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개방부터 찾아가 보기로 하고, 햄찌를 타고 도시로 내달렸다.
올 때야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왔지만.
“뀨! 주인놈아! 저기 봐라!”
“응?”
“저기 그때 그놈들이다! 뀨우!”
어젯밤 처녀귀신을 쫓던 놈들이 벌거벗은 상태로 풀밭에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봤는데.
위잉~ 위이잉~
시커먼 파리 떼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얘들 왜 여기 죽어 있어?”
기껏 처녀귀신한테 빨려 죽을 뻔한 거 살려 줬더니만.
알고 살려 준 건 아니지만.
“흠.”
시체를 보아하니 딱히 외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연사했을 리는 없고.
“비 맞고 돌아다니다가 저체온증으로 죽은 건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직 가을이라 비를 맞았다고 해도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다.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벌거벗고 있는 게 체온유지에도 더욱 유리했을 테고.
게다가 귀주성은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아직은 따뜻하다고?
도시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서 열심히 뛰어가다 보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수치스러워서 수치사한 건가?
“어디 보자…….”
시체들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빨렸네, 빨렸어.”
홀쭉하게 움푹 파인 볼.
입가에 흐르는 피.
꽁꽁 묶였던 것 같은 흔적들.
딱 봐도 머리칼에 휘감긴 채 정기를 빨린 것 같다.
“역시 안 죽은 건가.”
어째 경험치가 안 오르더라니.
정황상 그 처녀귀신이 나한테 쳐 맞고 도망쳤다가, 이 자식들을 끝까지 뒤쫓아 가서 빨아먹은 모양이네.
어휴.
집요하고 악독한 계집 보소?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그걸 또 쫓아가서 죽이네…….
물론 평소 하는 짓거리들을 보아하면 죽어 마땅한 놈들이긴 했지만.
“가자. 어차피 뒈져도 싼 놈들인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민폐인데, 이렇게라도 세상에 기여하는 거지.”
“뀨! 그렇다! 시체는 거름이 된다! 뀨우!”
“그럼.”
죽으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법.
그게 협객이든 악인이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 * *
“그, 그놈이다.”
“눈깔아. 괜히 눈 마주쳤다가 뒈지지 말고.”
“헉!”
다시 도시로 왔더니 건달들이 우릴 보고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다.
후후.
역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니까.
그래야 못 건드리지.
‘개방 분타를 어디 가서 찾지?’
이곳 정안현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어딜 가서 개방의 분타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지. 굳이 찾을 필요 없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분타까지 찾아갈 필요성은 없을 것 같다.
‘저잣거릴 돌아다니다 보면 거지 한 명쯤은 만나겠지.’
물론 모든 거지가 개방도인 건 아니겠지만, 개방도가 거지일 확률은 100퍼센트잖아?
후훗.
거지 몇 명쯤 만나서 얘길 나눠보다 보면 개방 분타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어디 보자…….
어디 거지 없나…….
역시.
저 멀리 깡통을 차고 동냥중인 거지 하나가 보였다.
“저어.”
거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예, 소협. 한 푼 줍쇼.”
거지가 깡통을 내밀며 대답했다.
“혹시 개방도세요?”
“아닙니다요. 저는 평범한 거지입니다요.”
“아하.”
“소협께선 어찌 개방도를 찾으십니까요?”
“그럴 일이 있습니다. 하하.”
“혹시 개방도를 찾는 방법이 필요하십니까요? 헤헤헤.”
거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정보를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땡그랑!
깡통 안에 은자 하나를 떨어뜨렸다.
개방도를 만날 수만 있다면야 은자 하나쯤이야.
“감사합니다요.”
“개방도는 어떻게 찾죠?”
“쉽습니다요. 개방도들은 모두 허리춤에 자기 지위에 맞는 매듭을 달고 다닙니다요.”
거지가 개방도를 구별하는 방법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매듭을 결이라 하는데, 가장 높은 지위인 용두방주의 매듭이 9결이고 후계자인 후개의 매듭이 8결입니다요.”
“아하?”
