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우리는 그딴 돼지도 안 먹을 것 같은 음식 따위 먹지 않을 것이다!”
맛있던데…….
“당장 제대로 된 음식을 가져와라! 그러지 않으면 내 풀려나자마자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니!”
얼씨구.
넌 이 상황에서 반찬 투정이 나오냐?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네.
아니지.
혼쭐이 덜 난 거지.
그럼 혼쭐이 나게 해 줘야겠지?
어디 보자…….
어떻게 혼쭐을 내 주나…….
‘아, 그게 있었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 혼 좀 나 봐라.’
품속을 뒤져 초강력 특제 변비약을 꺼낸 다음 음식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여기 두고 갈 테니까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들 해라.”
“닥쳐라! 당장 제대로 된 음식을 가져와라! 어서!”
왈왈.
어디서 개가 짖나…….
‘운 좋은 줄 알아라, 인마.’
몰래 잠입 중이라 참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짜 ㅈ나 패 줬을 거다.
하여간에 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놈들이라니까.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변비약이기에 초강력 특제 변비약인 거지?’
밥을 놓고 나오면서 초강력 특제 변비약에 대해 알아보았다.
[초강력 특제 변비약]
중증 변비 환자들을 위한 변비약.
100년 묵은 숙변도 한 번에 해결해줄 만큼 그 효과가 탁월하다.
분류 : 소모품 (약)
등급 : 희귀
효과 :
- 100% 확률로 변비를 치료함
주의사항 1 : 단 한 방울만으로도 10명의 변비를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약효가 강력하므로, 반드시 물에 희석시켜 사용해야 한다.
주의사항 2 : 변비 환자가 아닌 사람이 먹으면 한 달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으응?
한 방울로 10명의 변비를 치료할 수 있을 정도라고?
‘네다섯 방울은 떨어뜨린 것 같은데…….’
뭐.
알아서들 하겠지.
애송이들이 설사로 고생하든 말든 내가 알 게 뭐람.
* * *
사실 의창사걸은 배가 무척이나 고픈 상태였다.
평소에 잘 차려진 산해진미만 먹다가 산적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려니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아서, 잡혀 온 날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물밖에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굶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꿀꺽!
꼬르륵!
의창사걸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윽.
의창사걸 중 우두머리 격인 이동열이 벌떡 일어나더니 밥상머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정작 연오랑에게 반찬 투정을 부린 장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자! 뭐 하시는 거요!”
“아니! 그걸 먹겠다는 것이오?”
“정말로 그걸 드시나요?”
같은 의창사걸의 일원인 왕근, 화우빈, 그리고 한령령은 어이가 없었다.
돼지도 안 먹을 것 같은 음식이라며 제대로 된 음식을 가져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욱여넣고 있는 꼴을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건! 쩝쩝! 내가 먹고 싶어서! 쩝쩝! 먹는 게! 쩝쩝! 아니오! 쩝쩝쩝!”
이동열이 명문가 자제의 품위 따위는 개나 줘 버린 듯 쩝쩝대며 대꾸했다.
“여길 탈출하려면! 쩝쩝! 기력이 있어야! 쩝쩝쩝! 할 것이 아니오! 쩝쩝쩝!”
이동열이 궤변을 늘어놓았다.
“탈출할! 쩝쩝! 기회만을 엿보면 뭐 하겠소! 쩝쩝쩝! 기력이 없으면 기회가 온다 해도! 쩝쩝! 탈출할 수 없을 터! 쩝쩝쩝! 이건 내가 배가 고파서! 쩝쩝! 먹는 게 아니오! 쩝쩝! 그저 탈출을 위해! 쩝쩝! 허기를 달래는 것이오!”
왕근, 화우빈, 한령령은 그런 이동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허기를 달래 기력을 보존하겠단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부터 굶지 말았어야 할 터.
이제 와 저렇듯 게걸스레 음식을 먹어 대며 궤변을 늘어놔 봤자 설득력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왕근, 화우빈, 한령령은 감히 이동열에게 따지고 들지 못했다.
이동열은 의창에서 가장 위세가 대단한 의창 이씨 가문의 둘째 아들.
