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79화 (79/115)

제79화.

소호카 유적지는 판타지 서버에 존재하는 사냥터.

번개뱀 파이톤이 추락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도시로서, 저레벨 게이머들이 본격적으로 파티사냥을 시작하는 던전이다.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인기 사냥터로서 많은 게이머들이 찾던 곳이다.

왜 없어졌냐고?

내가 거기 최종 보스를 처치하는 바람에 던전이 폐쇄됐거든.

헤헤헤.

어쨌거나, 당시 저레벨 게이머들처럼 나 또한 소호카 유적지로 가 성장을 꾀했다.

디버프 마스터로 전직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파티사냥에서, 나는 귀족으로 대우받았다.

디버프 필드만 깔아도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져서, 내가 속한 파티의 사냥 속도는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소호카 유적지에 나타나면 게이머들이 번호표까지 뽑아 가면서 나와 파티를 맺으려고 줄을 섰다고?

심지어 버스보다 낫다며 돈까지 주고 우리 파티에 들어오길 원하는 게이머들도 수두룩했다.

성큰파파는 내 그랬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궁창 같던 인생이 180도 달라졌던 그 순간을…….

“그때 태성 선수가 게임을 갓 시작했던 뉴비일 때였을 겁니다.”

성큰파파가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파티원이 대단했었죠. 고스란 님 아시죠? 프로게이머 고스란 님?”

“아, 알죠.”

ㅈ나 잘 알죠.

한때 저랑 살짝 썸도 탔었는데.

와이프를 안 만났다면 고스란이랑 결혼했을지도?

“그때 파티장이 고스란 님이었거든요.”

“……!”

“고스란 님이 데려온 서포터가 한태성 선수였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정말 상상도 못 했죠. 그 두 분이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고 전설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하.”

와 씨.

미쳤다.

이 사람 다 알고 있어.

무려 7년 전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저 그때 그 파티 고정 멤버였습니다.”

“……!”

“태성 선수가 디버프 필드들 깔아주면 저희가 신나게 몬스터들을 때려잡곤 했죠. 크으!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때 그 맛을 못 잊고 아직도 이 게임을 해요. 비록 서버는 옮겼지만. 하하하.”

“그, 그러셨구나.”

“그때 신혼이었는데. 아직 애도 없을 때고요. 제 게임 인생 황금기였죠. 이제는 배 나온 아저씨가 다 됐네요. 벌써 우리 애기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했으니까.”

기억난다.

그때 우리 파티에 고정멤버로 있던 사람들 중에 막 결혼했다고 자랑하던 사람 하나 있었지.

나중에는 와이프가 게임 못 하게 한다고 거의 접속을 못 했었지만.

‘아. 그때 그분이구나.’

닉네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확실히 누구인지는 알 것 같다.

이야.

그 사람을 여기서 다시 만나네.

“나중에 길드에도 들어갔었거든요. 뚝배기단이라고. 이게 그 길드 마크고요.”

성큰파파 님이 소매를 슥 걷어서 팔뚝이 새긴 문신을 보란 듯 자랑해 보였다.

“같이 제네시스 길드랑 싸우기도 했죠. 저야 길드 운영진도 아니고 워낙 저레벨 게이머라 태성 선수랑 따로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지만요.”

맙소사.

진짜 우리 길드원이었어.

그렇다고 기억을 못 하는 게 내 잘못은 아니다.

몇천 명이나 되는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어떻게 다 기억냐고…….

“그래도 진짜 즐거웠어요. 잠시나마 전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게 저한테는 영광이었죠.”

“그러셨구나.”

“이 문신, 그때를 추억하면서 새긴 겁니다. 현실에서는 우리 마누라 때문에 못 새기지만 게임에서라도 새겨야죠. 애 학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시간이 좀 생겨서 이렇게 게임도 하고요.”

성큰파파 님 얘길 듣다 보니 나도 추억에 잠기게 된다.

한때 함께했던 동료이자 전우를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갑고, 나와 함께했던 게 영광이라고 말해 줘서 마냥 고맙다.

“아무튼. 오랑 님 보니까 그때 태성 씨 생각이 나네요. 하하하. 아저씨가 너무 옛날 얘길 했나?”

