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비록 일시적인 것이긴 했으나, 연오랑은 천자산 산신령으로부터 복락을 받아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또한, 자전혈망의 내단을 섭취해 내공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와도 능히 일전을 겨루어 볼 만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오랑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스스로 명줄을 재촉하는 꼴밖엔 되지 않았다.
콰앙!
산화부식장갑을 낀 연오랑의 주먹이 백련교 고수의 가슴 정중앙을 강타했다.
그 결과.
퍼억!
연오랑에게 덤벼들었던 백련교의 고수가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의 가슴팍은 흉물스럽게 함몰되어 있었다.
연오랑의 일권(一拳)에 실린 파괴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고는, 이내 곧 잠잠해졌다.
즉사.
단 한 방에 명을 달리한 것이다.
“저런 파괴력이라니…….”
“저, 저런!”
“맙소사.”
서문세가 백련교 할 것 없이,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했다.
연오랑을 공격했던 백련교의 고수는 서문범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자.
그런 고수를 단 한 방에 잠재워 버릴 줄이야…….
우웅!
치이이이이익!
붉게 달아오른 산화부식장갑이 위험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 모습은 마치 산화부식장갑이 파괴할 대상을 더 갈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웅!
연오랑을 중심으로 붉은색 진(陣)이 펼쳐졌다.
필멸무참진을 전개한 연오랑이 백련교의 무리들을 향해 쇄도했다.
쾅!
콰앙!
“크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연오랑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백련교의 무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단 한 방.
그 누구도 연오랑의 일격을 버텨내는 자가 없었다.
“크아악!”
“악!”
“으아아아악!”
가히 일방적인 살육.
성난 호랑이가 양떼 무리를 덮치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주, 죽여라!”
“저놈을 막아라!”
백련교도들이 이를 악물고 연오랑을 향해 덤벼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연오랑을 에워싼 백련교도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갔다.
씨익.
연오랑이 웃었다.
백련교도들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는 한없이 여유롭기만 했다.
마치 다가오는 백련교도들이 어떠한 위협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스으으으…….
연오랑을 중심으로 자주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컥!”
“쿨럭쿨럭! 쿨럭쿨럭!”
“커헉!”
연오랑을 포위했던 백련교도들이 하나같이 제 목을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중독의 증세.
맹독에 노출되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었다.
황천독무(黃泉毒霧).
맹독을 품은 안개가 백련교도들을 저승으로 인도했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쓰러진 백련교도들.
“커헉!”
“그어어어어어!”
그들은 입에 허연 거품을 문 채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내 곧 잠잠해졌다.
황천독무의 무시무시한 독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도, 도망쳐라!”
“독이다!”
“놈이 독공을 펼친다!”
연오랑을 포위했던 백련교도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도망치는 데 성공한 이들은 몇 명도 되지 않았다.
이미 독기에 노출된 이들은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했다.
절뚝절뚝.
그들은 즉사는 피했을지언정, 몸이 마비되는 것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연오랑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쾅!
콰앙!
권풍이 중독된 백련교도들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펑! 퍼엉!
권풍에 맞은 백련교도들의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터져나갔다.
“괴, 괴물.”
“오지 마! 오지 마아아아아아!”
“악마다… 악마야…….”
공포에 질린 백련교도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들에게 있어 연오랑은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양이 아무리 많아 봤자 호랑이를 사냥할 수는 없는 법.
그게 백 마리가 되었든 천 마리가 되었든.
그것은 불변의 진리였고, 연오랑은 그것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최소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초절정고수가 아니라면 연오랑을 상대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 * *
연오랑은 그야말로 무자비했다.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백련교도들에게는 도망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우웅!
연오랑이 속력금쇄진을 전개했다.
“크으으윽!”
“내, 내 몸이 왜 이렇게 무겁… 크윽!”
속력금쇄진에 의해 발목이 잡힌 백련교도들에게는 어김없이 죽음이 찾아왔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으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백련교도들이 다가오는 연오랑을 바라보며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러 댔다.
연오랑은 서두르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백련교도들에게 다가가 차근차근 그들을 잠재워 주었다.
백련교도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왜?
연오랑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사는 것과 죽는 것.
그들의 생사여탈권이 연오랑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연오랑이 이미 전장을 지배해 버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 이거지.’
연오랑은 정말 오래간만에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답답해서 미쳐 버리는 줄 알았는데.’
비록 일시적인 힘이었으나, 적들을 시원하게 쓸어 버리니 그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네, 네놈은!”
남화요선이 연오랑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이 개 같은 놈아! 또다시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당장 태평요술서를 내놓지 못할까!”
남화요선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연오랑을 향해 불덩이들을 날려 보냈다.
연오랑은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피하지 않았다.
연오랑의 두 팔이 부드럽고 유연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든 불덩이들을 백련교도들이 자리한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펑! 퍼엉!
화구(火球)가 폭발하며 시뻘건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으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애꿎은 백련교도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건!”
“태, 태극권…?”
“무당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그 문파’ 와 ‘그 무공’ 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연오랑이 보여 준 움직임.
불덩이들을 흘려보내던 모습이 마치 당대 최고의 문파이자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는 무당파의 태극권과 흡사했던 것이다.
놀라기는 남화요선도 마찬가지.
“네놈! 무당파의 제자였던 것이냐!”
남화요선이 연오랑을 향해 버럭 소리쳐 물었다.
