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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59화 (59/115)

제59화.

어이가 없네.

이런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NPC가 왜 이런 산적 소굴에 있는 거냐고.

어쩐지 밥이 맛있긴 하더라.

몇백 명분을 한꺼번에 만드는데도 맛이 유지되는 걸 보면 보통 실력은 아니긴 하지.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딱히 이상할 게 없기도 하다.

사람의 적성과 재능은 천차만별이니까.

난 누구나가 크든 작든 고유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도, 그걸 발견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다.

운이 좋으면 어려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거고.

운이 나쁘면 자신이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천재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혈통을 타고나고, 좋은 집안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당장 동남아에서 싸구려 공산품이나 파는 소년이 몇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든가.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마어마한 게임 재능을 지녀서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성장한다거나.

혹은 유럽의 어느 시골 소년이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가 된다거나.

세상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하니까.

당장 나조차도 10년 전엔 그저 그런 게이머였을 뿐이고.

‘이런 데서 썩기엔 아깝네. 제대로 요리를 배웠으면 크게 될 인물인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덕팔이가 물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음?”

“그럼 형님은 요리를 정말 좋아하시는 겁니까?”

“좋아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려서부터 객잔 주방에서 허드렛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거지.”

“그럼 안 좋아하신다는 건가요?”

“안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덕팔이가 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

안 어울려.

“한때는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적도 있었지.”

“근데 왜 안 배우셨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언제 요리를 배우겠냐.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아.”

“나름 독학을 해 보려고도 했는데.”

했는데?

“흠. 흠흠. 먹고사느라 바빠서 요리 관련 서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흠흠흠.”

뻥치시네.

까막눈이면서.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귀엽긴 하네.

풉.

“만약 제대로 요리를 배워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럴 일이 있겠냐?”

덕팔이가 피식 코웃음 쳤다.

“난 말이다. 살인자다.”

“예?!”

언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인다면서?

“믿고 말고는 네놈 자유겠지만. 바람 난 마누라가 나한테 누명을 씌웠다.”

“어떻게요?”

“내가 만든 음식에 독을 탔더라고. 그 음식을 먹고 죽은 게 하필이면 높으신 양반이라. 졸지에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마누라가 바람난 건 어떻게 아셨고요?”

“내가 도망치자마자 옆 가게 만두 팔던 놈이랑 붙어먹더라.”

“아.”

“내 식당도 그 만두가게 주인놈이 헐값이 꿀꺽 삼켜 버렸지.”

“복수는 하셨어요?”

“복수는 개뿔.”

덕팔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장 관군들 피해서 도망치기 바쁜데 무슨 수로 복수를 하겠냐? 내가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쩝.”

“아이고.”

“그리고 난 사람 못 죽인다. 피만 봐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벌벌 떨려서.”

“그럼 목 졸라 죽이면 되지 않나요? 그럼 피 안 나는데. 아니면 살살 죽여요. 그럼 피 덜 나와요.”

“이 미친놈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덕팔이가 버럭 화를 냈다.

“나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인다니까!”

아니…….

맨손으로 닭 모가지 비틀고 펄떡대는 생선 대가리 칼로 자른 사람이 누군데…….

“예, 뭐. 알겠습니다.”

“그래서 취사반에 들어올 생각이 있다는 거냐? 없다는 거냐?”

“그건 나중에 얘기 나눠 보죠. 지금 당장은 결정하기 곤란하네요.”

“손에 피 묻히기 전에 빨리 지원해라. 피 묻히고 나면 늦는다.”

“예.”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눼에.”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라니까!”

“뉘예, 뉘예.”

“이놈이?”

“저 일단 복귀할 테니까 내일 아침에 뵙죠.”

덕팔이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관군들이 들이닥칠 때까지 하루 이틀 정도는 시간이 있으니까… 낮엔 취사장에 숨어 있다가 밤 되면 움직여야지.’

때마침 해도 슬슬 저물겠다, 은밀하게 움직이기 딱 좋아 보였다.

