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67화 (67/115)

제67화.

저, 저거 뭐야?

황금색 섬광?

최소 전설 등급 이상 아이템이란 소린데?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산화부식장갑>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뭐, 뭔데?

[산화부식장갑]

산화부식장갑(酸化腐蝕掌匣).

고대 유물 항아리에서 나온 녹슨 장갑.

녹이 잔뜩 슬다 못해 엉겨 붙어 있다.

오른손에 끼는 금속 장갑이며, 방어구가 아닌 권법가를 위한 무기이다.

매우 단단할뿐더러 기가 잘 통한다는 특성이 있어서,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분류 : 주 무기 (장갑)

등급 : 알 수 없음

내구도 : 1,988 / 5,000

레벨제한 : 없음

착용제한 : 없음

특수효과 :

- 적중 시 1% 확률로 적에게 파상풍 저주를 검

- 적중 시 5% 확률로 적을 부식시키는 저주를 검

뭐지?

좋은 건지 쓰레기인지 분간이 안 간다.

엄청나게 대단한 아이템이라도 나온 줄 알았는데…….

띠링!

또 뭔데?

[심안 추가 통찰 효과]

녹이 너무 슬어서 아직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본래 2개가 한 쌍을 이루는 세트 아이템이다.

계속 사용하다 보면 내구도가 0이 되고, 녹이 벗겨지며 진가가 드러날 것 같다.

‘세트 아이템이라고? 내구도가 0이 되면 진가가 드러나?’

킁킁!

냄새가 난다.

심안이 추가 통찰 효과까지 제공할 정도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녹만 다 벗겨내고 나면, 최소한 전설 이상 등급을 가진 아이템이겠지?

“미, 미친.”

놀란 눈으로 햄찌를 돌아보았다.

“진짜 좋은 걸 뽑았어?”

“뀨우? 이거 좋은 거냐?”

햄찌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녹슨 장갑 아니냐? 뀨?”

“아닌 거 같아.”

“뀨?”

“녹을 다 벗겨내고 나면 어마어마하게 좋은 거 같다.”

“뀨! 그럼 햄찌가 좋은 거 뽑은 거냐! 뀨우!”

“어쩌면? 아직 확신할 순 없고. 쭉 쓰면서 지켜봐야 할 거 같은데?”

“뀨! 거봐라! 햄찌 운 좋다! 뀨우! 운 없는 주인놈이랑은 다르다! 뀨우!”

“그, 그래.”

쳇.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내가 진짜 운이 없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

나올 차례가 됐는데 마침 햄찌 놈이 깐 거겠지.

“뀨! 주인놈아! 좋은 거면 한번 껴 봐라! 뀨!”

“그럴까?”

녹이 잔뜩 슬어 있긴 한데, 그래도 좋은 거니까 당분간 차고 다녀야겠다.

병장기도 좋지만 이런 장갑 형태의 무기도 좋다.

무기야 아무러면 어때?

모든 무기 마스터리가 만렙이라 뭘 쓰던 잘 쓰는데.

“오?”

장갑 크기가 상당한데도 생각보다 부드럽게 잘 들어갔다.

꽈악!

장갑이 자동으로 내 손에 맞게 조여지는 게 느껴졌다.

착용감 좋은데?

“격투술 위주로 파 볼까.”

아예 격투가처럼 맨손 격투 위주로 방향성을 잡아도 괜찮을 것 같다.

맨몸으로 치고받는 그 격렬함도 좋고.

때릴 때 손맛도 찰지고.

“캬! 낭만 있네! 역시 무림은 권법이 근본이지! 얍! 얍얍!”

생각해 보니 어릴 때 본 무협 영화들도 대부분 격투가들이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한쪽도 찾을 수 있으려나.’

세트 아이템은 세트를 완성해야 시너지가 큰데…….

욱신욱신!

“뭐, 뭔데?”

갑자기 장갑을 낀 오른손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황급히 장갑을 벗어 보니 손이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장갑이 너무 세게 조였나? 아닌데. 진짜 편안하게 착 감기던데.’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상태이상!]

갑자기?

[알림: <상태이상 : 마비>에 걸려 오른손이 마비되었습니다!]

왜?

[알림: 파상풍 저주에 걸렸습니다!]

뭐?!

[알림: 주의하십시오!]

[알림: 녹슨 금속을 만질 때는 파상풍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아니 뭔 게임 캐릭터 주제에 파상풍이 걸려!!!

[알고 계셨나요?]

사실 녹슨 금속을 만진다고 해서 파상풍이 걸리는 건 아닙니다!

