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68화 (68/115)

제68화.

“대, 대형견?”

“컹! 컹컹컹! 컹컹! 컹컹컹!”

“푸하하하하!”

“컹! 컹컹!”

“푸하! 푸하하하! 푸하하하하!”

“컹! 컹컹컹! 컹컹컹!”

짖어 달라니 짖어 드렸습니다아!

까짓것 못 짖을 게 뭐야?

사나이 자존심 따위 개나 주라지.

나는 내 프로게이머로서의 가오가 더 소중하다고…….

“큭. 큭큭큭. 진짜 어지간히 쫄리나 보네. 천하의 한태성이 짖으라니까 짖는 거 보면.”

“왜? 부족해? 그럼 이번엔 소형견으로 할까? 왈! 왈왈! 왈왈왈! 왈!”

“됐어, 인마.”

천호진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짖으란다고 또 짖냐?”

“그럼 안 짖냐? 네가 짖어 보라며.”

“농담이야, 농담. 뭘 또 짖고 그러냐. 우리 사이에.”

“너 같으면 안 짖겠냐? 으으!”

사실 일부러 짖은 거다.

이렇게라도 해 놔야 입조심을 하지.

이 자식 은근히 입이 싼 편이니까.

“처음에 깜짝 놀랐잖아. 원래 아버지가 회사 얘기 잘 안 하시는데. 엊그제 말해 주시더라. 너 부캐 팠는데 고자 됐…… 읍!”

“야 이.”

이게 진짜!

누구 혀 깨무는 꼴 보고 싶나?

“입조심 안 하냐?”

“미, 미안하다. 큭큭큭.”

“웃어?”

“웃지, 우냐?”

“그건 맞지.”

나라도 웃을 테니까 이건 인정이다.

“어떻게 된 거냐?”

“뭐가?”

“슈퍼계정인데도 부캐 생성이 안 됐었잖아. 근데 왜 갑자기 부캐를 판 거야?”

“사부님이 보내 줘서 간 거지. 슈퍼계정은 여전히 먹통이다.”

“아.”

“본캐 스킬 계승 때문에 부캐 생성이 막힌 거 같더라고. 시스템이 본캐를 오버 밸런스로 인식하나 봐.”

“하긴. 디버프 마스터가 진짜 개사기이긴 하지.”

천우진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본캐가 그냥 넘어갔으면 무림 서버 그날로 문 닫았을 듯?”

“그러겠지.”

“그래도 얼굴 좋아 보인다?”

“내 얼굴이?”

뜬금없이 뭔 소리야?

요즘 피부과 안 다닌 지도 좀 됐는데.

“딱히 달라진 거 없는 거 같은데? 원래 피부가 나쁜 편도 아니고.”

“누가 시커먼 아저씨 피부 좋아 보인다고 했냐? 그냥 얼굴 폈단 얘기지.”

“아?”

“솔직히 저번에 봤을 땐 우울해 보여서 살짝 걱정했었다.”

“우울해 보여? 내가?”

“너만 몰랐지 주변 사람 다 알았는데?”

“그, 그래?”

“그거 가지고 제수씨가 나한테 상담도 몇 번 했었어. 너 좀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인다고. 의욕도 없어 보이고.”

“그, 그랬냐?”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아내가 이 자식한테 상담까지 했을 줄은 진짜 몰랐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 보였나…….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너 은퇴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부터 그랬어. 뭔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식물마냥.”

“하하하…….”

“그거 때문에 제수씨가 엄청 신경 쓰고 그랬어. 아예 프로 생활 접을 생각까지 했었다니까?”

“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 * *

아내는 지금 프로게이머로서 최전성기를 누리는 중인 데다가 판타지 서버 랭킹 1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개인 리그와 팀 단위 세력전 리그에서도 맹활약하고 있고.

그래서 은퇴 후에는 최선을 다해서 아내를 서포트하면서 지내곤 했었지.

무림 서버에 부캐를 파기 직전까지.

그런 아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그만두려고까지 했었다니 정말 충격이다.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 도와주고, 지지해 주고, 품어줘야 할 내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었다니…….

“그만큼 너 심각해 보였어. 우울증 터지기 직전이었다고.”

“나는 몰랐지…….”

“근데 오늘 보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왜?”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냐. 겜 다시 시작하고 나서부터 활기가 도는 거.”

