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격리되어 있는 서문란의 모습은 마치 강제로 묶어 놓은 사나운 맹수 같았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서문란은 사지가 금속으로 된 두꺼운 쇠사슬들에 의해 꽁꽁 묶인 채, 역시 금속으로 이루어진 침대에 묶여 있었다.
무슨 엑소시스트냐고…….
게다가 서문란은 헤비급 보디빌더조차 울고 갈 정도로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괴물이었다.
표현이 좀 과격한 것 같지만, 진짜로 괴물이란 표현밖엔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이제 20살 된다는 애 허벅지랑 팔뚝이 내 허리만큼 두껍냐고…….
피부는 열꽃이 잔뜩 피어 있어서 심각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 같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서문란이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철컹, 철컹!
절그럭, 절그럭!
그럴 때마다 팔다리에 묶인 쇠사슬들이 출렁출렁 요동쳤다.
쾅!
콰앙!
서문란이 팔다리를 바동거릴 때마다 강철로 된 침대가 푹푹 패였다.
어우야.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갈 것 같다.
저게 순수 힘이란 말이지?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라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서 만들어 낸 근육 괴수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르!
서문란이 포효할 때마다 입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스으으으으으으!
몸에서 허연 증기가 피어오르고.
치익!
치이이이이익!
체온이 어찌나 뜨거운지, 서문란의 몸에 닿은 강철 침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내 피부에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면, 실제 온도도 엄청나게 높을 게 분명했다.
‘격리시켜 놓을 수밖에 없었구나.’
왜 환자를 이런 음침한 지하 공간에 가둬 놨는지 이해가 된다.
저런 괴물을 풀어놨다간 기물파손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떼로 죽어 나갈 테니까.
“봤나?”
천기자가 날 돌아보았다.
“저게 구양절맥을 앓는 환자의 모습일세.”
“맙소사.”
“물론 처음부터 저런 건 아닐세. 지금의 모습은 병세가 극에 달했을 때의 증상일세. 양기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환자의 몸이 변이를 일으킨 것일세. 본래 저런 몰골의 아이는 아니라네.”
“아이고오.”
새삼 구양절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병인지 피부로 와 닿았다.
“사실 구양절맥은 여아에게서는 보기 드문 질병일세. 절맥증을 타고난다 한들 여아들은 구음절맥을 타고나기 마련이지.”
“구음절맥의 증상도 똑같은가요?”
“아닐세.”
천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구음절맥에 걸리게 되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되는 대신 육체가 급격히 약해지고, 나중에는 뼈밖에 남지 않아 얼음장 같은 한기를 뿜어내게 된다네.”
“정반대네요.”
“그렇지.”
“증세가 더 심해지면…….”
“스스로 발화(發火)할 걸세.”
“예?”
“구양절맥의 최후가 그렇다네. 치밀어 오른 양기가 터져 나오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게야. 그러다 결국엔 스스로 발화하면서 최후를 맞는 게지. 구음절맥의 경우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리고, 스스로도 얼어 죽지.”
어휴.
정말 끔찍하다.
외관상 구양절맥의 증세가 더욱 끔찍한 것 같긴 한데, 결과는 똑같다.
죽음 앞에 모양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으면 죽는 거지.
‘저래서 꼬맹이한테는 비밀로 했구나.’
이해가 갔다.
고작 7살짜리한테 누이의 저런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겠지.
이 괘씸한 자식.
누나는 저렇게 큰 고통을 받으면서 오늘내일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사기나 치고 다녀?
“란아, 란아!”
서문범이 몸부림치는 서문란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뭣들 하는가! 어서 란이를 붙잡아라!”
“예! 가주!”
서문세가의 정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서문란의 몸을 강제로 짓눌렀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
서문란의 괴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크윽!”
“크으으으윽!”
팔 하나당 무인 둘이 붙었는데도 제압이 안 될 정도.
치이이이익!
“으악!”
“으으윽!”
뿜어져 나온 열기가 서문범을 포함해 달라붙은 사람들의 손을 열기로 태워 버렸을 지경이다.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세문세가쯤 되는 곳이니 이렇게 격리시켜 두고 제압이라도 하는 거겠지.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어림도 없다.
발작할 때마다 대량살상을 일으키는 살인마가 되었을 테니까.
“이런 젠장!”
당괴괴 영감이 서문란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콸콸콸!!!
당괴괴 영감님이 탕약을 서문란의 입에 퍼부었다.
“여성용 강장제일세! 치밀어 오르는 양기를 어느 정도 눌러줄 걸세!”
어?
여성호르몬이란 소린가?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침을 놓겠네! 비켜 주게! 우선 옷부터 벗길 터이니!”
당괴괴 영감님이 거의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기 직전인 옷을 걷어내고, 알몸이 된 서문란의 몸 이곳저곳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근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치, 침이!”
당괴괴 영감님이 펄쩍 뛰었다.
치이익!
서문란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열기가 도대체 얼마나 뜨거운 건지, 침이 시뻘건 쇳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이런 젠장! 당장 얼음물을 가져오게! 어서! 체온이 너무 높아서 침이 녹아 버리질 않나!”
“예!”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얼음물이 든 물지게를 짊어지고 들어와 서문란의 몸에 뿌렸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허연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지하실을 뿌옇게 뒤덮었다.
그러는 사이 당괴괴 영감님이 서문란의 몸에 재빨리 침을 놓으려던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서문란의 몸에서 폭발적인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악!”
“으악!”
모두가 나가떨어지고.
“크르르…!!!”
