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52화 (52/115)

제52화.

햄찌가 술법을 부린 직후.

스륵, 스르륵.

수십여 개의 희미한 형체들이 나타나 주르르 늘어섰다.

그들이 말했다.

‘대협, 복수해줘서 정말 고맙소이다.’

‘한을 풀어줘서 감사하오.’

‘원통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이 은혜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

식인귀들에게 잡아먹힌 불쌍한 원혼들이구나.

막상 피해자들의 원혼과 마주하자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좀 더 일찍 왔더라면 누군가는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물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원혼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다.

저들에게도 각자의 삶이란 게 있었을 텐데.

‘아닙니다, 대협. 복수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협 덕분에 억울함이 풀렸어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대협.’

원혼들이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디 성불(成佛)하시길 바랍니다.”

원혼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대협.’

‘대협 덕분에 편히 쉴 수 있겠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원혼들이 내게 감사의 인사말을 남기고 하나둘 사라져갔다.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억울한 원혼들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62레벨 달성!]

[알림: 63레벨 달성!]

[알림: 64레벨 달성!]

[알림: 65레벨 달성!]

원혼들의 축복 덕분에 4레벨이 올랐다.

“편히 쉬시기를.”

사라져 가는 원혼들을 향해 포권을 취해 그들을 배웅해 주는데.

‘대협. 염치 불고하고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웬 승려의 원혼이 말을 걸어왔다.

승려의 원혼은 다른 이들에 비해 형체가 더 선명했고, 목소리도 더 또렷했다.

아무래도 살아생전 높은 법력(法力)을 쌓은 분이라 가능한 모양.

“말씀하시지요, 스님.”

‘소승은 소림의 제자로 덕오라 합니다. 길을 지나던 중 탁발을 하러 들렀다 변을 당했습니다.’

“덕오 스님이셨군요.”

‘대협, 부디 소승의 염주를 제자에게 가져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염주라면….”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

아까 염주를 하나 줍긴 했지?

[소림승의 염주]

소림승 덕오 스님이 살아생전 지니고 다니던 낡은 나무 염주.

그저 평범하고 투박한 나무 염주에 불과하지만, 덕오 스님의 유일한 유품이다.

분류 : 염주

등급 : 일반

내구도 : 12 / 50 (수리불가)

사용제한 : 없음

레벨제한 : 없음

효과 : 없음

특징 : 비록 특별한 염주는 아니지만 덕오 스님의 제자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부디 소승의 제자 녀석에게 그 염주를 가져다주시고, 이 못난 스승의 입적 소식이라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대협.’

덕오 스님이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알림: <낡은 염주에 담긴 의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내용이 눈앞에 떠올랐다.

[낡은 염주에 담긴 의미]

내용 : 덕오 스님의 유품인 낡은 나무 염주를 제자에게 가져다주고, 입적 소식을 알려 주자.

타입 : 일반

진행률 : 0% (0/1)

보상 : ?

참고 : 급한 퀘스트는 아니므로 시간이 남을 때 천천히 진행해 보도록 하자.

어쩌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소승이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제자 녀석을 생각하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아.”

‘불제자로서 명이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바세계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허나 제자 녀석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부끄럽습니다, 대협. 끝끝내 오욕칠정을 떨쳐내지 못한 이 못난 소승을 용서하시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자 생각하는 사부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사부에게 있어 제자란 자식과도 같은 존재.

그 정(情)이란 한평생 불도를 닦으며 수양해온 고승에게도 쉽사리 떨쳐내기 힘든 거겠지.

나 역시 제자로서 사부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성장해 온 만큼 덕오 스님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스님, 제가 염주를 제자분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알림: <염주에 담긴 의미>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 정말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덕오 스님이 불호를 외우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대협을 믿고 그럼 마음 편히 입적에 들겠습니다.’

“예, 스님. 열반하십시오.”

‘부디 대협의 앞날에 부처님의 은덕이 깃들기를. 아미타불, 아미타불.’

