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굳이 주먹질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독 뿜으면 그만이지.
“야! 거기! 너 아까 나한테 당장 가진 거 다 내놓으라며!”
“꺼, 꺼져!”
“야! 줄게! 준다니까?”
“으아아아악!”
날 둘러쌌던 건달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너! 니 동생 치료비 달라며? 줄게! 이리 와 봐!”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준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준다니까 그러네…….
“도, 독공의 고수다!”
“독이다! 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건달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꼭 놀란 바퀴벌레들 같다.
짜식들.
그러니까 사람 봐가면서 건드렸어야지.
“뀨! 주인놈아! 애들 너무 겁주지 마라! 애들 밤에 오줌 싸면 어떡하냐! 뀨!”
“그럼 소금 얻으러 가는 거지, 뭐.”
“뀨?”
“있어, 그런 표현이.”
요즘 세대는 이런 거 모르겠지?
흑흑.
나도 늙긴 늙었구나.
“뀨! 주인놈아! 배고프다! 일단 밥부터 먹자! 뀨!”
“구! 구구구!”
맞다.
밥때 됐지.
햄찌 녀석도 날 태우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배고플 테고.
꼬꼬는…….
“구! 구구구!”
이 새뀌 또 파리 잡아먹고 있네.
“파리 잡아먹지 말라고!”
“캑! 캑캑캑!”
“뱉어!”
“캑! 캑캑캑!”
“뱉으라고!”
하여간 이 자식 식탐 한번 오진다니까?
내 주변을 맴도는 파리들을 잡아먹어 줘서 고맙긴 한데, 너무 더럽잖아.
밥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모이도 최고급으로 주는데 꼭 파리를 먹어야겠냐?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영양분을 필요로 합니다!]
[알림: 신속히 고단백 고탄수화물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보충하십시오!]
[알림: 근육은 충분한 영양공급과 휴식이 이루어졌을 때 성장하는 것입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스테로이드…… 가 아니라.
당괴괴 영감님이 준 수태로이도를 주사한 후부터 밥 먹으란 알림창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그래, 귀찮아도 먹어야지.
그래야 근력이 오르지.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 환골탈태하기 전까지는 불편해도 참아야 된다.
지금이야 버틸 만한데, 레벨이 더 오르면 부족한 근력이 분명히 발목을 잡겠지.
아무리 내공을 사용해 힘을 증폭시킨다고 해도 기본은 근력.
애초에 근력이 부족하면 내공으로도 힘을 증폭시키는 데 한계가 따르니까.
“가자, 밥 먹으러.”
“뀨! 가자!”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를 데리고 가까운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이고! 소협! 어서 오십시오!”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점소이가 반겨주었다.
“일단 따뜻한 차부터 드리겠습니다요.”
“아, 예.”
“뭘 드릴까요?”
어디 보자.
메뉴판이…….
‘평범하네.’
다행히 이 객잔엔 짜장면 같은 건 안 파는 모양이다.
“이것저것 한 상 잘 차려 주세요. 기왕이면 기름기 적고 고기랑 쌀 많이 들어간 거로요. 야채도.”
역시 근성장인 단백질이랑 탄수화물이지.
“옴뇸뇸!”
“촵촵촵!”
“구구구!”
한 상 잘 차려놓고 녀석들과 함께 거하게 밥을 먹었다.
“꺼억! 자알 먹었다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들기며 포만감을 만끽하다가, 저 멀리 있는 점소이를 불렀다.
낯선 곳에서의 정보 수집은 역시 점소이지.
괜히 무림서버의 마스코트가 점소이겠어?
“예, 소협. 부르셨습니까요. 헤헤헤헤.”
“혹시.”
“예, 말씀하십시오. 소협. 헤헤헤.”
“혹시 천하제일문이 어딘지 아세요?”
툭.
점소이가 더러운 행주로 닦던 그릇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그릇이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근데, 잠깐.
그 더러운 행주로 우리가 먹던 식기 닦은 거 아니지?
“처, 천하제일문 말씀이십니까요? 헤헤… 헤헤헤헤…….”
“네.”
“어쩐 일로 천하제일문을 찾으십니까요?”
응?
점소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째 분위기가 좀 수상하다.
쫑긋쫑긋!
객잔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우리 얘기를 엿듣는 거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홱!
고개를 돌려 객잔 사람들을 살펴봤다.
“아 글쎄 그게 그렇게 됐다니까?”