“개방에 갓 입문한 거지들은 매듭이 하나라 1결이고, 거기서 짬을 먹으면 2결 제자가 되어 무공을 배울 기회가 주어집니다요.”
“그렇군요.”
“저잣거리를 돌아다니시다 보면 허리에 매듭 한두 개쯤 단 거지들을 찾아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요. 그들이 바로 개방도들입죠. 헤헤헤.”
“친절하시네요.”
덕분에 하나 배웠다.
땡그랑!
보답으로 은자 한 푼을 더 깡통에 떨어뜨렸다.
“그럼, 수고하세요.”
“예, 소협. 복 많이 받으십시오. 헤헤헤.”
정보를 제공해 준 거지를 뒤로하고 개방의 거지를 찾아 나섰다.
허리에 매듭을 단 거지가 어디 있나…….
저깄다!
정보를 제공해 준 거의 말처럼, 허리에 매듭 하나를 단 거지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예, 소협. 한 푼 줍쇼.”
아니이…….
이것들은 뭐 입만 열면 한 푼부터 달래…….
“개방도 맞으시죠?”
“아, 예.”
개방도가 대답했다.
“소협께선 어찐 일로 개방도를 찾으셨습니까요?”
“정보가 좀 필요해서 그러는데요…….”
“정보 말씀이십니까요?”
“혹시 좀 높으신 분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지부장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요?”
“뭐, 그런 거죠.”
“한 푼 줍쇼.”
개방의 일결 제자가 깡통을 내밀며 말했다.
땡그랑!
그래, 줘야지…….
“예, 소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개방이야말로 자본주의에 가장 충실한 문파가 아닐까?
* * *
개방 정안현 지부는 도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소협, 저기가 정안현 지부입니다요.”
저 멀리 자그마한 다리 밑에 허름한 움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진짜 거지소굴이 따로 없네.
일결 제자를 따라 정안현 지부로 가서 지부장을 만났다.
“어서 오시오, 소협.”
허리에 세 개의 매듭을 단 지부장이 깡통부터 들이밀었다.
“한 푼 줍쇼.”
“…….”
“한 푼 줍쇼.”
하 씨.
또?
땡그랑!
깡통에 은자를 떨궜더니 그제야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반갑소. 본인은 이곳 정안현 지부의 지부장 이춘삼이라 하오.”
“아, 예. 연오랑이라 합니다.”
“연 소협께서는 어찌 개방을 찾으셨소이까?”
“개방이 정보력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라면서요?”
“음! 그 말은 맞지!”
이춘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히 본방이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이라 불리겠소? 껄껄껄!”
“그럼요. 하오문 놈들보다야 개방이 낫죠.”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슬슬 본론을 꺼내려는데.
“지부장님! 지부장니이이이임!”
우당탕탕!
이결 제자 하나가 움막으로 뛰어 들어와 보고했다.
“어허!”
이춘삼이 이결제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자식이 진짜! 지금 고객 응대 중인 거 안 보여?!”
나 고객이었어?
돈 주고 정보 얻으러 온 거니까 고객이 맞기는 한데, 어째 거지 입에서 고객이란 말이 나오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해…….
“죄, 죄송합니다.”
“얼마 만에 우리 지부를 찾아온 호ㄱ…… 아니 고객님이신데!”
호구까지 잡으려고 했어?!
어설픈 놈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서버라더니, 아주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등쳐먹으려고 난리도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도대체 뭔 일이 벌어졌길래 고객 응대 중인 지부장을 방해하는 거냐? 엉?”
“그게 그러니까.”
속닥속닥.
이결 제자가 이춘삼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뭐?!”
이춘삼이 눈을 크게 뜨며 펄쩍 뛰었다.
“천하말석문 놈들이 우리 구역을 침범했다고?!”
어?
천하말석문?
그거 천하제일문을 조롱하는 말 아냐?
“예! 지부장님! 천하말석문 놈들이 우리 구역을 침범한 거로도 모자라서 일결 제자들이 구워 먹던 닭까지 훔쳐갔답니다!”
“이런 개 같은 놈들!”
