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끄어… 끄어어어어어!!!”
포식대법에 내공을 빨리는 식인마녀의 모습은, 마치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려는 것 같았다.
꿈틀대는 혈관.
충혈되어 피눈물이 줄줄 쏟아지는 눈.
입, 코, 귀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피.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는 몸.
수분을 잃어 가는 피부.
새하얗게 새어 가는 머리칼.
마지막으로, 마치 미라와 같이 점점 더 메말라가는 육체까지.
누가 봐도 연오랑에게 내공뿐 아니라 가진 모든 생기(生氣)를 빼앗기는 게 역력한 모습이었다.
“악!”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기자가 비명을 질렀다.
“마, 맙소사!”
곽말풍 역시 마찬가지.
“저, 저것은!”
“설마.”
나머지 금의위 두 명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과 공포에 물든 얼굴이었다.
천기자, 곽말풍, 그리고 금의위 위사 두 명이 경악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
‘흡성대법!!!’
연오랑이 식인마녀의 내공을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란, 저주받은 악마의 무공이라 불리는 흡성대법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물론 그들도 흡성대법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흡성대법에 당한 사람은 실시간으로 메말라가며 가진 모든 내공과 생기를 빨아 먹힌다고 했다.
그러니 천기자와 곽말풍과 금의위 위사들의 눈에는 연오랑이 저주받은 악마의 무공인 흡성대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쭉!
쭈욱!
연오랑은 아무런 말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식인마녀를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포식대법을 사용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뽑아먹으려는 듯이.
‘제, 제발! 제발 살려 줘! 뭐든 할게! 제발!’
아혈이 짚인 식인마녀는 눈빛으로 애원했지만, 연오랑은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식인마녀와 눈이 마주친 연오랑의 눈빛은 너무나도 무심했다.
복수심?
분노?
혹은 즐거움?
그런 감정들은 애초에 담겨 있지 않았다.
연오랑은 식인마녀를 그저 나무토막 정도로 여겼다.
굳이 어떠한 감정이 담겨 있다고 말하자면 경멸에 가까웠다.
마치 더러운 해충을 보는 듯한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 말은, 연오랑이 식인마녀를 죽이는 데 있어 한 점 망설임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모기나 파리와 같은 해충을 죽일 때 고민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연오랑은 식인마녀를 끝내 죽이지는 않았다.
딱 죽지 않을 정도만 내공을 빨아먹고 놔줬다.
툭!
연오랑이 썩은 고목처럼 삐쩍 말라 버린 식인마녀를 대충 밀쳐냈다.
무슨 귀찮은 물건을 대충 치워 버릴 때처럼.
스윽.
연오랑이 다음 표적인 비저에게 포식대법을 사용하려던 그때.
“잠깐.”
천기자가 연오랑의 손목을 잡아챘다.
* * *
“그만두게.”
천기자가 강한 어조로 연오랑을 제지했다.
“왜요?”
“그만하게. 이제 됐네.”
“뭐가 돼요? 아직 남았는데.”
“지금 자네가 해야 할 것은 해명일세.”
“해명…?”
“방금 자네가 사용한 무공 말일세. 혹시….”
“포식대법인데요.”
“……!”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포식대법?”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시죠.”
“아무리 봐도 자네가 사용한 무공은 흡성대법이라네. 그 저주받은 악마의 무공을 사용하는 겐가?”
“……?”
“자네 도대체 정체가 뭔가! 자네 세계에서 자네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기에 그런 저주받은 무공을 사용하느냐는 말일세!”
천기자가 말하는 흡성대법은 과거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저주받은 무공 중 하나로서,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일종의 자연재해와 같은 거였다.
역사상 흡성대법을 익힌 자들은 모두가 악인이었으며, 당대 최악의 마두로서 세상을 혼란케 했다.
흡성대법을 익힌 자들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돌이켜 보면, 천기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곽말풍과 금의위 위사들마저 두려움 가득 섞인 눈빛으로 연오랑을 바라봤을까.
