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사제, 어쩌자고 개방도들이 구워 먹으려던 닭을 뺏어 온 거야.”
유건명이 인내심을 발휘해 진영인을 타일렀다.
어쩐지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니.
거지닭을 빼앗으려다 개방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모양이다.
그나마 두들겨 맞기만 한 게 아니라, 닭을 뺏어온 게 용하기만 하다만…….
“이런 식으로 개방도들이랑 부딪혀서 우리한테 좋을 게 있어?”
“딱히 나쁠 것도 없죠.”
“뭐라고?”
“그렇잖아요. 그 자식들도 심심하면 우리한테 시비를 걸어오잖아요? 왜 우린 참고만 있어야 합니까?”
진영인이 독기 어린 눈을 빛냈다.
“기왕 뺏어온 거니까, 들어가서 다 같이 먹죠.”
“안 돼. 허락할 수 없어.”
유건명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닭은 개방도들에게 돌려줄 거야.”
“왜요.”
진영인이 도전적인 태도로 유건명에게 따졌다.
“힘들게 뺏어 온 건데 왜 다시 돌려줘요? 이거 뺏어온다고 우리가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아세요?”
“이건 강도질이잖아.”
유건명이 다시 인내심을 발휘해 진영인을 타일렀다.
“우린 대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이야. 이런 식으로…….”
“천하제일문이 밥 먹여 줘요?”
“뭐?”
진영인이 툭, 하고 던진 한 마디에 유건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하제일문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잖아요.”
“……사제.”
“당장 쌀통에 쌀 한 톨 없고 매 끼니마다 먹을 게 없어서 나무껍질 벗겨 먹고 풀뿌리 캐다 먹는 지경이잖아요.”
“…….”
“사매가 냇가에서 잡아 온 물고기로 끓인 어죽도 이젠 질려요. 입에서 비린내가 다 난다고요. 고기 못 먹어 본 게 언젠지 기억이나 나세요?”
날이 잔뜩 선 진영인의 말에 유건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부님께선 나날이 말라가시고, 이젠 힘이 없으셔서 말씀도 잘 못 하세요.”
“그건 그렇지만…….”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천하제일문이니 협이니 하는 게 뭐가 중요해요? 문파니 협이니 하는 것들도 다 입에 밥숟갈부터 들어가야 하는 건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유건명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안 돼.”
유건명이 진영인이 들고 있던 닭을 빼앗아 들었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둑질, 강도질은 안 되는 거야.”
“그럼 구걸은 되고요?”
“그, 그건.”
“옛날에는 구걸도 했었잖아요. 우리가 개방이랑 뭐가 달라요? 말이 천하제일문이지, 하는 건 개방도랑 하나도 다른 게 없…….”
“그만.”
유건명이 엄한 목소리로 진영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건 안 돼. 우린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이야. 형편이 어려워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하지는 못할망정, 범죄에 손을 대선 안 되는 거야.”
“쳇.”
진영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사제가 힘들게 고생해서 빼앗아 온 건 알겠지만, 이건 눈감아줄 수 없어.”
“…….”
“돌려주러 가자.”
유건명이 닭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우르릉!
콰앙!
유건명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굶다 못해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라, 꼬르륵 소리를 넘어 천둥소리가 난 것이다.
* * *
배에서 천둥이 친 건 유건명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릉!
쾅쾅!
초아란, 진영인, 왕춘식, 고덕룡의 배에서도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때아닌 배꼽시계에 모두가 침묵했다.
여자인 초아란만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었다.
꿀꺽!
유건명이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덕지덕지 묻은 진흙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소한 닭고기 냄새에 그만 몸이 반응해 버리고만 것이다.
‘차, 참아야 한다.’
유건명은 당장에라도 진영인이 빼앗아 온 닭고기를 와구와구 뜯어먹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나는 천하제일문의 대제자다. 대제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돼.’
한번 강도질을 허락했으면, 그다음은 더욱 쉬운 법.
유건명은 군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애써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닭을 돌려주려 했다.
“대사형.”
초아란이 나섰다.
“제게…… 돈이 조금 있어요.”
“응?”
유건명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사매가 가진 돈이 있어?”
“조금요.”
초아란이 미소를 지었다.
“한 푼, 두 푼 조금씩 모아 오던 게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닭 세 마리 값을 치를 정도는 돼요.”
그러자 진영인이 발끈해 나섰다.
“사저! 우리가 돈을 왜 줘요! 줄 필요 없어요! 사저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걸 개방도들에게 줘요! 됐어요! 그냥 먹고 입 닦으면 돼요!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질게요!”
“사제는 대사형 말씀 못 들었어?”
이번에는 초아란도 엄한 표정을 지으며 진영인을 타일렀다.
“우리는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이야.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뭔가를 취해서는 안 되는 거야. 다행이 돈이 조금 있으니까, 사제가 고생해서 구해 온 걸 생각해서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는 거야.”
“사저…….”
“다음부터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나는 사제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알겠어?”
“예, 사저.”
초아란의 으름장에 진영인이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
유건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초아란에게 물었다.
“어떻게 돈을 모았어? 우리 형편에 돈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찌어찌 모았어요. 그러니 닭은 우리가 먹고, 내일 개방도들을 찾아가서 값을 치러요.”
“사매…….”
“들어가요. 사부님께도 오래간만에 고기를 대접해 드려야죠.”
“미안해, 사매.”
유건명이 서글픈 얼굴로 초아란에게 사과했다.
“대사형이 되어 가지고 능력이 없어서.”
“아니에요, 대사형. 그런 말씀 마세요.”
초아란이 미소를 지었다.
