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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54화 (54/115)

제54화.

이 새끼들!

잘 만났다!

슥, 스윽.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바탕하려는데 놈들이 잽싸게 관아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에라이.

기다렸다가 혼내 줘야겠다.

“뀨! 주인놈아! 한바탕할 거냐! 뀨우!”

“그럼 해야지. 참냐?”

“주인놈 성질 좀 죽여라! 뀨! 그러다 큰코다친다! 뀨! 요즘 애들 무섭다! 뀨!”

“그 무서운 애가 커서 된 게 나거든?”

“뀨우?”

“다시는 운전대….”

이게 아닌가?

“고삐 못 잡게 손모가지를 콱! 그냥!”

쒸익쒸익!

아주 혼쭐을 내 줘야지.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근데… 얘네 왜 안 나오냐?”

놈들은 형 대인을 만나러 간 지 30분이 넘도록 관아에서 나오지 않았다.

“뭐지? 얘기가 길어지나?”

“뀨! 그런 것 같다!”

설마 내가 벼르고 있는 걸 알고 뒷문으로 빠져나간 건…….

‘그럴 리가.’

내가 뭐라고.

“남들은 늦어도 5분이면….”

으응?

우당탕탕!

시끌시끌!

안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내 발로 나갈 테니 놔라!”

“흥! 영웅호걸들을 몰라보다니! 눈은 어딜 두고 다니는 것이냐!”

“그러니까 관이 무능하다 욕을 먹는 것 아니더냐!”

날 치고 지나갈 뻔했던 뺑소니범들이 관군들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뭔 상황이야?

“캬악! 퉤!”

“형 대인! 우릴 이렇게 대접하고도 그대가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소이까!”

“어디 얼마나 산적 토벌을 잘하는지 두고 보겠다!”

“두고 보자! 내 이 사실을 아버님께 고해바쳐 형 대인의 무능함을 조정에 알릴 것이다!”

왜들 저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안에서 뭔가 마찰이 빚어진 모양.

‘하긴.’

알 만하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라고 안 샐까.’

저놈들 운전, 아니 말 타는 것만 봐도 평소 행실이 훤히 보인다.

딱 봐도 돈 좀 있는 집안 자제들 같은데.

협객 놀음 한답시고 형 대인 앞에서 개소리나 지껄였겠지.

자, 그럼 슬슬 혼쭐을…….

“78번!”

“예?”

“어서 들어오시오!”

“좀 이따 들어가면 안 될까요?”

“아니 되오. 형 대인께서 피곤해하셔서 오늘은 그대가 마지막이오. 지체하려거든 내일 다시 오시오.”

에라이.

혼쭐을 내 주려고 했는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쩝.”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형 대인을 만나기 위해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 * *

“발걸음 해 주셔서 고맙소. 형 대인이라 하오.”

형 대인이 쉰 목소리로 반겨줬다.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인데?’

표정을 보아하니 파김치가 따로 없네.

“많이 지쳐 보이시네요.”

“간혹 있는 일이오.”

“예?”

“명문가의 자제들이 이따금 찾아오곤 한다오. 산적들을 토벌해 명성을 드높여 보려는 게지.”

“아.”

“문제는 그런 이들치고 제대로 된 이들이 없다는 것이오. 무공 실력을 떠나 경험도 없고, 의욕만 앞서서 공을 세우기는커녕 민폐만 끼칠 뿐이라오.”

“아이고오.”

“저들은 의창사걸(宜昌四傑)이라 하는데, 의창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라오.”

의창사걸은 개뿔.

의창사ㅈ이겠지.

“왜 곤장도 치지 않으시고 그냥 돌려보내신 거죠?”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들의 집안이 무림뿐 아니라 조정에도 연줄이 닿아 있어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웠소.”

에라이, 더러운 세상.

게임 속 세상도 현실과 하나 다를 거 없다니까.

“보통 이럴 경우에 최대한 안전한 임무를 줘서 적당히 공을 세울 수 있게 해 주는데, 저들은 아예 관군의 지휘권을 요구하더구려.”

“에?”

“한참을 설득해 봤지만 소용없기에 눈 딱 감고 쫓아낸 것이오. 이번 일로 얼마나 피곤해질지. 후우.”

형 대인의 한숨에서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어휴.

사회생활이란.

“어쨌든…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군. 양해를 부탁하오. 나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고 말았소.”