“저주받은 무공이고 나발이고.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요.”
“뭐, 뭐라?”
“포식대법이라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흡성대법과 자네의 포식대법이 너무나도 흡사하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죄송한데.”
연오랑이 선을 그었다.
“그딴 쓰레기 무공이랑 제 포식대법을 비교하지 마십쇼. 기분 나쁩니다.”
“자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지금 그 말을 이 늙은이더러 믿으라는 겐가?”
“믿고 말고는 어르신 자유겠죠. 그리고….”
연오랑이 덧붙였다.
“설령 제가 사용한 무공이 포식대법이 아니라, 그 저주받은 무공이라는 흡성대법이라 치죠. 그게 무슨 문제가 되죠?”
“뭣이?”
“칼에 선악(善惡)이 있어요?”
“……!”
“칼에 선과 악 같은 게 어딨어요. 칼은 칼이지. 결국 사람을 베는 도구에 불과하죠. 무공도 마찬가지죠. 무공이란 결국 사람을 효과적으로 살상하기 위해 개발되고 체계화시킨 기술 체계 아닌가요?”
연오랑의 말에 천기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논리에 어떠한 허점도 없을뿐더러 무학(武學)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말하는데,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 무공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 그게 본질입니다. 중요한 건 사람이죠.”
“옳은… 말일세.”
“어떻게 사용하느냐, 누굴 죽이느냐, 무엇을 위해 죽이느냐. 그것만 보시죠. 엉뚱한 걸로 물고 늘어지지 마시고.”
거기까지 말한 연오랑이 천기자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알아들으셨으면, 이만 놓으시죠.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입니다.”
그 순간.
“……!”
연오랑과 눈이 마주친 천기자의 앞으로 어떠한 환영이 펼쳐졌다.
붉게 노을 진 하늘.
떼 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
대지에는 시체의 산이 쌓이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그곳에 거대한 마상창(馬上槍)을 든 연오랑이 홀로 서 있었다.
얼마나 피를 뒤집어썼는지, 피 칠갑을 한 채로…….
“허어어어억!”
천기자는 환영을 통해 연오랑의 존재감을 실감하고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이 감히 누구의 손목을 잡아챘는지를 깨닫고, 밀려든 공포감에 그만 지배되어 버린 것이다.
“이, 이 늙은이가… 그, 그만 죽을죄를…… 컥!”
천기자가 돌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자.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대가로 어마어마하게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 어르신!”
당황한 연오랑이 황급히 천기자를 부축했다.
“어르신! 왜 그러세요! 어르신! 숨 쉬세요! 숨!”
* * *
천기자가 기절한 덕분에 수금이 잠시 미뤄졌다.
아니, 이 양반은 왜 갑자기 기절하고 난리야….
“뀨! 주인놈아! 작작 좀 해라! 뀨우!”
“뭐 인마? 내가 뭘 했다고?”
“주인놈이 겁줘서 천기자 영감 기절한 거 아니냐! 뀨우!”
“내가 언제?”
그런 적 없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경고하긴 했는데, 그게 겁을 준 건 아니잖아.
“뀨! 주인놈 노약자 배려하는 법 모르냐! 뀨! 그거 노인공격이다! 뀨우! 주인놈 노인공격 한다! 뀨우!”
…노인공격이겠지.
“나 뭐 한 거 없거든?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픽 쓰러진 걸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겁을 왜 주냐? 할 짓이 없어서 다 늙은 어르신 겁줘서 뭐 하게?”
“뀨우?”
“연로하셔서 노환이 있으신 거겠지. 원래 인마. 사람은 어르신 나이쯤 되면 여기저기 아프고 그런 거야.”
천기자를 살펴보니 딱히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심장도 뛰고.
숨도 쉰다.
그럼 됐네, 뭐.
“곽 위사님?”
곽말풍을 돌아보았다.
“히, 히익?!”
뭐야.
왜 저렇게 놀라.
“어르신 좀 부탁드립니다. 오래 갇혀 계셔서 체력이 약해지셨나 봐요.”
