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어쩐지.’
그럼 그렇지.
좀 쎄하다 싶으면 높은 확률로 뒤가 구린 놈이다.
나는 촉이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다.
틀린 적?
거의 없다.
신들렸다거나 그래서 그런 게 아니다.
경험.
판타지 서버에서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으며 온갖 인간 군상들과 부대껴온 나다.
개중에는 겉으로는 성자(聖子)인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끔찍하고 추악한 짓거리를 저지른 놈들도 부지기수.
내가 운영하는 길드의 일원이었으면서 적대 길드에게 정보를 팔아넘긴 놈도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중엔 앞통수까지 맞았다.
그렇게 게이머고 NPC고 할 것 없이 온갖 놈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객잔에서도 식인마녀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초에 촉이 발동하지 않았으면 이 자식에게 심안을 쓸 생각도 안 했겠지.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개념통닭이 물었다.
“네?”
“빤히 쳐다보시길래.”
“아뇨.”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냥 멍때린 건데요.”
“아하?”
“얼른 가죠. 시간도 늦었는데.”
“그럽시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쥐새끼를 알아냈다고 해서 바로 족치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지.
암, 그렇고말고.
* * *
“연 소협!”
산적들을 데리고 표물이 있는 곳으로 가자 곽 표두가 크게 반겨 주었다.
“정말 대단하오! 어찌 산적들을 해치우셨소!”
“별말씀을요.”
“이게 다 연 소협의 활약 덕분이오! 정말 감사하오!”
척!
곽 표두가 포권을 취하며 우리의 공로를 치하했다.
“내 본 표국의 국주님께 보고를 올려 그대들이 특별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소이다! 다들 너무 고생하시었소!”
띠링!
그러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북풍표국으로부터 특별수당을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알림: 1주일 후 가까운 북풍표국으로 찾아가 특별수당을 수령하십시오!]
굿.
보상이 주어지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곽 표두님.”
“말씀하시오, 연 소협.”
“일단 극기관으로 돌아가죠.”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게 그러니까.”
속닥속닥.
곽 표두에게 내부에 쥐새끼가 있는 것 같단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그게 정말이오?”
“쉿.”
혹시나 누가 들을까 싶어 곽 표두의 입을 막았다.
“위험하니까 일단 돌아가죠. 이대로 운송을 강행했다간 또 산적들의 습격을 받을 테니까.”
“하지만….”
곽 표두가 망설였다.
이해는 된다.
표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뢰.
정해진 기한 안에 표물을 안전하게 운송해내는 게 표국의 존재 이유일 테니까.
“운송을 강행한다고 해도 득보다 실이 클 겁니다. 숨어 있는 쥐새끼들이 계속 정보를 흘릴 테니까요. 운송에 아예 실패하는 것보다는 기한이 늦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 그리하겠소.”
한참 고민하던 곽 표두가 결정을 내렸다.
“현명하신 판단이세요.”
“대신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하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럼 쥐새끼들은….”
“극기관으로 돌아가서 형 대인과 얘기를 나눠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알겠소. 기다리리다.”
곽 표두가 내 조언을 따라 준 덕분에, 행렬은 운송을 중단으로 다시 극기관으로 복귀했다.
극기관으로 복귀하자마자 형 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그랬구려.”
내부에 쥐새끼들이 있다는 얘길 들은 형 대인은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테지.
형 대인도 바보가 아니니까.
다만, 쥐새끼를 색출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뿐.
“내 잠시 확인해 보겠소.”
“그러시죠.”
형 대인이 그간 임무에 참여한 게이머들의 명단을 주르륵 훑어보았다.
“맙소사. 실패한 작전마다 개념통닭 그자가 참여했었구려.”
“한 명이 아닐 겁니다.”
쥐새끼가 하나일 리가 없다.
최소 여러 명.
많게는 수십 명이겠지.
NPC고 게이머고 할 것 없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연 소협?”
“우선 쥐새끼들이 활동하게 내버려둬야죠.”
“음?”
“쥐새끼들은 파악만 해 놓고 내버려두시죠. 지금 쥐새끼들을 잡으려 들었다간 맹호채에서 이 사실을 알아챌 겁니다.”
“하긴. 그도 그렇겠구려.”
“일단 이렇게 하죠.”
형 대인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속닥속닥.
형 대인에게 내 계획에 대해 얘기해 줬다.