“……!”

“그래,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다시 겜돌이로 돌아온 모습 보니까 보기 좋다, 야.”

“그러냐?”

“사이버 망령 본성이 어디 가겠냐? 괜히 은퇴한답시고 노인네 코스프레하지 말고, 앞으로도 현역으로 활동해. 차라리 그게 더 보기 좋아.”

“에이, 현역은 무슨.”

피식 코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프로게이머로서 복귀는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다시 BNW를 즐길 수 있게 된 걸로 족하다.

“그냥 소소하게 게임이나 하는 거지. 됐다, 현역 복귀 같은 건 생각 없어.”

“퍽이나 그러겠다.”

“으응?”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복귀하게 될걸? 네 실력이 어디 가겠냐?”

“그냥 늙고 병든 일개 게이머일 뿐이야. 프로는 무슨.”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아무튼. 제수씨한테 잘해.”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ㅈ나 잘할 거야.”

“비밀은 지킬 테니까 걱정 말고. 알지? 무림 서버에 너한테 벼르고 있는 놈들 한둘 아닌 거?”

“잘 알지.”

옛날에 판타지 서버에서 나한테 당한 놈들 중 몇몇은 무림 서버 랭커로도 활동하고 있다니까, 확실히 몸을 사리긴 해야 한다.

“300레벨 찍고 환골탈태할 때까지는 절대 비밀이야.”

“알겠다. 걱정 붙들어 매셔.”

“그래.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냈냐?”

“나야 뭐.”

천우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니까 정말 좋다.

“한태성 선수! 팬이에요!”

“사진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중간중간 팬분들이 다가와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바람에 대화가 끊기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고마우신 분들이니까.’

팬서비스는 언제나 환영이다.

나는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프로게이머 출신.

팬들의 성원 덕분에 먹고사는데, 팬서비스가 싫으면 나가 뒈져야지.

팬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광고도 찍고, 연봉도 받고, 방송 출연료도 받아서 내가 이렇게 호의호식하면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고사는 건데.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악플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것도 다 관심이라고 생각해서 딱히 마음에 담아 둔 적은 없다.

부캐가 고자라는 것만 알려지지 않으면 되는 거지.

“그래도 얼굴 좋아 보여서 진짜 다행이다.”

“고맙다.”

“어?”

천우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야?

“왜? 뭔 일 있냐? 주변에 기자라도 있어?”

“그, 그게 아니라.”

천우진이 카페 밖을 가리켰다.

“너 아까 차 뚜껑 열어 놓고 들어오지 않았냐? 닫기 귀찮다고?”

“그랬지?”

“비… 오는데?”

“뭔 비가 와. 날씨 쨍쨍하기만 하…….”

쏴아아아아아아!

“……오네?”

발레파킹을 도와주시는 직원분이 황급히 카페 안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하, 한태성 선수! 빨리 오셔서 차 뚜껑 닫으셔야 합니다! 소나기가 와서…… 지금 차 내부 다 젖습니다!”

아, 안 돼!

“내 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이런 ㅆ발!

갑자기 왜 소나기가 오고 지랄이냐고!

* * *

결국, 내 소중한 50억짜리 하이퍼카는 비 맞고 독감에 걸려서 서비스센터로 실려 가고 말았다.

시트는 탈거해서 말리고.

오디오나 조작 버튼 같은 전자기기들은 교체.

기어봉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가서, 그것도 분해해서 말리고 기름칠을 해야 한단다.

수리비 견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흑.

내 돈.

‘요즘 인생에 마가 꼈나. 왜 이렇게 운이 안 좋지.’

게임 내에서도 운이 안 좋은데 현실에서까지 운이 안 좋은 게 말이 되냐고.

점쟁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운 좀 없으면 어때.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는데.’

그래도 천우진과 나눴던 얘기 덕분인지, 나빴던 기분이 금세 다시 좋아졌다.

아내가 나를 위해서 프로게이머 생활까지 그만두려고 했었다니…….

‘게임은 내일 하고 오늘 저녁은 설화랑 좋은 시간 보내야지.’

근처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다가 아내를 위해 정성껏 저녁을 준비했다.

“어? 뭐야? 오늘도 저녁 차려 주는 거야?”

방송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내가 요리하는 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오늘은 게임 안 해?”

“응, 안 해.”

“왜???”

