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93화 (93/115)

제93화.

기절한 연오랑과 서문란을 방으로 옮긴 후.

“도대체 저놈 정체가 뭐요?”

당괴괴는 기절한 침대를 가리키며 천기자에게 물었다.

“쿠우울! 쿠우우우우울! 쿠와아아아아아알! 콰아아아아아아!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

침대 위에는 연오랑이 침을 질질 흘린 채 잠들어 있었다.

코는 어찌나 골아 대는지, 방 안에 천둥이라도 치는 줄 알겠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오. 흡성대법을 쓰질 않나. 무당파의 태극권도 쓰고. 심지어는 독공도 사용하더이다.”

“그랬지.”

“그것도 모자라서 그 강력한 양기와 음기의 조화를 이뤄내는 게 말이 되오?”

당괴괴는 연오랑이 보여 준 불가사의한 능력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불과 사흘 만에 어마어마하게 강해져서 돌아온 것도 상식 밖이 아니던가?

“정체라.”

천기자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나조차도 모른다네.”

“흥! 또 그놈의 천기누설 타령이오?”

당괴괴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천기누설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한 것일 뿐일세.”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믿어야지 그럼 어쩌겠나.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한 것을.”

“허어! 자꾸 이러기요?”

“정말 모른다니까?”

계속되는 추궁에 짜증이 났는지, 천기자 역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궁금하네. 저 녀석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만 한 가지 말해 주자면.”

“말해 주자면?”

“녀석은 다른 세계의 절대자였다네.”

“다른 세계의 절대자……?”

“그렇다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오?”

“쉽게 설명하자면.”

천기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비유자하면 녀석은 자기 세계에서 무적천존과 같은 존재였다네.”

“무, 무적천존(無敵天尊)?!”

당괴괴의 눈알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쉿!”

천기자가 황급히 당괴괴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가 듣겠네! 잊었는가?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걸?”

“미, 미안하오.”

당괴괴가 천기자에게 사과했다.

“내 너무 놀라 크게 소리를 내고 말았소.”

천기자의 말대로, 무적천존이란 이름은 함부로 언급해서는 금기(禁忌)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 * *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

홀연히 강호에 나타난 강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었고, 그 누구도 그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당대의 강자들을 찾아다니며 비무행(比武行)을 벌였다.

비무행은 정(正) 사(邪) 마(魔)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고수라면 누구라도 찾아가 비무를 신청했고, 단 한 방에 때려눕히며 자신이 지고무상(至高无上)한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하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

그중 백미는 당시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다투던 고수들과의 대결해서 승리한 사건이었다.

그는 남궁세가의 검황을 시작으로, 화산파의 검선, 혈교의 사황, 소림사의 여래신승, 패천성의 검마, 천마신교의 천마까지 단 하루 만에 차례대로 쓰러뜨렸다.

이에 사람들은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룩한 그 정체불명의 고수를 가리켜 무적천존이라 부르게 되었고,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설을 넘어 신화를 남긴 무적천존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종적을 감췄다.

“어찌 이 드넓은 천하에도 본좌를 즐겁게 해 줄 강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무적의 힘을 손에 넣지 않았을 것을!”

무적천존은 자신의 수발을 들던 수제자에게 그 말을 남기고는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무적천존의 이름은 무림에서 금기시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의 패배를 치욕스럽게 여겼던 정파, 사마, 마도의 인물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무적천존의 흔적을 지워 버렸던 것이다.

“그게 정말이오? 저 녀석이 무적천존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것이?”

“그렇다네.”

“믿을 수 없소.”

당괴괴가 현실을 부정했다.

“어찌 저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 무적천존에 버금가는 존재일 수 있단 말이오? 상상이 가오? 무적천존이 저렇게 코를 골면서 침이나 질질 흘리는 게?”

“좀 모자라 보일 수 있겠지.”

천기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저 덜떨어진 모습에 방심해선 안 될 일일세. 이곳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우주의 섭리에 의해 견제를 받아 저리된 것이니.”

“허어…….”

“믿고 안 믿고는 자네 자유겠지만, 일단 녀석에게 잘 보이는 게 좋을 걸세.”

“내가 뭐가 아쉬워서 저 싸가지 없는 녀석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야 하오?”

“그야…….”

천기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녀석이 자전혈망을 잡아 왔으니 그렇지.”

“자전혈망을 잡…… 뭐요?!”

당괴괴가 펄쩍 뛰었다.

그리도 노래를 부르던 혈망을, 그것도 나름 상위 개체인 자전혈망을 잡아 왔단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 * *

동탄신도시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박정민 씨(44세/자영업자)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가게 문을 열었다.

부왕!

부와아아아아앙!

“음?”

박성민 씨는 귀청을 찢어발길 듯한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게 앞 주차장으로 웬 노란색 페라리 한 대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쯧쯧. 돈 많아서 슈퍼카타고 다니는 건 좋은데 저렇게 소음공해를 일으키면 안 되지.’

박정민 씨는 페라리가 일으키는 굉음이 거슬렸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내 인생에도 페라리 한번 타 보는 날이 오나. 에라이. 페라리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포르쉐라도 한 대 뽑았으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었다.

커피와 각종 디저트에 진심인 박정민 씨는, 자신의 카페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가 생각보다 잘되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내 주제에 포르쉐는 무슨. 매달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마당에.’

박정민 씨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페라리에서 내린 사람이 카페로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 남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있어서 도저히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강도인가? 에이, 이런 코딱지만 한 카페에 강도는 무슨. 성형이라도 했나 보지. 요즘은 남자들도 성형 많이 하는 세상이니까.’