덕오 스님의 영혼이 사라지고.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덕오 스님이 당신을 축복합니다!]

[알림: <부처님의 가호> 버프를 획득하셨습니다!]

뭐지?

무슨 버프가 걸린 건지 모르겠다.

딱히 알림창이 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태창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나중에 알게 되겠지.’

불제자인 덕오 스님이 나쁜 걸 걸어줬을 리 없고, 명색이 부처님의 가호라는데 안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

* * *

식인귀들이 타죽은 걸 확인하고, 객잔을 불태웠다.

이런 꺼림칙한 객잔을 그냥 내버려 두기가 좀 그래서.

산불 나는 거 아니겠지?

화륵, 화르륵!

활활 타오르는 객잔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임무가 있어 우리는 이만 가 보겠다.”

눈치 없는 새… 가 아니라.

곽말풍이 작별인사를 건넸다.

“살펴 가세요.”

“너를 봤다는 얘기는….”

“당연히 안 하셔야죠? 저는 지금 비밀 임무 수행 중이니까?”

“물론이다.”

“아, 그리고.”

“음?”

“이거요.”

곽말풍에게 식인마녀의 손톱과 비돈·비저 형제가 쓰던 참골도를 건네줬다.

“이걸 내게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

진짜 눈치라고는 지지리도 없구나.

“식인마녀나 비인숙수 형제나 악명 높은 식인귀들이잖아요?”

“그렇다.”

“그럼 현상금이 붙어 있겠어요, 안 붙어 있겠어요.”

물론 지금 내가 가진 퀘스트 중에서는 식인마녀나 비돈·비저 형제에 대한 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상금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금물!

다른 성의 관아에서 식인마녀나 비돈·비저 형제에게 내걸린 현상금이 있을지도 모른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괜히 있을까.

게이머라면 꼭꼭 숨겨진 돈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챙겨 먹을 줄 알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혹시 모르니까 좀 알아봐 주세요. 만약 현상금을 내건 관아가 있으면 가서 돈을 받으면 되겠죠?”

“그, 그렇지?”

“현상금을 타시면 제 이름으로 북풍표국 아무 지부에나 맡겨 주세요.”

“그리하마. 그럼, 나중에 보자.”

곽말풍 일행이 떠나가고.

“뭐부터 하면 됩니까?”

천기자에게 물었다.

<천기자의 공덕>은 총 3개의 하위 퀘스트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뭐부터 할지 물어보는 거다.

“우선 산적들을 좀 토벌해 주게. 도적 떼를 때려잡는 것이야말로 공덕을 쌓는 대표적인 협행 아니겠나?”

“동의합니다.”

“남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사천성과 호북성의 경계가 나온다네. 최근 그곳에서 산적들이 들끓는 바람에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하니, 그곳으로 가서 도적 떼를 토벌해 주게.”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도적 떼 소탕]

내용 : 사천성과 호북성의 경계가 되는 지역에 출몰하는 산적들을 토벌하고, 천기자를 다시 찾아가자.

타입 : 서사 / 하위 / 연계

진행률 : 0% (0/100)

보상 : 해당 없음

주의 :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은 산세가 매우 험하므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딱히 어려울 건 없어 보이네.

물론 가 봐야 알겠지만.

“알겠습니다. 우선 산적들부터 때려잡죠, 뭐.”

“산적들을 소탕하고 나면 호남성 고장(古丈) 현에 있는 서문세가로 오게. 내 당분간은 그곳에서 쭉 머무를 터이니.”

“그렇게 하죠.”

“그럼, 조만간 다시 봄세. 나는 서문세가에 가 있겠네.”

“예, 살펴 가세요. 또 가다가 이상한 데서 붙잡히지 마시고요.”

“끌끌. 걱정 말게. 그럴 일은 없을 터이니.”

천기자는 그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우리도 가자.”

“뀨! 알겠다!”

“구! 구구구!”

햄찌와 구구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신형관상병독>이 치료되었습니다!]

