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알고 계셨나요?]
사악한 이무기인 혈망은 나이에 따라 부르는 이름과 특성이 다릅니다!
- 백련혈망 (100살~ )
- 황장혈망 (300살~ )
- 녹각혈망 (500살~ )
- 자전혈망 (700살~ )
- 묵린혈망 (900살~ )
※ 자전혈망은 이제 갓 지성을 갖추기 시작한 단계로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때문에, 매우 사납고 흉포한 존재입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콰앙!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자전혈망이 덮친 곳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 무슨 덤프트럭이냐?
“서, 선생님? 일단 조금만 진정을 하시고…….”
“캬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콰아앙!
질풍노도의 이무기라 그런지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다.
“이 뱀 새끼가.”
이럼 나도 못 참지.
“오늘 뱀 고기 한번 먹어? 야! 햄찌야! 저 새끼 확 조져 버리자!”
“뀨, 뀨우?”
“너 뭐 하냐?”
“햄찌 못 움직이겠다. 뀨우.”
햄찌가 무슨 진동이라도 켠 것처럼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 대고 있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뀨우. 햄찌 햄스터라서 뱀 앞에서 못 움직이겠다. 뀨.”
“뭐?!”
“뀨우우우우우우우!”
햄찌가 바르르 떨더니 풀썩 쓰러져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
진짜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꼴에 쥐새끼라고 뱀 앞에서 얼어버린 거야?
이래서 축생은 안 된다니까.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쉬어라.”
햄찌는 포기하고 자전혈망과 마주했다.
“쉭, 쉬익.”
자전혈망이 혀를 날름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파직, 파지직!
자전혈망의 비늘 곳곳에서 자주색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해보자 이거지.”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꽈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니가 오늘 날을 잘못 골랐나 본데.”
“쉭! 쉭쉭!”
“나 지금 좀 세거든?”
산신령이 빌어준 복락 덕분에 200레벨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얻은 상태.
비록 스킬까지 해금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내 스펙은 281레벨 그 이상.
300레벨짜리 영물과도 충분히 해볼 만한 상태란 말씀.
근데 좀 아쉽네?
기왕이면 스킬까지 해금시켜 주지…….
“너, 오늘 뒈졌어.”
“쉭쉭!”
“하아압!”
“쉬이이익!”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자전혈망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하고.’
주르륵! 슬라이딩으로 동굴 바닥을 쭉 미끄러져 자전혈망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때린다.’
우웅!
산화부식장갑이 붉게 달아오르며 진동했다.
콰앙!
강타 스킬이 자전혈망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응?
지지지지지지지지직!
“으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자전혈망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류가 날 덮쳤다.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감전>에 걸렸습니다!]
[알림: 감전 상태에서는 받는 모든 피해량이 30% 증가합니다!]
부웅!
어?
콰아앙!
“컥!”
자전혈망이 휘두른 꼬리가 날 강타했다.
* * *
콰직!
와르르르!
동굴 벽에 부딪히면서, 부서진 돌무더기 밑에 깔렸다.
“커헉! 쿨럭! 쿨럭쿨럭!”
돌무더기를 헤치고 겨우 몸을 일으키자마자 기침과 함께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알림: 내상을 입었습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중략)
[알림: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오랑]
생명력 : ■■■■■□□□□□
고작 꼬리에 얻어맞은 것뿐인데 생명력의 50퍼센트가 날아가 버렸다.
만약 산신령 영감님이 걸어준 축복이 없었다면 즉사했을 게 분명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그런다 이거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이를 부득 갈았다.
“그래,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우웅!
속력금쇄진을 펼치고 다시 자전혈망을 향해 덤벼들었다.
“쉬, 쉬익?!”
자전혈망이 당황한 게 보였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몸이 맘같이 안 움직이니까.
“뒈져.”
산화부식장갑을 낀 손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직접 닿으면 위험해.’
그럼 원거리 공격으로.
주먹을 앞으로 쭉 내질러 내공을 발사했다.
펑펑! 펑! 펑! 펑!
권풍(拳風)이 자전혈망의 대가리를 집중적으로 난타했다.
어질어질-
효과가 있는지 자전혈망의 거대한 몸뚱이가 휘청대는 게 보였다.