“무당파는 얼어 죽을.”
연오랑이 대꾸했다.
“그딴 거 모르겠고, 거기서 부하들 뒈지는 거나 감상하시지.”
연오랑은 그렇게 말하고는 보란 듯 백련교도들을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놈아! 멈추지 못할까!”
“억울하면 내려오시던가!”
“이이… 이이이…!!!”
남화요선은 차마 내려가질 못하고 황학에 탄 채 발만 동동 굴렀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 연오랑을 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술법가인 남화요선이 늙은 몸을 이끌고 연오랑과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서문세가 하나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초절정고수의 경지에 오른 무인(武人)을 여럿 데려왔을 텐데, 이제와 후회한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스으으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세면지진이 깨지며 자욱하게 깔렸던 안개가 빠르게 걷혀 갔다.
그 증거로, 각 문파의 지원군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와 백련교도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백련교도들을 쳐부숴라!”
“세문세가를 구하라!”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쓸어버려라!”
전세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쏴라!”
“역적 남화요선을 처단하라!”
관군들까지 몰려와 남화요선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백 개의 화살이 황학에 탄 남화요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이익!!!”
남화요선이 황학을 타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두, 두고 보자! 내 반드시 오늘의 치욕을 되갚아 줄 것이다!”
남화요선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황학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각 문파의 지원군에 더해 관군들까지 들이닥친 상황.
제아무리 남화요선이라도 꽁무니를 빼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 * *
“쩝.”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이걸 놓치네.”
멀어지는 남화요선의 뒷모습을 지켜보자니 속이 쓰리다.
그렇다고 황학을 타고 도망치는 걸 쫓아갈 수도 없고.
에라이.
어디 하늘을 나는 영물 분양해 주는 곳 없나?
한 마리 분양받고 싶은데…….
“연 소협!”
서문범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이다! 연 소협이야말로 우리 가문의 둘도 없는 은인이오!”
“별말씀을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아니오. 연 소협이 아니었다면 지원군이 당도하기도 전에 전멸했을 것이오. 정말 고맙소이다.”
“얼른 치료부터 받으시죠. 상태가 영 안 좋으신데.”
“어찌 내 몸을 먼저 돌볼 수가 있겠소?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사망자들의 시선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오.”
역시.
괜히 산신령도 인정한 협객이 아니다.
이게 가주(家主)지.
“정말 고생했네!”
천기자가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살았다네! 제때 와 주었구먼!”
“그럼요. 제때 와야죠.”
영감님이 돌아가시면 카렐을 못 찾잖아요.
“그런데 어찌 그리도 강해졌단 말인가? 고작 사흘 만에 그리 강해지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아, 그거요.”
천기자 영감님에게 천자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줬다.
“뭐, 뭐라?!”
천기자 영감님이 펄쩍 뛰었다.
“산신령을 만나서 인형설삼을 얻고, 하산하는 길에 자전혈망까지 잡았다고?”
“네.”
“거, 거짓말 말게!”
“제가 거짓말을 왜 합니까?”
“어찌 그런 기연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리도 운이 좋은 게야!”
운이 좋기는 개뿔.
재수 오지게 없었던 거겠지.
벼락 맞아서 절벽이 무너진 건데 기연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기연이람?
“보시죠.”
품속을 뒤져 자전혈망의 송곳니와 비늘을 꺼내 천기자 영감님한테 보여줬다.
“자주색 비늘이라면…… 헉!”
놀라긴.
“정말로 자전혈망을 잡아 온 겐가? 700년 묵은 이무기를?”
“고기도 싸 왔는데 그건 이따 보여 드릴게요. 양이 하도 많아서. 참, 내단은 없습니다. 제가 이미 꿀꺽했거든요. 후후후.”
“맙소사. 믿을 수가 없구먼.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믿고 말고는 알아서 하시고.”
인형설삼을 꺼내 천기자 영감님에게 건넸다.
“이거나 받으시죠.”
“인형설삼……!”
“예.”
“자네 정말 대단하군.”
천기자 영감님이 혀를 내둘렀다.
“어찌 인형설삼을 가지고 돌아올 생각을 다 했는가?”
“예?”
이건 또 뭔 소리야.
“언제는 구해 오라면서요?”
“욕심이 나지는 않던가?”
“웬 욕심?”
“란이를 구하는 대신 인형설삼을 갖고 싶지는 않았냐는 말일세.”
“에이.”
난 또 뭔 소리라고.
“이게 뭐라고 욕심을 내요.”
“정녕 욕심이 안 나던가? 무려 인형설삼일세. 섭취하기만 해도 초절정고수가 될 수 있는 영약이란 말일세. 최소 세 갑자의 내공도 얻지.”
“내공이야 쌓으면 되고, 강해지는 거야 시간문제인데 굳이 욕심내서 뭐하게요?”
“허어!”
“잘 달여서 치료제로 쓰시죠.”
천기자 영감님에게 인형설삼을 건넸다.
“알겠네. 잘 쓰겠네.”
천기자 영감님이 인형설삼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덕분에 란이를 구하겠구먼.”
“별말씀을.”
“그런데 자네…….”
천기자 영감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노려봤다.
왜 그렇게 봐……?
“손은 왜 떠는가?”
“손이요? 제가요?”
“보게.”
천기자 영감님이 내 손을 가리켰다.
덜덜덜!
인형설삼을 내민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