“그게 가능하겠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으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알겠소. 내 이번 일은 연 소협을 믿겠소.”
“감사합니다.”
그렇게 형 대인과 산적들, 정확히는 맹호채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웠다.
후후후.
생각만 해도 즐겁다.
찌릿찌릿!
벌써부터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다.
“뀨! 주인놈아! 또 누구 엿 먹일 생각하냐! 뀨!”
“으응?”
“주인놈 그 표정 나왔다! 뀨!”
“무슨 표정?”
“주인놈이 누군가 엿 먹일 생각할 때 나오는 표정 말이다! 뀨!”
“그,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햄찌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
“뀨! 뭐냐! 햄찌도 알려 줘라! 뀨!”
“두고 보면 알아.”
“뀨?”
“일단 쥐새끼들부터 솎아내고.”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곳 극기관에서 활동하는 쥐새끼들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다.
어, 햄찌야 너 말하는 거 아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 * *
쥐새끼들을 솎아내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극기관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를 잡고, 한 3일 오가는 게이머들을 살펴본 결과 대충 누가 쥐새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총 7명이라. 많진 않네.’
햄찌와 꼬꼬에게는 개념통닭을 감시하게 했다.
개념통닭은 한 며칠 몸을 사리는 것 같더니, 이내 곧 어딘가로 전서구를 날렸다.
보나 마나 산적들에게 보내는 편지겠지.
“야, 꼬꼬야.”
“구륵?”
“저기 쟤 어디로 가는지 쫓아갈 수 있겠어?”
“구! 구구구!”
꼬꼬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가라! 꼬꼬!”
“구! 구구구!”
꼬꼬가 개념통닭의 전서구를 뒤쫓았다.
그날 오후.
“구! 구구구!”
개념통닭의 전서구를 미행했던 꼬꼬가 돌아왔다.
“산적들 소굴이 어딘지 길을 알려 줄 수 있겠냐?”
“구륵!”
꼬꼬가 고개를 젓더니, 탁자 위에 펼쳐 놓은 지도로 다가가 한 점을 콕! 하고 찍었다.
“으응? 너 뭐 해?”
“구! 구구구!”
“거, 거기라고? 폭포가 있는 곳?”
“구! 구구구!”
꼬꼬가 그렇다는 듯 지도의 특정 지점을 부리로 콕콕! 쪼았다.
너… 지도도 볼 줄 알았냐?
‘이 자식 비둘기 아니네.’
아무래도 수상하다.
제대로 날 잡고 깃털 다 뽑아서 확인 좀 해 봐야지.
아무리 똑똑해도 그렇지 무슨 놈의 비둘기 주제에 독도법까지 할 줄 아는 게 말이 돼?
‘쥐새끼들이 누군지도 알아냈고. 산적 소굴 위치도 알아냈고.’
어쨌거나 작전 준비는 끝이다.
“내일 바로 시작하시죠.”
“벌써 준비가 끝난 거요?”
“쥐새끼들도 다 알아냈고. 산적 소굴 위치도 알아냈는데. 그럼 준비 끝이죠.”
“허어.”
형 대인이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했다.
“연 소협. 정말 대단하오. 내부의 첩자들을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데, 맹호채의 본거지까지 알아내다니.”
“별말씀을요.”
“내 이번 사건이 해결되면 조정에 보고를…….”
“안 돼!!!”
“왜, 왜 그러시오?”
아차.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네.
‘다시 황궁으로 끌려들어 갈 순 없지.’
답답한 황궁 생활은 딱 질색이다.
사실 꿀도 많이 빨긴 했지만.
‘규화보전 비급이야 천천히 수정해서 주면 되는 거니까.’
두목님과의 약속을 잊은 건 아니다.
단지 환관 노릇하기가 싫은 거지.
“저는 큰 상을 바라거나 명성을 드높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요. 조정에 굳이 제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음.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려.”
“사연까지는 아니고요. 이래저래 귀찮아지는 게 싫을 뿐인 거죠.”
“그렇다면 알겠소. 내 조정에 보고할 때 연 소협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다.”
“감사합니다.”
“그럼….”
“예, 슬슬 시작하시죠.”
“연 소협은 어찌할 생각이오?”
“전 미리 산적 소굴에 가 있으려고요.”
“괜찮겠소?”
