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당괴괴 영감님과의 거래를 마치고 천기자 영감님을 만나러 가는 길.
[알림: 당신에 대한 당괴괴의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으응?
[알림: 당괴괴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뭐, 뭔데?
[알림: 당신에 대한 당괴괴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알림: 당신에 대한 당괴괴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중략)
[알림: 당신에 대한 당괴괴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왜 이러는 건데?
[알림: 당신에 대한 당괴괴의 호감도 상태가 <싸가지 없는 놈>에서 <굴러들어온 복덩이>로 변경되었습니다!]
[알림: 당괴괴가 당신에게 기대합니다!]
[알림: 앞으로 당괴괴는 당신의 한 마디에 껌뻑 죽을 것입니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
재료템들을 줘서 그런가?
‘그렇게 시비를 걸더니 이젠 귀찮게 질척대는 거 아냐?’
이런 경우를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하는 건가?
징그럽게 막 들이대면 어떡하지?
오싹!
하 씨.
소름 돋아…….
“뀨! 주인놈아! 왜 떠냐! 춥냐!”
“추운 게 아니라. 그 영감님이 소름 돋아서 그러지 앞으로도 계속 질척댈 거 같은 느낌이 든 달까…….”
“뀨! 뭘 새삼스럽게 떨고 그러냐!”
“응?”
“주인놈 예전에도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인기 많았다! 뀨!”
“아, 맞다.”
그랬지.
나, 어르신들한테 인기 많았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나이 든 사람들이 꼬인다.
여성 게이머나 여성 NPC가 다가온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 보면 주변에 온통 시커먼 사내새끼들뿐인 데다가, 특히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득실거리기 일쑤다.
오죽했으면 판타지 서버에서 <중년의 연인♥>이란 칭호까지 있었겠어.
그렇다고 여자들이 안 꼬이는 게 불만이라는 건 절대로, 맹세코 아니다.
나 유부남이라고?
“왠지 앞으로 피곤해질 것 같아. 받을 것만 받고 거리 둬야겠어.”
“뀨! 그럼 그렇게 해라!”
“그러려고.”
“뀨! 근데 주인놈 아까 당괴괴 영감님이랑 무슨 얘기 했냐! 뀨우!”
“으응?”
“속닥속닥 비밀 얘기 하지 않았냐! 뀨! 햄찌도 가르쳐 줘라! 뀨!”
“뭔 비밀 얘기?”
“뀨! 부작용 어쩌고 하는 거 들었다! 뀨! 무슨 얘기냐!”
“아, 그거.”
귀는 밝아 가지고.
“별거 아니고. 자전혈망의 고기 먹어도 되나 물어봤어.”
“뀨?”
“독이 있을 수도 있잖아~ 먹었는데 부작용 생기면 어떡해~”
“뀨! 그런 거였냐!”
짜식.
속기는.
거짓말까진 하고 싶지 않은데, 니가 입이 좀 싸냐?
미안해~~~~
“뀨! 햄찌는 주인놈이 근육 키우고 싶어서 약이나 빨려는 줄 알았다! 뀨!”
뜨끔!
“으응……?”
“뀨! 주인놈 고자라서 근육 안 생기지 않냐! 뀨우! 스테로이드 빨고 싶을지도 모른다! 뀨우!”
“에헤이~ 그럴 리가~ 근육은 정직하게 운동해서 만들어야지~”
들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꼴에 눈치는 빨라요.
철저하게 숨겨야 돼, 철저히.
이 자식이 알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게 뻔하다고.
* * *
천기자 영감님이 서문란의 방에 있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은인께서 오셨구려!”
서문범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연 소협, 정말로 고맙소이다. 앞으로 어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별말씀을요.”
차차 갚으시면 되죠.
헤헤헤.
“다 가주님과 서문세가에서 오랜 시간 공덕을 쌓아 오신 덕분인 걸요.”
“공덕은 무슨.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에이. 산신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요?”
“음?”
“산신령이 칭찬 엄청 하던데요? 인형설삼도 그냥 주려고 했다던데.”
천자산에서 있었던 일을 서문범에게도 말해 줬다.
“허허, 그랬구려. 산신령께서 우리 가문을 굽어살피고 계셨구려. 하나 인형설삼을 구해 오고, 저 백련교의 무리들을 쳐부순 장본인은 누가 뭐래도 연 소협이 아니겠소이까? 이 서문범과 서문세가는 연 소협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것이오.”
서문범뿐 아니라 그의 아내도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말 감사해요, 연 소협.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어요.”
“아닙니다, 부인.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갚으시겠죠.
갚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어.”
자해공갈범 녀석이 우물쭈물 다가와 말했다.
“형, 그때는 죄송했어요.”
“음?”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서문민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저희 가문과 누이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담에 커서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짜식, 이제야 철이 좀 들었나 보다.
하긴.
그런 일을 겪었는데 여전히 말썽쟁이면 안 될 놈인 거겠지.
“앞으로는 말썽피우지 말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누이도 잘 챙겨야 된다. 알겠지?”
“네, 형.”
녀석이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 같아서 머리를 쓰담쓰담 쓰다듬어주었다.
“……연 공자님.”
고개를 돌려보니 곤히 잠들어 있던 서문란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네, 공자님.”
서문란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음기와 양기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심한 내상을 입었으니까, 한동안은 침대 신세를 못 벗어나겠지.
“연 공자님. 흐윽.”
서문란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다 풀썩 쓰러졌다.
“아이고, 그냥 누워 계세요. 제발.”
“아닙니다.”
서문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어머님. 저 좀 일으켜 주세요.”
서문란은 괜찮다는데도 굳이 부모님의 부축까지 받아가며 침대를 벗어나 내게 큰절을 올렸다.
