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45화 (45/115)

제45화.

캐릭터가 강제로 접속을 종료당한 직후.

“하. X팔 진짜.”

캡슐 뚜껑을 열고 나오자마자 육성으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그래, 곽말풍과 금의위 위사들이 나타나 준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곽말풍과 금의위 위사 둘이라면 식인마녀와 주방장을 해치울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주방장이 예상외로 더 강력하다 해도 나랑 햄찌랑 꼬꼬가 힘을 보태 준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 같았다.

근데 하필 제일 중요한 타이밍에 기절하는 게 말이 되냐고!!!

속 터져서 미쳐 버리겠네.

“후우, 후우.”

우선 심호흡으로 멘탈을 다스렸다.

‘냉수나 한 사발 해야지.’

주방으로 가 얼음물을 만든 다음 벌컥벌컥 들이켰다.

‘별일이야 없겠지? 나야 그렇다 쳐도 햄찌랑 꼬꼬는 걱정되는데. 아냐. 생각하지 말자.’

게임에 대한 생각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게임과 현실은 철저히 분리돼야 하는 것.

게임 속에서 벌어진 일을 현실로 끌고 오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가상현실세계에 잡아먹혀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겠지.

심하면 가상현실이 현실이고, 현실이 가상현실인 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설화 오려면 멀었네.’

아내는 오늘 새벽 늦게까지 화보 촬영한다고 했으니까, 좀 쉬다가 데리러 가야겠다.

‘내일은 외식해야지.’

마침 접속제한도 걸렸겠다, 내일 아내도 쉬겠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 좀 먹고 들어와야겠다.

‘뭐 먹지? 소고기? 회? 돈가스?’

한참 고민하다가 아내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쉬는 시간인지 전화를 받았다.

“내일 외식할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음… 초밥?

“콜.”

- 보고 싶어.

“나도.”

헉.

못 본 지 벌써 10시간이나 됐네.

“언제 끝나? 끝날 때쯤 데리러 갈게.”

- 정말? 그럼 나야 너무 고맙고, 너무 좋지. 한 2시간이면 끝날 것 같아.

“알겠어. 그럼 끝날 때쯤 말해.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갈 테니까.”

- 응, 오빠.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아내와 통화를 마친 후 곧장 모 5성급 호텔의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한태성인데요. 내일 저녁에 나카무라 셰프님 앞으로 2자리 예약 좀 부탁드릴게요.”

- 앗!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태성 선수! 자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할 테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 호텔 일식당에는 VIP들만을 위한 자리가 몇 석 정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평소에는 아예 운영을 안 한다.

오직 VIP들이 방문할 때만 운영하도록 따로 마련된 예약석이니까.

그 호텔에 지분이 좀 있기도 하고.

‘설화 데리러 가기 전까지 TV나 좀 보다 가야지.’

TV를 틀고 게임 채널로 돌렸다.

- 결투 쾌감! BNW!

공교롭게도 때마침 BNW 무림 서버의 광고가 나왔다.

- 이 시대의 진정한 무협 가상현실게임! 근본 있는 정통 무협 게임! 동양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무림 서버를 경험해 보십시오!

광고를 보는 순간.

욱!

속에서 울화통이 확 치밀어 올랐다.

“뭐가 근본이 있어어어어!!! 뭐가 정통인데!!! 객잔에서 인육 짜장면 파는 게 근본이냐!!! 벌집 이 미친놈들아!!!”

아까 애써 심호흡으로 다스린 울분이 광고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 * *

털썩!

연오랑이 기절한 직후.

“오랑아, 오랑아!”

곽말풍이 기절한 연오랑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연오랑은 마치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헉!”

곽말풍은 연오랑의 몸이 마치 불덩이처럼 뜨거운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맙소사. 열이 이렇게 심한데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니. 아무리 임무 수행이 중요하다 한들 몸은 돌봐 가면서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곽말풍은 연오랑 일행이 기절한 이유를 발열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그만큼 연오랑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서, 미혼약에 당한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무한에서 유행하는 신형관상병독에 걸린 모양입니다.”

“맞습니다. 열이 너무 심해서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곽말풍을 따르던 금의위 위사들도 같은 의견을 내었다.

