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92화 (92/115)

제92화.

어어?

얘가 왜 이래?

“놓게.”

천기자 영감님이 인형설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놨습니다.”

“거 놓으라니까?”

천기자 영감님이 다시 인형설삼을 잡아당겼다.

“놨다니까요?”

“어허! 놓으래도!”

“어, 어르신?”

“음?”

“손이 말을 안 듣는데요?”

“그걸 믿으라는 겐가?”

“진짜로 말을 안 듣는데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머리는 인형설삼을 놓으라는데, 손이 말을 안 들었다.

윽.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더니.

이놈의 몸뚱이 너무 정직한 거 아냐?

“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고 얼른 놓게!”

천기자 영감님이 인형설삼을 홱! 낚아채 갔다.

“자네 우나?”

“아뇨?”

“근데 왜 눈물을 흘리나?”

“헉.”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쯧쯧.”

천기자 영감님이 혀를 찼다.

“거 얼마나 탐욕스럽게 살았으면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겐가? 자네 소싯적에 한 욕심 했나 보구먼.”

“제, 제가요?”

헉.

어떻게 알았지.

“딱 보면 모를 줄 아나? 내 눈을 속일 생각은 말게. 이래 봬도 사람 얼굴 보는 일로 평생을 먹고 산 늙은이일세.”

쳇.

들켰네.

이래서 눈치 빠른 놈들은 싫다니까…….

[알림: <요괴퇴치>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협객행동>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약속은 지킬 터이니 걱정 말고 란이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주게. 란이를 치료가 끝나야 공덕이 쌓이고, 그래야 하늘에 치성을 드릴 명분이 생기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까짓것 하루 이틀쯤이야.

그 개고생을 해 가면서 치료제까지 구해 온 마당에 영감님이 기도할 시간쯤 못 줄까.

“그런데 자네.”

“네?”

“혹시 무당파와도 관련이 있는 겐가?”

“제가요?”

“아까 남화요선이 날린 불덩이를 무당파의 태극권으로 날려 버리지 않았나.”

“저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요.”

그냥 흘려버린 건데.

막으면 뜨겁고.

피하자니 멋없을 거 같아서.

“정말 아닌가? 모른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태극권의 묘리를 그리 잘 살리는 겐가?”

“글쎄요.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다 잘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수, 수련하다 보면 다 잘하게 된다고?”

“이것도 연습하고 저것도 연습하다 보면 다 잘하게 되는 거죠, 뭐.”

“허허허…….”

천기자 영감님이 너털웃음을 터뜨릴 때.

“형님!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빨리 탕약을 끓여야 하오!”

“아차!”

당괴괴 영감님의 다급한 외침에 천기자 영감님이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녀석아!”

당괴괴 영감님이 나도 불렀다.

“네 녀석도 어서 오너라!”

“네? 저요?”

“그래!”

“왜요?”

“탕약을 달이는 동안 네 녀석이 란이의 증세를 완화시켜 주어야겠다! 그리 하지 않으면 또 폭주가 시작될 수 있어!”

에라이.

인형설삼을 구해 온 거로도 모자라서 AS까지 해 주게 생겼다.

“눼에, 갑니다. 가요.”

그렇다고 서문란이 폭주하게 내버려둘 순 없으니 조금만 더 수고해 주기로 했다.

천기자 영감님의 말마따나 서문란이 살아야 공덕이 쌓일 테고, 그래야 천기누설이 가능해질 테니까.

* * *

“구왁! 구와아아아아아악!”

지하실로 내려가 보니 서문란이 괴성을 내지르며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입에서 연신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드래곤이냐고.

“내 옆에서 탕약을 달일 터이니 네 녀석은 란이의 증세를 완화시키도록 해라.”

“그러죠.”

당괴괴 영감님이 인형설삼을 달이는 동안 포식대법을 사용해 서문의 증세를 완화시켰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오?

산신령이 걸어준 버프 때문인지 굳이 입을 안 맞춰도 화기를 손쉽게 빨아먹을 수 있었다.

역시 강한 게 최고다.

얼마나 편해?

버프 받기 전에는 화기를 흡수하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다시 약해지겠지?’

문득 우울해졌다.

5일 뒤엔 다시 쪼렙으로 돌아가 아등바등 살아야 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긴 하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중략)

[알림: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계속해서 화기를 흡수하는데.

주르륵, 주르륵.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으으.

덥다, 더워.

“뀨! 주인놈아! 이거 마시고 해라!”

