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농담 아니라 노친네는 진짜 독사처럼 생겼다.
쭉 찢어진 눈에 얇은 입술.
수염도 덥수룩하고 멋있게 난 게 아니라 뭔 쥐새끼처럼 삐죽삐죽하네.
혀만 갈라져 있으면 딱일 거 같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독사같이 생긴 노친네가 대뜸 시비를 걸어왔다.
“방금 그 안내 책자는 노부(老夫)가 먼저 선점했거늘! 어딜 새파랗게 어린놈이 잽싸게 낚아채 간다는 말이냐!”
“제가 먼저 찍었는데요?”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먼저 집으려고 했던 걸 끼어든 게 누군데?
“그리고 제가 먼저 손을 뻗었는데 중간에서 끼어드신 거 아닙니까?”
“이놈이?”
“노약자 전용 안내 책자였으면 양보해 드릴 텐데, 보니까 아니네요. 그냥 곱게 가던 길 가십쇼. 생떼 쓰지 마시고.”
갈 길 바쁜데 시비야.
확 그냥 노인공격 해 버릴까 보다.
‘세문세가 위치가…….’
안내 책자를 펼쳐 서문세가의 위치를 확인한 뒤 미니맵에 경로를 찍어 미리 표시를 해 뒀다.
이럴 땐 시스템이 유용하긴 하다.
책자를 계속 펼쳐 보고 있으면 불편하니까.
[M맵]
출발지 : 현 위치 (고장현 초입)
목적지 : 세문세가 정문
이동수단 : 도보
엠맵추천 : 35분 (골목길 포함)
오?
내비 기능이 있네?
[알림: 엠맵 추천 경로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캬.
세상 좋아졌네.
나 한참 게임할 때는 이런 기능까진 없었는데.
새로 업데이트된 모양이다.
“야, 햄찌야.”
“뀨?”
“걸어서 35분 정도 걸린다니까 너 좀 타고 가자.”
“뀨! 알겠다!”
햄찌의 등에 올라타 안내 책자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혹시 모르니까 챙겨 가야겠다.
언제 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야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또 뭔데?
“안내 책자를 다 봤으면 노부에게 줘야 할 것이 아니냐!”
“제가 왜요?”
“뭐, 뭣이?!”
“제 물건을 왜 영감님한테 드려야 하죠?”
“네, 네놈 물건이라고?”
“그럼 아닙니까?”
이 양반이 아침부터 뭘 잘못 자셨나…….
“제가 먼저 가져갔으니까, 제 물건이죠. 그리고 필요하시면 정중하게 부탁을 하셔야지, 그렇게 꼬장 부리시는데 어르신 같으면 보여 드리고 싶겠습니까?”
“꼬즈아아앙?!”
“정중히 부탁하시면 생각해 보죠.”
“이런 싸가지 밥 말아 처먹은 놈!”
“안 보여 드려도 상관없단 말씀이시죠?”
“크흠!”
“싫으면 마시고요.”
“아, 알겠다.”
독사같이 생긴 노친네가 꼬리를 내렸다.
“내 그 안내 책자가 필요하니 좀 보여 다오. 보고 바로 돌려주마.”
“싫은데요?”
“뭬야?!”
“은자 한 냥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세상에 공짜가 어딨습니까? 정당한 대가를 치르셔야죠.”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노부를 가지고 놀…….”
쌔앵!
햄찌의 액셀…… 이 아니고.
고삐를 끌어당겨 속도를 높였다.
“야 이 싸가지 없는 놈아! 게 서지 못할까! 게 서란 말이다! 노부가 네놈의 그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놓을 것이다!”
등 뒤에서 노친네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게 들렸다.
히히!
그러게 누가 대뜸 시비부터 걸으래?
팍 씨!
노인공격 안 한 걸 다행으로 아십쇼.
* * *
노친네를 따돌리자마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이동했다.
나름 인구 많은 도시라 그런지 속도를 높였다간 사람 치기 딱 좋을 것 같다.
천천히 가면서 거리 구경이나 좀 해야지.
“뀨! 주인놈아! 이 속도면 그냥 걸어가는 게 낫지 않냐? 뀨우?”
“그런가?”
“뀨! 지금 시속 4킬로미터다! 뀨! 이러면 걷는 거랑 뭐가 다르냐! 걷는 거보다 느리다! 뀨! 주인놈 내려라! 햄찌 허리 아프다! 뀨우!”
“그러네.”
