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알림: 삼면지주를 처치하셨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81레벨 달성!]
싸움이 끝나고.
털썩!
너무 힘들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후들후들!
으.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도저히 버텨지지가 않는다.
[알림: 주의하십시오!]
[알림: 지금의 당신은 매우 나약합니다!]
[알림: 운기조식을 통해 소모된 내공을 보충하십시오!]
[알림: 생명력과 지구력의 소모가 극심합니다!]
[알림: 휴식을 취하십시오!]
초월무극을 사용한 후폭풍 때문인지 도저히 두 다리로 버티고 서는 게 불가능했다.
“정말 고생했네.”
화검옹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라도 살아서 정말 다행일세.”
“다행은 아니죠.”
화검옹이 내민 손을 맞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 같이 살아야 하는데 저 혼자 살았으니까.”
“허허.”
“별로 유쾌한 승리는 아닙니다.”
성큰파파 님의 희생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진짜 오래간만에 파티장다운 파티장이다.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파티 플레이를 해 본 게 얼마 만인지…….
꼭 찾아뵙고 인사드려야지.
빠른 시일 내에.
“그래도 자네 형제들은 천인들이 아닌가. 불사의 존재들일 터인데.”
“죽은 건 죽은 거죠. 아예 타격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허허.”
화검옹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뀨! 주인놈아! 고생했다!”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다가와 부축해 줬다.
“야, 햄찌야.”
“뀨?”
“저기 떨어진 물건들 보이지. 좀 주워 줘.”
성큰파파 님과 파티원들이 떨군 랜덤드랍 아이템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중에 돌려주게. 나 때문에 죽었는데 템까지 잃어버리면 기분 나쁘잖아.”
“뀨! 알겠다!”
성큰파파 님과 파티원들이 떨군 랜덤드랍 아이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돌려줄 생각이다.
상도덕이 있지.
파티원이 전투 중 사망해서 떨군 랜덤드랍 아이템을 돌려주는 건 일종의 불문율.
간혹 탐욕에 눈이 멀어 아군 사망자의 랜덤드랍 아이템을 먹고 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놈치고 오래가는 놈 못 봤다.
금방 소문이 나빠져 아무도 같이 파티를 안 해 줄뿐더러, 다들 기피하기 마련이니까.
성큰파파 님이 희생까지 해 준 마당에 랜덤드랍 아이템을 챙긴다면,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닌 거겠지.
“자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운기조식을 취하게.”
“예, 그러려고요.”
화검옹의 권유에 따라 운기조식을 취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었다.
“허허.”
화검옹이 그런 날 보더니 웃었다.
“자네 그래도 되는 겐가?”
“예?”
“노부가 언제 돌변해서 자네를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속 편히 운기조식을 취해도 되느냐는 말일세.”
그렇지.
운기조식을 취할 땐 무방비 상태지.
소모한 내공을 보충하고 몸을 회복시키는 일종의 치유 행위니까.
운기조식 중에 공격당하면 대미지를 200퍼센트 추가로 받는다고 했던가?
“죽이려면 죽이시든가요.”
“음?”
“죽이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겁주지 마십쇼.”
“어찌 노부가 자네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나? 노부에겐 삼면지주의 내단이 필요하네. 여기서 자네를 죽이면 노부는 손녀를 살릴 수가 있지. 굳이 내기 같은 것을 해서 내단을 자네에게 뺏길 이유가 있겠는가?”
“내단 같은 거 처음부터 없었으면서.”
“음?”
“에라이.”
운기조식을 멈췄다.
자꾸 말을 거니까 집중이 안 되잖아! 집중이!
“어르신 적당히 좀 하십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인가?”
“아니.”
어이가 없네.
“저거 진짜 삼면지주 아니잖아요. 가짜지.”
“가, 가짜?”
“저거 삼면지주 껍데기 가지고 만들어 낸 가짜 요괴잖아요. 진짜가 아니라.”
“헛?”
“그리고 어르신도 화검옹 아니잖아요.”
“내, 내가 화검옹이 아니라니?”
“산신령이면서.”
“……!”
“괜히 저 시험하겠답시고 간 보지 마십쇼. 거 장사 하루 이틀 하시나.”
나 원 참.
산신령들은 이러고 노나 보네.
“도대체 어떻게 알았나?”
화검옹.
아니, 산신령이 내게 물었다.
