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66화 (66/115)

제66화.

곽말풍이 허구한 날 나한테 갈굼을 먹어서 그렇지, 금의위는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황제 직속 친위대답게 금의위의 권한은 실로 막강해서, 조정의 중신들조차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다.

금의위의 주요 업무가 황제의 정적들을 숙청하고, 암살하고, 역모를 꾀하는 무리들을 쳐부수는 건데 위세가 대단할 수밖에.

괜히 황제의 검이라 불리겠어?

애송이들의 가문이 제아무리 위세가 대단해도 금의위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건 시간문제다.

여기 말로 멸문지화(滅門之禍)라고 하던가?

“누가 감히 대명제국의 관군을 무능하다 욕보이는가! 누가!”

곽말풍이 연신 문제의 발언을 한 범인들을 찾아 부릅뜬 눈을 두리번거렸다.

“…….”

“…….”

“…….”

애송이들이 곽말풍의 시선을 피하려 눈을 내리깔고 입을 꽉 다물었다.

자식들.

살고는 싶은 모양이네.

“쟤요~”

이동열을 가리켰다.

‘야 이 개새끼야!’

‘우리가 언제 그랬냐!’

‘이 씨발놈이!’

어쭈?

이것들이 눈빛으로 욕을 하네?

“쟤네가 그랬어요! 쟤네 셋요!”

그럼 더 고자질해 줘야지.

“그게 정말이냐?”

곽말풍이 애송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나.

“감히 네놈들이 대명제국의 관군들을 무능하다 능멸했느냐!”

그러자 애송들이 철푸덕! 엎드려 곽말풍에게 빌었다.

“저,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자가 저희를 모함한 겁니다!”

풉.

뒤집어씌울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 뒤집어씌우네.

“감히 거짓말을 하다니!”

곽말풍이 버럭 소리쳤다.

“어디다 대고 거짓을 고하는가! 금의위가 네놈들의 얄팍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호락호락한 줄 아느냔 말이다!”

옳지!

잘한다, 잘한다, 잘한ㄷ…….

“오랑이는 동창제독 각하의 직속 요원이거늘!”

다, 닥쳐어어어어어어!!!

닥치라고!!!

제발 닥쳐!!!

이 눈치 없는 새끼야아아아아!!!

“감히 동창제독 각하의 총애를 듬뿍 받는 동창의 기대주에게 네놈들의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느냐!!!”

야 이 눈치 없는 새끼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에에에에!!!

어어?

어어어?

갑자기 뒷목이 뻐근한데……?

[알림: 경고, 경고!]

[알림: 사용자를 모니터링하던 중 혈압의 급격한 상승이 감지되었습니다!]

[알림: 접속을 종료하고 119에 연결하시겠습니까?]

[알림: 10초 내에 응답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19와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사용자의 신체 데이터를 전송하고 긴급 구조를 요청합니다!]

오죽 피가 거꾸로 솟았으면 캡슐이 긴급 구조 프로토콜을 발동했다.

* * *

[알림: 긴급 구조 프로토콜이 캡슐 내 심장 제세동기를 준비합니다!]

[알림: 10초 후 인공호흡기가 사용자에게 산소를 공급합니다!]

“으윽!”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뀨! 주인놈아! 왜 그러냐!”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부축해 주었다.

“내, 내가 진짜. 저 눈치 없는 인간. 으윽.”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긴급 구조 프로토콜을 종료했다.

ㅆ발.

하마터면 게임하다 응급실 실려 갈 뻔했네.

그러거나 말거나.

“도, 동창이라니!”

“히이익?!”

“맙소사!”

애송이 삼인방은 곽말풍의 말을 듣고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왜?

동창이 더 무서우니까.

동창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첩보기관.

경우에 따라서는 금의위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는 곳이 동창이다.

그런 동창의 수장이 총애하는 환관과 시비가 붙어 누명까지 씌우려고 했다?

어우.

차라리 지금 혀 깨물고 자살하는 편이 나을지도?

진심으로.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저희가 철이 없어 실언을 했습니다!”

납작 엎드린 애송이 삼인방이 내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왜들 이러실까? 평소 하던 것처럼 그 알량한 가문 믿고 계속 나대지? 왜? 금의위에 동창이라니까 쫄려?”

당연히 아니라고 할 건 알았지만 괜히 한번 던져 봤다.

“아, 아닙니다! 공공!”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공공!”

“공공!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잠깐.

공공(公公)은 환관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흔히들 누군가를 높여 부를 때 선생님, 하고 부르는 거랑 비슷하게.

