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이 새끼가.”
내가 거리를 좁혀 오자 만찐두빵이 주먹을 휘두르며 공격을 시전했다.
“하암.”
공격이 지루하다 못해 하품마저 나온다.
이거 레벨만 높았지 실력은 영 허접하네.
쯧쯧.
레벨업 할 시간에 투기장에서 결투 연습이나 할 것이지.
물론 지금 내 상태로는 한 대만 맞으면 즉사다.
레벨 차이가 좀 나서 스치기만 해도 위험하겠지.
그럼 안 맞으면 되잖아?
스윽.
공격을 피하면서, 질풍기류로 만찐두빵의 멱살을 잡아챘다.
덥석!
“……!”
놀랐지?
근데, 이미 늦었어.
이 새꺄.
부웅!
천둥작렬로 만찐두빵을 눈 덮인 땅바닥에 찍어 버렸다.
철푸덕!
“컥!”
만찐두빵이 입에서 왈칵 피가 튀어 올랐다.
그다음은?
콰앙!
산화부식장갑을 낀 오른손 주먹으로 쓰러진 만찐두빵의 얼굴에 강타를 꽂아 넣었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는 만찐두빵.
“뒈져, 뒈져, 뒈져.”
“컥! 커헉! 컥!”
“뒈져, 뒈져, 뒈져.”
“컥! 커헉! 컥!”
“뒈져, 뒈져, 뒈져.”
계속해서 쓰러진 만찐두빵의 얼굴에 쉴 새 없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뒈져, 뒈져, 뒈져.”
“컥! 커헉! 컥!”
“뒈져, 뒈져, 뒈져.”
“컥! 커헉! 컥!”
“뒈져, 뒈져, 뒈져.”
“그, 그만! 컥! 제발 그만! 컥!”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콰앙!
마지막으로 다시 쿨타임이 돈 강타를 만찐두빵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끄어어어.”
완전히 걸레짝이 된 만찐두빵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근데…… 얘 얼굴 어디 갔어?
어우.
완전히 뭉개져서 보이지도 않네.
“고작 그 실력으로.”
만찐두빵의 귓가에 속삭여줬다.
“무림 서버에 발을 붙여?”
“크, 크으윽.”
“넌 뒈졌다, 오늘.”
만찐두빵의 오른팔을 붙잡고 힘껏 비틀었다.
뽀각!
“크아아아악!”
오른팔이 부러졌다.
뽀각!
“으악! 으아아악!”
왼팔도 부러뜨렸다.
뽀각!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른 다리도.
뽀각!
“크아아아아악!”
왼 다리도 빼놓을 수 없지.
“차, 차라리 죽여 이 개새끼야!”
만찐두빵이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이 ㅆ발놈아! 니가 이러고도 이 ㅆ발 무사할 거 같아? 두고 보자! 이 개새끼야!”
아이고, 무서워라.
그 두고 보자는 놈이 한둘이었을 줄 아냐.
옛날부터 나한테 두고 보자는 놈들이 못해도 1,000명은 넘을걸?
“그래, 욕이라도 해야지. 지금 니가 욕하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겠냐.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지.”
“뭐,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바지를 벗기자 만찐두빵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 변태 새끼! 뭐 하는 거냐고! 이 변태 새끼야! 갑자기 바지는 왜 벗겨어어어!”
“글쎄.”
씨익, 웃어 줬다.
“왜 벗기는 걸까? 맞춰 봐.”
스윽.
방천가위를 꺼내 들었다.
“헉!”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만찐두빵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네가 무슨 카멜레온이냐?
“자, 잠깐만! 잠깐마아아안!”
“딱 대.”
“이 미친 새끼야! 어딜 잘라! 어딜 자르냐고!”
“너 아까 나 고자라고 놀렸잖아.”
“……!”
“너도 돼 봐야지. 그래야 그 기분이 얼마나 ㅈ같은지 알지.”
“아, 안 돼!”
“돼.”
싹둑!
“……!”