“별말씀을요.”

“그래, 연 소협. 각오는 되어 있소?”

“각오요?”

“이곳 산적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오. 녹림에 속한 산적들이라오.”

기억난다.

무협소설에서 보면 좀 센 산적들을 가리켜 녹림이라고 불렀지.

중원 대륙에는 그런 산적 집단이 72개 있고, 걔네들을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寨)라고 불렀던가?

“이곳은 여러 개의 군소 산적단이 활동하는데, 그들 모두 녹림칠십이채에 속한 맹호채의 하부조직이오.”

“그러니까 맹호채가 여러 개의 산적단을 거느리고 활동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소. 맹호채를 포함해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산적들의 숫자가 거의 500명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소.”

많기도 하다.

그쯤 되면 산적이 아니라 아예 군벌로 봐도 되겠는데?

“왜 아직까지 토벌을 못 한 겁니까? 사태가 심각해 보이던데.”

“놈들이 워낙에 신출귀몰하고 지능적이라오. 산적답게 산악전에 능하고, 산적답지 않게 활과 함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오.”

“으음.”

“게다가 몸을 사리는 게 쥐새끼 저리 가라 할 수준이라, 감당 못 할 상대가 나타났나 싶으면 아예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오. 고강한 무공을 가진 고수들을 데려다가 토벌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소.”

흠.

전술에 능하고.

심지어 눈치까지 빠른 산적들이라.

까다롭긴 하다.

여태 토벌 못 한 이유가 있었네.

“차라리 조정에 보고해서 관군을 대규모로 동원하시지.”

“지금은 어렵소.”

“왜죠?”

“얼마 전 중양절에 미친왕 전하가 탄 배가 습격당하는 큰 사건이 있었소이다.”

“아!”

“아시오?”

“예, 뭐.”

알지, 잘 알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하긴. 모를 수가 없겠지.”

“그래서 조정에서 여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거죠?”

“그렇소. 황제 폐하께서 그 사건을 역모로 규정하시고, 대대적으로 주동자들을 포함한 관련자들의 색출에 나서셨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진 것 같구려. 본론으로 돌아가 연 소협에게 세 가지 임무 중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소.”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산적 토벌 작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

어디 보자.

퀘스트 내용이…….

[산적 토벌 작전]

내용 : 세 가지 임무 중 하나를 선택해 산적 토벌에 기여하자.

타입 : 일반 / 선택 / 반복

진행률 : 0% (0/1)

보상 : 은자 150냥 + 고대 유물 항아리 10개

선택 :

- 수색작전

- 매복작전

- 호송작전

참고 : 이 퀘스트는 작전의 성공 유무와는 관계없이 참여하기만 해도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

참여하기만 해도 보상을 준다고?

‘그만큼 어렵단 거겠지. 위험하고.’

척하면 척.

애초에 성공을 기대하고 주는 임무가 아니란 걸 바로 알아차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수색작전은 말 그대로 수색작전이오. 산속을 뒤져 산적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작전이오.”

“매복작전은요?”

“역으로 매복해 있다가 산적들이 나타나면 소탕하는 작전이오.”

“호송작전은?”

“쟁자수로 위장해서 표물을 운송하는 표국에 섞여 동행하는 것이오.”

흠.

고민된다.

임무 특성도 다 다르고.

“산적들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은 임무가….”

“호송작전이오.”

“그걸로 하죠.”

최우선적 과제는 산적 100명을 처치해서 천기자가 준 퀘스트부터 완수하는 것.

산적과 마주칠 확률이 가장 높은 퀘스트를 선택하는 게 맞다.

“가장 위험한 임무인데, 괜찮겠소?”

“상관없습니다.”

“좋소.”

형 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들을 처치하거든 귀 한쪽만 베어 오시오. 산적의 귀 하나당 추가로 수당을 지급할 터이니.”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산적 사냥꾼]

내용 : 처치한 산적의 귀를 베어가 형 대인에게 가져다주자.

타입 : 일반 / 반복

진행률 : 해당 없음

보상 : 고대 유물 항아리 1개

경고 : 애먼 사람의 귀를 베어 가면 크게 혼쭐이 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오.

반복 퀘스트까지.

[알림: <호송작전>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알림: <산적 사냥꾼>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마침 북풍표국의 표물이 곧 출발할 예정이니 관문 앞으로 가 그들과 합류하시오. 쟁자수로 위장하는 걸 잊지 말고.”