햄찌가 얼음물이 든 잔에 빨대를 꽂아 입에 물려줬다.

짜식.

센스 있기는.

쪽, 쪼옥!

햄찌가 준 얼음물을 마시며 버텼다.

“영감님, 언제 끝납니까?”

“보채지 말거라. 천 년 묵은 영약을 달이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느냐.”

당괴괴 영감님이 화로에 부채를 살살 부치며 대꾸했다.

“정성을 다해 불 조절을 해야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는 법이다.”

“저 죽어요.”

“허어! 거 인내심이 그리 없어서야!”

뭐 인내심이 없다고?

“화기를 흡수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예? 그렇게 쉬워 보이면 어르신이 직접 해 보시죠?”

“그, 그건.”

거 봐.

대답 못하잖아.

“흠흠. 고생하는 줄은 안다만 최대한 버텨 봐라. 나도 어쩔 방도가 없다.”

“얼마나 남았는데요?”

“한 세 시진은 더 달여야 한다.”

잠깐.

1시진이 2시간이니까.

세 시진이라면…….

“여섯 시간이나 더 버텨야 한다고요?!”

“무슨 국 끓이는 것도 아니고 탕약이 한두 시간에 뚝딱 달여지는 줄 아느냐? 사골국도 몇 시간 정도는 끓이질 않더냐?”

“저 죽습니다.”

“미안하지만 힘내 달라는 말밖엔 해 줄 말이 없다.”

눈 피하는 거 보소?

“저 죽는다니까요?”

“네 녀석이 화기를 흡수해 주지 않으면 란이가 발작을 일으킬 테고, 폭주가 시작될 텐데 그래도 괜찮으냐?”

“으으!”

“사람 살리는 일인데 딱 하루만 고생한다 생각하고 꾹 참아라. 어쩔 수가 없지 않으냐.”

영감님이 화도 안 내고 차분하게 말하니까 투덜거리기도 뭐하다.

에고, 내 팔자야.

* * *

“어서 일어나라! 어서!”

……으응?

“어허! 어서 일어나래도?”

“으악!”

눈을 떠 보니 당괴괴 영감님 얼굴이 보여서 화들짝 놀랐다.

독사 같이 생겨 가지고.

“화기를 흡수하고 있으라 했더니 졸고 자빠졌느냐?”

“제가 언제 졸았다고 그러십니까?”

“이놈이? 거 입가에 흐른 침이나 닦고 말해라!”

쳇.

걸렸네.

스윽.

소매로 침을 슥 닦았다.

많이도 흘렸네…….

화기를 흡수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졸았던 모양이다.

피곤한 걸 어떡하라고.

“탕약이 완성됐다.”

“오? 정말요?”

“지금부터 먹일 터이니 잠시 나와 보거라.”

“네.”

당괴괴 영감님이 숟가락으로 탕약을 한술 떴다.

덜덜덜!

어어?

손 떠는 거 보소?

아차.

이 영감님 수전증 있다고 했지.

근데 침은 어떻게 놓는 거야…….

“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당괴괴 영감님이 내게 탕약이 든 그릇과 숟가락을 건넸다.

“네 녀석이 먹여라.”

“제가요?”

“난 수전증이 있어서 안 되겠다.”

“…….”

“귀한 영약인데 한 방울이라도 흘릴 순 없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

저 탕약 한 방울에 몇천만 원은 할 텐데.

“그럼 제가 하죠.”

조심스레 탕약을 떠서, 서문란의 입가에 조금씩 흘려넣었다.

마침 제풀에 지쳐 잠들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탕약 한 숟갈 먹이기도 힘들었을 텐데.

한 숟갈, 두 숟갈, 세 숟갈…….

마지막 한 숟갈까지 집중해서, 정성스레 탕약을 먹였다.

어잌후.

그릇에 몇 방울 남았잖아?

이거 숟가락으로도 안 떠지는데 어떡하나?

날름날름!

그릇에 묻은 탕약이 아까워서 싹싹 핥아먹었다.

[알림: 내공이 상승했습니다!]

[알림: 내공이 상승했습니다!]

[알림: 내공이 상승했습니다!]

(중략)

[알림: 내공이 상승했습니다!]

고작 몇 방울도 안 되는 양을 핥아먹었는데 내공이 쭉쭉 올랐다.

야, 약효 보소?

“뭐 하는 게냐?”

“버리면 아깝잖아요.

“구질구질한 놈.”