만찐두빵의 뭉개진 얼굴이 충격으로 물드는 게 보였다.
후후.
표정 좋네.
그래, 그 표정이야.
나도 그랬어, 인마.
고자 될 때.
[알림: 땅콩을 수확하셨습니다!]
이 새끼, 악인 맞네.
스탯 오르는 거 보면.
어디서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헤헤헤.
* * *
“으, 으아니.”
만찐두빵의 입에서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내가…….”
응, 고자야.
“내가 고자가.”
응, 나처럼.
“으아아아니! 내가 고자라니! 고자라니이이이이!”
만찐두빵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열했다.
토닥토닥.
슬퍼하는 만찐두빵을 다독여줬다.
“마, 원래 다 그런 거야.”
“내가 고자라니이…….”
“적응되면 괜찮아. 할 만해, 고자도.”
“고자라니이…….”
“자식이 말야. 사내대장부가 돼 가지고.”
아, 이제 아닌가?
“눈물 뚝.”
“고자라니이…….”
“억울하면 지금부터 겜 열심히 하든가. 혹시 아냐. 네가 300레벨 찍으면 다시 생길지?”
물론 네 실력에 300레벨 찍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이지만.
“고자라니이…….”
만찐두빵은 망연자실해서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그대로 잠잠해져 버렸다.
아랫도리 주변에 시뻘건 피 웅덩이가 생긴 걸 보니 과다출혈로 뒈져 버린 것 같다.
금창약이라도 발라 줄 걸 그랬나?
[알림: PVP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알림: 레벨이 높은 상대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경험치 추가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79레벨 달성!]
만찐두빵을 응징했더니 막대한 경험치가 주어지며 레벨이 올랐다.
‘이래서 무림 서버가 PVP에 진심이라는 거구나.’
비무 컨텐츠도 그렇지만, 확실히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NPC 혹은 게이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훨씬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러니까 게이머들끼리 허구한 날 쌈박질이나 하지.
툭.
죽은 만찐두빵의 시체 위로 아이템 상자가 떨어졌다.
오!
‘크으. 진짜 오래간만이네, 랜덤드랍 아이템.’
이 또한 게임 BNW의 고유 시스템.
모든 게이머들은 죽을 때 현재 착용 중인 장비를 뺀 나머지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떨구게 되어 있었다.
뭘 떨구게 될지는 철저하게 랜덤이다.
운이 좋다면 아무도 안 주워 갈 쓰레기 아이템을 떨굴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자신이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아이템을 떨굴 수도 있다.
어디 보자…….
우리 만찐두빵이가 뭘 떨궜는지.
[+10 왜구의 카타나]
남해에 주로 출몰하는 왜구의 카타나.
강화가 되어 있지만, 불순물이 많이 섞인 철로 만들어져 있어 내구도가 형편없다.
분류 : 무기 (도)
등급 : 일반
내구도 : 19 / 500
사용제한 : 없음
레벨제한 : 50
효과 :
- 공격 시 최초 1회에 절삭력 +150%
특징 : 일격필살에는 어울리지만, 장기적인 싸움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검이다.
엄청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나름 강화가 되어 있는 칼이라 한 번쯤은 쓸 만해 보인다.
어차피 내구도도 별로 없어서 필요할 때 쓰고 버리면 되겠네.
[알림: <+10 왜구의 카타나>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뀨! 주인놈아! 복수해 줬냐! 뀨!”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다가와 말했다.
“해 줬지, 복수. 후후후.”
“뀨! 그럼 노트에 줄 그어라! 뀨우!”
“그럴까?”
고자노트를 꺼내 만찐두빵의 이름을 지웠다.
[만찐두빵]
이유 : 파티 안 받아주고 조리돌림함.
음.
보기 좋네.
아주 보기가 좋아.
헤헤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전투가 끝나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우리 파티의 압승이었다.
우리 쪽이 만찐두빵네 파티를 기습하면서 시작된 싸움이었고, 애초에 레벨도 높고, 아이템 상황도 좋아서 지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근데…… 다들 왜 그렇게 봐?