흐으…….

지금 날 환관이라 불렀다 이거지…….

큭큭큭…….

“이 새끼들이 정신 못 차리고.”

빠직!

못 참아!

더는 못 참겠다고!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놈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빠아아악!

“커헉! 고, 공공!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으악!”

퍽!

“으악! 공공! 잘못했습니다! 으아아아아악!”

빠악!

“한 번만 자비를! 크아악! 으아아아아악!”

절대 용서 못 해!

절대로!

“이 새끼들이 누굴 고자로 아나! 니들 오늘 뒈졌어! 죽어 이 새끼들아! 죽어,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그냥 패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방천가위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형제자매가 있다. 거수. 거수하라고!”

동열이란 놈이 슬쩍 손을 들었다.

“위,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크윽!”

“그래? 바지 벗어 봐.”

“갑자기 바지는 왜 벗으라고 하시는지….”

“너 하나쯤 고자 돼도 대 안 끊길 거 아냐.”

“히, 히익?!”

“딱 대.”

“으아아아아아아악!”

“어쭈? 움직여? 움직이면 더 다친다?”

“으아아아아아악!”

“괜찮아. 살살 자르면 별로 안 아파. 참을 만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동열이 놈의 땅콩을 수확해 버리려는데.

“연 공공! 제발 한 번만 참아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형 대인이 황급히 날 뜯어말렸다.

* * *

“연 공공! 제 말씀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뭐라고요?”

“제 말씀을…….”

“연 공고옹~?”

“연 공ㄱ… 아니 연 소협!”

형 대인은 벼슬아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눈치가 빠끔해 보인다.

“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중죄로 다스려 마땅하나, 나름 명문가의 자제들로서 협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산적 토벌에 나섰던 점을 참작하여 주십시오.”

“협의는 무슨.”

“……!”

“공명심에 눈이 멀어서 허명이나 높여 보려고 나댄 거지, 그게 어디 협의를 바로 세우려고 그런 겁니까? 말은 바로 하시죠.”

“연 소협.”

형 대인이 은근슬쩍 날 잡아끌고 귓가에 속삭였다.

“저들을 응징해 봤자 소협께 득 될 것이 없습니다.”

“왜죠?”

“저들의 집안에서 몸값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들을 죽여 버리시면 몸값을 못 받지 않겠습니까?”

“이미 구출했는데 몸값을 어떻게 받아요? 우리가 무슨 산적도 아니고?”

“연 소협께서는 현명한 분이시니 조금만 생각을 해 보시면 금방 방법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찡긋찡긋.

형 대인이 옷자락 밑으로 은밀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손가락으로 돈을 뜻하는 동그라미라면…….

‘어?’

문득 방법이 생각났다.

“이 자식들을 구출하느라 관군을 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했으니 보상금을 요구하란 말씀이시죠?”

“역시 연 소협이십니다.”

캬.

역시 공무원 짬밥 헛먹은 게 아니네.

누구는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던데.

“저들 가문에서도 금의위와 동창을 건드린 게 신경 쓰여 맨입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오오.”

“산적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던 몸값에서 최소 3할 이상은 받아내겠습니다. 추가로 받아낸 금액은 관아에서 부족한 예산을 메꾸는 데 쓰고, 원금은 연 소협께서 가져가십시오. 그럼 노여움이 충분히 풀리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하죠.”

냉큼 형 대인의 제안을 수락했다.

역시 분풀이보단 돈이지.

애송이들을 죽여 봤자 기분만 잠깐 좋다 말겠지만, 돈은 쭉 남아 있을 테니까.

‘이 양반 은근히 능구렁이네?’

한편으로는 형 대인을 다시 봤다.

‘일부러 살려 주지는 않았을 거고.’

뭐 이쁘다고.

‘나도 달래고, 부족한 예산도 메꾸고, 이참에 애송이들의 가문과도 연줄을 만들어 보려는 거겠지.’

판타지 서버에서 황제 노릇 하루 이틀 해 본 게 아니라서, 형 대인의 숨은 의도가 눈에 훤히 보인다.

아아.

나도 썩을 대로 썩었구나.

“형 대인께서 이리도 간곡히 말리시니.”

애송이 삼인방이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돈 받기로 했으니까 일은 확실히 해 줘야지.

“형 대인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은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죠. 니들은 형 대인 덕분에 산 줄 알아라.”

애송이 삼인방이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였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신 나대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여간 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놈들이라니까.

