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가?
헛것이 다 들린다.
뭐가 길어져?
“호호호~ 회의 너무 오래하셨어요~”
“이런 늦은 시각까지 회의를 진행하시다니~ 얼마나 피곤하실까아~?”
“피곤하실 텐데 얼른 누우셔요~ 호호호~”
이 미친놈들아!
회의가 길어지긴 뭐가 길어져!
아직 10분도 안 지났는데!
누가 보면 기저귀 차고 마라톤 회의라도 한 줄 알겠다!
“크흠. 심력을 많이 쏟았더니 뒷목이 뻐근하군. 나는 누울 테니 너희는 나를 주무르도록 해라.”
두목이 침대에 눕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 근육 좀 봐!”
“호호호! 채주님! 팔뚝이 점점 더 우람해지시는 것 같아요!”
“제가 시원하게 주물러 드릴게요~ 호호호~”
애첩들이 이리저리 움직여 가면서 열심히 두목의 머리, 어깨, 무릎, 팔, 무릎, 팔을 주물러 댔다.
‘새끼. 황제가 따로 없네.’
근데, 두목의 덩치를 생각해 보면 나름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아까 보니까 190센티미터에 12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것 같던데.
가녀린 여자 혼자서 두목을 마사지해 주려면 손아귀에 쥐가 날지도?
그건 그렇고.
‘에라이. 꼼짝없이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겠네.’
몰래 빠져나가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그땐 진짜 ㅈ되는 거다.
게다가 지금은 문밖에 보초들도 있을 테고.
일단 오늘 밤은 침대 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침실이 비면 그때 빠져나가야지.
그때까지 안 걸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으음! 아주 시원하구나!”
“정말요~?”
“흐흐! 이리 와 보아라!”
“아잉~♡ 채주님도 차암~~~”
“껄껄껄! 앙탈 부리기는! 이 앙큼한 것 같으니!”
어어?
이거 어째 분위기가 좀 묘하게 흘러가는데?
“너희들의 안마를 받았더니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피로가 싹 가셨구나! 크흐흐흐! 내일 중요한 영업이 있으니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재미를 좀 보고 자야겠구나! 크흐흐흐흐!”
아, 제발.
그냥 좀 쳐 자라…….
내일 중요한 일 있다며…….
데구르르르.
두목과 애첩들이 뒤엉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라락.
두목과 애첩들이 벗어 던진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딴 거 엿듣기 싫다고!’
맘 같아선 스스로 귀를 틀어막고 싶은데, 그랬다가 혹시 모를 중요한 소리를 못 들을까 봐 그러지도 못하겠고.
미치겠네, 진짜…….
아!
제발 좀 그냥 자라고!!!
남들 엄마아빠놀이하는 거 듣고 싶지 않아!!!
그런 내 바람과는 다르게 두목과 애첩들은 욕망에 아주 충실하게 행동했다.
찰싹찰싹!
갑자기 뭔가 찰진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뀌이이익!”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애완돼지라도 키우나?’
근데, 아니었다.
“꿀! 꿀꿀!”
돼지 멱따는 소리의 주인공은…… 두목이었다.
“말 잘 들어야지? 호호!”
“똑바로 엎드려! 돼지 주제에! 한 번만 더 자세가 흐트러지면 네놈 등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이 발정 난 수퇘지 같으니! 어서 내 발가락이나 핥아! 구석구석!”
애첩들이 두목을 조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꾸우울! 꾸우우울! 뀌이이이이이이익!”
두목이 연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쾌락에 젖은 신음을 냈다.
‘으으! 그, 그만! 제발 그만해! 제발 그만하라고오오오오!’
듣기 너무 괴로워서 두 귀를 막고 조용히 몸부림쳤다.
하.
씨발.
진짜 가지가지 하네.
* * *
두목과 애첩들은 새벽 5시까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지랄발광 오갑 육갑을 다 떨고 나서야 곯아떨어졌다.
진짜 어질어질하네…….
그나마 귀는 더럽혀졌어도 걸리진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니지.