* * *

산채 안의 경비가 형편없어서 몰래 돌아다니기가 너무 편했다.

위기의식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들 같으니.

산채가 진법 안에 있으니까 딱히 경비를 세울 필요도 없겠지.

나야 고맙지만.

두목이 사는 전각인 맹호각 주변은 나름대로 신경을 썼는지, 보초들이 여럿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몰래 잠입하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초들이 나 여기 있소! 하고 횃불이나 등잔을 들고 있어 준 덕분이다.

아이고, 고마워라.

슥, 스윽.

보초들을 피해 전각 안으로 기어 들어간 뒤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 2시쯤이 되자 전각 안을 드나들던 산적들의 발길도 끊기고, 곳곳에 불이 꺼졌다.

‘어디 보자.’

살금살금 발걸음으로 은밀하게 전각 안을 살펴봤다.

회의실, 연회장, 화장실…….

딱히 보물창고라고 부를 만한 곳은 없었다.

에라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분명 훔친 물건들을 쌓아 놓은 곳이 있긴 할 텐데…….

아.

‘저기네.’

전각 뒤쪽으로 커다란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앞을 산적 여럿이서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 그렇지.

그 많은 표물들을 강탈했으면 쌓아 두는 곳이 있어야 정상이지.

확인.

‘관군들이 쳐들어온 사이에 털어야지.’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긴 해도, 알짜배기들을 챙길 만한 여유 정도는 있겠지.

‘좀 더 가 보자.’

훔친 물건들을 쌓아 놓은 곳은 파악했고.

‘진짜 알짜배기들은 두목 근처에 있을 텐데.’

경험상 정말 값어치 나가는 물건들은 저런 동굴이 아니라 자그마한 밀실 같은 곳에 숨겨져 있기 마련.

어디 있을까…….

우르르르르!

반대편에서 산적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이 미친놈들아! 오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

급한 대로 모퉁이 뒤로 숨었다.

설마 들킨 건가?

다행스럽게도 산적들이 몰려온 이유는 내가 아니라 다른 용건 때문인 모양이다.

다 같이 회의실로 몰려가는 걸 보면.

“어서 오십시오! 채주!”

“어서 오십시오! 채주!”

“어서 오십시오! 채주!”

마지막으로 커다란 덩치를 지닌 산적이 회의실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덩치 보소.

누가 봐도 두목이네.

장군감이야, 아주.

‘쥐새끼들이 정보를 보내와서 급하게 회의를 진행하는 건가?’

왠지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오밤중에 갑자기 회의를 진행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기회다.’

이참에 두목의 침실을 살펴보기로 했다.

두목의 침실이니까 뭔가 훔칠 만한 게 있겠지.

어쩌면 진짜 알짜배기들만 보관해 놓은 보물창고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느 조직이든 회의를 한번 시작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

그러니까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겠지.

* * *

맹호각.

맹호채주의 침실.

전각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두목의 침실로 숨어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 산적들이 다 회의실로 몰려간 덕분에 지키는 사람도 없었고.

조심조심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두목의 침실은 호화롭긴 했지만 딱히 가치 있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분명히 있을 텐데.’

방을 구석구석 뒤지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중.

‘웬 책장?’

침실 한편에 자리한 책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수상하다.

물론 산적이라고 해서 책을 읽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문제는 어떤 책이냐는 거겠지.

어디 보자…….

책장에 뭐가 꽂혀 있나…….

논어, 맹자, 대학, 대학, 중용, 시경, 상서, 주역.

뭔데?

무슨 유교 산적도 아니고.

산적 두목 침실에 사서삼경이 왜 꽂혀 있어?

춘화집이나 야설집이면 몰라도.

‘여긴가?’

킁킁.

뭔가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책장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여기다.’

책장을 슬쩍 밀었더니 밀실로 향하는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캬~

역시~~~

‘안쪽에서 닫고.’

책장 뒤에 달린 손잡이를 당겨 입구를 닫았다.

이러면 두목이 돌아와도 바로 걸리지는 않겠지.

