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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47화 (47/115)

제47화.

“일단 해 봐. 되는지 안 되는지 보게.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뀨! 알겠다!”

햄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펑! 하고 몸을 작게 만들었다.

스르륵.

햄찌를 옥죄었던 명왕삭이 풀려나가며 바닥이 툭! 떨어졌다.

“오오오!”

“구구구!”

“오오오!”

그 광경을 본 나와 꼬꼬와 천기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되네, 돼.

후후후.

생각이 옳았어.

“뀨! 주인놈아! 햄찌 이제 자유의 몸이다! 뀨우!”

“그래, 잘했어. 역시 너밖에 없다.”

“뀨! 주인놈아! 기다려라! 햄찌가 풀어 준다! 뀨우!”

“얼른 풀어. 답답하니까.”

“뀨! 알겠다!”

햄찌에게 명왕삭을 풀도록 시키고 느긋하게 속박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뀨우? 뀨? 뀨우우우? 뀨?”

“너 뭐 하냐.”

“뀨우우? 매듭이 너무 어려워서 못 풀겠다! 뀨우!”

뭐?

“뀨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뀨우!”

“…….”

“뀨우! 햄찌가 더 묶은 거 같다! 뀨! 주인놈아!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줘라! 뀨!”

“그래.”

30분이 더 지났다.

“야 이 미친놈아! 더 세게 묶어 놓으면 어떡해!!!”

등 뒤로 묶여 있는 손목이 터질 것 같다.

불끈불끈!

피가 안 통하는지 손목의 혈관 쪽에서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뀨우? 이,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었냐? 뀨?”

“더 세게 묶었잖아!”

“뀨?”

“피 안 통해서 내 손 썩으면 네가 책임질래? 어? 썩으면 잘라야 된다고!”

“뀨! 매듭 푸는 게 어려운데 어떡하냐! 뀨우!”

어휴.

네가 그럼 그렇지.

쥐새끼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 게 잘못인 모양이다.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어르신 것부터 풀어 드려. 그럼 어르신이 내 거 풀어 주시면 되니까.”

“뀨! 알겠다!”

하는 수 없이 순서를 바꿨다.

“어르신. 잠깐 뒤돌아 계세요. 매듭 좀 풀게요.”

“알겠네.”

천기자의 매듭부터 푸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거기서 왜 더 묶는데! 오른쪽으로 빼라니까!”

“뀨우?”

“오른쪽으로 빼라고! 오른쪽!”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 뀨?”

“묶지 말고 빼라고! 빼! 빼라고!”

“뀨우?”

“으아아아아아악!”

속 터져 미칠 것 같다.

옆에서 가르쳐 주는데도 매듭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 묶어 버리는 게 말이 돼?

속에서 아주 천불이 치솟아 올랐지만, 꾹 참고 차근차근 더 천천히 알려줬다.

“뀨우?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

“그래! 그거지!”

기어코 천기자의 매듭을 푸는 데 성공했다.

무려 5시간이나 걸렸지만.

“수고했네. 뒤돌아보게. 자네 매듭을 풀어 줄 터이니.”

“예, 어르신.”

천기자가 내 매듭을 풀어 줬고, 명왕삭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저릿저릿!

오랫동안 꽉 묶여 있어서 그런지, 양손이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저릿하다.

“…진짜 썩을 뻔했잖아.”

손이 거무죽죽한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몇 시간만 더 이렇게 묶여 있었으면 손이 괴사해서 잘라내야 했겠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금의위 나으리들부터 풀어 줘야죠.”

천기자의 물음에 아직 잠들어 있는 곽말풍과 그의 부하들을 가리켰다.

“우리끼리 식인귀들과 싸우다가 불리해지면 어떡해요.”

“옳은 결정이네.”

천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늙은이가 싸움에 별 도움이 안 되니 말일세.”

“예?”

그게 무슨 소리세요?

“무공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네. 도망치는 거면 몰라도 싸우는 데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게야.”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레벨이 높다고 싸움 잘하는 건 아니긴 하지.’

레벨이 깡패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절대적인 건 아니다.

게임 BNW의 레벨이란 기본 스펙과 자신이 가진 전문 분야에 대한 숙련도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이해해야 한다.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비전투 계열 직업을 가졌다면 전투력이 약할 수 있고, 그게 이상한 게 절대 아니다.

