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돌멩이를 던져서 떨어지는 낙엽을 맞추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낙엽은 떨어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지 않을뿐더러, 부는 바람에 휘날릴 때도 있었으며, 궤적 또한 예측하기가 힘들기 마련이었다.
물론 수십 개쯤 던지다 보면 어쩌다 한두 개쯤은 맞추는 게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청년의 돌멩이는 한 번 날아갈 때마다 낙엽을 아주 정확하게 맞추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년은 떨어지는 낙엽 여러 개를 동시에 맞출 수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일렬로 정렬하는 그 미세한 순간을 포착해서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져 맞춘다는 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기술이었다.
그러려면 돌멩이가 날아가는 속도와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를 정확하게 간파해야 했고.
떨어지는 낙엽들의 궤적을 읽어야 했으며.
부는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각기 다른 낙엽들이 일렬로 정렬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도 청년은 그 어려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 코까지 후비적거리며 해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놀라긴 일러도 한참 일렀다.
‘저, 저런!’
서문범은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만 숨이 멎을 뻔했다.
툭, 투둑, 툭, 툭, 툭!
돌멩이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맞추더니, 그대로 튕겨 나와 다른 낙엽을 맞추고, 또다시 다른 튕겨 나와 다른 낙엽을 맞추었다.
돌멩이 하나를 던져 무려 일곱 개의 낙엽을 맞추는, 일타칠엽(一打七葉)의 신기(神技)를 선보인 것이다.
돌멩이가 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낱 낙엽에 탄성이 있는 것도 아닐 터.
그런데도 돌멩이가 낙엽들을 맞추고 튕겨 나와 또 다른 낙엽들을 맞췄다?
이는 단순히 돌멩이를 내던진 게 아니라, 기(氣)를 미세하게 조정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단순한 돌팔매질에 그야말로 드높은 경지의 공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필시 저 청년은 사천당문의 기재일 터! 당괴괴 어르신께서 인사를 시켜 주시려고 데려온 후기지수로구나!’
서문범은 돌멩이를 던지는 청년이 사천당문의 직계혈족이라고 확신했다.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의 명가(名家).
이 드넓은 천하에서도 사천당문만큼 암기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실력을 갖춘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저 청년이 보여 준 수준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사천당문 내에서도 비슷한 연배에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들 터.
‘사천당문에서는 떨어지는 대나무 잎들을 바늘이나 비도(飛刀)로 맞추는 수련 과정이 있다 하였다. 하지만 저 청년이 보여 준 일타칠엽의 기술은 그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것. 이제 갓 약관을 넘긴 것 같은 나이에 저런 신기를 보여 주었다면…….’
서문범은 저 청년이 사천당문 내에서도 역사상 최고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 천고의 기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현재 사천당문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과 실력을 갖추었다 알려진 이는 소가주인 당당천.
하지만 서문범은 당당천을 이미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사천당문에서 비밀리에 키워낸 유망주로구나! 허어! 어찌 저런 천재가 나왔단 말인가! 천운(天運)이 사천당문과 함께하는구나!’
서문범은 못내 사천당문을 부러워하면서, 청년을 향해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이리 뵙게 되어 영광이오.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범이라 하오.”
“아?”
청년이 그제야 서문범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소협의 공부가 워낙에 출중하고 깊이가 있기에 그만 홀린 듯 훔쳐보고 말았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오.”
무림인들에게 있어 타인의 수련을 훔쳐본다는 건 매우 큰 실례였으므로, 서문범은 기꺼이 청년에게 먼저 사과했다.
그건 서문범이 올곧은 성정을 지녔을뿐더러, 매우 예의 바른 인물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사천당문의 기재일지라도 서문범의 나이와 배분이 높을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사과의 뜻을 전달하기란 어지간한 무림명숙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행동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정작 청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아무래도 기분이 상했나 보군.’
서문범은 그런 청년의 반응에 재차 포권을 취하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서문범,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소.”
“……?”
“실례지만 소협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이까?”
“연오랑인데요.”
“아, 연 소협이셨…….”
그 순간.
‘연오랑?’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서문범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당오랑이 아니라?’
서문범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천당문이 비밀리에 육성 중인 천재인 줄 알았건만, 성이 당씨가 아닐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 *
뭐야?
이 아저씨 왜 이래?
뇌정지라도 왔나?
다가와서 밑도 끝도 없이 사과하는 것도 이상하고.
이름 물어보기에 대답해 줬더니 이런다.
어디 아픈가…….
‘아. 맞다. 딸이 아프다 그랬지.’
그래, 제정신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 같아도 딸이 오늘내일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할 것 같다.
안쓰럽네.
좋은 분인 것 같은데.
“소협의 성이 당이 아니라 연 씨요?”
“그런데요?”
“그럼 모친께서 당 씨요?”
“박 씨인데요?”
뭐지?
신종 패드립인가?
갑자기 우리 엄마는 성씨는 왜 물어봐?
아.
엄마 보고 싶다.
지난달에 크루즈 여행 보내 드려서 지금쯤 유럽에 계실 텐데.
“지,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것이오?”
“뭐가요?”
“정말로 사천당문과 아무 관계가 없소?”
“없는데요.”
아?
있긴 있나?
“거기 출신인 사람 한 명 정도는 알죠. 성질머리 더러운 노친네요.”
“……?”
“당괴괴 영감이라고. 꼬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안에서 천기자 영감님이랑 한바탕하고 있을걸요?”
“허어! 정녕 사천당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오?”
“없다니까요.”
“미, 믿을 수가 없구려.”
뭐라는 거야…….
뭘 자꾸 믿을 수가 없데…….
“많이 힘드시죠?”
