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제압한 거 맞아?’
의심이 든다.
왠지 쾌락 때문에 기절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의외로 멀쩡한 거 아냐?’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이 변태 새끼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단 말씀이야.
혹시나 싶어 심안으로 놈의 상태를 살폈다.
[맹호채주 임적산]
생명력 : □□□□□□□□□□
다발성 골절 및 근육 파열로 인해 기절했다.
최소 몇 달 동안은 거동조차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어째 마지막 글귀의 뉘앙스가 좀 묘한데……?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 거야…….
그래야만 돼…….
꼭…….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67레벨 달성!]
[알림: 68레벨 달성!]
[알림: 69레벨 달성!]
오?
확실히 레벨 높은 적을 쓰러뜨려서 그런지 들어오는 경험치가 다르다.
[알림: 새 스킬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알림: <초월무극>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초월무극]
한계를 초월한 힘으로.
- 데우스
디버프 마스터의 자력 버프 스킬.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뿜어낼 수 있게 해준다.
분류 : 액티브 (버프)
레벨 : 1
현재 상태 : 1단계 (총 5단계)
지속 시간 : 없음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효과 :
- 슈퍼아머 (다운되지 않음)
- 레벨이 높은 적을 상대로 피해량 증가
- 레벨이 높은 적을 상대로 방어력 증가
- 모든 능력치 폭발적으로 증가
- 디버프가 걸린 대상에게 주는 피해량 증가
주의사항 : 생명력·내공·지구력이 급격하게 소모될 뿐만 아니라 후유증도 크므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캬.”
초월무극 스킬의 설명서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딱 봐도 알겠다.
본캐에서 사용하던 <오버클럭>이라는 걸.
스킬 이름이 바뀌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원래는 금강불괴·강자멸시·존재의 증명 세 가지 스킬을 먼저 배운 다음에 하나로 합쳐야 쓸 수 있었는데.
스킬이 계승되는 과정에서 아예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게끔 된 모양이다.
‘모든 스킬이 딱딱 들어맞진 않네. 크게 상관은 없지만.’
서버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른 만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내 입장에선 나중에 배울 스킬을 한참 먼저 배워서 더 좋고.
“뀨! 주인놈아! 고생했다!”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달려왔다.
“니들도 정말 잘했어. 다들 고생했어.”
다 녀석들 덕분이긴 하지.
녀석들이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다리가 부러진 걸 응급조치할 수 있었으니까.
“뀨! 주인놈아! 이제 어떡할 거냐! 뀨우!”
“어떡하긴. 일단 이 자식이 가진 것부터 털어먹어야지.”
기절해 있는 두목의 품속을 뒤져 가진 걸 모조리 챙겼다.
[알림: <피학앙앙공 비급>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남성용 자양강장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7 진동낭아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돈피면구>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돼지꼬리 기저귀>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하.
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피학앙앙공(被虐昻昻功) 비급은 맞으면 맞을수록 방어력과 공격력이 올라가는 변태 같은 무공 스킬북이고.
남성용 자양강장제는…….
[남성용 자양강장제]
고개 숙인 남성들을 위해 개발된 탕약.
분류 : 소모품 (탕약)
등급 : 일반
효과 :
- 남성호르몬 +35%
주의사항 : 전문 의원의 처방 없이 함부로 사용했다간 각종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으므로, 어지간해서는 손대지 않는 게 좋다.
야 이!
이거 스테로이드잖아!!!
“이 새끼 약쟁이였어?!”
변태인 것도 혐오스러운데 불법 약물까지 사용한 놈이었다니.
진짜 가지가지 하네, 가지가지 해.
그럼 저 우람 근육도 다 약물로 만든 거란 소리잖아?
어쩐지.
땅콩도 하나 없는 놈이 근육량이 엄청나다 했다.
어휴.
난 현실에서 근육량 좀 늘리자고 식단까지 신경 써 가면서 매일같이 빡세게 운동하는데.
정작 게임 속 NPC 주제에 스테로이드나 쓰고 앉았네.
+7 진동낭아곤은 두목 놈이 휘두르던 분홍색 철퇴.
돈피면구는 돼지 코 가면.
