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뭐?
쓰레기이?
이 새끼가 미쳤나…….
“너 방금 뭐라 그랬냐?”
ㅈ나 열 받아서 나서려는데.
“잠깐만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랑 님은 뒤에 계세요.”
성큰파파 님이 날 뜯어말리더니, 만찐두빵을 향해 말했다.
“사과하시죠. 우리 파티원 욕한 거.”
“파티원?”
만찐두빵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파티원인데요? 쟤가? 버스 승객이 아니라? 님들 버스비 받고 여기 돌아주는 거잖아요. 어디서 구라에요.”
“아닌데요.”
성큰파파 님이 고개를 저었다.
“저분 우리 파티원 맞고요, 승객 아닙니다. 저분 덕분에 사냥 속도가 빨라진 건데 승객이라고 하시면 실례죠.”
“뭐라고요?”
“오랑 님 덕분에 사냥 속도가 빠른 거라고요.”
“지금 그걸 믿으라고요?”
“믿기 싫으면 마시고. 우리가 피곤하게 인증까지 해 줘야 할 이유도 없고. 승객이라고 해도 저희 파티가 사냥 속도가 빠른 거 가지고 굳이 쫓아와서 시비 걸어도 되는 건 아니죠.”
역시 결혼 선배님이자 학부형이라 그런지 말씀을 조리 있게 잘하시네.
역시 우리 뚝배기단은 달라.
쩝.
나도 저래야 되는데…….
아직 성질이 덜 죽었나 보다.
아기가 없어서 그런 건가?
“뭐 그렇다 칩시다.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데 요괴들 싹 쓸어버리면 우린 뭘 잡습니까? 예?”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하셔야죠. 하하.”
“뭐라고요?”
“저희가 그쪽 사냥하는 것까지 배려해 줄 이유는 없잖아요? 그렇죠?”
“아 ㅆ발 장난하나.”
어쭈.
욕을 해?
“ㅈ나 사냥터 전세 내고 지ㄹ…….”
“방금 욕하셨어요?”
성큰파파 님이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만찐두빵을 압박했다.
“다시 말씀해 보시죠.”
“…….”
“한바탕할까요?”
성큰파파 님이 물었다.
“…….”
입 꾹 다무는 거 보소?
분노조절장인이네, 장인.
하긴.
나이대도 우리 파티가 더 높아 보이는데, 레벨도 더 높고 템 세팅도 훨씬 좋다.
싸움이 벌어지면 쟤네 입장에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고?
행선지만 봐도 쟤네는 요괴림까지만 가는데, 우린 상위 지역인 혈붕절벽까지 가는 파티니까.
“짜증 날 수 있는 거 아는데, 선은 넘지 마셔야죠.”
“…….”
“오다가다 얼굴 보는 사이끼리 이러지 맙시다. 저희가 혈붕절벽으로 가고 나면 그때 사냥하세요. 저희도 굳이 요괴림까지 싹쓸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시죠.”
“기분 푸시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예, 뭐. 풀겠습니다.”
만찐두빵이 물러났다.
어어?
왜 안 싸워?
한바탕할 것 같더니?
에라이.
김 다 샜네.
* * *
만찐두빵 놈이 물러간 후.
“엥? 안 싸워요?”
성큰파파 님한테 물었다.
“예, 뭐. 그럴 수 있으니까. 우리 쪽에서도 이해해야죠. 오랑 님도 기분 푸세요.”
“왜요? 시비는 쟤가 먼저 걸었잖아요.”
“진짜 뉴비시구나.”
갑자기?
“무림 서버는 요괴 숫자 자체가 적어요.”
응?
“그래서 사냥터에선 다들 좀 예민해지는 거죠. 요괴 숫자는 적은데 사람은 많으니까. 이 게임이 몬스터가 무한정 생성되는 시스템도 아니고.”
“아하?”
“웬만하면 시비가 붙더라도 한 번 정도는 적당히 이해하고 물러나는 게 좋아요.”
“왜요?”
“무림 서버가 다른 서버보다 경험치 손실도 크고 캐릭터 딜도 세서 치명타도 잘 터지니까. 되도록 안 싸우려고 서로 조심하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무림 서버는 타 서버에 비해 PVP를 유달리 강조한 서버라 이겼을 때 이득도 크지만 손해도 크다고 했나?