“대명제국의 국익을 위해 이리 몸 사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다니. 역시 동창에 추천하길 잘했군.”

곽말풍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쓰러진 연오랑 일행을 일으켜 부축했다.

“어머….”

인기척을 듣고 나온 식인마녀가 곽말풍과 금의위 위사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 금의위 위사님들께서 이런 외딴 객잔에는 어쩐 일이셔요?”

“임무 수행을 위해 길을 가던 도중 마침 객잔이 보이기에 들렀소.”

“그, 그러시군요. 호호. 호호호.”

“위층에 빈 객실이 있소? 이 친구들이 독감에 걸렸는지 열이 아주 펄펄 끓는구려. 아무래도 객실에 눕혀 놔야겠소.”

“물론 그러셔야죠. 호호호.”

식인마녀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까부터 그 소협의 안색이 매우 안 좋기는 했죠. 어쩐지 식은땀을 흘리더라니, 독감에 걸렸었던 모양이네요.”

“무한을 중심으로 심한 독감이 유행 중이라오. 소저도 조심하시오.”

“어머, 자상하셔라.”

“그, 그렇소?”

“어쩜 이리 듬직하실까.”

식인마녀가 은근슬쩍 곽말풍의 팔짱을 끼고, 가까운 탁자로 안내했다.

“너, 너희들은 오랑이 일행을 객실로 옮겨 놓도록. 하하하.”

곽말풍은 식인마녀가 스킨십을 해 오자 얼굴이 벌게져서는, 부하들에게 연오랑 일행을 떠넘기고 자리에 앉았다.

“금의위 위사님께서 오셨으니 가장 비싼 술을 대접해 드려야겠군요. 호호호.”

“그, 그건 아니 되오! 금의위는 근무 중에 술을 마실 수 없소!”

“에이~ 위사님도 차암~ 이 늦은 시간에 근무라뇨~ 위사님도 쉬셔야 내일 또 나랏일을 돌보시죠.”

“지금은 아니 되오.”

“아쉽군요.”

“나, 나도 아쉽소.”

“마침 아주 좋은 검남춘(劍南春) 한 병이 있어 위사님께 대접해드리려고 그랬는데. 서운해요.”

검남춘은 사천성의 특산품으로서 3대 명주(名酒)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고급 술이었고, 그만큼 비싸기도 했다.

“거, 검남춘이라 그랬소?”

“네, 위사님.”

“어. 음.”

곽말풍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시간도… 늦었는데… 근무 시간이… 으음… 끝난 것 같구려… 하하… 하하하….”

“정말요~?”

“흠흠.”

곽말풍이 괜히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내었다.

“호호호! 정말 잘됐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검남춘부터 얼른 내어오겠어요! 제가 직접 따라드리며 시중을 들어드릴게요.”

“그, 그럴 것까지는….”

“잠시만요~ 호호호~”

식인마녀가 최고급 검남춘을 가져와 곽말풍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한편, 먼저 와 싸구려 백주를 마시고 있던 건달들은 곽말풍 일행이 객잔에 들어온 순간부터 입을 꽉 다문 채 도망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삼류 건달들인 그들에게 있어 금의위 위사들이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존재였기에, 당장에라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객잔을 뛰쳐나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곽말풍 일행의 시선을 잡아끌 테고, 괜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이다.

“우리 위사님께서 어쩐 일로 이런 인적 드문 객잔까지 행차하셨을까요~?”

식인마녀가 곽말풍에게 몸을 착 밀착시키고는 검남춘을 따라주었다.

“크으! 사실 별로 대단치는 않은 일이라오.”

곽말풍이 검남춘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대답했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최근 이 지역 일대에 도적들이 들끓는단 얘기가 있어 잠시 둘러보러 온 것일 뿐이오.”

“도적들이요~? 어머! 무서워라!”

“이 주변을 지나던 이들이 자꾸만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구려. 이는 필시 도적들의 소행이 아니겠소?”

“그, 그랬군요.”

“막상 둘러보니 도적들의 산채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지 뭐요.”

“정말 다행이에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소저도 조심하시구려. 내가 도적이라면 소저 같은 미인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오.”