펑펑! 펑! 펑펑펑! 펑!
계속해서 권풍을 날리며 원거리에서 집요하게 자전혈망의 대가리를 저격했다.
속력금쇄진의 효과가 끝날 때까지.
“캬악! 캬아아아아악!”
속력금쇄진이 끝나자마자 자전혈망이 미친 듯 몸부림치며 날 깔아뭉개려 했다.
‘어림없지.’
즉시 쇠약자멸진을 펼쳐 자전혈망의 생명력을 깎았다.
“크아악! 크아아아아아악!”
자전혈망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보인다.
펑! 펑펑! 펑!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직 권풍만으로 자전혈망을 공격하던 찰나.
파직! 파지지직!
자전혈망의 비늘로부터 엄청난 양의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어어?
‘위험!’
황급히 몸을 날려 쓰러져 있던 햄찌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러자마자 바로 뛰어올라 천장에 달린 종유석을 움켜쥐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다음 순간.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자전혈망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류가 동굴 바닥에 고인 지하수를 타고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오싹!
소름이 끼친다.
만약 바닥에 발이라도 딛고 있었으면,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에 의해 감전돼 시커멓게 타 죽었겠지.
“야! 정신 좀 차려 봐! 야!”
“뀨, 뀨우.”
“저 멀리 안전한 데라도 가 있어!”
“뀨우우우우우울!”
햄찌를 저 멀리 던져 버리고 다시 자전혈망과 혈투를 벌였다.
‘대미지가 부족해.’
원거리에서 권풍을 뿜어내 공격하고는 있는데, 딜이 영 시원치 않았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한 1주일쯤 때려야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 전에 내 내공이 먼저 고갈되겠지.
이미 내공이 서서히 고갈되는 중이다.
계속해서 권풍을 뿜어냈더니 벌어진 일.
‘시원하게 붙어서 패 버리고 싶은데.’
이 까다로운 새끼 같으니라고.
비늘에서 뿜어지는 전류가 무서워서 접근할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이미 한번 당했는데 또다시 근접전을 시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찍어 먹어 봤다가 똥인 줄 알았는데, 긴가민가해서 다시 똥을 찍어 먹을 순 없지.
“캬아아아아아아악!”
자전혈망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날 덮쳐 왔다.
찌이이익!
날카로운 독니에서 독액이 분사되어 부채꼴 형태로 뻗어 나왔다.
“……!”
이건 못 피한다.
좌우 양쪽의 독니에서 분사되는 독액의 범위가 사각지대를 완벽히 뒤덮고 있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정면.
정중앙.
자전혈망의 시커먼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길뿐.
어……?
오히려 좋아.
‘가자!’
자전혈망의 목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꿀꺼어억!
자전혈망은 감히 자신의 단잠을 깨운 인간을 꿀꺽 삼켜 버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날름날름!
꽤 잘 싸우던 놈 같았지만, 그래 봤자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압도적인 체급.
비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류.
그리고 무시무시한 맹독을 품은 독액까지.
자전혈망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어딜 인간 따위가!
“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승리감에 도취된 자전혈망이 크게 포효를 내지르고 다시 똬리를 틀려던 그때.
“캬아아아악! 뱀 새끼! 가만 안 둔다! 캬아아악!”
“……?”
“캬아아악! 캬아아악! 주인놈 복수한다!”
자전혈망은 몸을 거대하게 부풀린 쥐새끼가 자신을 마구 때리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한낱 쥐새끼 따위가 감히 혈망을 공격하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자빠져 있던 놈이 아니던가?
다른 쥐 계열 영물들 같았으면 잡아먹히는 순간까지도 움직이지 못했을 터.
용기 하나만큼은 참으로 가상한 놈이다 싶었다.
퍼억!
자전혈망은 거대한 쥐새끼가 귀엽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해서, 꼬리를 슬쩍 휘둘러 날려 버리려 했다.
그런데.
덥석!
“쉬익?!”
자전혈망은 거대한 쥐새끼가 자신이 휘두른 꼬리를 덥석 잡아챈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한들 쥐새끼 주제에 감히 혈망의 꼬리를 붙잡다니.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부웅!