서문란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화륵!
화르륵!
그런 서문란의 몸에서 서서히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아, 안 돼!”
나가떨어졌던 당괴괴 영감이 절망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미 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네! 너무 늦었어! 더는 방법이 없네!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폭사하고 말 걸세!”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서문범에게로 쏠렸다.
“란아, 란아!”
모두가 나가떨어진 와중에도 서문범은 딸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내상을 입었는지 코피가 줄줄 흐르고, 화염에 의해 화상을 입었음에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란아! 내 딸아! 아비다! 정신 좀 차려 보아라! 너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제발! 제발 이 아비를 버리지 말아다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아비다! 아비야! 제발 정신 좀 차려 보아라!”
서문범이 딸을 부둥켜안고 애원했다.
‘저게 아버지지.’
부성애를 발휘하는 서문범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나도 진짜 아버지가 되면 저럴 수 있을까?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난 그럴 거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테고.
“이보게! 당장 피해야 하네! 구양절맥의 양기가 밖으로 뻗어 나오면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칠 걸세! 우리 모두 다 같이 타죽는 게야!”
당괴괴 영감이 다급히 소리쳤다.
“이보게! 뭐라도 좀 해 보게! 왜 그리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가!”
천기자 영감님이 내 옷자락을 붙들고 소리쳤다.
“예에.”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안 그래도 나서려고 했습니다.”
자, 선수 입장!
이 몸 등장!
“방법이 있는가!”
“해 봐야죠.”
폭발 직전인 서문란에게 다가갔다.
‘뿜어져 나오는 양기가 너무 세. 내공을 밀어 넣어 봤자 다시 튕겨 나오겠네.’
우주근원진기를 주입해서 양기를 조절해 보려고 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옳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빨면 되지?’
난 서문란을 빨기로 했다.
* * *
지하실에서는 서문란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서문세가 앞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주 서문범은 천기자의 조언에 따라 서문란이 구양절맥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서문세가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장 서문세가 내에서도 서문란이 구양절맥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죽했으면 서문민에게조차 숨겼을까.
그래서 서문세가의 분위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평온했으며, 고장현 역시도 평소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형, 교대 후에 잠시 무공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야 환영이다.”
“감사합니다.”
대문 앞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작은 담소를 나누던 그때.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들어 서문세가 주변을 집어삼켰다.
“……!”
“……!”
문지기들은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크게 당황했다.
아직 해가 채 저물기도 전에 이런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는다는 것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종을 쳐라!”
“예! 사형!”
뎅뎅뎅뎅뎅!
문지기들이 종을 울리자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
“이렇게 짙은 안개가?”
“갑자기 무슨 변괴인가!”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깔깔깔깔깔!”
날카롭고 요사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퍼덕퍼덕!
누렇고 커다란 학이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서문가 놈들아!”
황학을 탄 늙은 노도사가 소리쳤다.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서문란이란 계집애를 내놓아라! 깔깔깔깔깔!”
그와 동시에 하얀 복면을 쓴 무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서문세가를 향해 돌진했다.
“죽여라!”
“모두 죽이고 서문란을 찾아라!”
“모조리 죽여라!”
하얀 복면.
그리고 역시 새하얀 무복.
그게 의미하는 바는…….
“배, 백련교…!!!”
“백련교다!”
“백련교도들이 쳐들어왔다!”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 * *
“비켜 주십쇼!”
서문란을 붙들고 있던 서문범부터 내팽개쳤다.
“여, 연 소협!”
서문범이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빨아야 잘 빨았단 소리를 듣지?
아, 그게 좋겠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지.
콰직!
서문란의 목을 움켜쥐고, 침대에 강제로 처박았다.
치이이이익!!!
목을 움켜쥔 오른손에서 허연 증기가 치솟아 오른다.
푸석!
푸서석!
산화부식장갑이 녹이 바스러지는 게 보인다.
다행히 뜨겁지는 않았다.
서문란의 목을 움켜쥔 손보다 몸이 더 뜨거웠다.
산화부식장갑이 열기를 차단해 주는 모양이었다.
꽈악!
오른손으로 서문란의 목을 계속 짓누르면서, 왼손바닥을 서문란의 가슴 정중앙에 붙였다.
치이이이이익!!!
“크으윽!”
산화부식장갑이 없어서 그런지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지, 지금 뭐 하는 게냐! 이 멍청한 놈아! 그러고 있다가는 네놈 혼자 타죽고 말 거다! 숯덩이가 될 거란 말이다!”
“아니! 연 소협! 뭐 하는 것이오! 왜 우리 란이의 목을 조르는 거요!”
놀란 당괴괴 영감과 서문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좀.
시끄럽네.
“일단 있어 보게! 뭔가 방도가 있어서 저러는 것일 테니!”
천기자 영감님이 막아 준 덕분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우웅!
포식대법을 발동했다.
쭈우우우우욱!
왼손을 통해 막강한 양기가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오!
된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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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기를 불어넣어 양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그럼 흡수하면 그만!
서문란은 넘치는 양기를 해소해서 좋고.
나는 화기를 흡수해서 좋고.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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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화기를 흡수하는데.
화아아아아아아악!!!
서문란으로부터 양기가 더욱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어어?
어어어?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서문란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알림: 경고, 경고!]
[알림: 서문란의 양기가 폭주합니다!]
[알림: 손으로는 부족합니다!]
[알림: 입을 사용하십시오!]
[알림: 입을 이용하는 방법이야말로 기를 빨아들이는 데 최적화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