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기절했습니다!]
[알림: 접속이 종료됩니다!]
[알림: 24시간 후 다시 접속해 주십시오!]
하.
이 X팔.
욕이 절로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