머쓱했는지, 성큰파파 님이 괜히 뒤통수를 벅벅 긁는다.

“아닙니다. 저도 영광인데요, 뭘.”

“음?”

“저 보니까 한태성 선수 생각도 다 나시고. 저야 영광이죠. 하하하.”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성큰파파 님.

다시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고요.

차마 말은 못 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구나.’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내 가장 눈부셨던, 열정 넘쳤던 시절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이래서 내가 팬서비스에 소홀할 수 없다니까?

* * *

성큰파파 님 일행과 요괴들을 때려잡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사냥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라서, 경험치가 오르는 속도가 아주 미친 수준이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71레벨 달성!]

[알림: 72레벨 달성!]

그만큼 레벨도 쑥쑥 올랐다.

약초림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오랑 님?”

성큰파파 님이 날 불렀다.

“저희가 오히려 돈을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갑자기?”

“오랑 님이랑 같이 사냥하니까 속도가 미쳤어요. 저희끼리 사냥할 때보다 최소한 3배는 더 빠른데요?”

“에이, 뭘요. 저 혼자 사냥했으면 딜 부족해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텐데요. 데리고 와 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훈훈하다.

이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파티사냥을 해 본 게 얼마 만인지…….

“오랑 님 보면 볼수록 한태성 선수 생각나요.”

“조, 좋게 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때 생각 많이 나네요, 진짜.”

즐겁긴 한데 이러다가 진짜 걸릴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다.

하필 성큰파파 님이 내 쪼렙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 더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내 동료고 전우였으니까. 내 팬이시기도 하고.’

차마 정체를 못 밝히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다.

정체만 밝힐 수 있으면 따로 만나서 식사라도 대접하는 건데.

“이따가 돈 돌려드릴게요!”

“계속 같이하시죠!”

“아이고. 저희가 귀하신 분을 몰라뵙고.”

나머지 파티원들도 디버프 필드의 성능에 대만족했는지, 너도나도 친근하게 한마디씩을 걸어 왔다.

캬.

그래, 이게 디버프 마스터지.

직접 나서지 않아도 파티에서 귀족 대우를 받는 거.

내가 있고 없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자자, 지금부터 개골계곡이니까 다들 조심하세요.”

성큰파파 님의 지휘 아래 약초림을 벗어나 개골계곡으로 진입했다.

쏴아아아아아!

개골계곡은 말 그대로 계곡이었는데, 물살이 엄청 거세서 저기 휩쓸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여기 몬스터들은 작고 빨라서 피하기 어려우니까 되도록 뒤에 계세요.”

“네.”

성큰파파 님이 내게 귀띔해 주고는 앞서 걸어나갔다.

그렇게 한 5분쯤 걸었나?

“쉬익! 쉭쉭!”

“쉬이익!”

“쉭! 쉭쉭! 쉭!”

거의 수천 마리는 될 법한 독사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우릴 향해 덤벼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개굴! 개굴개굴!”

“두껍! 두껍두껍!”

수천여 마리의 독개구리와 독두꺼비들도 나타나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해댔다.

“찍! 찌익!”

“찌이익!”

“캬아아악!”

족히 만 마리가 넘을 것 같은 뱀, 개구리, 두꺼비들이 우리 파티를 향해 공격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크윽!”

“저, 저 중독이요!”

“으아악!”

파티가 위기에 빠졌다.

요괴들이 워낙 작고 빠른 데다가, 원거리에서 독을 뿜는 바람에 파티원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맷집이 워낙 약한 놈들이라 필멸무참진 없이도 한두 방이면 나가떨어지기는 하는데, 수가 워낙 많으니 아군 피해가 상당했다.

“크으윽!”

“으윽! 뭐 이렇게 많아!”

“저 해독 좀!”

다들 독에 중독돼서 그런지 얼굴이 시퍼런 게 상태가 안 좋다.

물려서 여기저기 피도 나고, 퉁퉁 붓고.

어?

이럼 전멸인데?

“구! 구구구!”

그 와중에 꼬꼬 놈이 개구리 한 마리를 꿀꺽 삼켰다.