어쩐지 아까부터 몸이 가볍더라니.

한 며칠 끙끙 앓고 나니까 나은 모양이다.

[알림: 주사위를 굴립니다! (홀짝)]

으응?

갑자기 주사위는 왜 굴려?

[알림: 주사위를 굴려 4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주사위는 왜 굴리는데.

[알림: 주사위를 굴린 결과 짝수가 나왔습니다!]

[알림: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알림: 홀수는 항체 형성이고 짝수는 항체 비형성입니다!]

[알림: 주사위를 굴린 결과 짝수가 나와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뭔 개소리야?

[알림: 항체가 형성되지 않아 <신형관상병독>에 또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항체가 형성되는 게 주사위 굴림으로 결정되는 거였다고?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오한>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 발열>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 근육통>에 걸렸습니다!]

[알림: 캐릭터의 몸 상태가 나빠집니다!]

[알림: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알림: 가까운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뒤 객잔으로 가 휴식을 취하십시오!]

하.

이 ㅈ같은 게임.

그냥 접을까?

“구, 구륵.”

꼬꼬가 병든 닭처럼 픽 쓰러졌다.

“넌 또 왜 그래?”

“구, 구구구.”

꼬꼬가 힘없이 지저귀었다.

[알림: 신형관상병독이 변이를 일으켜 조류독감이 되었습니다!]

[알림: 꼬꼬가 조류독감에 걸렸습니다!]

[알림: 꼬꼬에게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젠 조류독감이냐…….

“뀨! 주인놈아! 꼬꼬 아프다! 뀨!”

“나도 아파….”

“뀨? 주인놈 또 걸렸냐?”

“어.”

“뀨우우! 주인놈 왜 그렇게 운이 없냐! 뀨!”

“개빡치니까 신경 긁지… 잠깐.”

뭔가 이상한데.

바보는 감기 같은 거 안 걸린다며.

“너….”

“뀨?”

“왜 안 걸려?”

“뀨우?”

“나는 두 번이나 걸리고, 꼬꼬도 조류독감에 걸렸는데 너는 왜 안 걸리냐고.”

“뀨, 뀨우?!”

“맞네, 맞아.”

“그게 무슨 말이냐! 뀨우!”

“바보 맞네.”

“캬아악! 아니다! 햄찌 건강해서 안 걸리는 거다! 캬아아악!”

“건강은 개뿔. 바보라서 안 걸리는 거지.”

“아니다! 캬아아아악!”

“아니긴 뭐가 아니냐. 너 바보 맞아.”

“캬아아악! 아니다! 절대 아니다!”

“바보래요~♬ 바보래요~♪ 햄찌는~♩ 바보ㄹ….”

어?

갑자기 눈앞이 핑그르르 돈다.

털썩!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림: 접속이 종료됩니다!]

하.

X팔 진짜.

* * *

또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3일을 쉬었다.

도저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라서, 객잔에 캐릭터를 처박아 놓고 3일 동안 현실에 집중했다.

꼬꼬도 조류독감 때문에 앓아누워서 억지로 끌고 다닐 수도 없었고.

그 와중에 햄찌 놈은 끝까지 안 걸린 걸 보면, 바보가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도 바보인 줄은 알았지만.

[알림: 주사위를 굴려 3이 나왔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항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굴린 주사위가 3이 나와 준 덕분에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내가 진짜 이번에도 짝수 나왔으면 게임 접었다.

관도를 따라 쭉 내려가다 보니 험준한 산악지대가 펼쳐지고, 저 멀리 자그마한 요새가 나타났다.

웅성웅성!

뭔 일 났나?

뭐 저렇게 사람이 많아?

멀리서 봐도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게 인구밀집도가 엄청나게 높아 보인다.

“가 보자.”

“뀨! 알겠다!”

“구! 구구구!”

멀리 보이는 요새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두두두두두두!!!

웬 말을 탄 놈들이 달려ㅇ… 으아아아아악!!!

황급히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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