“허어!”
“이 집 동파육이 아주 일품이로구먼!”
“어이! 여기 죽엽청 좀 더 가져와!”
고개를 돌려보니 다시 시끌시끌 저마다 떠들기 바쁘네.
흠.
기분 탓인가…….
“왜 천하제일문을 찾는지는 개인 사정이니까 말씀드릴 수 없고요.”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 점소이의 눈앞에 내밀었다.
어?
다시 조용해졌다.
뭐지…….
“천하제일문 알아요, 몰라요.”
“헤헤헤헤…….”
점소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다마다요. 정안현 사람치고 천하제일문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요? 헤헤헤헤.”
“그래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헤헤…….”
점소이가 내가 내민 은자를 슥 가져가 품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소협께서 어쩐 일로 천하제일문을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물어보시니 말씀해 드리겠습니다요.”
“잠시만요.”
지도를 꺼내 점소이에게 보여 주었다.
“정확히 어디죠? 천하제일문의 위치가?”
“이렇게 북쪽으로 30리쯤 가시면 천하제일문이 있습지요. 뉘예, 뉘예. 그렇습죠. 헤헤헤헤.”
1리가 400미터니까.
30리면 12킬로미터.
햄찌 타고 가면 금방이겠네.
뭐, 걸어가도 되고.
“그럼 요즘 천하제일문은 어떻죠?”
“그것은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그래요?”
“천하제일문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지가 꽤 되었습죠. 적어도 몇 년은 지났습니다요.”
“그럼 천하제일문의 사람들 소식도 모르시겠네요?”
“오리무중입지요.”
쩝.
점소이가 모른다면 모르는 거겠지.
“고마워요. 가서 하던 일 하세요.”
“저어, 소협.”
“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점소이가 뭔가 말하려는데.
“야! 점소이! 빨리 안 튀어와?!”
“여기 주문 안 받냐!”
“죽엽청 한 병 가지고 오라니까 뭐 이렇게 동작이 굼떠? 너 이 새끼 점소이 관두고 싶어?!”
객잔의 다른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점소이를 불러댔다.
“시, 실례하겠습니다요. 소인이 일이 바빠서…….”
“그럼 가 보셔야죠.”
“예, 소협.”
점소이가 헐레벌떡 손님들을 향해 뛰어갔다.
흠.
좀 찜찜한데.
‘위험하다는 거겠지. 치안이 불안하다고 했으니까.’
조금 전 점소이 반응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 같다.
손님들 반응도 그렇고.
‘언제는 안 위험했나.’
위험하다고 안 갈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가 보기로 했다.
* * *
배도 부르겠다,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정안현까지 오는 동안 타고 온 게 미안하기도 하고?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해 저 멀리 서쪽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붉은 노을이 졌다.
캬.
경치 보소?
판타지 서버도 경치가 좋은데, 무림 서버 경치도 나름 멋지다.
이게 어릴 땐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왠지 사람이 자연친화적이 되는 것 같단 말씀이야…….
가는 동안 딱히 위험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인적이 되게 드물고 곳곳에 수풀이 우거져 있는 것만 빼면, 그냥 평범한 시골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
“뀨! 주인놈아! 저기 보인다!”
“으응?”
“뀨! 저기다! 저기!”
숲속을 한참 걷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근데…… 어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걸?
“햄찌야, 잠깐만 태워 줘.”
“뀨! 알겠다!”
햄찌를 타고 커다란 장원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보았다.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
도착해 보니 현판에 나름 웅장한 필체로 천하제일문이라고 적혀 있…….
삐걱!
와장창!
현판이 기울어지더니,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
“…….”
“…….”
망했다더니, 진짜 망했나 보다.
끼이익!
“저기요~? 실례합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뀨! 주인놈아! 여기 사람 있는 거 맞냐!”
“있겠냐?”
사람은 개뿔.
장원 마당에 풀이 사람 허벅지까지 올 만큼 자라나 있고,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이 가득한 데다가, 나무로 된 기둥들은 쩍쩍 갈라지고 썩어 있다.
사람 손길이 얼마나 안 닿은 건지 감도 안 오네.
“……그냥 폐가잖아.”
아무리 봐도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귀신이라면 몰라도.
“뀨! 주인놈아! 우리 담력훈련 온 거냐! 뀨우!”
“담력훈련은 뭔 담력훈련이야!”
“뀨? 주인놈 귀신 나올까 봐 무섭냐?”