천기자의 경우 무공보다는 점술이나 예언에 특화된 인물.

아무리 299레벨이라 해도 잘 싸우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일단 억지로라도 깨운 다음에 풀어 주죠. 아직 안 깨어난 상태에서 풀어 줬다가 식인마녀가 들어오면 곤란하니까.”

“좋은 생각일세.”

그렇다면…….

“너 잘 걸렸다. 흐흐흐.”

우선 소매부터 걷어붙이며 눈치 없는 새끼를 향해 다가갔다.

* * *

곽말풍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눈치 없이 날 살려서 동창에 넘겼던 걸 갚아 줄 기회.

“곽 위사님. 일어나셔야죠. 흐흐흐.”

“…….”

“아이고, 깊이 잠드셨나 보네요. 상황이 급한데. 부득이하게 깨우겠습니다. 흐흐.”

손을 힘껏 치켜들었다가, 파리 때려잡듯이 곽말풍의 뺨을 내리쳤다.

짜아아아아악!

곽말풍의 고개가 회까닥 돌아갔다.

“으윽!”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다.

매, 맷집 뭔데?

뭔 무쇠를 내리친 기분인데?

“쿠울….”

곽말풍은 따귀를 맞긴 했느냐는 듯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안 되겠다.

내공을 좀 써야지.

살짝 내공을 일으켜서 곽말풍의 뺨을 다시 한번 후려쳤다.

“…….”

어쭈?

이래도 안 일어나?

짝! 짜악!

짜아아아악!

연거푸 뺨을 후려쳤는데 곽말풍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다.

와.

이 상황에서도 눈치가 없네.

“따귀를 몇 대를 맞았는데 안 일어난다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혼약에 중독되어서 잘 못 깨어나는 모양일세.”

천기자가 옆에서 거들었다.

“아무래도 좀 더 세게 깨워야 할 것 같네.”

“그러죠.”

천기자의 조언에 따라 계속해서 곽말풍의 따귀를 후려쳤다.

짝! 짝! 짝! 짝! 짝!

한 100대쯤 때렸나?

“으윽, 내 손.”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올라서 더 때리지도 못하겠다.

설마 이래도 안 일어나?

“으음.”

곽말풍이 천천히 눈을 떴다.

“왜 뺨이 이렇게 아프단 말인가. 으으음.”

곽말풍이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뺨을 어루만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좀 드세요?”

“오랑이가 아니냐? 근데 여긴….”

곽말풍이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빨리 정신 좀 차리시죠. 우리 지금 잡아먹히게 생겼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어떻게 된 거냐면….”

곽말풍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잠이 덜 깬 거 같은데 제대로 알아들으려나 모르겠네.

“뭐, 뭐라! 그게 정말ㅇ… 어이쿠!”

곽말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자빠졌다.

꽁꽁 묶인 줄도 모르고 일어나려다 중심을 잃은 거겠지.

어휴.

이 병신.

“일단 침착하시고요. 금방 풀어드릴 테니까 좀 계세요. 곽 위사님 부하들도….”

“감히!!!”

곽말풍이 버럭 소리쳤다.

“황제 폐하의 검인 금의위 위사를 잡아먹으려 하다니!!!”

“좀 조용히 하십쇼! 조용히!”

“이 악독한 식인귀들아!!! 네놈들은 황제 폐하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조용히 좀 하라고요!”

“내 당장 네놈들을 응징하여 대명제국의 법치와 정의가 살아 있음을 천하에 널리 알릴 것이다!!!”

화가 난 곽말풍은 내가 말리든 말든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필 지하실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서 귀청이 다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야 이 미친놈아 조용히 좀 하라고! 너 짜장면 되고 싶….”

콰앙!

지하실 문이 열렸다.

“……!”

“……!”

“……!”

나, 햄찌, 천기자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X… X됐다.

지금은 밧줄을 푼 상태.

아직 곽말풍도 밧줄에서 풀려나지 않았는데 싸움이 벌어진다면, 식인마녀에게 제압당할 가능성이 컸다.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조용히 좀 하라니까!!!

너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잖아!!!