“위사님! 정말 무서워요!”

“하하하! 금의위 위사인 이 곽말풍이 여기 있는데 무서울 것이 뭐가 있소이까?”

“어머, 어머. 정말 듬직하기도 하시지.”

식인마녀가 은근슬쩍 곽말풍의 널찍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저에게도 이런 서방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 서방님?!”

“소녀 혼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짝을 찾지 못하고 있답니다? 위사님 같은 서방님이 매일 밤 저를 지켜주시면 참 좋을 텐데요.”

“그, 그렇… 소? 크흐음! 흠흠!”

괜한 헛기침을 해 대는 곽말풍의 얼굴은 어느새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작 검남춘은 아직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음에도.

* * *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캡슐에 누웠다.

[알림: 로딩 중….]

[알림: <무림> 서버에 접속하셨습니다!]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긴.”

눈 떠 보니 낯선 천장… 이 아니라.

웬 해골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야!”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데.

빠악!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해골바가지와 박치기를 해 버렸다.

“아이고오! 내 코! 내 코오오오!”

해골바가지가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으윽.

아프긴 아픈데.

그래도 이마로 부딪혀서 다행이다.

“뀨! 주인놈아! 이제 깼냐!”

“구! 구구구!”

고개를 돌려보니 꽁꽁 묶여 있는 햄찌와 구구가 반겨 주었다.

이 자식들!

살아 있었구나!

“으윽! 뭐야!”

몸을 움직여 보려 했는데, 나 역시 꽁꽁 묶여 있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으윽! 여긴 어디고?”

“뀨! 주인놈아! 우리 잡혔다!”

“곽말풍! 그 눈치 없는 새끼는! 걔는 뭐 했는데 우리가 여기 있어?”

“뀨! 저기 있다!”

햄찌가 가리킨 곳을 보니 곽말풍과 다른 두 명의 금의위들이 꽁꽁 묶인 채 기절해 있었다.

하 씨.

그럴 줄 알았지.

저 눈치 없는 새끼가 도움이 될 리가 없지.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그 건달들은?”

“뀨! 저기 있다!”

건달들 역시 꽁꽁 묶인 채 기절해 있었다.

근데… 한 명이 비는데?

“쟤네 두목은 어디 갔어?”

“뀨! 아까 낮에 주방으로 끌려갔다! 뀨우!”

“으응?”

“지금쯤 짜장면 됐을 거다! 뀨우!”

“…….”

“식인마녀가 제일 먼저 데리고 나갔다! 뀨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겁도 없이 식인마녀를 성희롱했으니까.

솔직한 심정인데, 그런 놈들은 당해도 싸다.

“이런 고얀 놈 같으니!”

응?

“사람 코를 들이받아 놓고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없는 것이냐!”

“아?”

“봐라! 이놈아! 코피가 흐르질 않느냐! 으윽!”

삐쩍 마른 노인이 내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화를 냈다.

아까 날 내려다보던 해골바가지가 저 노인인 모양.

“코뼈가 내려앉은 것 같다! 이놈! 이 잘생긴 얼굴을 망가뜨려 놨으면 최소한 미안하단 말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어딜 봐서 잘생겼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로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죄송합니다. 눈뜨자마자 웬 해골바가지가 보이길래 너무 놀라서…….”

“뭐라? 해골바가지이이~?”

“그, 그게 아니라.”

에라이.

사과한다고 사과한 건데.

해골바가지인 줄 알고 놀란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노인공경이라고는 쥐뿔도… 헉!”

꽁꽁 묶인 주제에 내게 달려들려던 노인이 갑자기 번갯불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저기요?

어르신?

‘혹시 고혈압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악!!!”

노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너, 너는!!!”

“……?”

“별계성(別界星)!!!”

뭐요?

“지존성(至尊星)이로구나!!! 지존성이야!!!”

그게 뭔데요?

“어르신, 진정하십쇼. 자꾸 그러시면 치매가 악ㅎ….”

“너는.”

노인이 목소리와 말투가 갑자기 차분해졌다.

왜, 왜 그러세요.

무섭게…….

“다른 세계의 태양이로구나. 아아.”

“예?”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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