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입을…… 이용하라고???
무심코 서문란을 내려다보았다.
“구왁! 구와아아아아악!”
……괜히 봤네.
퉁퉁 부은 얼굴.
악귀같이 일그러진 표정.
얼굴 전체를 뒤덮은 열꽃까지.
‘이걸 어떻게 입을 맞춰!!!’
아무리 사람 살리는 일이라지만, 쉽사리 내키지가 않는다.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
나도 사람이야, 사람.
입 맞췄다가 꿈에 나오면 어떡해…….
잠깐.
‘이거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
어째 시스템이 악의적으로 날 엿 먹이려고 그러는 것 같단 생각마저 들었다.
에이, 설마.
만약 그런 거라면…….
‘그땐 다 같이 죽는 거지. 가만 안 둬. 아주.’
본사로 쳐들어가서 서버실에 사제 폭탄이라도 터뜨려 버릴 거다.
“옳거니!”
천기자 영감님이 소리쳤다.
“흡성… 아니! 자네의 포식대법이라면 폭주하는 양기를 흡수할 수 있겠구먼!”
“말 시키지 마요!”
“어서 입을 사용하게!”
뭐요?
“입은 기를 흡수하는 데 있어 최적화된 신체기관일세! 버거우면 입을 사용하는 게 최선일세!”
야 이!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일부러 ㅈ되라고 부추기는 거지?
화아아아아아악!!!
“크으으윽!”
그러는 사이 뿜어져 나오는 양기가 더욱 강해졌다.
“뭘 망설이나! 자네라면 할 수 있네! 어서 입을 사용해 양기를 흡수하게! 시간이 없네!”
“젠즈아아아앙!!!”
“어서!!!”
에라, 모르겠다.
그래.
사람 살리는 일인데.
비위 상하는 게 뭐가 대수겠어.
악몽 좀 꾸면 되지.
질끈!
눈 딱 감고 입으로 서문란의 입을 틀어막았다.
“구왁! 구와아아아아아악! 그어어어어어어어어!”
제,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제발.
근데 너…… 이빨 안 닦았니?
쭈왑!
쭈와아압!
최선을 다해 서문란의 양기를 빨아들였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입까지 사용해서 그런가?
흡수되는 화기의 양이 엄청나게 늘었다.
서문란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던 양기도 서서히 사그라지는 게 느껴졌다.
“옳거니! 됐네! 됐어! 계속하게! 정말 잘하고 있네! 계속 빨란 말일세!”
쭈왑!
쭈와아아아압!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하셨습니다!]
“자네는 잠시 돌아서 있게. 지켜보기에 좋지 않은 광경이니.”
“하, 하지만…….”
“아무리 아비라지만 이런 모습까지 지켜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걱정 말게. 오랑이 녀석이 알아서 할 걸세.”
“예, 어르신.”
천기자와 서문범이 나누는 대화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말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치료를 위한 것이니.”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란이를 살리기 위한 일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역시 자네야. 아비로서 딸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지는구먼.”
“아닙니다. 란이가 살 수만 있다면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오랑이 녀석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차도가 있으니 일단 기다려 봄세.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 주는 것인데…….”
자, 잠깐.
이거 쎄한데?
설마…….
“오랑이 녀석은…….”
이 미친 노친네야!!!
하지 마!!!
그 말은 하지 말라고!!!
그 말만은 하지 마!!!
천기자 영감을 뜯어말리기 위해 치료를 잠시 멈추려는데.
꽈아악!
서문란의 입술이 내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었다.
“으읍! 읍읍! 읍읍읍! 으으으으으으으읍!”
있는 힘껏 저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구양절맥인 사람은 괴력의 소유자라 그랬던가?
그래서 그런지 입술 힘이 장난이 아니다.
“으으으으읍!!!”
아무리 저항해 봐도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뭔 입술이 문어 빨판 같아!
침팬지 입술 근육도 이거보단 덜 세겠다!
놔!
놓으라고!
나 할 말만 좀 하자!
잠깐만 놔 봐!
꽈아아악!
“읍! 으으으으으으으으읍!”