그냥 내려서 천천히 걸어가야 겠…….
띠링!
응?
[알림: 전방에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습니다!]
[알림: 서행하세요!]
이젠 하다 하다 어린이 보호구역까지 있어?
[알림: 주의하십시오!]
[알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치어 사고를 내면 큰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
조심해야지.
어린이들은 소중하니까.
현실에서도 게임 속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절대 서행이 맞지.
근데, 햄스터 타고 시속 4킬로미터로 걸어가는데 누굴 치는 것도 어렵…….
툭.
뭔데……?
털썩.
웬 심술 궂게 생긴 꼬맹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일부러 햄찌와 스치더니, 대자로 드러누웠다.
얘 지금 뭐 하는 거야……?
[알림: 어린이를 치었습니다!]
내가 언제!!!
“으아아아아아아앙!!!”
꼬맹이가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울어 젖혔다.
야!
너 왜 울어?
니가 와서 스쳐 놓고!
[알림: 주의하세요!]
[알림: 최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장난치는 어린이들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알림: 개중에는 악의적으로 자해 공갈을 일삼는 나쁜 어린이들도 많습니다!]
[알림: 똥 밟았다 생각하고 합의금이나 준비하십시오!]
쟤 자해공갈범이었어???
“으아앙! 으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애가 드러누워 우니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웅성웅성!
“지금 애를 친 건가?”
“허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 저 쓰레기 같은 놈!”
“저런 서생원을 타고 애를 치다니! 아주 천하의 몹쓸 놈이로구먼!”
아,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피해자야!!!
쟤가 가해자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천천히 가는데 얘가 먼저 다가와서 일부러…….”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잡아라!”
“저놈 잡아라!”
“감히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치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관군들이 우르르 몰려와 날 포위했다.
“이놈! 당장 내리지 못할까!”
어어?
어어어?
“그, 그게 아니라요! 일단 제 말을… 으악!”
날 강제로 햄찌에서 끌어내린 관군들이 포승줄까지 채웠다.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관아로 가자! 이 범죄자 놈아!”
“자, 잠깐! 그게 아니라니까!”
“어허! 계속 반항하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서 더 엄한 벌을 내릴 것이다!”
“내 말 좀 들어 보라고오오오오!!!”
하.
인생.
요즘 ㅈ나 꼬이네.
ㅆ발.
* * *
관아로 끌려간 뒤.
“그, 그러셨습니까? 공공. 저희가 몰라뵙고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분을 밝힌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동창 소속인 거 밝히고 싶지 않다고…….
누가 고자인 걸 밝히고 싶어 하겠냐고…….
“저 그럼 가 봐도 되는 거죠?”
“저어, 공공.”
“예?”
“바로 나가실 순 없습니다.”
“뭐라고요?”
“공공께서 결백하신 건 알지만, 요즘은 국법이 지엄해서 공공의 무죄를 입증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피해자가 계속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하하. 이럴 경우 목격자들의 진술부터 확보하고,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당시 운전하셨던 탈것의 속도가 얼마나 됐는지…….”
이러쿵저러쿵.
주저리주저리.
그래서 결론이…….
“그냥 합의금을 주시고 좋게 마무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합의금이요?”
“피해자가 은자 2냥을 불렀습니다.”
“…….”
“그냥 주시고 마무리하시지요. 공공께 은자 2냥은…….”
“절대 못 줘요.”
“예?”
“때려죽여도 합의 못 하니까, 수사해 주시죠.”
코흘리개 자해공갈범이랑은 합의 절대 못 하지.
돈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다.
자존심 문제지.
두고 보자!
이 코흘리개 범죄자 놈아!
내가 한 푼이라도 뜯기나!
“그… 아무리 빨리 수사한다고 해도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는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아무래도 목격자들을 수소문하고 증언을 받아내고 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10분 뒤.
“뀨! 주인놈아! 합의 왜 했냐! 주인놈 자존심도 없냐! 뀨!”
“조용히 해라. ㅈ나 짜증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은자 2냥을 합의금으로 주고 풀려났다.
ㅆ발 진짜.
절대 합의하기 싫었는데.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관아에 있어야 한다는데 그럼 어떡해!
다시 세문세가로 가는데.
“뀨! 주인놈아! 쟤 아까 그 자해공갈범 아니냐! 뀨우!”
“뭐?!”
햄찌가 가리킨 곳을 보니 나한테서 합의금을 뜯어낸 코흘리개 범죄자 놈이 유유히 걸어가는 게 보였다.