“연 공자님. 절 받으셔요.”
“아이고! 안 이러셔도 되는데!”
“저를 살려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눈 감는 그날까지 갚아 나가겠습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살다 살다 큰절을 다 받아 보네.
하하하.
“녀석.”
천기자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큰 공덕을 쌓은 것이니, 이만하면 하늘도 천기누설을 허락할 게다.”
“역시 그렇겠죠?”
당연히 허락해야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일부터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낼 게다.”
“제단을 쌓아요?”
“하늘에 허락을 구하는 일 아니겠느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야 하늘도 한 번쯤은 천기누설을 눈감아주는 법이다.”
“얼마나 걸려요?”
“1주일 정도 걸린다.”
“1주일 내내 제사를 지낸다고요?”
제사라는 게 하루 저녁 지내는 것도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닌데, 그걸 1주일씩이나 한다고?
“체력적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하지만 어쩌겠느냐? 이 늙은이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인 것을.”
“고생하세요.”
“음?”
“힘드실 텐데 미리 주무시고요.”
“네 녀석도 해야 되는데?”
“예?”
이게 뭔 소리야?
“그럼 이 늙은이 혼자 제사를 지내야 하는 줄 알았느냐?”
“저, 저도 해야 된다고요?”
“당연히 해야지.”
천기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천기누설을 허락받는 것은 이 늙은이의 몫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네 녀석의 소원이 아니더냐.”
“그, 그건 그렇죠.”
“네 녀석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하늘이 정하는 것. 나는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인 게야.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 녀석의 정성이다.”
“…….”
“그러니 잔말 말고 제사에 참석하도록 해라.”
“……눼.”
하.
이러면 나가린데.
산신령한테 받은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 어디 사냥터라도 찾아가서 레벨업 좀 하려고 했더니.
에라이!
“제사는 내일 아침부터 시작할 터이니, 그 전에 몸을 정갈히 하고 삿된 것을 가까이하면 안 된다. 마음을 깨끗하게 먹어야 하늘도 감동하는 법인 게야. 알겠느냐?”
“……눼.”
졸지에 제사까지 지내게 생겼네.
하아.
* * *
다음 날 아침.
“이걸로 갈아입도록 해라.”
로그인하자마자 천기자 영감님이 하얀색 도복을 던져 주었다.
도복으로 갈아입고 천기자 영감님을 따라 서문세가의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마당에는 이미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일곱 개의 기둥까지 우뚝 솟아 있었다.
딱 보니까 일곱 개의 기둥이 북두칠성 모양이다.
제단 주변에는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화려한 복장을 입고 다양한 깃발을 든 채로 호법을 서고 있었다.
이거 꽤나 본격적인걸?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천기자 영감님이 향을 피워 올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어서 기도하게.”
“어서 기도하시오, 연 소협.”
“어서 기도하세요, 연 소협.”
“형, 얼른 따라하세요.”
당괴괴 영감님, 서문범 부부, 서문민도 날 도와주기 위해 제사에 참석해 주었다.
“뀨! 주인놈아! 어서 빌어라!”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 녀석도 하얀색 도복으로 갈아입고 제단 앞에 엎드려 있었다.
다, 다들 제사에 진심이네.
‘나도 열심히 빌어야지. 카렐을 찾으려면.’
덩달아 제단 앞에 넙죽 엎드려서 하늘에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단체로 제단 앞에 엎드려서 몇 시간이고 기도를 드렸다.
한 2시간쯤 지났나?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성이 부족하구나…….
어?
뭐지?
누가 말했다 싶어 슬쩍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다들 납작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을 뿐 딱히 누군가 입을 연 것 같지는 않았다.
‘뭐지?’
환청이 들렸나 싶어 다시 기도에 집중하는데.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계속해서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늘의 목소리인가?!’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더욱 열심히 지극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비나이다.”
그래, 일단 빌고 보자.
그래야 카렐을 찾을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 * *
1주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제단 앞에 엎드려 빌고, 빌고, 또 빌었다.
솔직히 너무 지루에서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카렐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 정성이 부족하구나…….
정체 모를 목소리는 1주일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놈의 정성은.
내가 아쉬우니까 빈다, 빌어.
제사 마지막 날.
‘곧 끝나네.’
자정을 앞둔 시각.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천지신명이시여! 간절히 비나이다! 부리 허하여 주시옵소서!”
천기자 영감님이 머리칼을 휘날리며 크게 소리쳤다.
반짝반짝!
오오?
검은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별빛을 뿜어내며 밝게 빛났다.
번쩍!
새하얀 섬광이 번뜩이고.
쾅!
번개가 내리쳐 제단 앞에 놓아둔 거북이 등껍질에 작렬했다.
[알림: 제사가 끝났습니다!]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하늘이 당신이 쌓은 공덕과 지극정성에 감동했습니다!]
[알림: 거북이 등껍질을 확인하십시오!]
고개를 들어보니 천기자 영감님이 조금 전 번개를 맞았던 거북이 등껍질을 살펴보며 신탁(神託)의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이건…….”
거북이 등껍질을 든 천기자 영감님의 동공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흔들렸다.
“하늘이 뭐래요?”
“맙소사.”
“알려줬어요?”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신탁이.”
“저기요, 영감님.”
“허어…….”
하 씨.
궁금하게 왜 자꾸 뜸을 들여.
“영감님, 뭔데 그러세요? 설마 기도가 안 먹힌 건 아니겠죠?”
이거 순 사이비 아냐?
“직접 보게.”
천기자 영감님이 내게 거북이 등껍질을 보여 주었다.
거북이 등껍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허(許)
허?
뭔 소리야?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
허공보합(虛空寶盒)
이건 또 무슨 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