아무래도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 입술을 붙들고 놓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이, 살려 준다니까?
그러니까 잠깐만 ㄴ…….
“……환관 출신이라네.”
아.
“그러니 그런 쪽으로는 애당초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 오랑이 녀석은 사내로 볼 수가 없는 몸이니.”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 *
내 눈물겨운 희생 덕분에 서문란은 발작을 멈추고 잠에 빠져들었다.
철푸덕!
나도 뻗었다.
온몸이 솜뭉치처럼 무겁다.
땀에 흠뻑 젖었다.
머리칼도 땀에 절어서 이마에 들러붙은 게 느껴질 정도다.
[알림: 화기를 충분히 빨아들이셨습니다!]
[알림: 전신에 화기가 충만합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기술이 강화되었습니다!]
[알림: 필멸무참진이 화기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양기를 빨아들인 거야?
스킬까지 다 강화되고.
근데…… 뭐 이렇게 더워???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열꽃>에 걸렸습니다!]
[알림: 체온이 너무 높아 온몸에 열꽃이 피었습니다!]
[알림: 냉수마찰로 체온을 내리십시오!]
가지가지 한다.
증말 가지가지 해.
입술은 퉁퉁 부은 거 같던데.
당분간은 차마 거울도 못 보겠네.
“크핫핫핫핫!”
천기자 영감이 다가와 크게 웃었다.
“잘했네! 정말 잘했어! 구양절맥의 폭주를 막아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먼!”
웃어?
“자네라면 방법이 있을 줄 알았지! 자네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구먼! 암! 사람이 중요하지 무공이 중요하겠는가! 정공(正功)과 마공(魔功)은 결국 쓰는 사람의 손에 달…….”
“닥쳐어어!”
“꾸웨엑!”
드롭킥으로 천기자 영감을 날려버렸다.
쒸익쒸익!
“앞으로 어디 가서 그 얘기 꺼내는 순간 평생 입 못 열게 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어요?”
“미, 미안하네.”
“제 앞에서 환관의 환, 고자의 고자도 꺼내지 마십쇼.”
“명심하겠네. 다시 한번 사과함세.”
미안하면 애초에 미안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ㅆ벌 진짜!
열 뻗쳐서!
“네, 네놈.”
뭔데?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당괴괴 영감이 버럭 소리치며 내게 적의를 드러냈다.
하.
이 노친네 또 시작이네.
“어찌 그 저주받은 악마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냐!”
“이보게.”
천기자 영감님이 나서서 노친네를 뜯어말렸다.
“이야기하자면 사연이 기네.”
“형님!”
“자네가 생각하는 게 아닐세. 일단 진정하게.”
“하, 하지만…….”
“사람을 살리지 않았나! 오랑이가 방금 사람을 죽였는가? 한 아이를 살렸네! 활인(活人)을 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에게 악마의 무공이라니! 당치않네!”
“…….”
“자네의 별호가 무엇인가? 활인독수가 아닌가? 자네는 독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능한 사람이니 내 말뜻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네! 물질에 선악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을 죽이는 데 쓰면 독이요, 살리는 데 쓰면 약이 아니던가. 무공도 마찬가지일세. 사람을 살리는 데 쓰면 마공이 아닌 것이야.”
얼씨구.
그거, 내가 했던 말 아냐?
“무슨 뜻인지 알겠소.”
노친네가 물러났다.
“석연치는 않으나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내 일단은 참으리다.”
“계속 참아도 되네. 자네가 생각하는 그 무공이 아니니. 내 따로 설명해 줌세.”
“알겠소.”
그래도 나름 말귀를 알아먹는 걸 보면 아예 몹쓸 노친네는 아닌가 보네?
“연 소협! 정말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이다!”
서문범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딸을 살려 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건지.
내가 흡성대법처럼 보이는 무공을 사용한 건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내 자식 살리는 데 천사면 어떻고 악마면 어때.
살려 주는 사람이 천사인 거지.
“덕분에 내 딸이 살았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아뇨.”
고개를 저었다.
“아직 산 거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산 게 아니라니?”