“예, 대인.”

“그럼, 무운을 빌겠소.”

관아를 나서자마자 곧장 관문으로 가 북풍표국 행렬에 합류했다.

“반갑소. 곽 표두라 부르시오.”

이번 표행의 총책임자인 곽 표두가 반겨 주었다.

“이 옷으로 갈아입고 쟁자수로 위장하시면 되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곽 표두가 의심스럽단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왜 이래?

“그 전서구.”

곽 표두가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꼬꼬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우리 북풍표국에서 데려가신 것이오?”

“아, 꼬꼬요? 그럴걸요? 선물해주신 분이 북풍표국에서 사다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헉!”

“……?”

“어, 어떻게 그 전서구를 길들이신 것이오?”

곽 표두가 무슨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 그놈은 악마요! 악마! 국주님조차 길들이지 못한 사고뭉치란 말이오! 어찌 그놈을 길들이셨단 말이오!”

길들인 적 없는데?

“길들일 필요가 없던데? 너무 착해서?”

“뭐요?!”

“꼬꼬야.”

보란 듯 팔을 내밀었더니 꼬꼬가 팔뚝 위에 와 앉았다.

“구! 구구구!”

꼬꼬가 부리로 내 손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히, 히익?!”

“아이고, 착하다.”

“맙소사! 그 악마 같은 놈을 길들이다니! 도대체 그대의 정체가 뭐요?”

“연오랑인데요.”

“……?”

“저 일단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악마 같은 놈이라니.

우리 꼬꼬가 얼마나 착한데.

“그렇지? 우리 꼬꼬 착하지?”

“구! 구구구!”

꼬꼬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쟁자수로 위장한 뒤 북풍표국의 표행에 따라나섰다.

반나절쯤 갔나.

두두두두!

말을 탄 의창사걸이 우리 행렬을 지나쳐 맹렬하게 질주했다.

“저저!”

곽 표두가 의창사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고작 네 명이서 저렇게 무작정 달려 나갔다가는 크게 경을 치를 터인데! 허어!”

“내버려두시죠.”

곽 표두에게 조언했다.

“뒈지고 싶다는데 어떡합니까. 뒈지게 내버려둬야지.”

새파란 애송이들 주제에 산적 토벌은 개뿔.

에라이, 이 멍청한 놈들아.

산적들이 퍽이나 니들한테 잡히겠다.

산적들이 니들을 잡았으면 잡았지.

굳이 내 손으로 혼내줄 필요도 없게 생겼네.

아깝게.

* * *

어두운 밤이 됐다.

내가 만약 산적이라면…….

‘무조건 밤에 기습하지.’

곽 표두는 산적들에게 위치가 들킬 것을 염려해 모닥불조차 피우지 못하게 했지만, 불행히도 달이 너무 밝다.

마침 보름이라 캄캄한 밤인데도 시야가 훤하다.

산적들이 원거리에서 기습 공격을 가해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거 첫날부터 공격받게 생겼다.

“뀨! 주인놈아! 왜 그러냐!”

“적들이 공격해 오기 딱 좋아 보여서.”

“뀨! 주인놈아! 그럼 햄찌가 한 번 탐지해 보겠다! 뀨!”

“아? 그거 쓰게?”

“뀨! 그렇다!”

“잘됐네.”

햄찌는 꽤 믿을 만한 탐지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이럴 때면 큰 도움이 되고는 했다.

“급급여율령! 뀨!”

햄찌가 부적을 꺼내 술법을 부렸다.

쫑긋쫑긋!

햄찌의 귀가 쉴 새 없이 쫑긋대며 주변을 탐지했다.

[알림: 햄찌가 <미어~ 캣!> 스킬을 사용해 주변을 탐지합니다!]

[알림: 현재 탐지 가능한 범위는 반경 500미터입니다!]

만약 산적들이 500미터 안으로 접근해 오면…….

“뀨! 주인놈아!”

“응?”

“산적들이 온다! 뀨!”

“산적들이? 아군으로 오해한 거 아니고?”

“뀨! 아니다! 산적들이 매복해 있는 아군 뒤를 노린다! 뀨우!”

“거리는?”

“이제 막 탐지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뀨!”

“미친!”

황급히 곽 표두를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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