‘아, 안 돼!’

저벅저벅.

식인마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할까.

급한 대로 일단 싸울까.

아니, 그건 너무 불리한데.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심익현(瀋翊泫)의 오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아!

그게 있었지!

심익현의 오의.

내 본캐가 가진 스킬.

메인은 잠자리 기술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포박법도 포함돼있다.

그래, 이거라면.

휙! 휙휙휙!

손을 번개처럼 움직여 햄찌와 천기자를 묶고, 나도 스스로 묶었다.

날 묶을 때 생긴 매듭을 숨기기 위해 쓰러져 기절한 척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저벅저벅.

식인마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듯 두방망이질 쳤다.

제발 걸리지 마라.

제발…….

이게 무슨 근본 있는 정통 무협 게임이야!

공포 게임이지.

* * *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식인마녀가 다가온 게 느껴진다.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식인마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이년!”

곽말풍이 아랑곳하지 않고 식인마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감히 금의위 위사들을 잡아 가둔 거로도 모자라서 잡아먹으려 하다니! 네년이 그런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호호호!”

식인마녀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본녀가 금의위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으냐? 호호호!”

“뭣이!”

“본녀가 네놈 같은 놈들을 어디 하루 이틀 상대해 보았겠느냐? 호호호! 그놈들이 다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식인마녀가 섬뜩하게 웃더니, 곽말풍에게 다가가 으름장을 놓았다.

“한 번만 더 시끄럽게 떠들면 네놈 부하들부터 도축해 버릴 테니 그 입 닥치고 얌전히 있으렴.”

“……!”

“그 주둥이에 네놈 부하들로 만든 만두를 처넣기 전에.”

식인마녀는 듣기만 해도 끔찍한 협박으로 곽말풍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더니, 기절해 있던 건달 중 하나를 골라 질질 끌고 사라졌다.

콰앙!

다시 지하실 문이 닫혔다.

“으어어어어.”

잔뜩 긴장해서 숨까지 참고 있었더니 긴장이 탁! 풀리며 죽을 것 같았다.

한 10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다.

“거 조용히 좀 하라고 그랬잖아요.”

“미, 미안하다.”

“다 같이 죽자는 겁니까? 예?”

“그게 아니라….”

“위사님 짜장면 되고 싶어서 환장하셨어요?”

“난 단지 너무 화가 나서….”

곽말풍이 고개를 푹 떨군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웅얼 사과했다.

꼴에 지가 잘못한 걸 알긴 아는 모양이다.

“제발 좀 가만있으십쇼.”

“그, 그렇게 하마.”

“한 번만 더 눈치 없이 굴면 그땐 진짜 사람 취급 안 할 겁니다.”

“알겠다.”

곽말풍을 갈궈서 주의를 준 뒤 햄찌, 그리고 천기자와 머리를 맞댔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일단 나머지 두 명도 깨워야죠.”

“그다음엔?”

“당연히…….”

잠깐.

‘주방장이 예상외로 강하면 어떡하지?’

나, 햄찌, 꼬꼬, 곽말풍, 그리고 금의위 위사 둘.

이 정도 전력이면 식인마녀 정도는 제압하겠지.

문제는 주방장.

아직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안 된다.

‘혹시나 또 다른 일당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그것대로 곤란하다.

풀려났다고 무턱대고 싸움을 걸었다가 머릿수에서 밀리면 답이 없잖아.

어떡하지…….

이번 작전은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작전에 실패해서 짜장면이라도 되면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접속을 못 하니까.

그러니 섣불리 행동하기 전에 먼저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

우선 생각을 하자.

판타지 서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나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다른 무엇도 아닌 경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 그렇게 하자.’

조금 고민해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난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야, 햄찌야.”

“뀨?”

“일단 이거 받아.”

인벤토리를 열어 조그마한 약봉지를 꺼내 햄찌에게 건넸다.

“뀨! 주인놈아! 이게 뭐냐! 뀨!”

“미혼약.”

“뀨우? 주인놈 그런 것도 가지고 다니냐?”

“네가 가져다준 거잖아.”

“뀨?”

“벌써 까먹었냐? 색귀 놈 품속에서 나온 거잖아.”

햄찌를 향해 씩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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