측은한 마음에 서문범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 잘될 겁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소, 소협이 도와준다는 말씀이시오?”
“그럼요. 따님이 완쾌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정신줄 꽉 붙들어 매십쇼. 이럴 때일수록 아버님께서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좋으신 분 같아 보이니까, 힘내라고 응원의 말씀을 전달했다.
휴우.
진짜 안타깝네.
“오랑이 이 녀석아! 어딜 간 게야!”
덜컥, 문이 열리더니 천기자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서문 가주! 자네 왔는가!”
“천기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얼른 들어오게. 오랑이 네놈도 얼른 들어오너라. 다 모였으니 서로 통성명도 하고 얘기도 나눠야지 않겠느냐.”
씨이.
오랑이라고 하니까 무슨 오랑우탄이라도 된 기분이잖아.
“예, 갑니다.”
괜히 드잡이질하기 싫어서 일단 들어가기로 했다.
영감님들이랑 입씨름해 봐야 나만 손해인걸.
* * *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소. 서문범이라고 하오.”
서문범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연오랑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연 소협이 맞소? 당 소협이 아니라?”
“아니라니까요.”
슬슬 짜증 나네…….
“어르신, 정말로 연 소협이 당문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까?”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그걸 또 굳이 당괴괴 영감님한테 확인하는 이유는 뭐야?
“대사천당가에서 어찌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이 튀어나올 수 있겠는가? 우리 당문을 모욕하지 말게!”
어쭈?
진짜 한바탕해?
“그, 그렇습니까? 결례를 범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오해한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서문범이 당괴괴 영감과 나를 번갈아 보며 포권을 취해 보였다.
진짜 왜 저러는 거야?
“그건 그렇고. 그래, 갔던 일은 잘되었는가?”
“예, 어르신.”
천기자의 물음에 서문범이 대답했다.
“어르신의 예상이 옳았습니다. 그곳에 그것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오호라!”
그곳에 그것?
“희망이 보입니다! 어르신!”
“허나 그것을 얻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을 걸세.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일세.”
“예, 어르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대체 뭐라는 건지는 잘 못 알아듣겠지만, 서문범의 표정이 밝은 걸 보면 구양절맥의 치료법에 대한 해법을 찾은 모양이다.
아님 말고.
“자, 그럼 정식으로 소개하겠네. 여기가 바로 그 활인독수 당괴괴일세. 청성파의 의선…….”
천기자가 슬쩍 당괴괴의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보다 더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일세. 자네도 잘 알다시피.”
천기자 영감님 눈치를 보니 그 의선이라는 영감님이 저 노친네보다 뛰어난 게 분명하다.
아까 그래서 열폭한 거였네.
“급한 대로 란이의 증세를 완화해줄 걸세. 그리고 여기.”
천기자가 이번엔 날 가리켰다.
“연오랑이라고 하네. 비록 나이는 젊지만 란이 그 아이를 치료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일세.”
“그게 정말입니까? 어르신?”
서문범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돌아보았다.
“정말로 연 소협이 란이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확신할 순 없네. 다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란이를 보여 봐야겠지.”
천기자가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무슨 의원도 아니니까.
다만 구양절맥이 기(氣)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질병이니까, 어쩌면 나한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근원진기는 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전 우주에서도 손꼽힐 만한 심법이니까.
일단 봐야 알겠지만?
“흥! 제깟 놈이 무슨 수로 구양절맥을 치료하겠소? 형님도 말씀이 지나치시오! 저놈이 무슨 의술의 신도 아니고!”
“의선만 못한 주제에.”
“뭬야?!”
“구양절맥 같은 병을 치료하려면 그 의선이라는 영감님이나 데려올 것이지. 저런 성질머리 고약한 노친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이 노인공경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
“노인공격은 잘하는데, 어떻게 한번 해 드립니까?”
한바탕하려는데.
“지금 뭣들 하는 겐가! 언제까지 드잡이질을 할 게야! 정 분이 안 풀리거든 나중에 둘이서 따로 해결을 보게! 그땐 상관하지 않을 터이니!”
천기자 영감님이 끼어들었다.
“지금 우리끼리 다툴 때인가? 한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네! 우리는 란이 그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모인 걸세!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 란이를 치료할 때까지는 서로 불만이 있어도 참아야 하네!”
맞는 말이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노친네.
두고 보자.
노인공격이 뭔지 뼈저리게 알려 줄 테다.
노친네도 천기자 영감님의 불호령에 자기 잘못을 뉘우쳤는지, 입을 꽉 다물었다.
‘두고 보자! 이 싸가지 없는 놈아!’
어쭈?
눈빛을 보네?
질 수 없지.
‘예! 관짝 들어가실 날까지 죽만 드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도 눈빛으로 노친네를 욕했다.
“일단 다 같이 란이 그 아이를 보고 의견을 나누세.”
그때.
“가주님.”
서문세가의 문도가 들어와 서문범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뭐라!”
서문범이 벌떡 일어났다.
“왜? 무슨 일인가?”
“란이가 발작을 일으켰답니다!”
“이런! 얼른 가 보세나!”
“예! 어르신!”
“자네들도 어서 일어나 따라오게! 서둘러야겠네!”
응급상황인 모양이다.
‘가 보자.’
천기자 영감님과 서문범을 뒤따라 서문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뭐지?
왜 지하로 들어가?
서문란은 서문세가 안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하 공간에 격리되어 있었다.
환자를 지하에 둬도 돼?
쿵!
쿠웅!
저 멀리서 뭔가를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라 들렸다.
뭔데…….
환자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무슨 우리에 가둬 놓은 맹수를 보러 가는 기분이 들어…….
“히, 히익?!”
……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환자야?’
오늘내일한다던 서문란은 상상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서문란은…… 맹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