“그, 그렇게 하겠다.”
말은 왜 더듬어?
“어르신은 나한테 맡겨라. 하하. 하하하하….”
“……?”
“어, 어르신?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말풍이 엉거주춤 천기자를 부축했다.
무슨 겁먹은 강아지처럼 왜 저래?
설마 내 포식대법이 흡성대법인 줄 착각하고 겁먹은 건가?
그럼 정말 기분 나쁠 거 같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어딜 디버프 마스터의 스킬을 그딴 허접쓰레기 더럽고 난잡한 무공에 가져다 대?
‘일단 내공부터 빨자.’
차례대로 비저와 비돈의 머리통을 붙들고 포식대법을 시전했다.
[알림: 내공을 1.2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내공을 1.2 흡수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내공을 1.2 흡수하셨습니다!]
식인마녀도 그렇고, 비저·비돈 형제의 내공도 썩 질이 좋지 않았다.
색귀 놈에 비하면 그나마 좀 나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나 할까?
이 식인귀들도 애먼 사람 잡아서 짜장면이나 만들 줄 알았지, 레벨에 비해 내공이 정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밤낮없이 죽자고 수련만 해도 모자랄 판에 뻘짓거리나 하고 돌아다니는데 강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레벨이 아깝단 말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멍청하고.
떠올려 보면 비저나 비돈이나 자기 체급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다.
싸울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움직임도 형편없고, 센스도 없다시피 했다.
냉정히 말해서, 할 줄 아는 게 얻어터지는 게 전부니까 말 다 했지.
지들이 무슨 샌드백도 아니고.
하기야, 허구한 날 약자들만 괴롭혀 온 놈들이 강하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다.
그러니까 이길 수 있었던 거겠지만.
[알림: 56레벨 달성!]
[알림: 57레벨 달성!]
[알림: 58레벨 달성!]
[알림: 59레벨 달성!]
[알림: 60레벨 달성!]
[알림: 61레벨 달성!]
그래도 꼴에 레벨 높다고 경험치는 많이 주네.
이건 좀, 아니 아주 마음에 든다.
헤헤헤.
“햄찌야, 꼬꼬야.”
햄찌와 꼬꼬를 불렀다.
“뀨?”
“구! 구구구!”
녀석들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객잔 구석구석 싹 다 뒤져. 쌀 한 톨 안 남기고 죄다 챙겨 와.”
내공과 경험치만 챙기면 섭섭하지.
마른오징어도 계속 씹다 보면 액기스가 나온다고.
“뀨! 약탈이다! 약탈! 뀨우우!”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신이 나서 객잔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쓰러져 빌빌거리는 식인귀들의 품속을 뒤져서 챙길 아이템들을 챙겼다.
[알림: <천잠사 뭉치>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참골도>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참골도>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식인마녀의 손톱>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천잠사 뭉치 다섯 개.
참골도가 두 자루.
식인마녀의 손톱이 열 개.
[알림: <더러운 행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탕수육 소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춘장 소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다 쓴 이쑤시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잡동사니들도 모조리 챙겨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알림: <태한홍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으응?
홍삼이 왜 여기서 나와?
[알고 계셨나요?]
무림 서버에는 중국을 모티브로 한 중원 대륙뿐 아니라 일본을 모티브로 한 동양, 서양을 모티브로 한 서역, 그리고 옛 한반도를 모티브로 한 태한까지 구현되어 있답니다!
※ 인삼과 인삼의 가공품인 홍삼은 태한의 주요 수출 품목이자 특산품입니다!
아, 맞다.
한국이 배경인 지역도 있다고 했지.
게임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거기 상당히 빡세다던데.
무슨 길 가던 이름 모를 선비나 스님 레벨이 300은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나?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가 봐야겠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천기자 구출 작전>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좋아.
이제 된 건가?
[알림: 천기자에게 말을 걸어 얘기를 나눠 보세요!]
때마침 정신을 차린 천기자가 서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