* * *
화검옹이 산신령이라는 건 진즉에 알아차렸다.
[심안 추가 통찰 효과]
천문산, 무릉원, 원가계, 양가계, 천자산 등 이곳 장가계 전체를 관장하는 산신령.
협객들로 하여금 요괴들을 토벌하게끔 유도하거나, 협객들을 도와주는 등 산신령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삼면지주 역시 마찬가지.
[심안 추가 통찰 효과]
삼면지주의 가죽으로 만들어 낸 가짜 삼면지주.
단, 가짜이지만 실제 삼면지주처럼 실체가 있는 존재이기에 허깨비로 취급했다간 죽기 딱 좋다.
다만 진짜 삼면지주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존재이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210레벨짜리 3성급 몬스터가 80레벨짜리한테 죽는 게 말이 돼?
가짜 삼면지주니까 가능했던 거지, 진짜라면 어림도 없었다.
가짜 삼면지주를 상대로도 파티원들이 전멸했을 정도니까, 말 다 했지 뭐.
“처음부터 알았는데요?”
“어떻게?”
“보면 알죠?”
“설마.”
산신령이 흠칫! 놀랐다.
“자네… 심안의 소유자인 겐가?”
“맞습니다. 아시네요.”
“허어.”
산신령이 혀를 내둘렀다.
“심안을 가진 존재는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구먼.”
하긴.
심안을 가진 존재가 흔하지는 않겠지.
“왜 처음부터 노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말하지 않았나?”
“즐기시는 거 같아서 내버려둔 건데요?”
“즈, 즐겨? 노부가?”
“그럼 아닙니까?”
아닌 척하긴.
대놓고 즐기더만.
“그리고 굳이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적당히 장단 맞춰드린 거죠.”
“그, 그랬구먼.”
“아무튼, 앞으로는 이런 불쾌한 시험 같은 건 그만두십쇼. 식상합니다.”
“시, 식상하다니!”
“일부러 내단에 욕심나게 만들어놓고 못된 짓 하도록 유도하는 거잖아요.”
“크흠!”
“언제 적 시험이야, 진짜.”
“…….”
“이게 시험인가. 사람 가지고 노는 거지. 산신령님 같으면 자기 딸이 오늘내일하는데 양보하고 싶겠어요?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내단을 가지려고 하지?”
“그, 그게 협객이잖아!”
산신령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얼굴 빨개진 거 보니까 쪽팔린 줄은 아나 보네.
어휴.
“그게 뭐가 협객입니까? 자기 목숨도 아닌걸? 하여간 창의력이 없어요, 창의력이. 거 일부러 사람 밑바닥 드러내게끔 유도하지 마시고, 다른 좋은 방법 찾아보십쇼.”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어른을 놀려? 네놈은 노인공경도 모르느냐!”
하여간 이놈의 영감탱이들은 불리하면 노인공경 찾더라.
확 노인공격 해버릴까 보다.
“어른이 어른 같아야 공격, 아니 공경을 해 드리죠.”
“이이… 이이이……!!!”
“저 진짜 바쁜 사람이거든요? 장난 그만 치십쇼.”
산신령 주제에 금도끼 은도끼나 할 것이지.
어휴.
“사람 하나 살리려고 영약 구하러 온 겁니다.”
“흥!”
“영약 어딨습니까?”
“몰라!”
“아 좀! 저 바쁘다니까요?”
“모른다니까? 흥!”
“삐치셨어요?”
“삐치긴 누가 삐쳤다는 것이냐!”
삐친 거 맞네.
하여간 애새끼도 아니고.
“아 좀 그냥 주십쇼. 저 진짜 바빠요. 사람 하나가 오늘내일한단 말입니다.”
“누가?”
“서문란이라고. 서문세가 장녀요.”
“엥?”
산신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문란? 그 서문세가의 딸내미 말이냐?”
“아세요?”
“알다마다.”
뭐, 뭐야.
산신령이 서문란을 어떻게 알아?
“안 그래도 서문범이 오면 영약을 주려던 참이었거늘.”
“예?”
이건 또 뭔 소리야……?
설마 서문범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 * *
“고생했네, 정말 고생했어.”
천기자가 당괴괴를 격려했다.
당괴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손에는 화상이 가득했으며, 눈은 퀭했다.
서문란의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한숨도 못 자고 지하실에서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그만 파김치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상황은 어떻소?”