“자, 잔인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으윽.”
“무서운 사람…….”
파티원들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 *
“오, 오랑 님? 방금 그건 좀 무섭네요. 하하, 하하하하.”
성큰파파 님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쟤가 저 놀렸거든요.”
“아하?”
“아까 시비 건 것도 있고, 지금 저 공격한 것도 있고. 봐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하.”
“그러면 그러실 만하죠.”
성큰파파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하려고 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안 넘어갈 거 같은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러려니 합니다.”
언제는 복수 무서워서 몸 사린 적 있었나.
보복과 응징은 확실하게.
두 번 다시 덤빌 엄두가 안 나게 철저히 박살 내 준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혹시 복수하려고 친구들이라도 데리고 오면, 지금처럼 똑같이 만들어 주면 된다.
경험상 몇 번 밟아 주면 내 그림자만 봐도 도망치더라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파티원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되돌아오면서까지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좀 감동이다.
“에이, 아니에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안 그래도 저 자식들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죠.”
파티원들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같이 가시죠.”
성큰파파 님이 내게 제안했다.
“무슨 퀘스트를 수행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음.”
“정 불편하시면 저희도 어쩔 수 없지만…….”
“그럼 같이 가죠.”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동행하기로 했다.
날 도와주려고 되돌아온 성의를 어떻게 거절해?
“일단 정리하고 바로 출발하죠.”
“네.”
죽은 인면지주들의 가죽을 벗기고, 파티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걸 저희가 받아도 돼요?”
“이건 오랑 님 혼자 사냥하신 거잖아요.”
“정말 주시는 거예요? 정말로?”
파티원들에게 인면지주의 가죽을 선물로 줬다.
“도와주신 게 감사해서 드리는 거니까 받아 주세요. 제 마음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보상을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쉭! 쉬익!”
“쉭쉭쉭!”
“쉬익! 쉬이익!”
아나콘다만 한 덩치를 가진 푸른색 뱀들이 나타나 우릴 공격해 왔다.
[독각청사]
날카로운 뿔이 돋아난 푸른색 뱀.
비록 독은 없지만, 조이는 힘이 매우 강해 한번 붙잡히면 풀려나는 게 불가능하다.
분류 : 영물 (惡)
등급 : ★★
레벨 : 150
주의사항 : 몸을 회전시켜서 공격해 오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상대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획득 가능 아이템 : 독각청사의 뿔
핑그르르르르!
저, 저거 뭐야?
독각청사들이 맹렬히 회전하는가 싶더니, 우릴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야 이 미친 뱀 새끼들아!
니들이 무슨 드릴이냐!
뱀 주제에 뭔 회전이야!
“다들 피해요!”
다급히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푸욱!
“컥!”
파티원 하나가 독각청사의 회전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런 파티원의 배에 축구공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 아프겠다.
이미 즉사해서 고통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이런 미친!’
황급히 속력금쇄진을 펼쳐 독각청사들의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낮췄다.
핑그르르르르!
붕!
부웅!
하지만 독각청사들이 몸을 회전시키면서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바람에, 파티원들의 피해가 하나둘 늘어나는 걸 막기가 힘들었다.
독각청사들의 공격 패턴이 워낙에 악랄해서, 다들 허둥지둥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레벨이 높은 영물들이라 그런지 파티원들의 공격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또 켜야 하나?’
초월무극을 다시 한번 시전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화르르르르르!
어?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불붙은 검을 든 노인이 나타나 독각청사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 노인네?
“어딜 사악한 미물들 따위가! 이 화검옹이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불붙은 검을 든 노인의 무공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독각청사들을 토막토막 내 버렸다.
덕분에 싸움이 순식간에 끝났다.
오.
이 영감님 좀 치시네.
확실히 강해 보여.
“만나 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노부는 무릉현 사람으로 화검옹(火劍翁)이라 하오.”
불붙은 검을 든 노인.
화검옹이 우리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