언제는 치여서 아프다며?
입에 문 당과랑 손에 든 전병을 보니 나한테 뜯어간 합의금으로 산 게 분명하다.
이 어린노무새키가!
벌써부터 못된 짓만 배워 가지고!
“야! 너 이 새키! 이리 와 봐!”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준다, 내가.
“아, 왜.”
어어?
“왜? 때리게?”
“그럼 내가 네깟 코흘리개 하나쯤 못 쥐어박을 거 같냐? 엉?”
“나 운다?”
어쭈?
“이게 진짜!”
“으아아아아아앙!!!”
“……!”
“으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앙!”
자해공갈범답게 아주 자빠져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이, 이 새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웅성웅성!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애를 팬 거야?”
“백주대낮에 애를 패? 에라이 이 쓰레기 같은 놈아!”
“저런 쳐 죽일 놈!”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 대며 날 욕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안 때렸어!
아직은!
“ㅋ.”
그 와중에 자해공갈범 녀석이 은근슬쩍 날 약 올렸다.
“으으… 으으으…!!!”
뒤, 뒷골이 당겨.
혈압이…… 으윽!!!
[알림: 경고, 경고!]
[알림: 사용자를 모니터링하던 중 혈압의 급격한 상승이 감지되었습니다!]
[알림: 접속을 종료하고 119에 연결하시겠습니까?]
[알림: 10초 내에 응답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19와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사용자의 신체 데이터를 전송하고 긴급 구조를 요청합니다!]
[알림: 긴급 구조 프로토콜이 캡슐 내 심장 제세동기를 준비합니다!]
[알림: 10초 후 인공호흡기가 사용자에게 산소를 공급합니다!]
겨우 정신줄을 붙들고, 긴급 구조 프로토콜을 껐다.
“이 쓰레기 같은 놈!”
“당장 관아에 끌고 갈 테다!”
자해공갈범한테 속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튀, 튀자!”
“뀨?”
“ㅆ발 그냥 튀자고!”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피해 황급히 내뺐다.
“두고 보자! 이 새뀌야! 너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언젠간 복수하고 만다! 내가!”
오늘의 치욕을 잊지 않을 거다.
절대로.
* * *
우여곡절 끝에 서문세가 앞에 도착한 나.
“어떻게 오셨습니까?”
“천기자라는 영감님이 여기 계시다고 해서 왔는데요.”
“금방 확인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름 명문가라 그런지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도 절도가 있고 예의가 바르다.
경비병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서버의 기사들에 더 가까운 인상이라고나 할까?
암, 명문가의 대문 앞을 지키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이래야지.
그렇게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앗! 네놈은!”
어?
“요놈! 잘 만났다! 노부가 네놈의 버르장머리를 아주 단단히 고쳐 줄 것이다!”
아까 고장현 입구에서 시비가 붙었던 그 독사같이 생긴 노친네가 씩씩대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에라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저 노친네 목적지도 여기였어?
“뀨! 주인놈아! 쟤 봐라! 그 자해공갈범이다! 뀨우!”
뭐?
고개를 돌려보니 나를 두 번이나 엿 먹였던 빌어먹을 코흘리개 놈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 너 잘 걸렸다! 이번에야말로…….”
어른의 매운맛을 보여 주마!
확 그냥…….
“요놈!!!”
노친네가 버럭 소리치더니 족히 수백 개는 될 것 같은 가느다란 침을 내던졌다.
쏴아아아아아!!!
어쭈?
감히 침을 뱉…….
아.
그 침이 아니구나.
휘리릭!
황급히 쓰고 있던 회륜반을 벗어 방패막이로 썼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산공독을 발라놨던 추혼비접을 날렸다.
이 고약한 노친네!
어디 맛 좀 봐라!
나도 이판사판이야!
내가 이래 봬도 어?
나름 노인공격 전문…… 이건 좀 아닌가?
파르르르르!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날아간 추혼비접이 노친네를 노리고 날아들던 중.
덥석!
노친네가 내가 날린 추혼비접을 맨손으로 낚아채는 기염을 토했다.
어?
“추혼비접……!”
노친네가 낚아챈 추혼비접을 보다니 날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네놈.”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노친네가 내공을 끌어 올렸는지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날 압박했다.
“이 추혼비접을 어디서 얻었느냐?”
“예?”
“사천당문의 독문병기인 이 추혼비접을 어디서 얻은 것이냔 말이다!!!”
그거…….
주운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