“무섭긴 뭐가 무섭냐?”
사실 좀 쫄리긴 해…….
옛날부터 공포영화 같은 거 잘 못 본다고…….
외국 공포영화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 동양 공포영화는 아내 없으면 혼자 못 볼 정도다.
“대충 둘러보고 가자.”
“뀨! 알겠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천하제일문 내부가 하나도 안 보인다.
등을 켜고 천하제일문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뀨! 주인놈아! 무서워서 불 켠 거냐! 뀨!”
“아니거든?”
“햄찌가 야명주 술법 써 준다! 뀨! 그럼 불 켤 필요 없다! 뀨우!”
“됐다. 뭘 술법까지 써. 기왕 켠 김에 이걸로 둘러보면…….”
“찍찍찍!”
“으아아아아아악!”
쥐새끼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간 덕분에 간 떨어질 뻔했다.
“뀨우우우우! 주인놈 겁쟁이다! 겁쟁이! 쥐새끼에 놀랐다! 뀨우! 겁쟁이다! 겁쟁이!”
“야 이!”
너도 쥐새끼면서!
“그냥 놀란 거야! 놀란 거! 무서운 게 아니라!”
사실 무섭다.
산속보다 이런 폐가 안이 더 무섭다고…….
“주인놈은~♪ 겁쟁이래요~♬ 주인놈은~♩ 겁쟁이래요~♬”
“구구구구~♪ 구구구구구~♬ 구구구구~♩ 구구구구구~♬”
이 새뀌들이 진짜!
축생들 주제에 자꾸 주인을 놀려?
언제 날 잡고 기강 한번 잡는다, 내가.
으득!
“진짜 아무도 없네.”
무서운 걸 꾹 참고 천하제일문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사람은커녕 쥐새끼들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문파가 망하면서 문도들도 뿔뿔이 흩어진 모양.
하.
문도들을 어디 가서 찾지…….
하늘이 나 엿 먹이려고 똥개훈련 시키는 거 아냐?
그간 당한 걸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다.
“아무도 없네. 그냥 가자.”
“뀨! 알겠다!”
막 천하제일문을 빠져나가려는데.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가 쏟아지다 못해 아주 퍼붓기 시작했다.
하.
이럼 나가린데…….
“뀨! 주인놈아! 안 되겠다! 일단 비 멈출 때까지 기다리자! 뀨우!”
“그, 그냥 가면 안 되냐?”
“뀨! 햄찌 털 다 젖어서 안 된다! 왜 멍청하게 비를 맞냐! 뀨우!”
“비 좀 맞더라도 객잔에서 편하게 쉬…….”
“주인놈 무서워서 그러냐? 뀨우?”
“아니거든?”
“뀨우우우우우! 주인놈 겁쟁이다! 겁쟁이! 뀨우우우!”
“아니라고!”
“주인놈은~♪ 겁쟁이래요~♬ 주인놈은~♩ 겁쟁이래요~♬”
“아니라니까아아아아아아아!!!”
겁쟁이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일단 비가 그칠 때까지 천하제일문에서 시간을 좀 때우기로 했다.
무서운데…….
* * *
‘이거 진짜 엄청 복잡한 심법이었네.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 기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꼬여 있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해서, 규화보전의 비급을 펼치고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슥, 스윽.
햄찌도 내 옆에서 부적을 만들고, 태평요술서를 들여다보며 술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꼬꼬는…….
“……zZ.”
이 자식 밤 됐다고 바로 잠든 거 보소.
‘오늘은 여기서 비급이나 보다가 로그아웃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비급을 들여다보며 수정작업을 계속하는데.
“주, 주인놈아? 뀨?”
“응?”
“저, 저기 봐라! 뀨!”
“안 속아, 인마.”
아 씨.
집중하고 있는데 귀찮게 하고 있어.
“뀨우! 주인놈아! 저, 저기 봐라! 뀨우!”
“아 좀! 안 속는다고! 방해하지 말라고!”
“뀨우! 저기 봐라! 뀨!”
“아무것도 없으면 너 뒤진다, 진짜?”
고개를 돌려 햄찌가 가리킨 곳을 봤는데.
으응?
어둠 속에 웬 소복 입은 여자들의 형상이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없네.”
눈코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하, 하하하하…….”
어, 얼굴 없는 분들이시구나.
그래, 얼굴이 없을 수도 있…….
“귀신이야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