그래서 한 번쯤은 몸 사리는구나.
“조심하셔야 돼요. 막 암습 같은 것도 하고 그러니까.”
“암습이요?”
“앙심 품었다가 뒤에서 몰래 푹 찌르는 거죠, 뭐. 그래도 경험치는 다 챙기니까.”
“아.”
“무림 서버에 고렙이 별로 없는 이유가 그거에요. 하도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까 경험치 손실이 커서. 저쪽도 승산 없으니까 그냥 물러난 걸 걸요? 저 사람 하는 걸 봐선 승산 있었으면 먼저 공격했을지도?”
“말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성큰파파 님이 미소를 지으며 조언해 주었다.
“혹시 오랑 님도 화나는 일 생기면 웬만하면 한 번 정도는 그냥 참고 넘어가시는 게 좋아요. 이 서버가 잘난 놈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라. 좀 튀는 거 같다, 잘났다, 부럽다 싶으면 너도나도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고 하거든요.”
“무섭네요.”
사실 하나도 안 무섭지만.
“진짜 어설픈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서버죠, 여기가. 어느 서버보다도 시기 질투가 심하고 비열한 수법이 난무하니까요.”
판타지 서버는 이세계를 탐험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한 게이머들도 많아서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
소소하게 텃밭만 가꾸는 사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부상처럼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 기사가 되고 싶어서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사람 등등등.
단순히 강해지는 것 말고도 다양한 목적으로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근데 여기는 PVP에 진심인 인간들 위주로 모인 서버라 그런지 얘기만 들어도 살벌하다.
하긴.
3개 서버 중에 오직 강해지는 것만 추구하는 게이머들이 모인 곳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만.
“아, 그렇다고 오랑 님이 어설프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에이, 알죠.”
“그럼 다시 갑시다.”
“네네.”
만찐두빵 새끼가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일 커지는 게 싫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시간제한이 걸린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서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 * *
“아 ㅆ발. 저 틀딱 새끼들. ㅈ나 마음에 안 드네. 나이 처먹어 가지고 게임하고 싶나.”
만찐두빵은 저 멀리 사라지는 연오랑 일행을 보며 이를 갈았다.
“병신 새끼들. 꼴에 지갑 사정 좀 널널하다고 현질해서 템 맞췄나 보네. 그럼 뭐해. 컨이 병신인데.”
파티원들의 생각도 만찐두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꼰대 새끼들이 그렇죠, 뭐.”
“손가락이 병신이니까 템이라도 좋아야죠.”
“아. ㅈ나 빡치네. 그냥 한바탕할 걸 그랬어요.”
“해 볼 만했을 것 같기도 한데.”
성큰파파의 예상대로, 만찐두빵 일행이 물러난 이유는 참을성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레벨도 좀 밀리고, 템 상황도 만찐두빵의 파티가 좀 더 좋았기에 물러난 것뿐이었다.
“그리고 저 병신 고자 새끼는 존나 마음에 안 드네. 현질해서 돈 좀 있나 보지? 실력도 없는 새끼가 버스나 처받고.”
만찐두빵은 연오랑이라는 놈이 그냥 싫었다.
레벨도 낮은 주제에 분수에도 안 맞는 사냥터에 있는 걸 보면, 실력도 없는 주제에 돈을 써서 빠르게 레벨업하고 싶어 하는 부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은수저쯤 되나 보지. 븅신. 그렇게 렙 올리면 지 실력이 오르는 줄 아나. 돈만 처쓰지. 렙 올려 봐라. 쳐 뒤져서 경험치만 헌납하고 템이나 떨구지.”
만찐두빵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애꿎은 연오랑에게 퍼부어 대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연오랑에게 큰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앞서며 요괴들을 싹쓸이한 파티에 끼어 있는 걸 보니 괜히 배알이 꼴렸던 것이었을 뿐.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천천히 하죠. 저 새끼들 혈붕절벽으로 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사냥 시작하고.”
그러자 파티원들도 알아들었다는 듯 요괴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파티 플레이 덕분에 요괴림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돌파하고, 혈붕절벽 앞까지 도착했다.
혈붕절벽은 거의 90도에 가깝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어우야.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
“다들 장비 꺼내시죠.”