“야 이 미친놈아! 아무거나 처먹지 마! 그거 독개구리야!”

“캑! 캑캑캑!”

꼬꼬 놈의 목을 조르고,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개구리를 강제로 빼냈다.

하.

누가 보면 동물학대인 줄 알겠네.

“뀨! 주인놈아! 뭐 좀 해 봐라! 다들 힘들어하지 않냐! 이러다 다 죽는다! 뀨!”

“안 죽어.”

짜식이 쫄아 가지고.

죽긴 누가 죽어?

우웅!

쇠약자멸진을 펼쳤다.

[쇠약자멸진]

오라, 죽음의 늪으로.

- 데우스

형태 : 설치형

범위 : 반경 25미터

효과 : 쇠약의 저주를 내려 필드 위에 있는 적들의 생명력을 지워버립니다.

독기를 많이 흡수하면, 스킬이 강화됩니다.

레벨 : 5

지속시간 : 80초

재사용 대기시간 : 100초

회색 디버프 필드가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독사, 독개구리, 독두꺼비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마치 지우개처럼.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쇠약자멸진으로 지워 버린 독물들의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그만큼 경험치를 획득했단 알림창도 많아 떠오른 거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73레벨 달성!]

[알림: 74레벨 달성!]

[알림: 75레벨 달성!]

눈 깜짝할 사이에 레벨이 3계단이나 상승하고.

[알림: 새 스킬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알림: 지금부터 <허공섭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스킬이 해금되었다.

오?

여기 완전히 경험치 밭이잖아?

“오, 오랑 님?”

“와. 진짜 미쳤다.”

“이 많은 요괴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

“방금 뭐 하신 거예요?”

파티원들이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날 돌아보았다.

윽.

이건 조금 부끄러운데?

“하하하.”

멋쩍어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애들 맷집이 약해서 그런지 그냥 녹아 버리네요. 하하하하.”

짜잔!

여기까지 적들이 사라지는 마술이었습니다아!

* * *

같은 시각.

천자산에 올랐던 만찐두빵의 파티는 경험치라고는 쥐며느리만큼도 못 먹은 채 번번이 허탕만 치고 있었다.

“아니 ㅆ발 진짜.”

만찐두빵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상도덕이 없어도 유분수지. 진짜 미친 새끼들인가. 아. 개 같은 거.”

그가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간 파티에서 요괴란 요괴는 모조리 죽여 버리는 바람에, 그의 파티는 사냥은커녕 여기저기 널브러진 요괴들의 시체만 구경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만찐두빵의 파티는 기껏 천자산에 올라서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었다.

요괴들이 아주 씨가 말라서, 작은 요괴들이 많이 출몰하기로 유명한 개골계곡까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저기요! 아 ㅆ발! 저기요! 야! 거기 멈춰! 멈추라고!”

결국, 참다못한 만찐두빵이 앞서가던 앞서가던 파티를 쫓아가 따지기에 이르렀다.

메인 사냥터인 요괴림에 도착한 뒤에도 앞서갔던 파티가 흘리고 간 부스러기(?)만 잡으려니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뭡니까.”

앞서갔던 파티의 파티장.

성큰파파가 뒤쫓아 온 만찐두빵을 가로막았다.

“다른 파티 파티장이신 거 같은데 무슨 볼일 있으세요?”

“여기 님들이 전세 냈어요?”

“예?”

“전세 냈냐고요.”

“사냥터에 전세 내고 말고 할 게 어딨어요? 특정 문파가 통제하는 곳도 아닌데.”

“근데 왜 님들이 다 드시냐고요. 님들만 입이에요? 님들이 앞서가면서 요괴들 다 싹쓸이하면 우린 어쩌라고요?”

“그건 그쪽 사정이죠.”

성큰파파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냥 속도가 빠른 걸 어떡합니까?”

“하. 말이 안 통하시네.”

화가 난 만찐두빵이 성큰파파를 향해 다가서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저 쓰레기 하나 버스 태우자고 이러시는 건가요? 지금?”

만찐두빵이 특정 인물을 가리키며 빈정거렸다.

“쓰레기이?”

가만히 있던 쓰레기, 연오랑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만찐두빵을 향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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