“대사형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계신 거, 알아요.”
“그렇지만…….”
“내일은 돗자리가 많이 팔려서 사정이 좀 나아질 거예요. 우리 그렇게 생각해요. 희망을 갖고.”
“사매…….”
“들어가요, 대사형.”
초아란이 유건명을 잡아끌었다.
* * *
그날 저녁.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은 모처럼 만에 고기를 입에 대었다.
그러나 고작 닭 세 마리로 모두가 배부르게 먹는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주화입마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장문인 양봉길.
대제자 유건명.
유일한 여자 문도인 초아란.
사고뭉치에 쌈닭 기질이 농후한 진영인.
제일 어린 제자이자 무공보다는 글공부에 더 관심이 많은 하후림.
그리고 비록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천하제일문의 문도나 마찬가지인 왕춘식과 고덕룡까지.
굶주린 사람이 무려 일곱 명이다 보니, 고작 세 마리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저 입가심으로 고기 맛만 조금 보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부님, 드셔 보십시오. 영인이가 어렵게 구해 온 겁니다.”
유건명은 거동이 불편한 장문인 양봉길을 일으켜 세우고, 살이 가장 토실토실하게 오른 닭다리를 입가에 대 주었다.
“닭고기로구나…….”
양봉길은 차마 미안한지 닭다리를 뜯지 못했다.
“어찌 영인이가 닭을 구해 왔단 말이냐…….”
“영인이가 오늘 낮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주었는데, 그들이 고맙다며 돈을 조금 주었답니다. 그걸로 사 온 것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정말이냐? 우리 영인이가 그런 협행을 했다고?”
“예, 사부님.”
유건명이 미소를 지었다.
“영인이가 그간 사고를 친 건 사실이지만, 요즘은 꽤 철이 들었습니다. 본문의 문도답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니, 기특하기 그지없습니다.”
“영인아.”
양봉길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진영인을 돌아보았다.
“건명이 말이 정말이냐? 네가 정말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준 것이냐?”
“네, 사부님…….”
진영인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협행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왔는데 이 사부의 눈을 피하는 것이냐? 설마…….”
“사부님.”
유건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인이가 모처럼 만에 사부님께 칭찬받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나 봅니다.”
“그래?”
“아시잖습니까. 영인이는 칭찬받을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거.”
“알다마다.”
양봉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영인이는 칭찬에 약하지. 암, 그렇고말고. 영인아.”
“네, 사부님…….”
“잘했다.”
“…….”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니, 이 사부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과연 본문의 제자다워.”
“네…….”
“앞으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면 외면치 말고 최대한 도와줄 수 있도록 하여라.”
“네, 사부님…….”
“어여 먹자꾸나. 닭이 다 식겠구나.”
양봉길이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무는 것을 시작으로, 제자들이 조심스레 닭고기에 손을 뻗었다.
“쩝쩝쩝!”
“얌얌얌!”
“와구와구!”
“냠냠냠.”
이성을 잃어버린 진영인, 왕춘식, 고덕룡이 정신없이 닭고기를 뜯는 가운데.
“대사형이랑 사저는 왜 안 드세요……?”
하후림이 유건명과 초아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영인, 왕춘식, 고덕룡과는 다르게 유건명과 초아란은 닭고기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 사제. 아까 낮에 저잣거리에서 만두를 얻어먹었거든.”
“나도 괜찮아. 진 사제가 닭을 구해오기 전에 어죽을 많이 먹었어.”
유건명과 초아란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천하제일문의 대제자다. 사부님과 사제들이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다면, 이깟 식욕쯤 견디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유건명은 천하제일문의 대제자이자 실질적인 장문인.
사부인 양봉길과 사제들을 위해서라면 닭고기쯤은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초아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사형께서도 참으시는데 나라고 식탐을 부릴 순 없어.’
초아란은 천하제일문의 안주인 역할을 도맡아 하는 존재로서, 차마 닭고기를 입에 댈 수가 없었다.
몸이 불편한 장문인 양봉길과 혈기왕성한 사제들이 닭고기를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했던 것이다.
* * *
“……진짜 처참하게 망했나 보구나.”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아까 전부터 천하제일문을 지켜보는 중이다.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이 돼지촌에 산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햄찌를 타고 달려왔었는데, 마침 닭고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보게 됐다.
호기심에 두어 시간쯤 지켜봤는데, 아주 가관이다.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한지, 입은 옷들과 신발들도 헤져 있거나 구멍이 안 뚫린 데가 없을 지경이네…….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
곰팡이 슨 단칸방에서 라면 한 봉에 하루를 버티던 때가.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형편도 그리 좋지 못했고.
그런 주제에 객기를 못 이기고 복수하겠답시고 빚까지 내서 아이템을 사고, 그걸 몽땅 잃어버린 뒤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됐었으니 말 다했지.
물론 그때의 그 독기 어린 행동 덕분에 사부님 눈에 들 수 있었고, 인생이 달라지게 됐지만.
“뀨우! 주인놈아! 왜 우냐!”
응?
“내가 운다고?”
“뀨! 주인놈아! 눈가에 습기 맺혔다! 뀨우!”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인마.”
“뀨우? 우는 거 아니냐?”
“그냥 옛날 생각나서 그래! 옛날 생각나서!”
슬쩍 눈가를 훔치는데.
“내 이 새끼들! 가만 안 둬!”
“아주 다리몽둥이를 작살을 내놔야지!”
“강도질을 할 사람이 없어서 감히 우리 개방도들의 음식을 빼앗아 가다니!”
“이 거지같은 천하말석문 놈들!”
저 멀리 화가 단단히 난 개방도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