“폭주하는 양기를 제가 흡수해서 잠잠해졌을 뿐이지, 치료된 건 아닙니다. 잠시 증세를 호전시켰을 뿐이죠.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양기가 끓어올라 발작하고 폭주할 겁니다. 지금처럼.”
“그, 그런 것이오?”
“이건 그냥 응급조치일 뿐이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진짜 치료라 할 수 있겠죠. 우선은.”
노친네를 돌아보았다.
“아까 하려던 거, 마저 하시죠. 탕약과 침술로 증세를 좀 더 눌러놓을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알겠다.”
오?
웬일?
노친네가 군말 없이 서문란에게로 다가가 탕약을 먹이고, 침을 놓았다.
이러면 한 며칠은 잠잠하겠지.
그 이후가 문제겠지만…….
“혹시 강력한 음기를 가진 약 같은 거 없습니까?”
“음?”
“강제로라도 음기를 보충해 줘서 음기와 양기의 비율을 맞춰 줘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완쾌될지도?”
화기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치료법인데, 가장 정석적으로 올바르고 확실한 치료법이란 확신이 들었다.
구양절맥의 양기를 누를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음기를 가진 약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게 문제지.
“역시 자네로군!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올바른 치료법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예?”
“사실…….”
천기자가 영감님이 말하려는데.
“가주님!”
피투성이가 된 무인이 뛰어 들어와 서문범을 향해 소리쳤다.
“습격입니다! 백련교의 무리들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뭐라!”
뭐?
백련교?
“싸움이 급합니다! 어서 가 보셔야 합니다! 크윽!”
“알겠네! 내 당장 가겠네!”
서문범이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백련교?
하.
또 사람 뚜껑 열리게 하네.
중양절 때도 그렇고.
맹호채 사건 때도 배후세력이었고.
심지어 서문세가까지 습격을 해 와?
‘이 새끼들 설마 나 쫓아다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내가 뭐라고?
놈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곳에 우연히도 내가 있는 거겠지.
‘아주 중원 전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이네?’
하긴.
수도 남경에서 열린 중양절 행사 때 테러를 저지른 놈들이다.
수도 한복판에서도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는데, 세문세가쯤이야.
모르긴 몰라도 중원 대륙 곳곳에서 별의별 짓을 다 저지르고 있을 거다.
“여기 계시죠.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알겠네.”
서문란을 맡겨두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밖은 자욱하게 깔린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혹시…… 중국산 미세먼지는 아니겠지???
마스크 쓸까…….
“뀨! 주인놈아! 안개 너무 많다! 뀨우!”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쪼르르 달려왔다.
“뀨우? 주인놈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뀨우!”
“갑자기?”
“뀨! 봐라!”
햄찌가 거울을 들이밀었다.
악!
내 눈!
“이, 이게 나라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
뭔 피부병처럼 온몸에 피어난 열꽃.
그리고 퉁퉁 부은 입술까지.
사람 몰골이 아니네.
하아…….
“뀨! 주인놈아! 무슨 병 걸렸냐! 몰골이 왜 그 모양이냐! 뀨우!”
“몰라…….”
“뀨! 주인놈아!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뀨!”
“내 몰골이 중요하지! 뭐가 안 중요해!”
“뀨! 주인놈아! 그때 그 영감탱이 나타났다! 뀨우!”
“그때 그 영감탱이?”
그때.
“깔깔깔깔깔!”
저 멀리서 낯익은 웃음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아.
누군지 알겠네.
“남화노선인가 요선? 그 황새 타고 다니던 영감탱이?”
“뀨! 그렇다!”
“그 영감탱이는 여기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기어왔대?”
“뀨! 햄찌도 모른다! 서문란 내놓으라고 난리쳤다! 뀨우!”
“서문란을 왜 내놓으래?”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구양절맥에 걸린 환자를 왜 내놓으래?
만약 서문란이 악인 같았으면 냉큼 넘겨줬을 거다.
구양절맥 환자 다루기가 좀 어려워야지.
“뀨! 일단 가 보자! 지금 여기 위험하다! 뀨우! 완전히 포위됐다! 뀨!”
“알겠어.”
일단 현장으로 가 보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