“게임은 내일 하면 되지. 오늘 저녁엔 여보랑 시간 보내려고. 얼른 씻고 와. 다 됐어.”

“응!”

아내와 함께 직접 만든 음식을 먹고, 와인도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재밌게 잘 놀고 들어왔어? 아까 낮에 우진 오빠 만난다고 톡 보냈었잖아.”

“아, 그거.”

아내에게 천우진 놈을 만났던 얘기를 해 줬다.

나 때문에 프로게이머를 관두려고 했었냐고도 물어봤다.

“아, 그거.”

아내가 슬며시 웃었다.

“솔직히 좀 걱정돼서. 나한테는 내 프로게이머 커리어보다 오빠가 더 소중하니까.”

“여보…….”

“그리고 우진 오빠한테는 말 안 한 게 있어.”

“뭐?”

“나 솔직히…….”

아내가 조심스레 얘길 꺼냈다.

“아기 갖고 싶었거든.”

“아, 아기?!”

“응.”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웃었다.

“우리 벌써 결혼한 지도 3년 차잖아.”

“하지만…….”

“내가 갖고 싶어서 그래. 아기 때문에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위해서 그만두고 싶은 거야.”

“……!”

“나한테는 프로게이머 생활보다 우리 둘 사이에 아기를 갖는 게 더 중요해. 인생에 있어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잖아.”

솔직히 나 역시 아기를 갖고 싶다.

우리 둘의 소중한 결실을.

하지만 단 한 번도 아내를 조르거나 티 내 본 적은 없다.

내 욕심보다 아내의 프로게이머 생활이 더 중요하니까.

“딱 1년만 더 하고 그만둘래. 그다음부터는 가정에만 집중하고 싶어.”

“괜찮겠어?”

“희생하는 게 아니야. 내가 그러고 싶은 거야.”

“설화야…….”

“오빠 걱정돼서 좀 더 일찍 그만두려고 했는데, 오빠가 요즘 괜찮아져서 딱 1년 정도만 더 활동할까 해. 오빠 생각은 어때?”

“나야 대찬성이지.”

어느 안전이라고.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인데 찬성하지 않을 리가.

“사랑해.”

“내가 더.”

아내와 부둥켜안고 따스함을 나눴다.

행복하다.

운 좀 없으면 어때?

이런 아내가 있는데!

* * *

다음 날 아침.

“으. 피곤해.”

간밤에 열일(!)을 해서 그런지 피곤하네…….

“뀨! 주인놈아! 왔냐!”

“구! 구구구!”

로그인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햄찌와 꼬꼬가 쪼르르 달려왔다.

윙~

위잉~

하.

니들은 좀 가라…….

이 똥파리 새끼들 진짜 지겨워 죽겠네.

“구! 구구구!”

으응?

꼬꼬 너 뭐 해?

“콕! 콕콕!”

너…… 설마 똥파리 잡아먹는 거냐???

진짜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누가 비둘기 아니랄까 봐.

“그만 처먹어! 더럽게! 누가 보면 모이 안 주는 줄 알아!”

“구! 구구구!”

똥파리들을 잡아먹는 꼬꼬를 뜯어말린 후 길을 나섰다.

“뀨! 주인놈아! 거의 다 왔다!”

“구! 구구구!”

오?

규모가 상당한데?

물론 수도인 남경에 비하면 코딱지만 한 도시였지만, 그래도 호북성 무한보단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거긴 독감이 유행이라 대낮에도 거리가 휑~ 했으니까.

어디 보자…….

서문세가가 어디 있나…….

“뀨! 주인놈아! 저기 봐라!”

“으응?”

햄찌가 가리킨 곳을 보니 안내 책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뭔 테마파크냐???

안내 책자가 왜 있는 거야…….

나야 고맙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다 가져갔는지, 마침 딱 하나 남았네.

안내 책자를 향해 손을 뻗는데.

스윽.

누군가 슬쩍 끼어들어 안내 책자를 먼저 낚아채 갔…… 어림없지!

촤라락!

[알림: <고장현 안내 책자>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가 아니라!

내 손이 다른 손보다 빠르지.

후후후.

‘서문세가가 어디 있나.’

안내 책자를 펼쳐 읽으려는데.

“어허? 이놈이?”

웬 독사같이 생긴 노친네가 얼굴을 슥 들이밀고 눈을 부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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