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97화 (97/115)

제97화.

두, 두목님?

두목님이 서문세가에 왜???

황궁에 계셔야 할 분이?

“아하하하하.”

ㅈ…… ㅈ됐다.

나 이대로 다시 잡혀 들어가는 거 아냐?

“오, 오래간만입니다. 하하, 하하하하.”

하 씨.

아직 규화보전 수정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그간 잘 지내셨어요? 하하하.”

“잘 지내지 못했어요.”

헉?

“중양절 그 사건 이후 천하의 민심이 어지러워 눈코 뜰 새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죠.”

아.

그런 의미였구나.

“일이 있어 동정호에 들렀다가 서문세가가 백련교의 습격을 받았단 소식을 듣고 와봤어요.”

“그, 그러셨군요.”

“때마침 연오랑 교육생도 여기 계셨군요.”

“하하하하…….”

“그간 연오랑 교육생의 활약은 잘 들었답니다.”

에라이.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제국 첩보기관의 수장쯤 되면 나 하나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구나.

설마 그 눈치 없는 자식이 보고를 올린 건 아니겠지?

그보다.

‘제갈참 교관님이 곤란해지는 거 아냐?’

교관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날 놓아주셨는데, 고초를 겪진 않으셨을지 걱정된다.

“제갈참 교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는 잘 지내고 있고, 최근에 승진했으니까요.”

내 눈치를 읽었는지, 두목님이 교관님의 근황을 얘기해 줬다.

정보기관의 수장이라 그런지 눈치가 아주 귀신같네.

“그렇군요. 하하하.”

“그런데…….”

“네?”

“제 품이 그렇게 좋은가요?”

“헉!”

“아쉽지만 제게는 이미 마음에 담아둔 정인(情人)이 있답니다. 물론…….”

두목님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귀여운 연오랑 교육생이라면 제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죠.”

“히, 히익?!”

화들짝 놀라 두목님의 품을 벗어났다.

근데 두목님…… 엄청 글래머셨네.

흠흠.

흠흠흠.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서문세가는 이 지역 일대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명문가니까요. 황제 폐하께서도 서문세가의 공로를 인정하실 정도죠.”

“아.”

“폐하께서 직접 오실 순 없으니까 저라도 직접 와서 서문세가를 위로해야겠다 싶었어요.”

“그, 그렇군요.”

“연오랑 교육생이 잘 지내나 궁금하기도 했고요.”

두목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천기자 영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목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래 살다 보니 동창제독도 만나 보는구려.”

“견쌍섭이라 하옵니다. 천기자 어르신.”

두목님이 천기자 영감님에게 다소곳하게 인사를 건넸다.

영락없는 양갓집 교수가 따로 없네.

“역시 동창제독이시구려. 이 늙은이를 아는 걸 보면.”

“어찌 하늘의 뜻을 들여다보는 분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헛소문일 뿐이오.”

“천기자 어르신께는 따로 말씀을 청하겠습니다.”

“내 그리하리다.”

“잠시 연오랑 교육생…… 아니. 연 소협은 빌려가도 될까요?”

“그러시오. 동창제독께서 그리 하시겠다는데 이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어 막겠소이까? 말씀들 나누시구려.”

아, 안 돼!

영감님!

살려 줘요!

저 이대로 끌려갈지도 모른다고요!

‘튈까?’

순간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 어떻게 도망쳐?

이대로 튀었다가 제갈참 교관님한테 불똥이 튈지도 모르고.

“연 소협.”

“네?”

“잠깐 저 좀 보실까요?”

“네에…….”

자리를 옮겨 두목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 * *

“연 소협.”

“네…….”

“제가 연 소협을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비급은 제가 열심히 수정하고 있습니다!”

품속에서 규화보전 비급을 꺼내 두목님에게 보여 줬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수정하긴 했는데요, 이게 생각해보다 복잡한 심법이라 시간이 좀 걸…….”

“아뇨.”

두목님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연 소협을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비급 때문이 아닙니다.”

“아?”

“물론 비급의 수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만을 간절히 원하는 건 사실이에요.”

두목님이 희게 웃으며 말했다.