“아직 교착상태라네. 천리투명진 덕분에 잘 버티고 있네. 오랑이 녀석이 나가서 전서구를 날렸을 테니, 별문제 없이 지원군이 도착할 걸세.”
“다행이구려.”
“미안하네. 자네까지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하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로구먼.”
“거 미안하면 뭐라도 좀 해 주시오. 이리 고생만 시켜 놓고 입 닦지 말고.”
당괴괴가 털썩 주저앉으며 대꾸했다.
“형님 입 닦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오? 그간 부려 먹을 대로 부려 먹어 놓고 정작 뭐 하나 해 준 게 없잖소! 해 준 게!”
“아니, 내가 언제 해 준 게 없다고 그러나?”
“그럼 형님이 여태 뭘 해 주셨소? 필요할 때마다 여기저기 불러다가 사람 살리는 일만 시키질 않았소?”
“크, 크흠!”
천기자가 민망하다는 듯 괜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간 당괴괴를 부려 먹고도 뭐 하나 해 준 게 없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 혈망(血蟒) 한 마리라도 어디 있는지 알려 주기라도 할 것이지! 어찌 그리 인색하시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오! 내 묵린혈망까지는 바라지도 않소! 녹각혈망이나 자전혈망 정도면 족하거늘!”
“이 사람이! 혈망 같은 영물의 위치를 알려 주면 나더러 죽으라는 겐가? 그런 영물이 사는 곳을 점지해 주는 건 천기를 누설하는 일인 게야! 누군 해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줄 아는가!”
천기자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혈망(血蟒)이란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영물들 중 사악한 본성을 지닌 이무기들을 뜻했다.
사천당문의 장로인 당괴괴는 오래전부터 혈망의 독과 피를 연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혈망과 같은 영물은 평생에 단 한 번 볼까 말까 한 존재.
천기자와 같은 기인이 아니고서야 찾아내고 싶다고 해서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보게. 내 번번이 자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하나 혈망 같은 영물의 위치를 알려 주는 건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지 않은가.”
“흥!”
“기분 풀게. 자네는 사람 살리는 의원이 아닌가. 그것도 중원 최고의 의원 말일세.”
“사탕발림 마시오. 언제는 의선 그 노친네를 더 높이 쳐 줬으면서?”
“다 늙은 형이 실언 한번 했다고 아직까지 그러긴가? 너무 섭섭해 말고 기분 풀게. 다 사람 살리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
“나도 알고 있소.”
당괴괴가 입이 삐죽 튀어나와 말했다.
“하도 힘들어서 넋두리 좀 늘어놓은 것이오. 형님도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구려.”
“암, 마음에 담아 둘 리가 있나. 자네같이 훌륭한 의원에게 어찌 섭섭한 마음을 품겠나.”
“말은 청산유수요.”
“끌끌. 공덕 쌓는다 생각하고 란이 그 아이를 살리는 데 집중해 보게. 혹시 아는가? 오랑이 그 녀석이 자네가 그리도 원하는 혈망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올지?”
“킁!”
당괴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이 혈망을 잡아 오면 내 성이 당 씨가 아니라 개 씨요! 개 씨!”
“허허, 말조심하게. 말이 씨가 되는 수가 있네.”
“씨가 되긴 개뿔! 그놈 실력에 혈망과 마주쳤다 한들 그게 기연으로 이어지겠소?”
“흠.”
천기자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구먼. 지금 오랑이 녀석으로서는 혈망을 만난다 해도 기연이 아니라 재앙이겠구먼.”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그 실력에 혈망을 만난단 말이오? 막말로 천벌이라도 받지 않는 한 혈망을 만나겠소?”
“천벌?”
“혈망을 만나면 꿀꺽 통째로 잡아먹힐 게 뻔하질 않소. 그게 천벌이지 다른 게 천벌이겠소.”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구먼.”
천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정말 그 싸가지 없는 녀석이 영약을 구해 올 수 있다고 믿으시오?”
“나는 믿네.”
“무슨 근거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주겠네. 천기누설이라 함부로 말해 줄 수가 없구먼.”
“그놈의 천기누설은.”
당괴괴가 눈을 흘겼다.
“노려보지 말고 좀 쉬게. 란이가 언제 또 발작할지 모르잖나.”
“그리 말 안 해도 쉴 거요.”
당괴괴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떠난 뒤.
“천벌, 천벌이라…….”
천기자가 그 단어를 곱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녀석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