형 대인이 놀라 물었다.
“그건 너무 위험하질 않소? 어찌 혼자서 그 위험한 곳에 가 있으려 하시오?”
“세상에 안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불 밖으로 나가면 다 위험한 겁니다. 당장 길 가다 뒤로 자빠져서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하지만….”
“저는 걱정 마시고 작전이나 잘 진행해 주시죠.”
“정 그렇다면 알겠소. 먼저 가 계시오.”
“예, 그럼 이만.”
형 대인을 뒤로하고 즉시 맹호채의 본거지로 향했다.
* * *
꼬꼬의 안내에 따라 맹호채의 본거지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라고?”
“구! 구구구!”
“아무것도 없는데?”
도착해 보니 그저 깊고 깊은 숲속일 뿐, 산적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기대한 내가 바보였나?’
생각해 보니 비둘기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 것 같다.
그래, 비둘기가 어떻게 지도를 보겠어.
“꼬꼬야.”
“구륵?”
“다음부터는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해라. 혼 안 낼 테니까. 괜히 무리수 두지 말고.”
“구! 구구구!”
꼬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지저귀었다.
“구! 구구! 구구구구! 구구! 구구구! 구구!”
“…뭐라는 거야.”
“구! 구구구! 구구구!”
아직 교감이 부족해서 그런가.
도통 뭐라는지 모르겠다.
“뀨! 주인놈아!”
“응?”
“여기 진법 설치돼 있다! 뀨!”
“진법?”
“뀨! 그렇다! 근데 어려운 건 아니다! 뀨우! 그냥 눈속임이다! 뀨!”
“그래?”
“햄찌가 길 찾아준다! 뀨! 급급여율령! 뀨!”
주변 탐지 술법을 사용한 햄찌가 두 귀와 코를 쫑긋거렸다.
“뀨! 주인놈아! 이거 쉽다! 햄찌만 따라와라! 뀨!”
“쉬워?”
“뀨! 그렇다! 햄찌 탐지 능력으로 올바른 길 찾을 수 있다! 뀨!”
속는 셈 치고 햄찌를 따라 걸어 보았다.
한 5분쯤 따라 걸었나?
“어?”
눈앞에 목책으로 빙 둘러싼 커다란 산채가 떡하니 나타났다.
산채 입구에 투박한 필체로 맹호채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
‘이래서 못 찾았네.’
여태 산적 토벌에 실패한 게 이해가 간다.
본거지를 진법 안에 숨겨 놨으니 관군의 토벌이 있을 때마다 무사했겠지.
“뀨! 어떠냐! 꼬꼬 안 틀렸다! 뀨! 햄찌도 길 찾았다!”
“구! 구구구!”
어이구, 이 귀여운 자식들.
칭찬해 달라고 눈 반짝거리는 거 보소.
“그래, 다들 잘했다.”
햄찌와 꼬꼬를 칭찬해 주고 맹호채 본거지로 잠입했다.
잠입은 쉬웠다.
진법 안에 본거지를 만들어 놔서 그런지 정문에 보초 한 명 없었다.
‘그냥 마을이잖아?’
산채 안은 그냥 하나의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곳곳에 집들이 지어져 있었고, 대장간과 같은 시설물들도 보인다.
“이얍!”
“합!”
저 멀리 연병장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웃통을 벗어 진 산적들이 단체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햄찌 넌 꼬꼬랑 가서 관군이 오면 여길 안내해 줘. 난 여기 숨어서 상황 좀 지켜보게. 하루 이틀 정도 걸릴 거야.”
“뀨! 알겠다!”
길 안내를 위해 햄찌와 꼬꼬를 보내고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이 외모는 눈에 좀 띄는 편이라서.
윽, 냄새.
미리 닦아 놨는데도 심하다.
아마 색귀 놈의 입 냄새겠지?
으으으.
농민의 얼굴로 위장하고 산적 흉내를 내며 은근슬쩍 산채 안을 걸어 다녔다.
“자네 이번에도 휴가받으면 기루에 갈 건가?”
“껄껄! 암! 가야지! 빙빙이 고년 보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산적 두 명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잡담을 나눴다.
나름 몇백 명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모양.
‘쭉 둘러보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적 소굴을 둘러보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 사랑스러운 보물창고가 어디 있을까~?’
산적들이 재물을 쌓아 놓은 보물창고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놓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