미소가 씁쓸하네.

진짜 여자가 되고 싶으시겠지.

얼마나 간절할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건…….”

“중원 곳곳에서 백련교의 무리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황제 폐하라 한들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이죠.”

“그렇겠죠.”

이 넓은 대륙 곳곳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걸 어떻게 다 막겠어.

올라오는 보고만 받아도 아주 어질어질하겠지.

“그들의 목표는 황실을 전복시켜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왜죠?”

“첫 번째 이유로는 황실과의 악연을 들 수 있겠죠.”

“황실과의 악연이라면…….”

“태조(太祖)께서는 본래 백련교도셨습니다.”

“그래요?”

이건 몰랐네.

근데 태조가 누구더라…….

아, 맞다.

대명제국을 만든 초대 황제라고 했지?

이름이…… 주원장이라고 했나?

“당시 백련교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혼란스러운 시대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 초원의 오랑캐들이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이었죠.”

“흠. 자연스럽게 신앙이 유행했겠네요.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가 나타나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거라는 믿음 같은 거요.”

“정확해요. 역시 연 소협은 똑똑하군요. 당시 백련교는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군사를 일으켜 오랑캐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랑캐들을 쫓아내고 나니까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겠죠. 그쯤 되면 종교집단이라기보다는 군벌집단이고, 여러 파벌이 있었을 테니까.”

“정확해요.”

“결국 천하의 패권을 놓고 백련교의 여러 파벌끼리 싸우게 됐고, 결국 태조 고황제(高皇帝)께서 최종 승리자가 돼서 대명제국을 창업하셨다는 거죠?”

“맞아요.”

“대명제국을 창업하신 뒤에는 오히려 백련교를 탄압하셨을 테고요. 정치적인 이유로.”

“연 소협의 통찰력은 정말 놀랍군요.”

두목님이 날 다시 봤다는 듯 말했다.

그럼.

내가 황제 짬밥이 얼만데.

“그중 살아남은 백련교의 무리들은 대명제국에 큰 앙심을 품고 있겠네요. 그러니까 황실을 전복시키려고 할 테고요. 흠. 근데 그건 실익이 없는데.”

“경청하겠어요.”

두목님이 말해 보라는 듯 잠시 기다려 주었다.

‘백련교가 아무리 세다고 해도 제국과 전쟁을 치를 정도는 아닐 텐데. 애초에 그 정도였으면 실질적으로 점거하는 영토가 있었겠지. 지금 얘네들은 그냥 테러를 저지르는 중인 거잖아. 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계란으로 바위를…… 아!’

알겠다.

“지금 활동하는 백련교의 무리들은…… 교리에 충실한 광신도 집단이겠네요.”

“놀랍군요.”

“설마 그 교리의 핵심이라는 게…… 파괴로 세상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개념인가요?”

“바로 맞췄습니다.”

그럼 그렇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면 이런 미친 짓거리를 연달아 저지를 리가 없지.

“연 소협의 통찰력은 정말로 놀랍군요.”

“예, 뭐.”

머쓱.

“잘 알거든요. 너무 잘 알아서 문제죠.”

“네?”

“싸워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런 놈들이랑.”

옛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 * *

판타지 서버에서 활동하던 시절.

당시 내 주적은 제네시스 길드였지만, 진짜 적은 따로 있었다.

정체불명의 사악한 교단이 있었다.

놈들은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세계의 멸망시키려고 했다.

놈들의 이름은 오즈릭 교단이었다.

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오즈릭 교단과 맞서 싸웠고, 결국 놈들의 음모를 저지해 판타지 서버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오즈릭 교단의 진짜 배후에는 타락한 천족들과 창조주가 있었고, 그 사건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었지만.

어쨌거나 백련교의 사상과 교리는 그런 오즈릭 교단과 빼다 박은 수준이었다.

‘이래서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는 거구나.’

백련교 놈들이 오즈릭 교단 같은 놈들이었다니…….

“백련교의 교리는 이 세상이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들은 천하를 멸망시켜서 세상을 정화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죠.”

“위험한 놈들이죠.”

“그래서 연 소협께 부탁드리려 해요.”