확인하러 들어오지 않는 이상.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보물을 찾자~♪

보물을 찾자~♬

소리는 낼 수 없으니까,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비밀통로의 계단을 지나 밀실에 들어섰다.

“오오.”

역시나.

비밀통로를 지나 도착한 밀실에는 이런저런 아이템들이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다.

띠링!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삼류 보물 사냥꾼>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삼류 보물 사냥꾼]

처음으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분류 : 칭호

등급 : 희귀

효과 :

- 보물창고를 발견할 확률 +20%

참고 : 발견한 보물창고의 횟수가 누적될수록 칭호가 강화됩니다!

크.

역시 칭호는 보물 사냥꾼이 최고지.

암, 그렇고말고.

칭호도 획득했겠다, 본격적으로 뭐가 있는지 봐야지.

우리 두목님께서는 얼마나 가치 있는 물건들을 꿍쳐 놓고 계셨을까.

- 최하급 공청석유

- 백년하수오

- 회륜반

- 중급 야명주 × 13

- 천마백불진

- 의문의 장보도

- 비응포

- 맹호파천곤 비급

- 역사(力士)의 팔찌 × 2

- 윤활흉갑

(중략)

역시 두목 전용 보물창고라 그런지 잡템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네.

하나같이 다 알짜배기들이야.

- 최하급 도깨비 방망이

잘 나가다가 또 뭔데…….

왜 도깨비 방망이가 여기 있어…….

[최하급 도깨비 방망이]

태한에만 서식하는 요괴인 도깨비들이 사용하는 방망이.

어떻게 된 일인지 이곳 중원 대륙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금 나와라와라 뚝딱!

은 나와라와라 뚜욱딱!

강한 무기는 아니지만 나름 절륜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분류 : 둔기 (방망이)

등급 : 희귀

내구도 : 143 / 700

레벨제한 : 50

사용제한 : 없음

특수효과 :

- 적중 시 1% 확률로 은자 1~30개가 랜덤하게 떨어집니다.

- 적중 시 0.1% 확률로 금자 1~30개가 랜덤하게 떨어집니다.

“하하,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뭐 이런 게 다 있냐.

대놓고 돈 복사가 되는 아이템이이라니.

최하급이 이 정도면 제일 좋은 건 어느 정도라는 거야?

막 금괴가 생성되나?

나중에 태한에 가게 되면 구경할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태한까지 갈 일이 있을지.

하도 난도가 높은 지역이라 랭커들이 아니면 얼씬도 못 한다던데.

‘우선 템부터 챙기자.’

일단 먹고 보기로 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니까.

물론 아이템이 사라진 걸 두목이 알아채면 난리가 날 테지만, 내 알 바야?

범인 잡겠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다 보면 관군이 들이닥칠 텐데.

지금은 쥐새끼들이 흘린 정보에 정신이 팔려서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보물창고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테고.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두목의 보물창고에 들어 있던 아이템들을 닥치는 대로 품속 아공간 인벤토리에 때려 넣었다.

[알림: 경고!]

[알림: 인벤토리 무게가 5kg 남았습니다!]

[알림: 가까운 도관으로 가 술법가에게 인벤토리 용량 확장을 의뢰하십시오!]

이것저것 주워 먹다 보니 어느새 인벤토리 용량이 다 찼나 보다.

쩝.

벌써부터 걱정된다.

판타지 서버에서는 인벤토리 용량 한 번 늘리려면 엄청나게 비쌌는데.

‘얼른 빠져나가자.’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10분도 안 지났다.

후후.

이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가도 남겠지.

서둘러 보물창고를 빠져나와 책장을 닫았다.

이제 여길 빠져나간 다음에…….

헉?

저벅저벅.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ㅈ… ㅈ됐다!

다시 책장을 열 겨를도 없이 일단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드르륵.

몸을 숨기자마자 문이 열리며 두목과 그의 애첩들이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음.”

두목이 입을 열었다.

“회의가 길어져서 그런지 매우 피곤하군.”

잠깐.

방금 들은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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