성큰파파 님이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랑 님도 장비 있으시죠?”
“장비요?”
“등산 장비요.”
“아? 있을걸요? 잠시만요.”
서문범이 준 배낭을 열어 보았더니, 안에 밧줄과 후크를 포함한 산악용 안전장비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아, 있네요.”
“다행이네요. 장비 챙기라고 말씀드리는 거 깜빡했는데.”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죠.”
“네.”
혈붕절벽은 암벽등산코스.
절벽에 박힌 발판과 핀을 이용해 90도에 가까운 경사를 기어올라야 했다.
정상 쪽은 아예 거꾸로 매달려서 올라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그래도 생각한 것만큼 등반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들 레벨이 좀 되고 내공을 사용할 수 있어서 그런지 절벽을 타고 오르는 속도도 매우 빨랐다.
그 와중에 제일 빠른 사람은…….
푸드덕!
어?
“구! 구구구!”
훨훨 날아 정상에 도착한 꼬꼬가 우릴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야 이!
그거 반칙이잖아!
“삐이이이익!”
“삐이익! 삐이이이이이이이!”
으!
귀 찢어지겠네!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커다란 독수리들이 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혈붕]
사악한 기운이 노출되어 변이한 피의 독수리.
혈붕절벽에 서식하는 요괴로서, 그 피는 지혈제로 쓰이고 부리와 발톱은 무기 제조나 술법 재료로 쓰여 가치가 높은 요괴이다.
단,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공격해 오니 상대하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냥이 어려운 만큼 레벨에 비해 매우 많은 경험치를 주며, 맷집이 매우 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분류 : 요괴
등급 : 2등급
레벨 : 80
주의사항 : 혈붕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에 찢기면 출혈에 걸려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음.
확실히 절벽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공격받으면 피하기가 어렵긴 하겠지.
저 시뻘건 독수리들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으니까, 기동성에서도 압도적일 테고.
“다들 공격!”
성큰파파 님이 소리치자 파티원들이 일제히 작은 쇠뇌를 꺼내 혈붕들을 공격했다.
오?
전술 좋은데?
쒜엑! 쒜에에엑!
파티원들이 쏜 화살이 혈붕들에게로 날아들었다.
혈붕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삐이익!”
혈붕 몇 마리가 화살에 맞아 절벽 아래로 추락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개체들이 빠른 비행 속도를 이용해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혀 왔다.
흠.
근접전은 힘들 텐데.
‘빨리 나서서 도와줘야지. 그래야 나도 시간을 아끼니까.’
이번에는 뒷짐 지고 디버프 필드만 깔지 있지 않기로 했다.
불리한 지형에서 까다로운 놈들을 상대하는 거니까, 도와주면 사냥 속도가 더 빨라지겠지?
그럼 귀막골에 도착하는 시간도 더 빨라질 테고.
꽈악!
‘짱짱하니 좋네. 적당히 탄성도 있고.’
밧줄을 잡아당겨 밧줄과 핀의 상태를 확인했다.
밧줄과 연결된 벨트도 헐겁지 않고 딱 좋았다.
서문범이 쓰던 거라 그런지 확실히 장비의 질이 남다르다.
캬.
역시 등산은 장비빨인 건가?
한국인들이 등산 장비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야, 햄찌야.”
“뀨?”
“다녀올 테니까 여기 있어.”
“주인놈아! 어디 가냐! 뀨우!”
“새 새끼들 때려잡으러.”
힘껏 절벽을 박찼다.
* * *
“오랑 님!”
“아니! 미친!”
“뭐 하는 거예요!”
성큰파파와 파티원들은 연오랑의 돌발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듯 절벽을 박차고 몸을 날리다니?
다음 순간.
“마, 말도 안 돼!”
“뭔 스파이더맨이야?”
“미친!”
“피지컬 뭔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오랑은 결코 자살행위를 자초한 게 아니었다.
부웅!
공중에 뜬 연오랑이 몸을 빙그르르 돌려 발차기를 시전했다.
빠악!
“삑!”
연오랑의 발차기가 혈붕의 대가리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삑!”
모가지가 돌아간 혈붕은 더는 날지 못하고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치명타.
연오랑의 발차기를 맞아 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만 즉사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