“연 소협의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형 대인이 척! 하고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애송이들 앞에서 형 대인을 들먹이며 생색을 내준 걸 눈치챈 모양이다.

“별말씀을요. 공정거래, 고객만족, 유종의 미. 이건 기본이죠.”

“예?”

“그래야 단골손님들이 많이 생기죠.”

“하하하하.”

형 대인이 웃었다.

“기억하겠습니다. 공정거래, 고객만족, 유종의 미.”

“혹시 나중에도 어려운 일 있으시면 찾아주세요.”

“예, 소협.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형 대인과의 거래를 끝으로 산적소탕을 마무리했다.

근데…….

‘백련교라.’

문득 신경이 쓰였다.

‘전에 싸울 때 보니까 장강에서 활동하던 수적들에 왜구들까지 섞여 있던데. 이제는 산적들까지. 이거 예상보다 사태가 더 심각할지도.’

앞으로 이놈들 때문에 이래저래 골치 아파질 거란 느낌이 든다.

황제의 둘째 아들을 노리고 중양절 행사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막 나가는 놈들이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고 있겠지.

중원 대륙을 흔들어 놓는 걸 넘어 대명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 * *

곧장 서문세가로 향했다.

덕팔이 형님이 딸이 보고 싶다길래 인피면구를 빌려줘서 보냈다.

서문세가로 오라고 했으니까, 알아서 잘 찾아오겠지.

극기관을 떠나오기 전에 형 대인으로부터 받은 고대 유물 항아리들이나 까 보기로 했다.

산적 토벌에 큰 공을 세운 보상으로 고대 유물 항아리를 300개나 받아 왔다는 말씀!

[고대 유물 항아리]

고대의 유물이 들어 있는 항아리.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류 : 항아리 (소모품)

등급 : 희귀

참고 : 가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뭔가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다.

게이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항아리를 까느니 그냥 내다 파는 게 이득이라고는 하던데, 그냥 안 팔고 직접 까 보기로 했다.

내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라,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서다.

호주머니 사정도 풍족하고.

“까 볼까~?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겄습니다잉~ 딴~ 따라란~ 따다란~ 따다란~ 따다란~ 쿵짝짝~ 쿵짝짝~ 따라리라라라라~ 따라~ 따라~ 따라~~ 쿵짝짝~ 쿵짝짝~”

첫 번째 항아리를 까봤다.

쨍그랑!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무좀 걸린 병사의 군화>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에라이.

더럽게 진짜.

뭐,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니까.

계속 까 보자.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녹슨 청동검>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반으로 쪼개진 갑골문>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병마용 조각>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중략)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개뼈다귀>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300개를 거의 다 깠는데도 하나같이 어디다 쓰라는 건지 모를 쓰레기들만 잔뜩 나왔다.

“뀨우! 주인놈아! 도대체 몇 개를 깠는데 쓸 만한 거 하나 안 나오는 거냐! 뀨!”

“내 말이.”

“주인놈 운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 뀨?”

“내가 운이 없긴 뭐가 없어!”

이게 또 슬슬 긁네?

“야! 나같이 운 좋은 놈 나와 보라고 해!”

“뀨! 주인놈 우주의 법칙 때문에 운 지지리도 없지 않냐! 뀨!”

“그, 그건 맞는데! 그래도 나 운 안 나빠!”

“뀨! 그럼 좋은 것 좀 뽑아 봐라! 그딴 쓰레기들만 뽑지 말고! 뀨우!”

“이게 진짜! 그냥 확률이 낮은 거거든?”

“뀨! 웃기지 마라! 주인놈이 운 없어서 쓰레기만 나오는 거다! 뀨!”

“그러는 너는 운이 좋냐? 어? 지는 무슨 운 좋은 것처럼 말하네.”

“뀨! 햄찌 운 좋다! 뀨우! 햄찌가 까면 좋은 거 나온다! 뀨!”

“그럼 까 보시던가?”

“뀨?”

“까 보라고, 그럼.”

“햄찌 까도 되냐? 뀨우?”

“아까우니까 하나만 까라. 니가 까면 쓰레기만 나올 테니까.”

“뀨! 주인놈 그러다 큰코다친다! 뀨우! 잘 봐라! 햄찌가 진짜 운 좋다는 거 보여 준다! 뀨!”

햄찌가 고대 유물 항아리를 머리 위로 힘껏 들었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쨍그랑!

어휴.

용쓴다, 용써.

그런다고 퍽이나 좋은 게 나오겠ㄷ…….

번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으응?

깨진 항아리로부터 황금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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