“쉬, 쉬익?!”
자전혈망은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걸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미처 대응조차 못 했을 지경이었다.
콰앙!
부우웅!
쾅!
부웅!
콰아아앙!
햄찌가 자전혈망의 꼬리를 붙들고 여기저기 내팽개치는, 그야말로 괴력을 선보였다.
붕붕붕!
심지어 자전혈망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저 멀리 날려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산신령의 복락을 받은 연오랑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것과 비례해서, 햄찌 역시도 그만큼 강해졌던 것이다.
“캬아아아악!”
한낱 쥐새끼에게 패대기쳐진 자전혈망의 초록색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파직!
파지지지직!
화가 난 만큼 자전혈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전류도 더욱 강해졌다.
“쉭! 쉬이이익!”
햄찌를 향해 전류를 내뿜으려던 그때.
쿠웅!
“쉬, 쉬익?!”
자전혈망이 감전이라도 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것도 잠시.
“캬악!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자전혈망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제자리에서 몸부림을 쳐댔다.
“뀨우우우우!”
햄찌가 그런 혈망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이 멍청한 뱀 놈아! 뀨우! 아무거나 주워 먹는 거 아니다! 뀨우! 상한 거 주워 먹으면 배탈 나는 거다! 뀨!”
“캬악!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뀨우우우! 뱀 놈아! 너 이제 큰일 났다! 뀨우! 배탈 나서 죽을 거다! 뀨우!”
자전혈망은 뱀으로서 쥐새끼에게 놀림을 받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캬악!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배가 너무 아파서, 괘씸한 쥐새끼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 * *
“크윽!”
숨이 막힌다.
식도의 강한 압박감에 몸이 터져버릴 것 같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꿀떡!
막상 삼켜지고 나니 압박감이 사라져 아무렇지도 않았다.
문제는 위산.
치익!
치이이이익!
강한 산성의 위액 때문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아무래도 위까지 한 번에 도착한 모양.
가만히 있다가는 위액에 녹아서 영양분이 되어 버리겠지.
‘우선 방어부터.’
곧바로 초월무극을 켰다.
[알림: <슈퍼아머>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알림: 레벨이 높은 대상을 상대로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알림: 레벨이 높은 대상을 상대로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알림: 모든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알림: 디버프가 걸린 대상에게 주는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파직!
파지지지직!
슈퍼아머 효과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류가 위액이 내 몸을 녹이는 걸 막아 주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방어력도 제 몫을 다했다.
일단 위액은 버텼고.
오른손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웅웅웅!
산화부식장갑이 진동을 일으켰다.
우웅!
필멸무참진까지 펼쳤다.
화르르르르!
필멸무참진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자전혈망의 위 전체로 번져나갔다.
어어?
자전혈망이 몸부림이라도 치는지 위액 가득한 위 속을 데굴데굴 구를 뻔했다.
위벽을 붙잡고 겨우 몸을 지탱하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깥에서야 단단한 비늘과 강력한 전류가 몸을 보호해 줬겠지.
근데, 여긴 아니다.
근육으로 이루어진 살덩이일 뿐.
억울하면 몸 안에도 비늘을 두르든가!
콰아앙!!!
강타 스킬을 머금은 산화부식장갑으로 자전혈망의 위벽을 내리쳤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자전혈망이 내지르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렸다.
쿵! 쿠웅!
철렁철렁!
자전혈망의 몸부림 때문에 위액이 파도를 치고, 공간이 마구 흔들렸다.
윽!
무슨 월미도 디스코팡팡도 아니고!
“뒈져 봐라!”
쾅!
콰앙!
계속해서 자전혈망의 위벽을 공격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위액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어쭈?
토하려고?
그렇게는 안 되지.
삼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뱉을 땐 아니란다.
싹둑싹둑!
방천가위로 자전혈망의 위벽을 잘라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쿵쾅쿵쾅!
한참 파고 들어가다 보니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거대한 근육 덩어리가 보였다.
어라?
심장이네.
푸욱!
반천가위로 자전혈망의 심장을 찌르고 밑으로 쭉 내리그었…….
퍼엉!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심장에 모여 있던 혈류가 마치 물풍선 터지듯 터져 나와 날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