파상풍은 파상풍균에 의해 발생하는 세균성 질병으로서…….

알고 싶지 않아!!!

그딴 거 안 알려 줘도 돼!!!

[알림: 서둘러 금창약을 바르십시오!]

이 미친놈들아!!!

뭔 또 금창약이야!!!

왜?

암에 걸려도 금창약 바르라고 하시지?

하여간 무림 서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 서버보다 100배쯤은 더 나사 빠진 곳이 분명해…….

* * *

위잉!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 보자.

발신자가…….

- 돈많은놈

천우진.

나랑은 판타지 서버에서 같이 활동하고, 협력했던 동료이자 현실에서도 자주 어울리는 친한 친구.

게임 BNW를 만든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의 천종호 회장의 아드님이기도 하고.

그래서 <돈많은놈>이라고 폰에 저장해뒀다.

내가 아무리 조 단위의 자산을 이룩한 자산가라도 얘 앞에선 불우이웃이니까.

근데 이 새끼 한동안 연락 없더니 웬일이지?

“어.”

- 여어! 한태성!

전화 너머로 천우진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오늘 텐션 왜 이렇게 높아?

“웬일이냐?”

- 웬일이긴 인마. 친구끼리 전화도 못 하냐.

“언제는 바쁘다며?”

뭐랬더라…….

판타지 서버에 차원의 대미궁인가?

그게 발견돼서 거기 조사하느라 한동안 게임에만 집중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 아무리 바빠도 친구한테 안부 전화할 시간도 없겠냐?

“웃기고 있네. 6개월 동안 연락 한 통 없었으면서. 니가 내 전화랑 톡 씹은 게 한두 개냐?”

- 그, 그랬나? 바, 바빠서 그랬지! 바빠서!

“아무리 바빠도 친구한테 안부 전화할 시간도 없겠냐며?”

- 아하하하…….

“하여간 지 ㅈ대로지?”

- 미, 미안.

“왜 전화했는데?”

-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하려고 그랬지. 나 이제 퀘 끝나서 이제 시간 괜찮거든.

“커피?”

- 안 바쁘면 잠깐 커피 한잔하자.

“오케이. 그럼 거기서 보자.”

- 언제?

“지금 차 막히는 시간 아니니까 한 30분 있다?”

- 콜.

우리가 자주 이용하곤 하는 강남의 모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커피 맛 훌륭하고.

테이블 간 간격 넓어서 조용히 얘기하기 좋고.

엄청 넓은 주차장도 있어서 자주 이용하는 카페다.

발레파킹도 있어서 마음에 들고.

대충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뭘 타고 가나…….

‘오랜만에 이거 타야지.’

고민 끝에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하이퍼카 918 스파이더를 골랐다.

부왕!

부와아아아앙!

아이고.

뚜껑을 열고 달리는데, 배기음이 너무 크다.

이거 민폔데…….

이제 아저씨라 그런지 은근히 부담스럽단 말씀이야…….

완전자율주행기능이 탑재된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한 시대에 이런 시끄러운 올드카를 타고 다니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누구도 손가락질하지는 않겠지.

단종된 지 한참이 지났어도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중고가가 더욱 비싸진 차량이니까.

출시 가격이 10억 원 정도라고 했나?

나도 20억 원 정도에 중고로 사서 잘은 모르겠다.

요즘엔 최소 50억 원 이상에 거래된다고 하던데.

한 몇 년 가지고 있었더니 30억이 올랐네.

헤헷.

“헉! 한태성 선수! 뚜껑 닫아 주시고 차 키 주시면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발레파킹을 해 주시는 직원분께서 날 알아보셨나 보다.

“뚜껑은 그냥 열어 놓을게요. 비도 안 오는데요, 뭘.”

귀찮아서 뚜껑은 그냥 열어 놓기로 했다.

50억 원짜리 하이퍼카 주제에 뚜껑 열고 닫는 게 수동인 게 말이 되냐고…….

“알겠습니다. 차 키 주시면 이 앞에 차량 주차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어, 혹시.”

“당연히 해 드려야죠.”

발렛 직원분에게 사인을 해 주고,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어 드렸다.

“감사합니다! 진짜 팬이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팬서비스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이 새낀 나보다 더한 새끼야, 아주.”

카페 앞에 빨간색 한정판 라페라리가 주차되어 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휴.

보나 마나 천우진 놈 차겠지.

저거 중고가가 100억이 넘는다던데…….

내가 괜히 핸드폰에 ‘돈많은놈’이라고 저장해 놓은 게 아니라니까???

* * *

“왔냐?”