그냥 걸리고 그딴 소리 안 듣고 말지.
캬악, 퉤.
미친놈이 수퇘지로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여자 속옷까지 입고 아양을 떨 줄 누가 알았겠어.
우웩.
드러워서 진짜.
“크흠. 간밤에 힘을 썼더니 배가 고프군. 다들 밥 먹으러 가자.”
두목과 애첩들은 해가 중천이 뜰 때까지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퍼질러 자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침실을 떠났다.
‘십년감수했네.’
그래도 안 걸린 걸 위안 삼아서, 재빨리 침실을 빠져나간 다음 취사장으로 향했다.
“이 자식! 어디 갔다 이제 기어오는 거냐!”
취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덕팔이가 다가와 날 갈궜다.
아, 제발.
밤 꼴딱 새웠더니 피곤해 죽겠다고.
“저 좀 쉴게요. 몸이 안 좋아서.”
졸려 죽겠다.
잠깐 로그아웃하고 한숨 자고 와야지.
“안 된다.”
“왜요.”
“왜요는 뭐가 왜요냐! 오늘 점심은 바빠서 안 된다.”
“왜 바쁜데요?”
“이따 오후에 큰 영업이 잡혀서 특식 준비해야 하니까, 아파도 좀만 참아라.”
뭔 소리야.
“영업이요?”
“넌 인마 아무리 신참이라도 그렇지 영업도 모르냐?”
“……?”
“오늘 오후에 정말 규모가 큰 표물을 털기로 한 모양이다. 나야 영업 나가는 산적은 아니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아하?”
운송 행렬을 습격해서 통행세를 받거나 표물을 강탈하는 걸 영업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쯧쯧. 오늘 이쪽이나 저쪽이나 여럿 죽어 나가겠구먼.”
덕팔이가 혀를 찼다.
“조만간 때려치우고 다른 산채로 옮기든지 해야지, 원. 아무리 산적이라도 그렇지. 통행세도 안 받고 표물을 통째로 강탈하는 게 어딨냐.”
“그런가요?”
“다른 지역 산적들은 적당히 통행세만 걷고 끝낸다. 관군이나 무림인들이 작정하고 토벌하려고 하면 뒷감당이 안 되니까. 서로 피 흘리기 싫으니 적당히 성의 표시만 주고받는 거지.”
“그렇겠네요.”
듣고 보니 맹호채가 선을 많이 넘긴 했네.
“아무튼. 힘들더라도 조금만 힘내라. 저녁때는 빼 줄 테니까. 다들 영업하러 나가면 저녁에는 별로 준비할 것도 없다.”
“예.”
하아.
한숨도 못 자게 생겼네.
‘오후에 영업이 있다고 했으니까… 일은 저녁때 벌어지겠지? 관군들이 여기로 쳐들어오는 것도 저녁때일 테고.’
에라이.
잠 다 잤네, 다 잤어.
으으.
솔직히 힘들다.
젊었을 땐 이틀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네.
고작 하룻밤 새우고 슬슬 눈이 감기는 걸 보면.
“힘든 건 안 시킬 테니까 걱정 마라.”
덕팔이가 날 보더니 측은하단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야채만 좀 썰다가 밥때 되면 저기 가서 국이나 퍼줘라.”
“감사합니다.”
반쯤 졸면서 야채를 썰다가, 산적들이 밥 먹으러 올 때 즈음 국통 앞에서 배식을 준비했다.
‘오호.’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 보는 사람 없나?
없네.
후후후.
스윽.
품속에서 초강력 특제 변비약을 꺼내 국 통에 탈탈 털어 넣었다.
한 250미리 정도는 되려나?
이윽고 오늘 영업 나가는 산적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배식을 받아갔다.
“형님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늘 영업 잘 다녀오십시오!”
“고생 많으십니다! 형님들!”
배식을 받아가는 산적들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까지 해 줬다.
누가 퍼주는 건데 맛있게들 먹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 * *
맹호채주의 배려로 특식까지 든든하게 먹어치운 산적들은, 즉시 산채를 떠나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 영업은 거의 300여 명이나 되는 산적들이 투입된 대규모 영업이었다.