왕근, 화우빈, 한령령의 집안도 좋긴 했지만 감히 이씨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 역시 굶주려 있기는 매한가지라 음식을 앞에 두고 이동열과 말다툼을 벌일 만한 기력이 없는 상태였다.
“나, 나도 먹겠소!”
“이건 다 탈출을 위한 것이오!”
“흥! 저도 먹겠어요!”
결국, 의창사걸은 연오랑이 놓고 간 음식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 버렸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픔 앞에서 미식(美食)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맛대가리 없는… 끅. 음식이었소. 흠. 흠흠흠.”
이동열이 괜히 머쓱했는지 말했다.
“와신상담이라 하지 않았소?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매일 밤 가시 돋친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월나라의 군주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고 하질 않소이까? 그들에 비하면 이런 개밥 같은 음식을 먹은 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오. 탈출을 위해서라면 이런 개밥만도 못한 음식쯤은 참아야 하는 것이겠지.”
왕근, 화우빈, 한령령은 이동열의 개소리에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았다.
“이 공자의 말씀이 옳아요.”
“동의하오.”
“탈출을 위해 개밥 같은 음식을 참아내는 이 공자의 정신력이 가히 부차와 구천에 못지않구려.”
감옥 앞을 지키던 산적들이 그런 의창사걸의 형태를 비웃었다.
“놀고들 자빠졌군.”
“그저 배가 고파 처먹은 것을 그런 개소리까지 지껄여 가면서 포장하고 싶으냐?”
“쯧쯧. 명문가의 자제들이라 뭐가 다른 줄 알았더니 대가리에 똥만 찬 것들이로군.”
그런 산적들의 빈정거림에 의창사걸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딴청을 피웠다.
* * *
몇 시간 뒤.
저녁때가 다 되었을 무렵.
“다들 조금만 참으시오. 우리가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다 한들 우리들의 가문에서 구하러 올 것이오.”
이동열이 나름 의창사걸의 수장이랍시고 왕근, 화우빈, 한령령을 다독였다.
“희망을 잃지 마시오. 진정한 무인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뽝!!!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뭐, 뭐지!”
오죽 그 소리가 컸으면, 보초를 서며 꾸벅꾸벅 졸던 산적들이 화들짝 놀랐을 지경이었다.
“큭! 크으윽!”
이동열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이 공자! 갑자기 왜 그러시오!”
“괜찮으신 것이오? 이 공자!”
“이 공자! 무슨 일이에요!”
왕근, 화우빈, 한령령이 이동열을 둘러쌌다.
“그, 그게. 크윽. 으윽. 가, 갑자기 배가. 으으윽.”
이동열이 괴로워하던 그때.
“윽! 무슨 냄새지?”
“시, 시체 썩은 냄새가 나오!”
“너무 지독해요!”
왕근, 화우빈, 한령령이 어디선가 풍겨 온 악취에 코를 부여잡고 눈살을 찌푸리던 순간.
“허, 허억!”
이동열이 마치 번개에라도 맞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뿌직!
뿌지지지지직!
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흐악! 흐아아아악!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동열이 괴성을 내지르며 설사를 쏟아냈다.
오죽 괴로웠으면, 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을 지경이었다.
“윽!”
“이, 이 공자!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꺄아아아악! 똥이야! 똥!”
왕근, 화우빈, 한령령이 기겁했다.
설마하니 이동열이 이런 추태를 보일 줄이야.
하지만 왕근, 화우빈, 한령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크윽! 가, 갑자기 배가! 으윽!”
“크으으으윽!”
“자, 잠깐만요! 아아악! 아랫배가 아파요! 아악!”
왕근, 화우빈, 한령령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한번 요동치기 시작한 그들의 배 속에는 거대한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육체는 이미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푸화아아아아악!
뿌지이이이이이이익!
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
왕근, 화우빈, 한령령도 이동열의 뒤를 이어서 장에 든 모든 것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흐악! 흐어어어억! 흐어어어억!”
“아, 안 돼! 으아아아악!”
“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
“흐앙! 흐아아아아앙!”
의창사걸이 온몸 비틀기를 시전하며 참아 보려 했지만,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설사를 멈추지는 못했다.
