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어쩐지 아까부터 유혹해도 꿈쩍도 않더라니…….
‘진짜 고자였어……!’
화들짝!
소스라치게 놀란 한령령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네, 네놈.”
한령령이 표독스런 눈을 빛내며 젊은 무림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사내가 아니었구나!”
“그러는 지는.”
젊은 무림인이 한령령을 향해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지는 사람도 아니면서.”
“……!”
“너, 사람 아니잖아.”
“……!”
“어딜 사람 행세를 하고 있어. 귀신 주제에.”
“이이… 이이이……!!!”
한령령은 그제야 젊은 무림인, 아니 저 고자 새끼가 처음부터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 *
풉.
저저 빡쳐서 부들대는 거 보소?
헤헷.
처음부터 이상했지.
이런 인적 드문 곳에 그렇게 야시시한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딨어?
아주 훌러덩 벗고 다니지 왜?
물론 처음부터 처녀귀신이란 걸 알아차린 건 아니었다.
알아차린 건 건달들은 보내고 난 직후.
슬쩍 안겨 오는데,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었다.
[알림: 섭혼술을 무효화시켰습니다!]
뭔 소린가 싶었는데.
[알림: 당신은 고자입니다!]
알아, 안다고.
[알림: 당신은 이성이 가하는 모든 매혹 관련 효과에 대한 저항력을 최대치로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안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눈치챌 수 있었다.
어떤 평범한 여인이 대뜸 매혹부터 걸어대?
[알림: 거 보십시오!]
[알림: 중성화 수술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알림: 중성화 수술을 하면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적어져 탈모·전립선비대증 등의 질환에 면역…….]
그만해!
나도 알아!
하여간 틈만 나면 사람 속 못 뒤집어 놔서 안달이라니까?
[한령령]
천하제일문 주변에서 활동하는 처녀귀신.
사내들을 유혹해서 그 정기를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귀신이다.
타입 : NPC
종족 : 귀신
성별 : 여
나이 : 24 (21+3)
레벨 : 120
등급 : 이류
직업 : 처녀귀신
소속 : 귀왕문(鬼王門)
신분 : 귀왕의 딸
특징 : 사내를 유혹하는 처녀귀신답게 섭혼술 하나만큼은 가공할 수준으로, 조금만 방심했다간 정신을 빼앗겨 버릴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칭호 : 령령의 노예♥ / 순결한 처녀 / 시집주의자
남자들 홀려 놓고 정기 빨아먹는 게 순결한 거였냐…….
아닌가?
처녀귀신이니까 살아생전 순결하긴 했겠네.
“이 고자 새끼야!”
빠직!
이게 선 넘네?
“감히 날 가지고 놀다니!”
한령령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누가 누굴 가지고 놀아? 네가 나 가지고 놀다가 정기 빨아먹으려고 했으면서?”
“닥쳐!”
“뒈졌으면 곱게 뒈질 것이지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산 사람들을 괴롭히냐? 구질구질하게 이승에 붙어서 뭐 하는 거야…….”
“이 고자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어휴.
성질 더러운 거 보소?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갔지.”
“뭐, 뭐라고?!”
“너처럼 성질머리 더럽고 악독한 여자를 어떤 미친놈이 데려가겠냐? 이 암컷 사마귀 같은 놈아!”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 사마귀의 머리부터 잘근잘근 씹어서 잡아먹는다는데.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저승도 안 가고 이러는 거 보면 살아생전엔 얼마나 악랄했겠냐? 보인다, 보여.”
“너…….”
한령령이 고개를 푹 숙이며 씹어내듯 으르렁거렸다.
헉.
머리 저렇게 늘어뜨리니까 좀 귀신같아 보이네.
“말 다했어?”
“아직 다 못했는데?
“네가,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고오오오오오오!
한령령을 중심으로 싸늘한 귀기(鬼氣)가 휘몰아쳤다.
“뭘 안다고 지껄이냐고!!!”
촤라락!
“……!”
한령령의 머리카락들이 쭉 늘어나더니 날 덮쳐 왔다.
* * *
뭔데?
나쁜짓은 지가 저질러 놓고 욕 좀 먹었다고 발끈하네?
지는 나 고자라고 놀려 놓고서.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촉수처럼 쭉 늘어난 머리칼이 날 노렸다.
우웅!
속력금쇄진을 펼쳤다.
‘느려 터져 가지고.’
머리칼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죽어어엇!”