게임 관련 영상을 돌려보고 있던 천우진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넌 6개월 동안 게임만 했다면서 또 게임 영상을 보고 싶냐?”

“왜 시비냐?”

“그냥.”

“지랄~ㅋㅋㅋ”

“그리고 카페 오는 데 라페라리 타고 오는 게 맞냐? 하여간 관종이라니까. 관심받고 싶어 가지고.”

“내가 너냐? 관종은 너지!”

“내가 왜 관종인데?”

“918 끌고 와 놓고 나한테 할 소리냐? 배기음이 여기까지 다 들리더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아직도 배기음 뿡뿡 내고 다니네. 민폐인 줄도 모르고.”

“뭐 인마? 내가 일부러 소리 냈냐? 원래 그런 찬데? 그리고 너는 일반인이지만 나는 아니거든?”

“아이고오~ 잘나셨습니다~ 전설은 역시 다르시네요~ 반지하 원룸에서 사실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크셨네~ 너 그때 캡슐에 돋아난 버섯 아직도 키운다며? 이거 알고 보면 인간 곰팡이 아냐~?”

“응~ 노총각~”

“뭐 인마?!”

“꼭 연애하다 차이면 게임에 집중한다고 잠수타더라~?”

“으으… 으으으!!!”

부들거리는 거 보소?

후후후.

얘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니까?

“됐다. 말을 말자.”

천우진이 부들대다 말고 먼저 시켜놨던 수박주스를 쭉 빨았다.

“크으. 시워언~ 하다.”

“웬일이냐? 생전 안 마시던 수박주스를 다 마시고?”

“여름이잖아.”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시원해 보여서 주문했지. 너도 마셔 봐. 시원하니 좋아.”

“나 단 거 안 먹는 거 벌써 까먹었냐?”

“어련하시겠어요.”

천우진이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수박 주스를 한 모금 쭉 빨아들였다.

“역시 씨 없는 수박으로 만든 거라 그런지 맛있네.”

“씨 없는 수박이 있어?”

“있지 왜 없냐?”

“그랬나…….”

“뭐야.”

천우진이 은근슬쩍 자기 명품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직 네 시도 안 됐네.”

“뭔 헛소리냐? 이제 오전 11시인데.”

“그냐앙~”

천우진이 히죽히죽 웃었다.

‘이 새끼 뭐야? 왜 기분 나쁘게 쳐 웃어?’

찜찜하다.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야, 이거.”

천우진이 불쑥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뭔데?”

“그냥 너 생각나서 사 봤다. 심심하면 읽어 보라고.”

“갑자기?”

책 제목이…….

‘사기(史記)?’

이 사람이 쓴 거 아닌가?

사마천?

그 왜 옛날에 한나라 한무제한테 미움받아서 고자 된…….

‘아 ㅆ발.’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이 새끼…… 다 알고 왔네.’

아뿔싸.

오랜만에 연락 온 게 반가워서 깜빡했다.

천우진은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하이브 게임에 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아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자식이라면 내 복귀 소식을 알고도 남겠지.

내 부캐가 고자라는 사실까지도.

“하하, 하하하.”

은근슬쩍 천우진 곁에 가 앉았다.

“우리 우진이 그간 게임 하느라 피곤해 보이네? 내가 어깨 주물러줄까? 나 마사지 잘해.”

“뭐야? 왜 이래?”

“아니이~ 베스트 프렌드로서 친구 어깨 아플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니가 언제부터 날 걱정했다고?”

“항상 걱정하지~”

“야, 징그러우니까 떨어져.”

“아이잉~”

“징그러우니까 떨어지라고.”

“아, 알겠다.”

“나 잠깐 전화 한 통만 한다.”

“응? 누구랑?”

“아는 기자한테 특종 하나 제보하려고.”

“……!”

“천하의 한태성이 무림 서버로 부캐를 팠는데, 부캐가 고자가 됐… 읍! 읍읍!”

황급히 천우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 제발.”

일단 빌고 보자.

“나 한 번만 살려 주라. 응? 제바아알. 그거 기사 나가면 나 죽어.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니냐. 자살해야 돼.”

“살고 싶냐?”

천우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 ㅈ나 살고 싶어. 좀 살려 주라. 응?”

“그럼 짖어 봐.”

“뭐?”

“개처럼 짖어 보라고.”

하.

베프라도 그렇지 선 넘네?

이게 누굴 뭐로 보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개처럼 짖어 보라고 하면 짖을 줄 알았나.

“야, 천우진.”

“어?”

“대형견으로 짖어 줘 소형견으로 짖어 줘.”

짖으라면 짖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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