박정민 씨는 그런 생각으로 정체불명의 손님에게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시고요. 여기 시그니처 디저트가 뭐에요?”

“예, 저희 가게 딸기요거트 케이크, 치즈케이크, 그리고 블루베리 스콘이 맛있습니다. 하하. 다 수제로 만든 거예요. 제가 직접.”

“세 개 다 주세요.”

“네, 손님.”

“밖에 앉아도 되죠?”

“그럼요.”

정체불명의 손님은 카페 앞 야외테이블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자신이 주문했던 디저트 세 개를 하나씩 더 사서 포장해 갔다.

‘누구 가져다 주려나 보네.’

박정민 씨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날 저녁.

“딸기요거트 케이크 주세요.”

“치즈케이크 주세요.”

“블루베리 스콘이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장사가 안 돼서 카페 문을 일찍 닫으려는데,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카페라 그런지 눈 깜짝할 사이에 만석이 되었다.

‘오늘 뭔 날인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저 운수 좋은 날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다.

하지만 박정민 씨가 손님들이 몰려든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띠링!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중략)

[알림: 팔로워가 늘었습니다!]

박정민 씨는 카페 SNS계정의 팔로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뭐지?’

당황한 박정민 씨는 SNS계정을 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하, 한태성 선수?!’

박정민 씨는 전설의 프로게이머 한태성이 SNS계정으로 카페를 홍보해 주었단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까 그 손님이… 한태성 선수셨구나.’

박정민 씨는 그제야 노란 페라리를 타고 온 정체불명의 손님이 누구였는지를 깨달았다.

어쩐지 파리 날리던 카페에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SNS계정의 팔로워 수가 늘어난다 싶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게 된 박정민 씨의 카페는 사람들이 줄 서서 디저트를 사 가는 맛집이 되었다.

작은 규모임에도 매달 2~3천만 원의 순이익이 나는 알짜배기 가게로 성장한 것이다.

* * *

캐릭터가 기절해 있는 동안 성큰파파 님의 카페에 들렀다가,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알림: 로딩 중…….]

[알림: 무림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접속하자마자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기절의 달인>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이건 또 뭐야…….

[기절의 달인]

자주 기절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자주 기절하는 만큼 기절 시 캐릭터를 보호해 준다.

분류 : 칭호

등급 : 일반

효과 :

- 기절해 있는 동안 재생력 +500%

- 기절해 있는 동안 방어력 +500%

- 기절해 있는 동안 항마력 +500%

참고 :

이건 좀 좋은데?

기절해 있는 동안 캐릭터가 무방비상태가 되니까, 혹시나 모를 사망 확률을 줄여줄 수 있겠네.

이런 건 좋아.

스윽.

알림창을 치웠는데 웬 독사 같은 얼굴이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

“으악! 깜짝이야!”

퍼억!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머리로 영감님의 코를 들이받고 말았다.

“악!”

당괴괴 영감님이 코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뭐 하는 짓이긴요! 누가 사람 놀라게 하래요?”

어이가 없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자는 사람 얼굴을 그렇게 들여다봅니까? 어르신 그런 취향이셨어요?”

“아니야!”

“죄송하지만 저 그런 취향 아닙니다. 꿈도 꾸지 마세요.”

팔로 내 몸을 감싸며 당괴괴 영감님을 향해 눈을 흘겼다.

“나 그런 쪽은 관심 없다니까!”

“근데 왜 그렇게 보세요?”

“그, 그건.”

“왜 그렇게 보시냐고요.”

“아이잉.”

뭐, 뭔데.

“왜 성질을 내고 그러느냐~ 허허허~ 그저 예뻐서 좀 쳐다본 걸 가지고~”

“……?”

“푹 잤느냐~? 네 녀석 추울까 봐 내가 이렇게 이불도 덮어 주고 그랬단다~”

노망이라도 들었나?

그 꼬장꼬장하고 성질 더러운 노친네 맞아?

“노망나셨어요?”

“뭬야?!”

당괴괴 영감님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날 노려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 영감탱이가 갑자기 달라졌을 리가 없…….

“껄껄! 노망이라니! 아직은 멀쩡하지 걱정 말거라! 껄껄껄!”

“……뭔데요.”

“뭐긴~ 다 네 녀석이 예뻐서 그렇지~ 이번에 아주 큰 공을 세우지 않았더냐? 정말 고생했다~”

으윽.

소름 돋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이유가 있기는~ 그간 우리 사이에 쌓였던 오해를 풀고 앞으로는 잘 지내 보자는 게지~ 끌끌끌!”

“뻥치시네.”

“뻥은 무슨~ 진심이란다~ 그간 이 늙은이가 네 녀석을 많이 오해한 것 같아 못내 미안하구나~”

“정말요?”

“그러엄~”

당괴괴 영감님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앞으로는 잘 지내 보자꾸나~”

당괴괴 영감님이 수전증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예, 뭐.”

수상한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

“천자산에서 자전혈망을 잡은 게 사실이냐~? 허허~ 절대 자전혈망 피와 독액이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 궁금해서~~~”

역시.

어쩐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더라니.

“아, 이게 궁금하셨구나.”

품속에서 자전혈망의 독액이 든 유리병을 꺼내 보란 듯 흔들어 보였다.

“그, 그건!”

“예~ 자전혈망의 독액이죠~”

“그렇구나~? 허허~ 어디 그것 좀 보여 줄 수 있겠느냐~? 허허허~”

응~ 어림없어~

“아~~~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고프네~~~~~”

“배고프다고?!”

“아~ 누가 한 상 잘 차려 오면 좋을 것 같은데~~~~”

“자, 잠시만 기다려라! 내 금방 밥을 차려 올 터이니!”

당괴괴 영감이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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