이춘삼이 시뻘게진 얼굴로 쌍욕을 퍼부어댔다.
아이고.
화 많이 나셨나 보네.
“이젠 하다하다 우리 제자들 밥그릇까지 넘봐? 아주 거지 똥구멍에 낀 콩나물도 빼 먹을 새끼들이로다!”
표, 표현 보소?
“으득!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 구역까지 넘어와 구걸하던 것도 봐주었거늘! 내 이놈들을 당장! 돼지촌으로 제자들을 보내 다리몽둥이를 확…….”
화가 난 이춘삼이 벌떡 일어나 움막을 뛰쳐나가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차차! 소협, 미안하오. 본 방에 일이 있어 잠시 흥분하고 말았소이다.”
“예, 뭐. 그러실 수 있죠.”
“그래서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오? 내 특별히 싸게 드리리다.”
이춘삼이 은근슬쩍 주판을 꺼내 들고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뭐든 말해 보시오. 내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물어다 드릴 터이니. 후후후.”
“필요 없어요.”
“음?”
이춘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소협?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정보가 필요하시다고 하시질 않으셨소이까?”
“생각해 보니까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뭐, 뭐요?!”
“수고하세요.”
“소, 소협! 소혀어업!”
등 뒤로 이춘삼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미련 없이 움막을 나왔다.
미안한데, 이미 정보 다 얻었어.
니 입으로 다 알려 줬잖아!
이 멍청아!
‘도대체 얼마나 망했길래 개방도들이랑 부대끼는 거야? 어휴.’
하긴.
문파의 본거지가 버려져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처참하게 망했는지 짐작이 간다만.
* * *
정안현 외곽에 자리한 빈민가, 돼지촌.
“대사형! 큰일 났어요!”
여느 때처럼 저잣거리에 내다 팔 돗자리를 짜던 유건명은, 사매인 초아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매, 무슨 일이야.”
“영인이가 또 사고를 쳤어요!”
유건명이 돗자리를 짜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하아.”
유건명의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개방도들과 한판 했나 봐요.”
“또 개방도들과 다툼을 벌였단 말야?”
“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에요, 대사형.”
“사매는 일단 여기 있어. 내가 가서 얘기해 볼 테니.”
“아니에요. 같이 가요, 대사형.”
초아란의 말대로, 돼지촌으로 돌아온 진영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음은 물론, 입가는 찢어져 피가 흘렀고, 오른쪽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밤탱이가 되어 있기까지 했다.
그런 진영인을 따르는 고아들인 왕춘식과 고덕룡 역시 엉망진창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사제!”
유건명이 황급히 진영인 일행에게로 뛰어가 소리쳤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개방도들과 싸웠다면서?”
“예, 뭐.”
진영인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꾸했다.
“한바탕 찐하게 하고 왔죠. 별거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사제 얼굴이 이 모양이 됐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유건명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별일 아니에요.”
“뭐가 별일이 아냐!”
“진짜 별일 아니라니까요.”
“사제.”
유건명이 조용한 목소리로 진영인에게 다시 물었다.
“개방도들과 싸운 이유가 뭐야.”
“…….”
“정말 이럴 거야?”
“이거.”
마지못한 진영인이 흙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덩어리 세 개를 유건명에게 보여 주었다.
진흙 사이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걸 보면, 연잎으로 닭을 감싼 뒤 진흙을 발라 구워 먹는 거지닭이 분명했다.
“설마.”
유건명이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감쌌다.
“개방도들이 구워 먹으려던 닭을 뺏어 온 거야?”
“원래부터 뺏으려던 건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예.”
진영인이 짧게 대답했다.
“대, 대사형!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영인이가 좀 나눠 먹자고 했는데 아 글쎄 개방 놈들이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오더라고요!”
이때다 싶었는지 왕춘식과 고덕룡이 한 마디씩을 떠들어 대며 진영인을 거들었다.
“으윽.”
유건명이 뒷목을 움켜잡고 괴로워했다.
진영인이 사고 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지만, 개방도들을 대놓고 두들겨 팬 뒤 먹을 것을 뺏어온 건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이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