“구질구질하긴 뭐가 구질구질합니까? 아껴야 잘 살죠. 크. 조오타. 몇 방울 핥아먹었는데도 내공이 쭉쭉 오르네.”

“그, 그게 정말이냐?”

“네.”

“이리 줘 봐라.”

“뭐 하세요?”

“이리 줘 보래도?”

당괴괴 영감이 내 손에 들린 그릇을 낚아채 가더니 그걸 혀로 핥…….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영감탱이야!”

“꾸웩!”

드롭킥에 맞은 당괴괴 영감님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하 씨.

더러워서 진짜.

남이 핥던 걸 핥고 자빠졌어!

“이놈이?!”

당괴괴 영감탱이가 벌떡 일어나던 순간.

고오오오오오오오!

휘이이이이이이이!

“……!”

“……!”

서문란으로부터 무시무시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어어?

어어어?

서문란의 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뻥! 하고 터지는 거 아냐?

“이런!”

당괴괴 영감님이 놀라 소리쳤다.

“란이의 몸에서 구양절맥의 양기와 인형설삼의 음기가 충돌하는 모양이다!”

“헉?!”

양기와 음기가 충돌한다고?

그럼 큰일이다.

경험상 서로 상극인 기운이 충돌을 일으키면 대폭발이 일어날 텐데?

“충돌하는 양기와 음기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당괴괴 영감이 황급히 서문란의 몸이 두 손을 붙이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내가 돕겠네!”

“란아!”

때마침 들어온 천기자 영감님과 서문범도 달라붙어 서문란에게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것도 잠시.

퍼엉!

폭발음과 함께 당괴괴, 천기자, 서문범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커헉!”

“쿨럭쿨럭!”

“크으윽!”

충돌하는 양기와 음기를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뀨우! 주인놈아! 어떡하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가 나서야지.”

하는 수없이 서문란의 몸에 두 손을 붙이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 * *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

“크윽!”

휘몰아치는 음기와 양기의 압력이 엄청나다.

펑펑!

펑펑펑!

음기와 양기가 서문란의 몸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며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위험!’

아무래도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다.

‘믿을 건 우주근원진기뿐이야.’

우주근원진기의 내공은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의 근본이 되는 힘.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氣)다.

‘강제로 누르려고 하면 더 심하게 충돌하려고 할 거다. 서로 부드럽게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자.’

우주근원진기의 내공을 불어넣어 충돌하는 양기와 음기를 달래고, 자연스럽게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집중. 실수하면 끝이다.’

양기와 음기의 충돌을 막고 조화를 꾀한다는 건 매우 섬세한 작업이었다.

어느 한쪽의 기운이 과하게 날뛰면 그때그때 포식대법으로 흡수해서 균형을 맞추고.

어느 한쪽의 기운이 부족하다 싶으면 보충해 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두 가지 기운을 모두 흡수해서 충돌을 막아 주기도 했다.

그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나도 얻는 게 있었다.

[알림: 내공이 상승했습니다!]

[알림: 양기를 흡수했습니다!]

[알림: 음기를 흡수했습니다!]

서문란이 육체가 감당해내지 못하는 잉여 내공과 음양의 기운이 내 단전으로 흘러들어왔다.

이걸 이렇게 이득을 보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헤헷.

“앗!”

“란이의 몸이!”

“오오오!”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서문란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치익, 치이이익!

그런 서문란으로부터 흘러나온 땀이 독한 악취를 풍기며 강철로 이루어진 침대를 녹였다.

그 와중에 보디빌더처럼 빵빵하던 근육도 쪼그라들어 본래의 크기를 되찾았다.

쩍쩍 갈라져 내 허리둘레만 하던 팔뚝과 허벅지도 건강한 미인이란 표현에 걸맞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악성 여드름처럼 몸 전체에 피어났던 열꽃도 사라지고, 퉁퉁 부어 무슨 수컷 오랑우탄 같던 얼굴도 다시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다.

마지막으로 미친 듯 질주하며 끊임없이 충돌하던 양기와 음기가 잠잠해지더니, 사이좋게 서문란의 단전으로 흘러들어가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끝났다.”

조심스레 서문란의 몸에서 손을 뗐다.

핑그르르르르르!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어어?

어어어?

[알림: 상태이상!]

[알림: <상태이상 : 탈진>에 걸렸습니다!]

[알림: <상태이상 : 기절>에 걸렸습니다!]

철푸덕!

하 씨.

또 기절 엔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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