이번에는 손톱을 덮쳐 왔다.
손톱까지 늘어나?
슥, 스윽.
손톱을 피하는 사이.
촤라락!
머리카락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며 내 몸을 휘감았다.
꽈아아악!
한령령의 머리칼이 뱀처럼 내 오른쪽 상반신을 조였다.
“그 입…… 찢어 버릴 거야.”
한령령이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鬼火)를 뿜어내며 손톱을 세웠다.
흠.
“너.”
오른쪽 상반신을 꽁꽁 묶인 상태로 한령령에게 물었다.
“좋게 놔줄래, 아니면 눈물 쏙 빼고 놔줄래.”
“뭐라고?”
“좋게 놔주면 그냥 줘 패는 선에서 끝내고.”
미리 경고는 해 줘야지.
“좋게 안 놔주면…… 그땐 진짜 눈에서 눈물 쏙 빠지게 해 줄 거야. 어떡할래.”
“닥쳐!”
한령령의 손톱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하.
어쩔 수 없지.
싹둑.
방천가위로 한령령의 머리칼을 싹둑 잘랐다.
여포가 쓰던 방천화극의 날로 만들었다더니, 역시 성능 하나는 일품이다.
한령령의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커지는 게 보인다.
싹둑, 싹둑, 싹둑!
머리칼을 잘라 가면서 속박을 풀고, 한령령과의 거리를 좁혔다.
“내, 내 머리가… 내 머리가…….”
졸지에 단발 미녀가 되어 버린 한령령이 제 머리칼을 붙들고 오열했다.
흠.
근데, 단발이 더 예쁜 거 같은데?
“감히 내 머리를…….”
“말했지. 눈물 쏙 빠지게 해 준다고.”
퍼억!
무릎으로 한령령의 복부를 차 올렸다.
“꺄아악!”
한령령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뀨우우우우! 주인놈아! 예쁜 누나 왜 때리냐!”
“구! 구구구!”
그제야 잠에서 깬 햄찌와 꼬꼬가 필사적으로 날 뜯어말렸다.
“왜 때리긴 왜 때려! 남자 정기 빨아먹는 사악한 처녀귀신이니까 때리지!”
햄찌와 꼬꼬를 밀쳐내고, 일어나려는 한령령을 덮쳐 파운딩을 걸었다.
“비, 비켜! 흐윽! 비키라고! 흐으윽!”
“쳐 맞아야겠지?”
한령령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퍽! 퍼억!
“캬아악! 꺄아아아아악!”
한령령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뒈져! 뒈져!”
“꺄아아아악!”
“뒈지라고!”
근데 귀신한테 뒈지라고 하는 게 맞나……?
“아, 이미 한번 뒈지셨지?”
“흑흑! 흑흑흑!”
“그럼 한 번 더 뒈져!”
“꺄아아아아악!”
여자라고 봐주는 것 없이, 공평하게 실컷 때려 줬다.
무림 서버는 어설픈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곳.
‘명심하거라. 강호에선 노인과 여자와 아이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다만.’
제갈참 교관님의 말씀이 백번 옳지.
암, 그렇고말고.
쾅! 쾅! 쾅! 쾅! 쾅! 쾅!
광속폭렬타로 한령령을 가차없이 내리쳤다.
“꺄아아아악!”
한령령이 비명을 내지르더니 스르륵 하고 흩어져 버렸다.
“어?”
헉.
진짜로 두 번 죽어 버렸네.
남들은 한 번 죽기도 어려운데.
하하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근데…… 경험치는 왜 안 올라?
‘1도 안 올랐네.’
도망간 건지.
아니면 처녀귀신이라서 경험치를 안 주는 건지.
야!
갈 때 가더라도 경험치는 주고 가야지!
‘귀왕의 딸이라서 안 죽는 건가?’
복수하겠답시고 아빠 끌고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귀왕이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착한 놈은 아니겠지.
‘복수하러 오면 아빠란 놈이랑 같이 세트로 패 주지 줘. 그럼 세 번 죽는 건가?’
딱히 무섭진 않다.
옛날부터 복수하겠답시고 덤벼들었던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뀨! 주인놈아! 그 누나 귀신이었냐! 뀨우! 미안하다! 햄찌 귀신인 줄 몰랐다! 뀨!”
“구! 구구구!”
햄찌와 구구가 다가와 미안하다는 듯 사과를 건넸다.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니들은 예쁘면 다냐? 막 경계심 풀고 그래도 돼?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겠다? 내가 무슨 미친놈도 아니고 여자나 패는 사람이냐? 어?”