“흐억! 흐어어억! 흐어어어억!”
“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
“크으으윽! 으헉! 으허허허헉!”
“흐아아앙! 흐아아아아앙!”
좁아터진 감옥 안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바닥에는 똥물이 흥건하고.
의창사걸은 선 채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고.
“으윽!”
“저 미친놈들이 뭐 하는 짓이야!”
“이런 더러운!”
그 와중에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보초를 서던 산적들이 황급히 감옥을 뛰쳐나왔을 정도였다.
장 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숙변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그 냄새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휴. 드디어 끝났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자 드디어 숨 쉴 틈이 생겼다.
취사장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네놈 말이다.”
덕팔이가 날 불렀다.
“그냥 우리 취사반에 들어오는 게 어떠냐.”
“왜요?”
“칼질이 예사롭지 않아서 그런다.”
“칼질 잘한다고 요리 잘합니까?”
“그럼.”
응?
“칼질이 요리의 기본인데. 요리란 재료를 잘 다듬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됐습니다. 저 그냥 산적 할래요.”
“이놈이? 요리하는 산적은 산적 아니냐?”
“요리만 할 거면 그냥 작은 식당이나 객잔 차려서 먹고살지 뭐 좋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그, 그건.”
너무 정곡을 찔렀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요리밖에 없는데, 인생이 꼬이고 꼬이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다.”
그렇겠지.
핑계 없는 무덤 없으니까.
“내가 이래 봬도 한때는 꽤 잘나가던 객잔에서 일하던 숙수였다. 지금이야 이런 산골짜기에서 산적들 밥이나 해 먹이고 있는 처지지만.”
“그럼 형님은 산적질은 안 하시는 겁니까?”
“산적질은 무슨.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데 어떻게 산적질을 하겠냐?”
뻥치시네.
아까 닭 모가지도 한 번에 콱 비틀어 버렸으면서.
“나야 사정이 있어 여기서 이러고 있다만, 네놈은 손에 피 묻히지 마라.”
“예?
“돈 좀 만지겠답시고 손에 피 묻혀 봐야 너만 손해다. 업보 쌓으면 나중에 다 돌아오게 돼 있는 거야. 네놈이 신참이라니까 하는 말이니까, 듣기 싫은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생각은 안 했고요.”
“그냥 취사반에서 들어와서 내 밑에서 요리나 배우는 게 어떠냐? 산적질? 그것도 다 목숨 내놓고 하는 짓이다. 네놈이라고 칼 안 맞을 것 같냐?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면 네놈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다.”
솔직히 다 아는 얘기라 듣고 싶진 않은데, 나름 진심 어린 충고 같아서 예의상 들어주기로 했다.
“산적질은 관두고 나한테 요리나 배우면서 돈이나 모아라. 취사반에서 일해도 다달이 돈은 주니까.”
“그다음은요?”
“나중에 네놈 말마따나 자그마한 식당이나 객잔 하나 차리면 되지 않겠냐. 그게 마음 편히 사는 길이다. 밤에 두 다리 쭉 뻗고 자려면 괜히 손에 피 묻히지 마라.”
어쩌면 이 진덕팔이란 산적… 꽤 괜찮은 놈일지도?
산적소굴에서 밥이나 하고 있는 건 맞는데, 어째 말하는 게 악인 같지는 않다.
뭐 하는 인간이야?
[진덕팔]
타입 : NPC
종족 : 인간
성별 : 남
나이 : 44
레벨 : 86
등급 : 삼류
신분 : 산적
소속 : 맹호채
직업 : 숙수 (요리사)
특징 : 비록 까막눈이지만 어깨너머로 어렵게 요리를 배웠으며, 그 실력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산적 소굴에서 일하고 있지만, 도적질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적은 없으며 나름 심성이 착한 인물이다.
흠.
그냥 삼류 요리사인데.
[심안 추가 정보]
요리사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인물로, 성장하기에 따라서 현경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 있는 인물.
제대로 요리를 배운다면 어마어마한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잠재력 : ★★★★★★★★~
어?!
잠재력이 8성급 이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