돼지 꼬리 기저귀는 말 그대로 돼지 꼬리가 달린 기저귀였다.
‘맨정신엔 못 쓰겠네. 팔아 버려야지.’
+7 진동낭아곤이 나름 좋은 무기이긴 해도 도저히 손이 안 간다.
저런 해괴망측한 무기를 어떻게 들고 다녀…….
[알림: <금산동 열쇠>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후후후.”
드디어 찾았다.
보물창고 열쇠.
동굴 이름이 금산동이었던 모양이다.
“야, 햄찌야. 열쇠 찾았어. 빨리 가자. 관군들 몰려오기 전에.”
“뀨! 알겠다! 빨리 가자!”
죽 쒀서 개…… 가 아니라.
관군들한테 몽땅 넘겨줄 순 없지.
관군들이 오면 보물창고에 쌓여 있는 보물들을 국고에 환수할 테고, 그럼 한 푼도 못 챙기겠지.
물론 그게 맞는 거긴 하지만, 다는 아니더라도 알짜배기 몇 개는 챙기고 싶다.
내가 다 했는데!
수고비는 챙겨야지!
열정페이는 딱 질색이니까.
* * *
“보물을 찾자♪ 보물을 찾자♬”
“보물을 찾자♪ 보물을 찾자♬”
“구구구 구구♪ 구구구 구구♬”
뭐가 있을까?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겠지?
두근두근!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까 볼까~?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겄습니다잉~ 딴~ 따라란~ 따다란~ 따다란~ 따다란~ 쿵짝짝~ 쿵짝짝~ 따라리라라라라~ 따라~ 따ㄹ…….”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려는데.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저 멀리 동굴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떼 지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빠직!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
이것들이 진짜.
안 그래도 한바탕 하고 나서 힘들어 죽겠는데 방해를 해?
이 중요한 순간에?
저 변태 자식 쓰러뜨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꽈악!
다시 도깨비 방망이를 움켜쥐고 전투준비태세를 갖췄다.
갖췄는데…….
“오랑아!!!”
금의위 위사들과 함께 달려온 곽말풍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괜찮으냐! 내가 왔다! 이 곽말풍이 왔단 말이다! 으하하하하하!”
“…….”
“괜찮으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이 눈치 없는 새끼…….
정말 지지리도 없는 새끼…….
진짜 한결같이 눈치 없는 새끼…….
눈치라고는 죽고 먹으려도 없는 새끼…….
“헉! 설마 맹호채주 임적산을 쓰러뜨린 것이냐!”
“…….”
“크으! 역시 대단하구나! 대단해! 동창에 추천한 보람이 있어! 과연 동창의 미래를 짊어질 인ㅈ….”
“닥쳐!!!”
“꾸웨에에엑!”
드롭킥에 맞은 곽말풍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너 오늘 잘 걸렸다! 딱 대! 확 그냥 죽여 버릴 테니까!”
도저히 못 참아!
황궁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이 눈치 없는 새끼는 작살을 내놔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뀨우우우우! 주인놈아! 참아라! 그러다 영창 간다! 뀨우우우!”
“구! 구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필사적으로 날 뜯어말렸다.
“놔! 놓으라고! 안 놔? 놔! 놓으라니까! 놔! 이 자식들아!”
햄찌와 꼬꼬가 잡아당긴 덕분에, 내가 곽말풍을 두들겨 패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 어지간히도 반가웠나 보구나. 하하하.”
곽말풍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혹시이.”
“왜요. 뭐. 왜.”
“내가 또 실수한 거냐…?”
곽말풍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허이구?
꼴에 눈치는 없어도 최소한의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할 줄 아나 보네.
시선 처리 안 되는 걸 보면.
“우연히 극기관에 들렀다가 지원요청이 들어와서… 왠지 산채에 침투한 사람이 네 녀석 같아서 최대한 빨리 달려온 거다….”
쭈구리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
괜히 동정심 생기니까.
“너무 늦게 와서 화난 거냐?”
“아닌데요.”
“그럼….”
“꼴도 보기 싫으니까 말 걸지 마시죠.”
“…….”