“뀨! 주인놈아! 주인놈은 고자라서 잘 모른다! 뀨! 햄찌랑 꼬꼬는 사나이라서 예쁜 누나 보면 잘해주고 싶은 거다! 뀨우!”
“뭐 인마?!”
순간 욱! 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참기로 했다.
꼴에 수컷이라고 사나이가 뭐 어쩌고 저째?
그래, 그런다 이거지…….
“오랜만에 형수님 좀 만나러 가야겠네.”
여기서 말하는 형수님이란 모찌, 그러니까 햄찌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대정령들 가운데서도 단연코 최고라던데…….
한번 화났다 하면 햄찌를 무슨 쥐 잡듯이 잡는데…… 어우.
오싹!
옆에서 봐도 무서울 정도라고?
“뀨, 뀨우?!”
모찌를 언급하자마자 햄찌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후후.
그래, 그러시겠지.
“모찌한테 말 좀 해 줘야겠네. 니가 예쁜 누나한테 홀려서…….”
“뀨우! 주인놈아! 어디 아픈 데 없냐! 햄찌가 주물주물 해 준다! 뀨우!”
“아~ 이거 왜 이러셔~”
“뀨우! 주인놈 어깨 단단히 뭉친 거 같다~ 뀨! 햄찌가 주물주물 해 줘야겠다~ 뀨~!”
태세전환 보소?
아주 얌전한 쥐새끼가 따로 없네.
“앞으로 깝치지 마라. 확 모찌한테 불어 버리기 전에.”
“뀨우…… 알겠다.”
역시 유부남, 아니 유부쥐새끼 협박하려면 형수님만 한 게 없다니까?
* * *
다음 날 오전.
로그인하자마자 천하제일문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뀨! 주인놈아! 이제 어떡하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문도들이라도 찾아봐야지.”
쩝.
기껏 찾아왔더니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폭삭 망해 버려서 흉가(凶家)가 되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뀨! 문도들은 어떻게 찾아볼 거냐! 뀨우!”
“글쎄.”
관아에 가서 물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어째 이곳 귀주성 관아는 영 미덥지 못하다.
대명제국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건 실질적인 지배력도 떨어진다는 뜻.
그런 곳에 물어봐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여긴 점소이도 영 신통치가 않던데.’
치안이 불안한 무법천지라 그런지 누굴 믿어야 할지도 애매하다.
‘어떻게 하지? 그냥 수소문해 볼까? 아닌데.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데.’
천기자 영감님을 찾을 때도 그랬지만, 무턱대고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물어보는 건 딱히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뭔가 쓸 만한 정보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흠.
“어디 정보 얻을 만한 곳 없나… 정보를…….”
띠링!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고 계셨나요?]
무림 서버를 플레이하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는 단순히 점소이에게 물어보는 것만이 방법이 아닙니다!
무림 서버에서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면 거지들로 이루어진 문파 개방과 밑바닥 인생들로 이루어진 문파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각 지역에 따라 개방과 하오문의 세력과 정보력에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잘 고려해서 의뢰를 진행해 보세요!
아!
맞다!
개방이랑 하오문이 있었지!
[알고 계셨나요?]
귀주성은 전통적으로 사파의 세력이 강한 곳입니다!
현재 귀주성에서 개방과 하오문의 세력 구도는 2:8 정도로 하오문이 압도적입니다!
“하오문이라…….”
무협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긴 하지.
밑바닥 인생들의 집단이라고 했었는데…….
깡패, 기녀, 소매치기, 마부, 점소이, 도박꾼, 도둑놈 등등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문파니까 밑바닥은 맞지.
‘하오문으로 가 볼까?’
여기선 하오문의 세력이 압도적이라니까, 하오문으로 가는 게 맞겠지.
‘아냐. 소매치기랑 깡패들 줘 팬 게 좀 걸려. 이것들 다 한통속이니까, 나한테 딱히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
이런 곳에서 괜히 하오문과 엮였다가는 천하제일문의 문도들을 찾기는커녕,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다.
반대로 개방은…….
‘그래도 정파놈들이니까 하오문보단 좀 낫겠지.’
일단 가까운 개방 분타로 찾아가 천하제일문의 문도들에 대한 정보를 구해 보기로 했다.
개방이 영 시원치 않으면 그때 가서 하오문을 찾아가 보면 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