거기에 더해, 맹호채주는 자신의 직속 친위대를 뺀 간부급들까지 모조리 총출동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표물 행렬의 규모가 가히 역대급이라 그만큼 많은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산채를 떠난 산적들은 큰 길목에 매복하고, 표물 행렬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북풍표국의 표물 행렬이 산적들이 매복해 있는 지역으로 들어왔다.
“형제들이여!”
이번 영업의 지휘를 맡은 부채주 길막붕(吉幕朋)이 크게 소리쳤다.
“모두 공격… 허억!”
공격 명령을 내리던 길막붕이 눈을 크게 뜨고 부르르 떨었다.
“허억, 흐어어어어어억!”
길막붕이 고통에 몸부림치자 산적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부채주! 갑자기 왜 그러시오?”
“형님! 어찌 그러시오?”
길막붕은 그런 형제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배를 부여잡고 낑낑거렸다.
“아, 안 돼! 허억! 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결국, 길막붕은 배 속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쏟아내고 말았다.
뿌직!
뿌지지지지직!
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더러워!”
“아니! 형님! 도대체 뭐 하는 거요!”
“도대체 뭘 처먹었기에 형제들 보는 앞에서 똥을 싸지른단 말이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장(腸) 내에서 휘몰아친 폭풍을 피해 갈 순 없었다.
“허어억!”
“가, 갑자기 배가! 크으으으윽!”
“으어어억!”
북풍표국의 표물 행렬을 습격하려던 맹호채의 산적들은, 공격은커녕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
너도나도 쏟아내기 시작하던 그때.
“놈들을 쳐부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도적놈들을 처단하라!”
숨어 있던 관군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산적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저기다!”
“우리 형제들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모두 공격하라!”
표물을 운송하던 북풍표국 소속 표사들과 보표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맹호채 산적들을 덮쳤다.
“하, 함정이다! 어서 반격을… 흐어어억!”
“으아아악! 으악! 으아아악!”
“이야아압… 흐어억!”
산적들은 토벌대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야 싸울 텐데, 조금만 용을 써도 뒷문이 열려 버리는 터라 도저히 무공을 전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흐어어억!”
“허억! 허어어어억!”
“으으으으으!”
산적들은 입으로는 괴성을 내지르고, 뒤로는 똥을 싸지르며 죽기 살기로 싸웠다.
덕분에 토벌대는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적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 새로운 적이란 지독한 냄새와 더러운 오물이었다.
“윽!”
“더러운 새끼들!”
“이 미친놈들이 단체로 뭘 잘못 처먹었나!”
“으악! 더러워!”
토벌대는 저항하는 산적들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300여 명에 달하는 산적들이 쏟아낸 인분 냄새가 어찌나 지독했던지, 도저히 전투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산적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린 인분 때문에, 전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똥밭으로 변해 버린 뒤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지껄인 헛소리에 불과했다.
실제로 구현된 똥밭은 결코 죽음보다 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역겹고 흉물스러운 광경이라, 토벌대조차 산적들을 공격하기를 주저했을 정도였던 것이다.
* * *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허억! 흐어어어억!”
“흐어어어어어어억!”
“으으윽! 비, 비켜! 으아아악! 으어어어어억! 비키라고!”
산적들이 뒷간을 향해 앞다투어 달려가는 게 보였다.
오?
성능 확실하네.
뿌직!
푸다다다다다닥!
저, 저거 뭐야?
화장실 갈 때까지 못 참고 바지에 지리는 건가?
윽.
더러워.
“하하… 하하하.”
그래도 성능은 확실하네.
산채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산적들이 일제히 화장실로 달려가는 걸 보니까, 초강력 특제 변비약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이 된다.
애송이들은 지리다 못해서 아예 탈진해 버렸을 것 같다.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설사가 심하면 탈수 증세가 와서 죽을 수도 있다던데.
띠링!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연쇄쾌변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