“어떤 부탁을…….”

“이미 연 소협은 백련교의 무리들과 세 차례나 부딪혔습니다.”

중양절 사건.

맹호채 토벌.

그리고 서문세가 사건까지.

세 번 맞네.

“이미 연 소협은 백련교의 표적이 된 거나 다름없어요. 지금의 연 소협에게 안전한 곳은 황궁밖에 없을 테죠.”

서, 설마.

‘데려가려고?!’

그럼 진짜 곤란한데…….

“하지만 저는 연 소협을 황궁으로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네?”

휴 다행이다.

“저와 제갈 교관은 연 소협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연 소협은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에요. 불과 두 달 만에 이렇게 성장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저는 연 소협이 백련교와의 싸움에서 큰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해요.”

“아.”

“황실과 연 소협은 백련교라는 같은 적을 상대하고 있죠.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없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니까.

“오랑캐로부터 중원을 되찾은 지 불과 50년도 채 지나지 않았어요. 또다시 중원 대륙이 혼란에 빠지도록 놔둘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나쁠 건 없다.

다만.

“저에게 솔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뒤통수 맞는 건 질색이거든요.”

뒤통수치는 게 전문이지.

왕년에 뒤통수 잘 치기로 유명했었다고?

그런다고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적이 있었다.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

나와 협력하던 사이였지만, 알고 보니 오즈릭 교단의 교주였다.

슈트카르트 황제.

조력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판타지 서버에서 게이머들을 멸종시키려던 미친놈이었고.

“순수하게 백련교로부터 중원 대륙을 지켜내고 싶으신 거라면, 저는 기꺼이 동창제독 각하를 도울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더는 동창제독 각하를 돕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겠어요, 연 소협.”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를 이용하려 하지 마세요. 그땐 우린 적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적으로 삼기에 그리 적합한 대상은 아닐 겁니다.”

두목님은 정보기관인 동창의 수장.

마음만 먹으면 날 충분히 이용해 먹고도 남겠지.

과거 아케론과 슈트카르트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연 소협의 말씀, 새겨듣겠어요. 저 역시 연 소협을 속이거나 이용하는 게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있답니다.”

“하하.”

“앞으로 잘해 봐요, 연 소협. 저는 연 소협을 믿어요.”

두목님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제갈세가 사람을 만나거든 제갈 교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하죠.”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

하긴.

제갈세가쯤 되는 명문가의 자손이 환관이 된 게 이상하긴 하지.

무슨 사연일까…….

궁금하긴 하네.

* * *

서문세가를 떠나기 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게.”

“영감님이 어디 계신 줄 알고요.”

“전서구는 뒀다 어디 쓰나? 북풍표국을 통해서 연락하면 되지.”

“아, 그러네.”

북풍표국은 중원 전 지역에 지점이 있으니까, 거기로 연락하면 되긴 하겠다.

“조만간 북풍표국을 통해서 제작을 부탁한 물건들을 보낼 터이니, 두어 달 있다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당괴괴 영감님과도 인사를 나눴다.

“연 소협. 언제쯤 다시 찾아주실 것이오.”

“글쎄요. 발길 닿다 보면 다시 만나겠죠.”

“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으리다.”

“하하.”

“그리고 이건 자그마한 성의 표시요.”

오오!

황그으으으음!

서문범이 금괴가 가득 든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것으로 은혜를 갚겠단 것은 아니니 절대 오해해선 아니 되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잘 쓰겠습니다아!

“아, 혹시 덕팔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북풍표국을 통해서 연락 좀 해 달라고 하시겠어요?”

이 양반이 늦네.

뭔 일 생겼나?

“걱정 마시오. 연 소협의 지인이라면 우리 세문세가에서도 귀한 손님이니.”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으니까 일단 내 갈 길부터 가야지.

“살펴 가세요, 연 소협.”

“형! 잘 가요!”

“꼭 다시 뵈어요, 연 소협.”

부인, 서문민, 서문란도 배웅해 주었다.

“그럼 다들 나중에 뵈어요!”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서문세가를 떠나 귀주성 정안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렐을 찾을 실마리.

허공보합이 있다는 천하제일문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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