“내가 진짜 속 터져서. 아오.”
속 시원히 꼬장이라도 피우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되니까 답답해 미치겠다.
보물창고 털어먹으려고 했다고 어떻게 말해?
“근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임무 수행 도중에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왔다고.”
“지원 오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내, 내가 온 게 잘못인 거냐?”
“됐습니다.”
앓느니 죽지, 죽어.
“여기나 같이 열어 보시죠.”
기왕 이렇게 된 거 보물창고 발견했답시고 생색이나 내야겠다.
“보물창고인 거 같으니까.”
“음?”
“엽니다.”
열쇠를 돌리자 육중한 철문이 드르륵! 하고 자동으로 열렸다.
철문 뒤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 기는 개뿔!
텅텅.
철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빈 수레 수백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보물 같은 건 눈을 씻어도 쥐뿔도 없었다.
“뭐,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내 보물 어디 갔어? 내 보물! 내 보물 어디 갔냐고! 야 이! 보물 어딨어! 어딨냐고!”
기절해 있는 두목을 향해 득달같이 내달렸다.
* * *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 변태 새끼야!”
기절해 있는 두목의 멱살을 움켜쥐고, 따귀를 갈겨 깨웠다.
“으음?”
“야!”
“크허억!”
“보물 어딨어!”
눈을 뜬 두목에게 물었다.
“보, 보물…?”
“저 안에 든 보물 어딨냐고! 네가 여태까지 영업해서 쌓아 놓은 거 어딨냐고!”
“그, 그건.”
두목이 대답했다.
“그들이 가져갔… 쿨럭!”
“그들?”
뭔 개소리야?
“니네 이미 털린 거였냐?”
“그게 아니라… 우리 산채의 성장을 도와준… 크윽!”
“뭐? 이게 진짜! 자세히 얘기 안 할래?”
“나, 나도 잘은 모른다. 그들은 우리 맹호채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고… 얼마 전에 그간 강탈한 표물을 대신 처분해 주겠다면서 다 가지고 갔… 커헉!”
뭔 소리야?
“설마.”
곽말풍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역시 평범한 녹림도들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게 뭔 말씀이시죠?”
고개를 홱! 돌려 곽말풍을 쏘아보았다.
“뭐 짚이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맹호채는 그놈들의 자금줄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놈들?”
“백련교 말이다.”
기억난다.
지난번 미친왕 습격 사건을 벌인 놈들이 백련교라고 했지?
어휴.
겁대가리를 상실해도 유분수지.
무려 황자가 탄 배를 대놓고 공격하다니.
덕분에 황실에서 일찍 탈출할 수 있었지만.
“너도 잘 알겠지만, 최근 우리 금의위와 너희 동창은 이례적으로 공조 수사를 벌이면서까지 중원 전역에서 백련교를 뒤쫓는 중이다.”
그럴 만하지.
대놓고 반란을 일으킨 거나 마찬가지니까.
“안 그래도 놈들의 자금 출처를 조사하던 중에 맹호채의 동향이 일반적인 산적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 조사하러 들른 참이었다.”
“아?”
“맹호채에 속한 산적들이 저 멀리 태한 땅에서 만든 활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하고. 술법을 부려서 진법 안에 산채를 숨긴 것도 이상하고. 그간 강탈해 간 표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이상하고.”
얼씨구.
눈치는 없어도 꼴에 금의위라 그런지 나름대로 추리는 할 줄 아는 모양이네.
흥.
“아무래도 이자는 데려가서 심문해야 할 거 같다. 어쩌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그러십쇼.”
단물 다 빠진 그깟 변태 따위, 데려가든 말든 알 게 뭐야?
“대신 저 부탁 몇 가지만 들어주시죠.”
“부탁?”
“별건 아니고요.”
“……?”
“그게 그러니까.”
속닥속닥.
곽말풍의 귓가에 요구사항을 속삭였다.
“그, 그렇게 하게 해 달라고?!”
곽말풍이 펄쩍 뛰었다.
“진심이냐? 정말로 그걸 원하는 거냐? 하, 하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데…?”
곽말풍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흠칫 몸을 떨며 진절머리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